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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아버지와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2011.01.23 19:57
조회 55,433 |추천 333

 

안녕하세요 올해 스무살 된 여학생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판에라도 글을 써볼까 조언을 구해볼까 하며

처음 고민하고도 2개월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에야 이렇게, 지금도 역시나 어렵게 글을 적게 됐습니다.

무슨 말부터 어떻게 적어야 할 지 고민이 안 되지는 않네요.

두서없이 글이 길어지겠지만 관심을 갖고 읽어주시고 조언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목처럼, 저는 아버지와 작년 12월 2일 부터

실수라 하면 실수였을 그날 일로 어쩌면 평생을 돌이킬 수 없는 그런 사이가 되었습니다.

 

우선 저는 지금

저와 제 밑으로 두살 어린 18살 여동생과 그 아래 15살 남동생, 그리고 우리 어머니.

이렇게 넷이서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9살 초등학교 2학년 때 이혼을 하셨습니다.

저희 남매는 그후로 아빠 밑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비위생적인 양육 환경(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 쌓이고 때 낀 집안, 이틀이나 지나버린 쉰 밥,

큰 반찬통에 대여섯가지의 섞이고 섞인 반찬들 등)

아빠의 근무 시간(하루 내 근무 하루 내 휴가, 옛 공무원 근무시간)

영양 섭취 등

여러 문제로 하여금 엄마와 다시 합치게 되었습니다.호적상으로는 이혼상태구요.

 

 

* 아빠 밑에서 자랄 적,

집안은 엉망이고 밀린 빨래와 설거지로 너무나도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 당시 저도 동생들도 너무 어려서 우리조차도 그런일에 무심했던 것 같구요.

아빠가 근무날일 때에는 밤 12시, 새벽 2시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다 잠들고

주식은 콘푸라이트 같은 한그릇 음식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밥을 해놓고 가도, 먹기가 싫었고 (물밥) 안 먹은걸 들키게 되면 혼날게 두려워서

밥을 먹은 것처럼.. 퍼서 버리는게 일상이었습니다.

훗날 어머니께서 그 사실을 저에게 듣고 너무나도 속상해하셨구요.

 

 

 

 

두 분께서는 결혼하실 적, 사랑 없이 양가 부모님의 소개로 (자세히는 모르지만)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1991년 11월 두 분은 결혼을 하셨고, 1년 후 가을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제가 점점 크고, 생각의 수준도 커가고 성숙해져 갈 때

엄마로부터 듣는 옛 날 이야기는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합니다.

 

저를 임신하셨을 때 엄마는 아빠 네 시골 할머니댁에서 일을 도우며 같이 생활하셨습니다.

그러다 배가 점점 불러오고 출산을 앞두고도 어김없이 일을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심한 통증을 호소하시며 아빠에게 애가 나올 거 같다며 병원에 가자고 하셨다 합니다.

근데 아빠는 "어머니께 가봐" 라며 내버려두셨고, 그때 할머니께서는

"그냥 잠깐 아픈거다. 병원은 천천히 가봐라" 고 하셨다 합니다.

 

결국 양수가 터졌고, 그때서야 아빠도 상황을 파악하셨는지 서둘러 차에 타고 병원으로 가셨다 합니다.

좋은 길이 있는데도 그 길로 가면 기름값이 더 나온다 하며,

비틀진 길로 겨우 겨우 가셨다네요.

 

그 날이 제가 태어난 날이고, 양수가 터져 제 생명에도 위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다른 아기들이 있는곳에 누워있지 못하고 제 건강을 위해 인큐베이터에 있었고

엄마는 산후 조리는 커녕, 출산 당일 병원에 입원도 못하신 채로

저를 낳고 바로 시골로 돌아와 역시나 시골 일을 도왔다고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빠는 엄마께 심한 욕설,

너때문에 애가 그렇게 됐다, 그지경이 되도록 넌 뭐한거냐,애가 죽으면 니 탓이다 라며..

 

지금 쓰면서도 눈물이 납니다. 어떻게 병원에 하루도 입원시키지 않고

또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그런 말을 하며 엄마한테 상처를 줄수 있는지요.

 

 

언젠가, 엄마께서

'아내가 출산할 때, 남편이 옆에서 손을 꼭 잡아주는게 난 너무 부럽다.

그게 어쩌면 이세상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고 그게 또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아느냐'며

말씀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태어난 그날 아빠는

병원에 엄마를 데려다주고 모임이 있어 자리를 뜨셨고

둘째동생이 태어나던 날에는 낚시 하느라 엄마 곁에 있어주지도 않았고

셋째동생이 태어나던 날에는 시골 일 돕느라 곁에 있어주지 않으셨다 합니다.

