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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건.... 사람이다. [어미소의 모정]

손우정 |2011.01.23 17:54
조회 3,619 |추천 13

 

어미 소가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죽으러 가는 걸 안 것일까?

어미 소가 눈물을 흘린다. 새끼 혼자 남기는 것이 가슴 아파서..


전국이 최악의 ‘홀로코스트(대학살)’ 중이다. 어미소와 송아지가 차례로 서서 죽음을 기다린다. 눈매라도 모질었으면 살처분 현장 사진을 보며 가슴이 찡하진 않았을 것이다. 지난 11월 말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220만 마리의 소, 돼지, 염소들이 차디찬 겨울 땅에 묻혔다.


단지 가축으로서의 효용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국가적 차원에서 묻어버렸다. 돈이 안 된다는 것이다. 국가적이란 이야기를 했지만 구제역의 처리방법은 동물 생명권을 존중한다는 유럽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처리 방법은 도축, 매장이 ‘글로벌 스탠다드’다.


뉴스기사를 봤다.


며 칠 전 강원도 횡성 살처분 현장. 방역요원들이 소들을 안락사시키기 위해 근육이완제 ‘석시닐콜린’을 주입했다. 서늘한 주사바늘이 어미소의 가죽을 뚫었다. 어미는 이내 동공이 풀리고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그 어미의 새끼가 다가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어미에게 젖을 달라고 보챘다. 제 한 몸 가눌 기력 없는 어미소는 하지만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30 초가 지나고 1분이 흘렀다. 안락사 주사를 맞으면 근육이 마비돼 호흡이 불가능해져 통상 1분 안에 숨을 거둔다. 하지만 어미소의 모정은 죽음조차 늦췄다. 힘이 빠져 무릎이 꺾이면서도 계속 젖을 물렸다. 그렇게 2분이 지났다. 새끼가 입을 뗄 때까지 어미소는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으려고 단말마의 고통을 이겨냈다. 새끼가 젖을 다 빨고 나서야 어미는 비로소 몸을 옆으로 뉘었다. 여전히 시선은 새끼를 향해 있었다.


엄마가 주는 마지막 식사를 마친 송아지는 쓰러진 어미 곁을 계속 맴돌았다. 하지만 그 슬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새끼소도 이내 어미의 뒤를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방역요원들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서울 신문 전문-

 

가슴이 아팠다. 전국의 살처분 현장은 가축을 키운 사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모정(母情)’이란 생명의 피라미드 꼭지점에 서서 내려다 볼 줄만 아는, 자만에 빠진 인간에게만 쓰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근육 이완제를 놓는 공무원이나, 가축의 주인이나, 그것을 시행케 한 중앙 정부부처나 그 누구도 이런 죽음을 원치 않는다. 겉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인간의 이기심의 발로(發露)를 볼 수 있다.


소를 한, 두 마리 키우는 (워낭소리 주인공 할아버지 같은) 농가의 경우를 제외하고 육우와 젖소를 전문적으로 키우는 농가에게 구제역은 재산의 피해와 같다. 질병으로 인한 상품 질의 하락은 곧 가격의 왜곡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농가소득의 감소로 이어진다. 또, 육류, 유가공식품 등의 가격이 출렁이면 당장 소비자들이 들고 일어난다. 이는 정부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우리가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생명의 존귀함’은 결국 경제의 논리에 눌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가슴 속으로 눈물 흘리고 있는 ‘어미소 모정’에 대한 사연도 구제역이 끝나는 순간 썰물처럼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망각 없이 행복은 있을 수 없다”라고 모루아라는 프랑스 작가가 말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망각은 인류의 정신적 성장을 퇴보시키는 요인이 된다. 사건의 반성마저 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구제역이 돌면 또 지금과 같이 살처분을 할 것이고 ‘학살의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다.


인간은 어쩌면 자극적인 현실 속에 살면서 이미 생명의 존귀함에 대해 굳은살이 박혔는지 모른다. 얼마 전 재미로 강아지를 연쇄 살인한 고등학생들과 생후 8개월 된 딸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야산에 암매장한 엄마. 모두 굳은살의 연장선이다. 딸을 ‘때려’, ‘숨지게’, ‘야산’, ‘암매장’. 엄마란 단어와 참 대비된다. 살해 이유는 단지 딸이 ‘칭얼거려서’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칭얼거리는’ 새끼에게 젖을 준 ‘한낱 짐승’의 모정과는 사뭇 다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영장은 영묘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인간이 영묘 불가사의한 힘을 가졌는지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자격은 없다. 그 누구도 그런 권력을 인간에게 주지 않았다. 인간이 생명에 대한 존귀함을 잊어버리는 순간, 인간은 약육강식 세계를 살아가는 하이에나가 될 뿐이다. 누구도 인간에게 그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인간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다.


자만심에 빠진 인간은 잠시 길에서 엇나가, 방황하고 있다. 방황을 끝내고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생명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다. 그것을 '망각의 악순환'을 초래하는 머리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뜨거운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생명의 숭고함에 대한 겸손과 함께..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당신은 만물의 영장인가? 아무런 사념(思念)의 여과작용 없이 ‘그렇다’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영장이란 단어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출처 : 블루아이미디어 칼럼 http://www.blueeyemedia.co.kr/news/view.html?section=1&no=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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