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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여행기 (1) 여행을 결심하다.루마니아 여행기 (2) 여행을 준비하다!루마니아 여행기 (3) 루마니아 가는 길루마니아 여행기 (4) 부카레스트에서의 첫 날루마니아 여행기 (5) 부카레스트 관광루마니아 여행기 (6) 안드레아를 만나다루마니아 여행기 (7) 고마워요,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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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이면 돌아오겠다던 안드레아는 2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문자를 보내봐도 답장조차 없다. 그냥 젖은 신발이라도 신고 안드레아를 따라갔어야 했던 것일까?
생각해보니 그녀 집까지 오는 길이 조금 많이 험하기는 했었다. 더구나 전날까지 내린 눈때문에 길도 미끄럽고 어둡기까지 하고.. 비록 안드레아가 술은 안 마셨지만 위험한 요소가 너무 많았다! 불안한 상상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안심할 상황이 아니잖아!
전화 한 통이라도 해주면 좋을련만..그녀의 고양이 이멀라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멀라인지, 계속 나랑 놀자고 재주를 부른다. 고양이는 영물이라는데 이런 여유 부리는거 보면 아무 일도 없겠지?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던 찰나, 안드레아에게 문자가 왔다!
"미안해요, 용석. 나 내일 아침에 들어갈게요." 오오오!! 안드레아!!! 아무 일도 없었구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기다리는 동안 전화 한 통 없던 안드레아가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막상 문자를 받으니 무엇보다도 그녀가 무사하다는 생각에 맘이 놓였다.
"알겠어요. 근데 무슨 일이에요? 많이 걱정했단 말이에요."
마치 자기 맘에 안 들면 떼 쓰고 고집 부리는 5세 꼬마 같은 징징거림이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루마니아에서도 먹히는지 이번엔 바로 답장이 왔다.
"남자친구..."아아.. 안드레아.. 당신은 언제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건가요...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어 달려가는 맘은 나도 이해할 수 있지만 나 같은 건 신경도 안 쓰일만큼 그렇게 남자친구가 보고싶었던 건가요.. 안드레아처럼 천사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 남자친구가 없을리 없지! 어디 그뿐인가? 요리도 잘 하고, 좋은 친구들도 많고, 언제 즐겁게 살고, 거기에다가 이런 정열적인 모습까지 있다니! 정말로 멋진 사람이구나 싶었다. 사랑의 모습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같다는 생각에 절로 엄마 미소가 지어진다.
안드레아의 문자를 받고 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이내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밤 12시가 넘은 시간, 이 사건으로 루마니아 시차에 익숙해진 기분이다. 혹시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나를 위해 안드레아가 마련한 깜짝 이벤트일까?
하지만 그런 이벤트따윗... 거절한다!!다음 날, 1월 10일 월요일. 낯선 땅에서 눈을 떴을 때에는 언제나 아침이길 바란다. 그런 내 자신을 잘 알고 있기에 굳이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아침 7시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내 심장이 깨운거겠지만.
수도 부카레스트에서 맞이한 첫번째 아침은 눈으로 뒤덮힌 도심 속 풍경. 열차에서 맞이한 두번째 아침은 설레는 마음과 같은 진폭의 열차 덜컹거림. 그리고 오늘 마라무레슈 치우즈 바이아에서의 아침은 광활한 자연의 모습.
앞으로 열 번이 좀 넘는 아침을 맞이하면 나는 한국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울적해지기는 했지만 벌써부터 그런 생각하기에는 너무 이른거겠지! 그보다는 매일을 다른 아침으로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어제 먹다 남은 빵에 우유 한 잔을 곁들여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는 9시에 출근해야 하기에 그 시간 쯤에 돌아오겠다던 안드레아를 기다리며 기분 좋은 아침 공기를 만끽하고자 그녀가 올 때까지 산책이나 하기로 했다.
사실 어제 문자에서 안드레아는 찬장에 무슬리(Musili)가 있으니 찾아 먹으라고 했는데무슬리가 시리얼인지 몰랐던 나로써는 그냥 빵만 씹어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상쾌했던 치우즈 바이아의 아침 공기.부디 내 몸 속에 그때의 공기가 남아있길 바란다.안드레아는 8시 40분쯤에야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하는 안드레아. 나는 괜찮으니까 얼른 출근 준비부터 하라면서 그녀를 다독였다.