 

 

 

아빠는 그무렵 공무원능력시험 공부를 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태어난 후 분가하여 작은 주택에서 살았을 때, 2살 3살쯤 된 제가

공부하는 아빠 옆에 가서 놀아달라고 다리 위에 기어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아빠가 저를 던지며,

엄마께 "나 공부하는데 애를 왜 들여보내냐" 며 큰소리 내셨고,

놀란 저는 울음을 터트리면서도 아빠 옆에 다시 다가가곤 했다고 합니다.

 

 

 

 

 

 

 

 

 

 

어떤 가정환경인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 저는 엄마에게 가해지는 폭행, 언어폭행 부터 해서

저희 남매에게도 다를 바 없는 그런 폭행들을 당하고, 보면서 자랐습니다.

 

 

 

보통 대개의 폭력적인 남자들처럼 술 먹을때 돌변하지는 않습니다.

평소에 저희 남매에게는 따뜻하십니다.

남들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어디 가면 정말 인상 좋다고, 진짜 잘하고 살 것 같단 소리만 듣습니다.

 

다만, 자식을 사랑하지만, 진짜 사랑해주는 법을 모르십니다.

따뜻한 격려, 위로, 조언의 말은 일체 없이 무조건 체벌로 이어지고

경찰이 죄인을 심문하듯, 의자에 앉혀놓고 언성부터 높이는 그런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런데 엄마한테는 좀 다릅니다.

정말 말같지도 않은 이유를 가지고 엄마를 못살게 구셨습니다

휴지를 왜 여기에 놨냐, 반찬이 왜 이거밖에 없냐, 내가 전에 먹던 컵이 여기 아직도 있다

(티비 옆에 당신 자신이 놔뒀음. 제자리 갖다 놓을 줄을 모르셨음) 왜 안치우냐 하는 걸로요.

 

 

 

 

 

 

초등학교 시절 어느날엔

가족 모두가, 아니 옆집 아랫집 윗집 이웃들 모두가 잠든 새벽에 술먹고 들어오더니

갑자기 식칼을 들고 우리 남매와엄마를 불러

다 같이 죽자고 너부터 죽자고 이리 오라고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정말 평소에는 남과 다를 것없는 평범한 사람인데 (남들 앞에선 더더욱)

집에만 들어오면 왜 그러는지 귀신이 씌인것 같단 생각도 여러번 들었습니다.

 

 

 

그렇게 어릴 적 저는 그런 모습을 많이 봐 왔고,

아빠 앞에만 서면 부들부들 떨게 되고 성격도 점점  내성적으로 변해갔습니다.

내 주장을 펼칠 줄 모르고, 남들 앞에서 위축되며, 눈치 보게 되고요.

그래서 사춘기도 더 빨리 왔고 반항심도 더 크게 감정기복도 심했던 것 같습니다.

 

사춘기가 오면서 저는 처음으로 아빠한테 대들기 시작했고

그래도 항상 제가 맞고 욕 들어야 끝이 났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사춘기도 끝나가고 정말 엄마의 마음을

여자 대 여자로 이해하고 느끼게 됐습니다.

 

하나하나 말하면 끝도 없이 많은 일이 있습니다.

 

아빠한테는 지금 따로 만나는 여자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정말 기억하기도 싫은 일이 있으며 더 길어지기 때문에..생략하구요

 

차도 2대나 있으면서, 엄마는 면허증이 있는데도 아빠 때문에 차를 가지지 못하십니다.

차량유지비가 더 든다면서요. 그러면 니가 가진 차 하나만 양보하고 같이 쓰던가 하자고 해도

무조건 안된다며 강하게 거부하셨습니다.

 

엄마는 10년 전쯤,

아빠의 한달 300 월급으로는 부족하다 싶기도 하고

무직에 주부로만 살다가는 경제적인 자립 능력이 없다고 아빠한테 무시를 당하는 건 당연한일이며 아주 나중에 혹시, 당신 자신의 능력이 필요한 일이 생길 때도 발목잡혀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유치원 교사 자격증도 따시고,

후에 아빠한테 유치원 교사를 할테니 어떻겠냐고 물으셨지만

아빠는 그게 무슨 개소리냐며 그러다 유치원에 애 하나 다치면 니가 책임질거냐며

 

무조건 부정적인 말들로, 희망을 짓밟는 어두운 말들로

엄마의 자립 능력 조차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때문에 항상 엄마를 무시하고 당신한테만 의지하게 만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셨구요.

 

 

 

 

 

정말 황당한 일이..

제가 고등학교 1학년, 야자를 하고 돌아왔는데 집안 분위기가 또 어둡더라구요.

