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생각할땐, "사색초"라 하고, 화가 몹시 낫을땐, "흥분초"라 하기도 하고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땐 "고민초"라 불리기도 하고, 하루 세끼 먹고나면 불로"장생초"라 불리우는 이 웬수땡이 같은 타바꼬... 요상한 이것을 속절없이 또, 꺼내 물었다.
자식새끼 어찌어찌 하여 대학 졸업시킨 후, 아!~ 이젠 자식 키운 보람 얻겠구나란 뿌듯함이
사라지기도 전에 오랫동안 기회 노려던듯, 후다닥 내 곁을 도망치며,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던
그 당돌한 녀석의 모습에서 진짜 표현하기 힘든 서운함과 배신감을 충분히 느꼈었지
그 배신감에 이은 분노가 가시기 전, 때 이른 손자놈 하나 내 가슴속에 떠억하니 안겨받고보니...
내 젊었을때, 천방지축 하며, 엉뚱한 상황 만든 내모습속에 황당한 결론을 내려줘야 했던
내 부,모님의 곤혹스러워 하시던 모습이 현재 나의 바로 이 모습이려니... 푸허헐~
나도 명색에 삐지기 잘하는 오형 인간인데 어찌 뒷끝이 없겠는가?
녀석의 틈만보이면, 지난날 서운했던 내 심정을 끄집어내어 했던말 하고, 또 하곤 했었다.
사실...그런 말 하는 나도 좀 지겹고, 자꾸만 쪼잔하게 보이는것 같았는데 그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
녀석들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이젠 시간이 많이 흐르고해서 그 이야길랑 깊은곳에 묻어둬야겠다 했는데...
녀석의 오늘 상황을 보고 난 후,
다시 한 번 그때 그날의 전쟁터 같던 내 심정이 과거속에서 꿈틀 거리더니,
이내... 콧등을 후려치며 눈시울을 적셔버렸다.
사범대학교 졸업하고, 어렵게 어렵게 강릉 모 여중학교 윤리선생으로 교직발령을 받았건만
애비의 명령 거역하지 못해 모든것 포기하고 조그만한 병원의 원무과를 총괄하며,
최선을 다했던 녀석과 그 신랑은 부,모 맘 아프게했던 자신들의 이기주의적 사고를 미안해하는 모습으로
열심히 자신들이 떳떳하고, 나쁜자식들은 아니였슴을 보여주려는듯,
동분서주 노력하는 모습에서 내 서운함은 이미 봄눈녹듯, 인사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었다.
그랬던 녀석이 3년만에 둘째를 가져 어제 여의도 성모병원에 아가를 낳으러 입원했다.
산통을 느끼는 녀석을 부랴부랴 자동차에 실코 유난히 새벽안개가 짙은 양평 강기슭을 달려
서울을 향 할땐, 내 정신을 잃어버렸었다. 분만실 수속 마쳐놓고 돌아설땐,
안쓰러움에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병원을 들렸건만 아직까지 촉진제를 맞으며 산통속에서 괴로워 하고있는
그 모습을 바라보자니 도저히 민망하고, 껄끄러워, 조용히 나만의 공간을 찾아 분만 대기실
한 귀퉁이로 몸을 숨기고 말았다.
이놈아!~ 힘들면 말해 자연분만이란게 사람을 여간 고통스럽게 해야지?
아니예요 꼭!~ 자연분만 할꺼예요... 극심한 고통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꺽지않는 녀석의 고집앞에서
나는 형편없는 허수애비가 되고말았다.
감동적인 내 자식의 모습에서 또다시 난 내 엄마를 생각했고, 이때부터 터저나온 내 눈물은...
내 엄마에 대한 감사함과, 위대함과, 보고픈 그리움으로 변해버렸고,
그 감정은 눈덩이 커지듯, 점점 깊어저 올림픽 대로를 타고 한강을 거슬러 양평에 도착할때 까지
멈추질 않았다. 내일 아침 일찍 눈 뜨는대로 또 다시 달려가 응원해줘야한다. 내 딸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