안드레아 :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용석 : 괜찮아요. 그냥 연락이 안 돼서 조금 걱정했어요. 안드레아 : 조금(little)이라고요? 아닐 걸요 ㅋㅋ 별 생각 다 했죠? 교통사고, 강도... 많이 걱정했을 거 알아요 ㅋㅋㅋ 용석 : 조금은 아니긴 했지만.. ㅋㅋ 그래도 아무 일 없어 다행이에요. 안드레아 : 사실 제가 남자친구랑 저번에 헤어졌었거든요. 용석 : 어? 그래요? 안드레아 : 네, 근데 어제 마리아 데려다주는 길에 갑자기 연락이 와서.. 조금만 이야기한다는게 그만 30분, 1시간, 2시간.. 용석한테도 빨리 연락을 했어야 하는데.. 미안해요. 그럴 경황이 없었어요. 걱정 시켜서 미안해요. 용석 : 아뇨.. 괜찮아요.. 그래서 남자친구랑 다시 만나기로 했어요? 안드레아 : (단호히) 아뇨!! 그건 아니에요. 사람은 누구를 만나도 힘들고.. 안 만나도 힘들고.. ㅋㅋ 난 그냥 내 영원한 친구, 이멀라랑 같이 살거에요!
더 이상 물어보는 것은 그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했고 그럴만한 언어 구사력이 없기도 했기에 조용히 안드레아와 출근.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 어디서나 같듯이 이별도 그런 모양이다.
사랑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죠...오늘은 안드레아가 일하는 바이아 스프리에 (Baia Sprie)로 간다. 이 곳은 광산 마을로 오랫동안 광물을 채취하며 발전해왔다고 한다. 그곳으로 차를 몰고 출근을 하는 안드레아, 그러고보니 직업이 뭐지?
용석 : 그러고보니, 안드레아는 무슨 일을 해요? 안드레아 : 저요? (으쓱거리며) 나는 의사에요. 용석 : 아, 정말? 무슨 의사에요? 안드레아 : 치과 의사요!
그러고보니 어제 만난 아저씨도 '닥터 안드레아'라고 했었지. 더군다나 치과 의사라니.. 마침 임플란트를 하나 해야하는데.. 왠지 이야기하면 안드레아는 정말로 해줄려고 할 것 같았다.
안드레아와 함께 출근을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그녀가 앞서 걷고 있는 사람을 보고는 차를 세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말을 걸자 그들은 이내 차에 타기 시작한다.
안드레아 : 요 앞까지 간다고 하는데, 태워다 주려고요. 용석 : 아는 사람들이에요? 안드레아 : 아뇨, 근데 같은 동네 사는 사람이니깐요. 여기는 교통이 좋지 않아서 이런 일이 흔해요. 나도 이곳에서는 히치하이킹이 흔하다는 얘기는 들어봤다 대중 교통이 좋지 않은 것이 첫번째 이유이기는 하겠지만, 사람들간의 신뢰와 정이 끈끈하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여행자가 해도 안전한건지 모르겠지만 욕심이 나기도 했다.
브레멘 음악대도 종종 애용하는 히치하이킹?제시간에 맞춰 안드레아의 병원이 있는 바이아 스프리에에 도착. 그녀는 3시면 일이 끝나니까 그때 다시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크지 않은 마을이니까 6시간이면 충분히 구경을 할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그녀의 병원 위치를 잘 기억해두고 나는 본격적으로 관광!
우선 제일 먼저 그녀의 병원 근처에 있는 마트에 무작정 들어갔다. 앞서 말했듯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곳이니까. 비록 대형마트라서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기는 했지만 하루종일 걸어다니려면 하다못해 물이라도 사야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 하루동안 마실 물 한 통(3레이, 약 1200원)과 기내에 갖고 탈 수 없었던 일회용 면도기를 구입하고
어제 보니 안드레아 집 싱크대가 자주 막히길래막힌 배수관을 뚫어주는 약품도 하나 구입했다.
한적한 바이아 스프리에의 모습어제 머물던 치우즈바이아와는 달리 도심의 냄새가 난다
이건 뭐 평범한 도둑이잖아..?마라무레슈 대부분이 그렇지만 이 곳 역시 관광지는 아니었다. 바이아 마레와 가깝기 때문에 가이드북에도 잠깐 언급된 것뿐,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작은 도시였다. 그래서 여유 있게 걸어다니며 동네를 구경하기로 마음 먹었다.
마트 앞에서 나에게 담배 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을 또 만났다. 웃으면서 담배를 건네주니 고맙다면서 맛있게 한 대 태운다. 그러면서 루마니아어로 나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기 시작한다.
이렇게 담배를 달라고 하는 것을 구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담배만 받고 가버리지 않고 대화하는 것까지 원하는걸 보면 그 사람에게 나란 존재는 단순히 '담배가 있는 사람' 이 아니라,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관심의 대상인 것이다.
길을 걸으면 날 신기하게 보는 시선이 많지만 이제는 즐길 수 있다.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면 사람들은 반갑게 맞여주니 기분도 좋다. 무리 지어 다니며 짖궃게 장난을 거는 꼬마 녀석들도 만났었지만, 그 나이대의 애들은 대게 그런 식으로 친근감을 나타내기도 하니까...