무슨일이 또 있었냐고 동생한테 물었더니

벌벌 떨면서 아무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참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날도 별 이유도 없는 일로 엄마와 다투다가

엄마를 또다시 폭행하셨다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방안에서 두려움에 떨며 귀를 막고 있는 제 동생 둘을 부르더니

"왜 엄마를 때리는걸 안말리냐" 라는

터무니없고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이유로 동생들에게 천천히 다가가

안경을 쓰는 동생에게 "안경 벗어" 라는 한마디를 던졌고,

동생이 안경을 벗자 마자

그 큰손으로 사정없이 얼굴을 세번 네번 다섯번 내리치셨다 합니다.

그리고 남동생에게도 똑같이요.

남동생은 부엌하고 거실까지 약 2m정도의 거리를 뒷걸음질 쳤다 합니다.

발로 차고, 뺨을 때리고 주먹질을 하고..

 

동생들은 너무 놀라고 상처를 받아 목놓아 울지도 못했다합니다.

그때 남동생 나이는 막 10살을 넘긴 나이였습니다.

 

 

평소에는 엄마에게 시비를 걸어 별 걸로 트집을 잡아 걸고 넘어진 후

엄마의양쪽 팔을 잡아둔 채 때리고 냄비로 내리치고 발로 차고 목 조르고..

난리가 아닙니다.

 

그날은 괜히 9시 뉴스 다 같이 모여서 보자고 하더군요.

아빠와 같이 있기 싫고, 또 기분좋게 볼 분위기도 아니여서 엄마는 거절했는데

그 이유로 저랬습니다.

 

 

 

전 그날 생생히 기억납니다.

엄마를 때리는 소리, 악을 지르는 소리에

두려움에 떨며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번호를 누르는 손이 너무 떨려 몇번을 번호를 헛누르다가 겨우 걸었습니다.

아빠가 엄마를 때린다구요. 그 때 엄마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할머니가 그 소리를 들으셨는지. "저게 엄마의 비명소리냐" 라고 하시더군요.

하..

그리고서는 하시는 말이 그냥 아빠를 말리랍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다 살아계십니다.

다 알고 계시구요. 그래도 무조건 다 엄마보고 잘못했다 빌으랍니다.

 

 

그리고 그 어이없는 전화를 끊고, 저는 경찰에 처음으로 신고했습니다.

내 아빠지만, 어쩔 수없이. 될대로 되라며..정말 그러다 엄마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찰에 신고했고, 2분만에 경찰이 벨을 눌렀습니다.

그때 아빠는 갑자기 침착해지며 경찰을 맞이했고

경찰 아저씨는 "여기 폭행 신고가 들어와서 왔다" 며 상황설명을 했습니다.

근데 아빠는 "아무 일 없습니다" 라며 경찰을 웃으며 돌려보냈구요.

그게 좀전에 그 살기 가득한 목소리였는지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누가 신고했냐고 다정하게 묻더라구요.

그때부터 제 반항은 커졌고, 저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내가 했다고 제발 그 지랄좀 그만하라며

당장 이 집에서 다가달라고 그때부터 온갖 자식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 속이 시원해지긴 하더라구요.

정말 그러면 안되는거지만

차라리 그렇게 했을 때 그 이후로 나아졌다면 제가 더 죄송해하고

나중에 사과했을지도모르지만, 아빠는

'자식이 하는말'에 상처 받기는 커녕,

정말 뭐에 홀린 사람처럼 더 심해져갔습니다.

 

 

 

그런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수험생이 되었고,

학교 생활도 엉망이 되었습니다.

갈수록 학업 스트레스, 집에 돌아오면 집에서의 스트레스로

공부에서 손을 놓게 됐고 컴퓨터 티비 등으로 빠져 살았습니다.

살은 점점 빠지구요.

 

 

 

저는 아빠한테

'내 할말을 하는 것'에 대해 이제 조금도 두렵지 않게 됐습니다.

엄마는 그렇게 죽을 만큼 맞고 살면서도, 저희 남매 때문에

가정폭력상담 같은데도 엄두를 못내고, 법적으로 처벌을 받게 할 수 있으면서도

아빠가 잘못되면 우리 남매는 어떡하냐며 참고 사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난 저렇게 바보같이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수능 사탐 선택과목은,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법과사회도 혼자 독학했고

더 내 생각을 말하고 아빠한테 정말 심한 말까지도 하게 됐습니다.

 

 

 

 

 

한참 잠잠하다 작년 10월 쯤 부터 더 심해졌습니다

어느 날 남동생이 학원에서 돌아와 배가 고파 라면을 먹는데

아빠가 "너 왜 라면먹냐. 있다가 다 같이 밥먹지 왜 먹냐" 며 괜히 언성을 높이셨습니다.

 

저도 정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는지

정말 그런 사소한 일에 갑자기 화가 치밀어올라 아빠한테 큰소리를 했습니다.

"니가 지금 왜 또 소리를 지르냐. 쟤가 배고파서 간식 먹는게 그렇게 잘못된거냐.

