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네이버에서 펌) :
오자크 산골 마을의 열일곱 소녀 '리 돌리'(제니퍼 로렌스). 어느 날 갑자기 마약판매 혐의로 실형선고를 앞둔 아빠가 집을 담보로 보석금을 내고 종적을 감춰버린다. 경찰은 아빠를 찾지 못하면 집이 경매에 넘어가 쫓겨나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엄마와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하는 리돌리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집을 지키기 위해 아빠를 찾아 나선다. 아빠의 행적을 쫓기 위해 마을을 찾아나선 리돌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고, 친척들마저 그녀를 외면한다. 경매 기간은 점점 다가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 사람들은 리돌리의 주위를 위협해온다. 결국 아빠의 실종과 얽힌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리돌 리는 홀로 치열한 싸움을 시작한다.
review :
개봉 일정을 접기 전에 보겠다고 별렸던 작품이다. 설날 연휴 끝물의 주말, 연인들이 즐비할 <조선명탐정>과 <평양성>, <글러브>는 일부러 피했다. 별로 땡기지 않는 영화들이기도 했지만 연인들 틈바구니에서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는 시선 받으며 불편하게 관람하고 싶지 않았다. <윈터스 본>은 그 점에서 괜찮은 선택이었다. 나처럼 혼자 온 관객수가 커플 관객수에 버금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17세 소녀이지만 (똑같은 17세 소녀라도)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벨라처럼 꽃미남과의 로맨스와 판타지를 꿈꾸거나 <언에듀케이션>의 제니처럼 일탈을 기대하지 않는다. <윈터스 본>의 리(제니퍼 로렌스 분)에게는 그런 상상조차 사치로 여겨질 정도로 리는 가혹할 만큼 버거운 현실을 살고 있다. 엄마는 정신병을 앓고 있고, 아버지는 마약을 제조하다 철창 신세를 지고 있다. 어린 두 동생과 엄마를 돌보던 리에게 아버지가 가석방되는 대신 살던 집이 저당권 설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아버지가 재판에 출석하지 않으면 집은 경매에 넘어간다. 삶은 이렇듯 최악이라고 생각되던 순간에 또 다른 위기를 준비한다.
===== 여기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 영화보실 분들은 관람 후 읽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
네이버에서는 이 작품의 스토리 정보를 잘못 제공하고 있다. <윈터스 본>의 주인공 리(제니퍼 로렌스 분)는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집을 보전하기 위해서 아빠를 - 나중엔 아빠의 시체를- 찾아 나설 뿐이다. 한국판 포스터도 “전세계가 극찬한 미스터리의 발견!”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수많은 영화제에서의 수상이력으로 판단할 때 전세계가 극찬한 건 어느 정도 들어맞지만, ‘미스터리의 발견’이라고 할 만큼 미스터리 장르에 충실한 작품은 아니다.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뼈대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이 작품은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드라마에 가깝지, 장르영화로서 미스터리 스릴러에 대한 일반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않는다.