 넌 도대체 집에 와서 왜 그렇게 시비 걸 것들만 찾냐"라면서요.

 

그랬더니 "미친년아 니가 지금 미쳤냐?" 라며 뺨을 때렸습니다.

이제 맞는것도 하나도 안아프더라구요. 근데 눈물이 났습니다.

욕을 들었으니까요. 너 방금 뭐라했냐 미친년이라고 했냐. 라며 전 또다시 반항했고

아빠는 갑자기 크게 웃으시며

"그래 니가 진짜 미쳤구나. 난 이제 너 모른다 너 투명인간이지 내눈엔 안보인다

지금 내앞에 검은 물체 뭐냐 비켜봐라" 라고 하시더라구요.

방안에서 공부하던 여동생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정말 웃겼습니다. 그게 이제 50대를 바라보는 '아버지'라는 사람이 할 말인지 유치해서요.

존경심을 가질 수 있게, 무거운 한마디를 하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구는 모습에 할말이 없어졌고,

 

그 날 이후로 정말 아빠하고는

투명인간을 마주하듯 눈에 안보이는 것처럼 생활했습니다. 한달이 넘도록요.

 

 

 

이제 저도 동생들도 다 컸는데

그래서 엄마아빠 싸울때 상황판단도 다 되는데

동생들이 가서 조곤조곤 타일러도 언성부터 높이고는

더러 엄마한테, 너부터 소리질렀다 며 오히려 더 큰소리치십니다.

 

 

 

엄마가 주말에 저랑 동생 자는 방 와서

아침에 같이 침대에 누워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는데

자기 출근하는데 배웅 안한다고

화장실에 엄마가 걸.레 담가놨던 그 꾸중물을 들고 와서는

얼굴에 부었습니다.

"미친년" 이라는 말도 함께요.

 참을 수 없는 날들이었습니다. 19년 동안요.

 

 

 

 

 

그런데 정말 마지막 사건이 터졌습니다.

 

 

 

 

어느날은 또 엄마한테 괜히 성질내고는 자기 분을 못참았는지,

저녁에 먹었던 음식을 일부러

입에 손을 집어넣고 억지로 토해내셨습니다.

 

진짜 이게 말이되나요? 그게 나이먹은 중년의 '아빠'로서의 행동인가요?

 

 

그리고는 그 토해낸 것을 엄마방 문지방에다 다 뱉으셨습니다.

(아빠는 거실에서, 엄마는 안방에서 주무십니다. 거실에 깔고 자는 이불은 그대로 개우지도 않구요.)

 

전 진짜 너무 기가 막혀서

"너 당장 치워. 니가 치워." 라고 소리질렀고,

그말에 콧방귀를 끼고는, 화장실 슬리퍼에도 다 묻히더라구요.

 

전 이성을 잃었습니다.

 

토해내고 아무일 없다는듯 이불 속에 들어가 눕는 모습에 이성을 잃고

그 슬리퍼를 손끝으로 들어,大자로 누워있는 아빠의 얼굴에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A4용지에 문지방에 있는 토해낸 그 것들을 담아

아빠 얼굴에 또 던졌습니다.

 

"니가 지금 제정신이야? 너 진짜 미쳤지?" 라며 덜덜 떨며 울며 소리를 질렀고

정말 이성을 잃은 채로 달려가 머리를 발로 찼습니다.

동생들은 놀라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고, 엄마도 정말 너무 놀라 저를 필사적으로 말리셨습니다.

 

저는 수능날에도

집과 멀리 떨어진 고사장에서 봤기 때문에

차가 없는 엄마는 그 추운날 제게 미안하다며, 아침에만 같이 택시를 타고 절 배웅하셨고,

시험이 끝나고 고사장 앞에 많은 부모님 분들 사이에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하셨습니다.

아빠 품에 안겨 격려를 받고 축하를 받고 위로를 받는 다른 또래 친구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구요.

 

 

 

그 때 그 날 이후로 집은 얼음장처럼 얼어붙었고,

12월 2일날, '내 탓은 없다'며

 

 

        '무조건 너희 탓이고 난 지금까지 살아온 날에 대해 미안한 마음은 추호도 없다

         생활비는 꼬박 보낼것이다. 애비 없이 자란 건 부모 없이 자란거나 마찬가지다.

         어디 가서 애비 없이 살았다고 눈초리 받지 않게 애들 교육은 내 몫까지 잘 가르쳐라

         가끔 애들하고는 짧은 안부라도 묻고 살 것이다

         그리고 (엄마) 우리가 볼 날은 애들 졸업식, 입학식, 부모님 장례, 결혼식 등

         중요한 일 아니면 없을것이며 나는 이 집에는 절대 단 한번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이후 내 심기를 건드리는 일, 연락, 소문이 있을 경우에는

         나도 나를 어찌할 수 없으니 후회할 것이니 절대 조심해라.'

 

 

라는 식의 A4용지 12장에 걸친, 일방적인 글을 남긴 채 아빠는 집을 나가셨습니다.

벌어오는 300만원 중 100만원은 자기 생활비로 쓰겠다며

이미 자동이체를 해 놨다는 말도 포함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빠 혼자 쓴 개인 카드빚은 100만원이 넘어가고 대출은 일상이고

어떤 카드는 한도범위를 벗어나 막혀버린 카드도 있다는 말을

엄마께서 카드 고지서를 받고 속상함에 혼자서 하시는 말씀으로 얼핏 들은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어쩔 수 없이 엄마 카드로 돌려막기도 했구요.

빚은 다 엄마께서 갚으셨습니다.

카드고지서 날라오면 메모지에 아빠는

 

 

                 '이러이러한 곳에 얼만큼 씀. 갚아야 할 금액 얼마.'

 

 

식으로 남긴 게 전부였고,

(일체 대화란 것을 잘 안하려고 하셨습니다. 말만 꺼냈다 하면 또 싸우게 되니까요.)

엄마께선 그걸 밤새워 고민하고 걱정하고 막막해하셨던 기억이 있구요.

또, 지금도. 집 나가서도 엄마께 문자가 오고 그런답니다.

 

'니가 안막으면 내가 하리? 난 내 봉급에서 애들 생활비 보내주고,

카드빚까지 책임지려면, 내 생활비는 물론 애들 생활비에까지 지장이 간다.

니가 일해 번 돈으로 어떻게든 막아라.' 라고요. 

 

 

같이 살던 날에도

당신 개인적으로 쓰던 돈 때문에 저도 동생들도

남들 다 하는 과외, 학원도 한번 다니지 못하고 컸습니다.

저는 저희 집이 잘 사는 형편이 아니라는 걸 고등학교 때에서야 알았구요.

 

저는 괜찮지만

그때 당시 고등학교에 입학한 제 여동생, 그리고 중학교에 막 입학한 남동생은

어떻게 공부를 하란건지. 이제 방학되면서 보충교재도 사야 하고 쓸 데도 많을텐데.

 

 

저는 그날 제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무례하긴 했어도 정말 그동안 우리 가족이 당해온 수모를 생각하면

충분하다 하기도 부족한 그런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12월 말에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연락도 없이 집에 찾아오셨는데

아빠가 무조건 제 행동만 말했는지, 왜 그랬냐고 니가 애비없이 어떻게 태어났겠냐고

다그치시더군요.

엄마께서는 그 말을 듣고, 어머님 아버님께서도 정말 너무하신다고

어떻게 그사람이랑 다를 바 없는 생각을 하실 수 있으시냐며

 

 

 

         "애가 그렇게까지 한 것에 대해 그냥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밖에 안드세요?

          전 그날 그 행동을 보고, 애가 얼마나 그동안 마음에 상처가 컸으면

          그렇게까지 행동을 했는지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는데, "

 

 

 

라는 말씀을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저는 이 글을 감정적으로 아빠의 그런 안좋은 모습을 보여

단순히 제 입장만을 이해해주시길 바라고 쓰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적은 글은 '사실' 이며 객관적으로 제 행동에도 문제가 있었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라는 사람한테 해서는 안될 짓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어 적는 거에요.

 

 

 

아빠가 그렇게 집을 나가고 이제 2개월이 되가지만

그래도 아직은 정말 차라리 이 생활이 낫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은 엄마와 동생 둘과 넷이서 정말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구요.

지금까지의 그 상처들로 정신적인 치료도 받아야 정상적으로 살수있을 것 같지만요.

 

 

 

 

 

가끔 아빠가 없는 빈자리를 느낄 때가 있어요.

언젠가는

그 빈자리를 느낄 때마다 죄송한 마음에 후회가 밀려올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그 빈자리에 따라오는 생각은

'차라리 이게 낫다' 는것 뿐이네요.

 

 

 

 

아빠는 그 남겨진 편지에

'이제 딸로 생각하지도 않고, 말 안하고 사는 몇달 간 정도 다 뗐다.

저런 애를 딸이라고 키운 내가 한심하다. 인연 끊고 살자.'

라는 말도 했고

저도 정말 어떻게 생각하면 슬픈 일이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그냥 아빠가 원망스럽네요.

10년 전부터 따로 만나온 여자 (공무원 동료)도 있고

엄마 일부러 경제적 능력 없이 살도록 모든걸 다 용납하지 않았던 것도그렇고.

 

 

이제 졸업식도 있고, 대학 입학도 앞두고있는데..