이 작품은 관객들이 관성적으로 기대하는 장르 오락 영화로서의 특징이 없다. 그래서 관객에 따라서는 재미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헐리우드 장르영화의 뻔한 공식대로 가지 않는 작품이다. 그래서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확연하게 갈리기 쉽다. 이 작품이 불만스러운 관객들은 잘못된 정보에 기초해 영화를 선택한 탓이 크다. <윈터스 본>은 오락영화가 아니다. 대신 섬세하고도 절제된 연출로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주인공 리로 분한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를 빼놓고 <윈터스 본>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20살의 나이에 이 작품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4개의 배우상을 수상했고(시애틀국제영화제, 스톡홀름국제영화제, 시카고비평가협회상, 미국비평가협회상 - LA비평가협회상에서는 유력한 후보였지만 <마더>의 김혜자에게 밀려 무위에 그쳤다), 5개 영화제에서 주연상 후보로 올랐다. (골든글로브, 미국배우조합상, 런던비평가협회상,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 아카데미시상식)
리가 처한 상황은 최악이라고 할 정도지만, 영화는 섣불리 감상으로 빠지지 않는다. 리는 치매에 걸린 엄마 곁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내 얘기 좀 들어달라고 하거나, 아이들을 맡기라는 이웃에게 동생들을 마약 소굴에 보낼 것 같으냐며 땅에 침을 뱉고 속어를 내뱉는 정도다. 대신 카메라는 리의 무표정한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한다. 거기에는 피폐한 삶의 무게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삶이 너무 힘들면 사람의 얼굴은 그렇게 변한다. 10대 소녀가 짊어지기에 너무 벅찬 인생의 하중은 이렇게 뛰어나게 표현되었다. 마을 권력의 우두머리 집단에게 린치를 당하면서 이가 빠지고 얼굴이 깨지고 터진 그녀의 얼굴은 안쓰러웠지만, 가족과 집을 지키기 위해 피투성이인 채 담담하게 할 말을 내뱉는 장면에서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는 더 높은 수준으로 나아갔다.
부재한 부모가 남긴 가정을 아이들이 지키려고 한다는 점에서 <윈터스 본>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와 닮았다. 비슷하게 <원터스 본>의 연출도 무미건조하다고 할 만큼 절제되었다. 미국 남부 미주리 지역의 폐쇄적인 시골 마을을 비추는 황량한 풍경들은 주인공인 리의 내면을 대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카메라가 비추는 그 공간은 영화의 배경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냄새와 공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먹을거리를 위해 잡은 다람쥐의 가죽을 칼로 벗기는 일을 리가 어린 동생에게 시키는 장면이 있다. 하기 싫다는 동생에게 리는 “때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할 수 밖에 없다”라고 충고한다. 그 말은 부메랑처럼 리에게 돌아와 아버지 시체의 팔을 잘라내야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으로 리를 몰아넣는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끔찍하지만, 끔찍한 장면이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집을 지키고 가족과 삶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 리는 물 속에 잠긴 아빠의 두 팔을 전기톱으로 잘라내는 데 일조한다. 잘린 팔은 보이지 않았지만, 윙윙 소리내며 돌아가는 전기톱 소리와 자르고 난 뒤 물 위로 둥둥 뜨는 기름만으로도 황폐함을 넘은 현실의 끔찍함을 피부로 느낄 정도였다. 오히려 참혹한 장면을 알아서 상상해야 해서 불편할 정도.
헐리우드에서 생산된 영화들 중,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에서 <윈터스 본>만큼 가난한 미국 가정을 다룬 작품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이미지를 비웃듯, 리가 사는 나무집 현관 앞에는 찢어진 성조기가 걸려 있다. 리가 아버지의 팔이 담긴 증거물 봉투를 품고 경찰서에 앉아 있을 때 봉투 겉면에 쓰여진 ‘Thank you Thank you Have a nice day’ 글귀도 비슷한 맥락으로, 리가 겪어야 했던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조롱하듯 표현한다.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 헐리우드의 주류 영화들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다. 헐리우드 영화의 힘은 물량 공세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오히려 이런 인디 영화들에 있지 않을까.
리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얻어터지고 깨지면서 끝내 하나뿐인 집을 지켜냈다. 결말에서는 실낱같은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리의 가족들의 앞날이 그리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집은 지켜냈지만 리에게 가난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다. 돈을 벌기 위해 군대를 가면 가족들과 떨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 리가 동생들과 나누는 대화는 공허하고도 안타깝다.
아무리 걸작이라 해도 이렇게 무겁고 마음을 짓누르는 영화를 유쾌한 심리 상태에서는 관람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윈터스 본>은 올해 들어 고단하고 메마른 삶이 지속되는 나에게 오히려 잘 어울렸다.
구불구불 위태로워 보이는 이 길이
훗날 목적지에 도달한 후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는
별 것 아닌 직선 도로였음을 알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영화 속 인물 리에게도, 영화 밖의 나에게도 행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