생활비나 이런걸 엄마가 평일에 대형마트(홈플러스)에서 일하는 월급 100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저나 동생들을 어떻게 혼자서 감당하실지, 집안일은 또 어떻게 하실지,

 

 

 

양육 당한대로 양육 한다는 말이 있듯이,

저나 여동생은 그냥 어느정도 괜찮다 쳐도..

어릴 때부터 맞고 자라고 엄마 맞는 모습, 뭐든지 다혈질로 화내기만 하는 모습,

조곤 조곤 타이르는 모습 없이 그런 아빠 보면서 자란 저희 남동생이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않을지 정서적으로 지금이라도 괜찮을지,

앞으로 커서 결혼 하고 아빠처럼 자식들을 대하지는 않을지..

지금 엄마를 비롯해서 저도 무척 걱정이 됩니다.

 

 

 

이제 2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마음이 약해집니다.

그냥 막막하기만 하네요.

빼먹은 부분이 있어 적습니다.

 

아빠가 나가던 그날,

엄마랑 제가 집에 있는데 대놓고 거실에다가 밖에서 주워온 큰 종이박스 대여섯개를 갖다놓고

이 짐 저 짐 (진짜 사소한것들까지 - 공구용 상자 따위 등.

                 그래서 지금 저희집, 형광등 교체나, 옷걸이 못 같은거 필요한데도

                 공구용품이 없어 따로 구입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 다 챙기시더라구요.

 

저는 눈치를 채고 엄마께 조용히 '집 나가려는거 아니냐' 했고, 엄마는 그 말에 아빠께 가서

"왜그래? 무슨일인데? 나가는거야?" 라는 식의 말을 몇번이나 했지만

아빠는 단 한번도 대답을 하지 않고, 짐을 다 싼 후

바깥에 자동차 트렁크 (2대 다)에 짐을 싣고 올라와서는 제 방에 들어오셨습니다.

 

전 그때 아빠 짐싸는 소리, 움직이는 소리 듣기 싫어서 이어폰을 끼고 괜히 방정리를 하고있었습니다.

근데 직감했죠. 나한테 하려는 말이있다. 라구요.

 

아빠가 "내말들어" 라고 하시더군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무슨 기분인지 묘합니다.

정말 진짜 너무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어요. 가족 중 아무하고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요.

가끔 남동생하고 몇마디.. 형식적 말 빼고는요.

 

그랬더니 A4용지 몇장을 꺼내들더니, 그걸 읽으려고 하더라구요.

항상 그런식입니다. 자기 할말만 다 적어가지고는 그걸 설교하듯 읽어내리는거. 하...

 

뭐라 하는지 들어보긴 하려고 "뭐, 말해." 라고만 말했고

이러더라구요. "넌 예전에 아빠한테 무척 다정했어.

              근데 넌 엄마랑 함께있는 시간이 늘었고 엄마가 이간질했는지

              둘이서 히히덕거리고 동생들까지 끌여들여서는.."

 

여기까지 듣는데 너무 기가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지금 나한테 너 할말만 하고 나갈려고?

지금 니 말을 나보고 들으라고 하는소리야?" 라고 말을 끊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된게 다 엄마탓이랍니다. 엄마가 이간질 해서요.

 

근데 들은 채 만 채 하지도 않고 계속 읽으려고 하자, 저는 그만하고 당장 나가라고

이집에서 제발 좀 나가라고, 나갈거면 조용히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랑 대화할 거 아니잖아. 나가라고." 했더니,  

그 다음 하는말이 정말 가관입니다.

 

"뭐라고? 이 씨.qkf.년이 내가 니랑 지금 대화할려고 이러는줄아냐?"

라며 나가는 순간까지 "어이가 없네 내가 지랑 대화하려는 줄 아네." 라고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그게 마지막 순간이었고,

그 후 3일정도 지나고 나서, 저와 엄마를 제외한 나머지 두 동생들에게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보통, 정상적인 아빠들은

잘 지내냐, 아빠가 그렇게 나와버려서 미안하다. 그런 사정이 있으니 조금만 이해해주고

아빠가 그동안 미안했고, 엄마 말씀 잘 듣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라. 라는

말을 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근데 저희 아빠는 동생들에게

"**이냐? 아빠 나온거 알지? 어 그래~ 엄마랑 언니(누나)한테 전해라 

지금 이시간부터 아빠 심기 건드리면 큰일난다고~ 알았지? 그래~"

 

라고 했다더군요.

동생들에게 따로 따로 전화해서는 이렇게 똑같이요. 진짜 기가 막힙니다. 

엄마도 정말 어이없어 하셨구요. 그게 아빠가 할말이냐며..

그 후로 (12월 10일 전) 연락은 없습니다.

 

 

 

 

추천수333
반대수1
베플힘내세요|2011.01.24 03:12
저도그런아빠밑에서자라서 이런글을보면 그때의 공포때문인지 손에땀이나고 머리가어지럽습니다 전 지금 스물한살이고 위로 언니 남동생 이있습니다 언닌 사소한것에도불안해하는 강박증이있고 저와동생은 사소한것에화를참지 못하고 물건을 때려부수고 욕을해야 직성이풀립니다 엄마의 상처는 제가 말로표현하지못할정도구요..아무렇지않은척하시지만.. 저희집은 아빠의 바람과 폭력등으로 인해 모근걸다잃었습니다. 집도 재산도.. 제가 이렇게댓글을쓰는이유는 다른 가족들도있지만 남동생이 걱정된다는 글쓴이의 글때문입니다. 제 남동생도그랬거든요 이유없이맞고 그로인한 몸의흉터도 맘의흉터도 지금까지남아있습니다. 남동생은 가족중남자가 한명이라서 외로움이클거에요. 남동생이 열살 조금넘었다고하셨는데 정말 잘보살펴주세요 용기내셔서 가정폭력상담소 같은곳 전화해서 상담치료등 해보시고(제발꼭!!!!!) 가족들모두 상처받은 상태니 서로에게 따뜻하게 대하세요 정말 나중에 후회하지않게요... 제가모바일로잠안와서판읽다가 두서없이댓글썼네요 그니까제가말하고싶은것은 자신도모르게 자신에게가족에게 폭력성이 박혔을지도모르니 정신과상담을받아보셨으면하는거...(저도제가족들도 그런일을겪다보니 별것아닌것에 폭력적인게보이는...)남동생꼭챙기시고요!! 보고 자란거무시할수없어요 저도 저 결혼하기전에 정신과치료등다받고할겁니다 나중에 내가 혹시라도 제아빠같을까봐요 마지막으로 힘내세요 글쓴이 좋은날이올거에요
베플언니로써|2011.01.24 14:22
우선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글쓴이 잘하셨구요, 확실히 말하지만 후회하지 마세요 미안해하지도 마시구요, 어린나이에 정말 잘해냈고 대견스럽습니다. 다른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전 글쓴이에게 격려를 드리고 싶네요 저도 폭력적인 가정환경에 자라서 글쓴이 마음 백번 이해가는 심정이라 이말을 드리고 싶네요 제 나이 서른이 넘었습니다. 어릴때부터 지금의 글쓴이 나이동안 아버지의 폭력으로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죠 그러다보니 저도 언제부턴가 아버지에게 대들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도 딸이 둘이지만, 제가 성격이 아빠를 많이 닮았단 이유만으로도 성장하면서 아버지에게 줄곧 맞았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때부터 결심을 했죠, 너랑 똑같은 날 보고 후회하게 만들어 줄께 라구요 그래서 그 폭력적인 아버지를 유일하게 맞선게 저입니다. 하지만 아들이 아닌 죄로 저를 무서워하긴 커녕 늘 맞아야만 했죠 차라리 날 죽이라고, 니가 낳은 년이니 어디한번 니가 죽여봐라고, 대신 같이죽자고 칼까지 들이밀며 자해를 한적도 있습니다. 딱 고등학교때부터 글쓴이 나이때구요 그러고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는 제게 만큼은 조심했습니다. 지금 서른이 넘은 전 아무걱정 없이 사회생활 잘 하며 살고있어요 아버지의 태도는 그렇다고 절대 고쳐지지 않습니다. 허나 함부로 할수 없도록 하는게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구요 그 어린나이에 늘 공포에 떨었던 아버지에게 그만한 반항은 가치가 있으며 어쩔수없는 선택이였다는걸 저는 현명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아버지가 집을 나간거에 대해서는 죄책감 따윈 버리세요 그도 사람인지라 20년을 키워온 자식의 행동에 적잖게 충격 받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런 유치한 행동까지 나오는 거구요, 아버지 성격은 글쓴이가 더 잘 알테죠 담에 기가 좀 죽어서 돌아온다고 해도 받아드리지 마세요 지금의 님 행동 어차피 시작하신거 일관적으로 보이도록 하세요 그래야 그나마 아버지께서 뉘우칩니다. 아시겠죠? 우릴 위해 저런 수모를 당하고도 참고 이혼하시고도 돌아오신거 은혜로 보시고 어머니께나마 효도하시길 바랍니다. 세월은 자꾸 흐르고 제 나이가 된다면 그땐 지금의 자책따윈 없을 겁니다. 아직은 글쓴이님도 아버지의 대한 두려움과 순수함이 공존해있기에 갖는 마음일 뿐입니다. 단지 내 나이가 된다면 원망과 분노보다는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적으로 불쌍하게 여겨질 뿐이니까요.. --------------------------------------------------------------------------------------------- 제글에 공감하시는 분들께 고맙습니다. 참고로 지금 전 아버지가 안계십니다. 며칠있으면 아버지 기일입니다. 글쓴이에게 도움이 되고자 올렸는데 뜻밖에 베플이 된 제 심경은 마음이 아프고 무겁다고 표현해야 될듯하네요.. 결국 술로인해 시한부 인생을 사시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한달전에 저희앞에서 목놓아 우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에게 마지막 용서를 빌고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기일을 앞두고 글쓴이를 위해 저에게 용서를 구한 아버지를 비난하는 듯한 글을 올리는 제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아버지는 이해해주실꺼라 생각합니다. 아까 퇴근을 하고 저녁이 된 하늘을 보며 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미안하다고 이해해 달라구요.. 슬픈 가정환경 내에 자란 모든 분들 힘내시고 그 역경 이겨내셔서 훗날 웃을 수 있길 희망해봅니다.
베플화이팅|2011.01.24 14:26
안녕하세요 글쓴님과 제가 학교를 빨리 들어가서 그렇지 나이는 같네요.. 저희 아빠는 폭력은 많이 쓰지 않으셨지만 그 외 상황이 거의 비슷하세요..할머니, 할아버지의 행동까지도..일일이 말하기는 너무 길어서 생략하구요..저는 지금 아빠와 남보다도 못한 사이에요..저희는 아빠가 집에 주는 생활비, 관리비는 아예 안주세요. 오직 동생 학교에 들어가는 돈만 줘요. 급식비, 학교운영비, 뭐 이런거.. 제 학비는 물론 안주시고요. 저도 엄마가 한달에 아무리 열심히 일하셔봤자 100만원 정도 밖에 못 버셔서 고민이 많아요. 대출 이자도 한달에 몇십만원씩 내야 하는데..저는 꿈이 있어서 제가 돈벌면서 반수를 했지만 이번 수능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해서 다시 복학해야 해요. 하지만 당장의 돈도 없는 형편이고 학자금 대출 받으면서 원하지도 않는 대학 다니기는 싫어서 몇 달간의 고민 끝에 삼수를 합니다. 사치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를 위해 제 인생을 위해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서요. 저도 제 친구들은 제 사정 잘 모르고 너무 힘들어서 고등학교 때 학교 상담선생님께 털어놨었는데, 제가 부잣집 막내딸인 줄 알았다더군요. 오히려 티 안내려고 더 밝게 웃으면서 살려고 노력해요. 마지막에 '그냥 막막하기만 합니다.'라는 말이 너무 가슴에 와닿네요.. 근 2개월 간 제 가슴속에도 똑같은 것이 있었거든요. 저희 집도 아빠가 몇주 전에 집에서 나가셨어요. 아빠의 빈자리는 너무 크지만 그동안 한번도 채워진 적이 없었기에 가슴이 아파요. 하지만 저도 '차라리 이게 낫다'라는 생각을 해요. 너무 숨이 막혔거든요. 분명히 앞으로 후회할 날이 있을 거라는 건 저도 알아요..하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조금 더 상처가 아물면 언젠간 아빠랑 마주할 수 있을 거라고 전 믿어요. 글쓴 님도 아버님께 하신 행동 때문에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글쓴 님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거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너무 울어서 나중엔 눈물이 안나오고 웃음 밖에 안나오더라구요. 한 1시간은 쉬지도 않고 미친듯이 깔깔대면서 웃었던 것 같아요. 제가 미친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저는 무뎌졌어요. 아빠 때문에 나오는 내 눈물이 아깝고 시간이 아깝고 내 감정이 아까웠어요. 어느샌가 전 조울증처럼 감정기복이 정말 심한 사람이 되어버려서 우울한 날들이 많았거든요. 자꾸 우울해지지 마시고 그 에너지를 다른 밝은 것에 쏟으세요. 알바도 여러가지 많이 해 보시고요. 우울해지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는 나락으로 치닫아요.. 그 속에서 허우적대다간 끝이 없어요.. 전 그랬어요. 정말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이유가 없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저를 사랑해주는, 저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깨닫고 매달 헌혈도 하고 '내가 누군가에게는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필요한 존재구나'라고 생각하며 살아요.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그런 사람이 될거구요. 제가 인터넷을 보다가 가슴 속에 간직한 말이 있는데요. "네가 심어진 곳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리라."라는 말이에요. 이제 스무살이잖아요? 아무리 내가 심어진 곳이 아스팔트 쪼개진 틈 사이라도 있는 힘 닿는 데까지 쭉쭉 뿌리를 내리고 노력하면 언젠가 분명히 아름답게 피어날 거에요. 전 그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어요. 힘내세요!! 좋은날은 분명히 올거에요. 너무 마음이 와닿아서 이렇게 긴 댓글을 쓰네요. 한번도 댓글 달아본적이 없는데ㅎㅎ 화이팅!! 행복해 지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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