꼬마는 꼬마다운 구석이 있어야지.. 너무 세상 다 산 것처럼 굴면...루마니아는 전체 인구의 90% 정도가 루마니아 정교를 믿는다. 그래서 어느 동네든지간에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을 볼 수 있는데, 무감동하게 블록블록마다 교회가 즐비해 있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옛날부터 종교가 함께 있었던 이유에서인지 모두 운치있는 모습이다. 교회 하나 하나가 오래 전부터 한 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해왔기에 루마니아에서 교회가 지니는 의미는 역사의 산물이라는 느낌도 든다. 교회 앞을 지나갈 때면 한번씩 성호를 긋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고 잠깐이라도 예배당으로 들어가서 기도 드리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루마니아에서 종교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종교이기 이전에 생활이었고, 신앙이기 이전에 삶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헐뜯을 일도 없었고 강요할 일도 있을 수 없다. 이건 단순히 다수의 사람들이 루마니아 정교를 믿기 때문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바이아 스프리에 시내에 있던 교회
만화에서 막 나온 듯 한 옛스러운 모습의 교회도 있었다.
언제든지 찾아와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문은 늘 열려있다.한참을 돌아다니다보니 조금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시간도 12시가 훌쩍 넘었고 뭔가 먹긴 먹어야할텐데, 이번에는 기필코 루마니아 음식을 먹으리라 다짐하고 바이아 스프리에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식당을 찾았다.
마침 아침에 들렸던 마트 근처에 레스토랑이 하나 있었다. 뭘 파는지는 모르겠지만 들어가서 맘에 안들면 나면 되지! 보다 당당하고 자신 있게 행동하기로 마음 먹고 들어가니 서빙을 하던 여자 종업원이 나를 보더니 그대로 굳어버린다.
용석 : 부너지와! (안녕하세요) 종업원 : (자신 없는 목소리로) 부너...지와.. 용석 : (자리에 앉으며 두손으로 네모를 그린다) 메뉴! 메뉴, 플리즈 종업원 : (한참동안 내 손짓을 보더니) 아! 아무래도 외국인을 보고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이 되었던 모양.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을 만나면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나도 우리나라에 있을 때 외국인을 만나면 그렇게 당황했겠지만, 막상 내가 외국인으로써 현지인을 대하게 되니까 여유로워진다. 부디 그 종업원이 많이 당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생겼다.
외국어를 할 때 꼭 겁 먹을 필요는 없다..메뉴판을 한참 보고 있는데 영어가 없는 생소한 메뉴들 뿐이다. 좋아, 이 곳이라면 뭘 먹든지 간에 루마니아 음식을 먹게 되겠군! 그래도 내가 시킨게 디저트인지, 뭔지는 좀 알고 시켜야할텐데.. 가이드북에서 음식 설명이 되어 있는 페이지를 펼치며 비교해보니 치오르바 (Ciorbe) 라는 게 스프라는 것까지는 알게 되었다!
마침 따뜻한 국물 요리가 먹고 싶었는데 이걸 시켜면 되겠군! 하지만 메뉴에는 벌타 (burta)와 포크 (porc)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포크는 보나마나 돼지고기 스프일 것임 틀림이 없는데 벌타는 뭐지? 종업원에게 벌타가 무엇이냐고 물어봐도 이해하지 못 하는 눈치다.
그때 마침 그녀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가게에 들어오자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이내 나에게 다가오는 아저씨, 영어를 조금 할줄 아셨다.
용석 : (메뉴를 가리키며) 벌타가 뭐에요? 아저씨 : 벌타.. (자신의 배를 만지며) 소 (cow)! 소 (cow)!!
아하, 벌타는 그냥 소고기 스프였구나! 나도 대충 짐작은 했었다. 채소 아니면 소고기일 것 같았는데 가격을 보니 소고기일 것 같았다. 이왕 먹는 것 든든하게 먹을 생각으로 치오로버 데 벌타를 주문했다. 물론 맥주도 한 병 시키는 것도 잊어먹지 않았다...
치오르버 데 벌타 (Ciorbe de burta)뭔가 평범한 소고기 스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 단순한 소고기 스프가 아니라 소내장 스프였다!!음식이 나왔을 때 꼭 사골국처럼 생겨서 놀라긴 했는데, 막상 한 숟가락 떠먹어보니 더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소고기가 아니라 양곱창 같은 내장으로 국물 맛을 내었고, 사골국의 맛과 더불어 치즈의 고소함까지 그대로 전해졌다!
이건 혁명이다!! 엄청나다!! 치즈맛이 나는 사골국이라니! 더구나 안에 들어있는 소내장도 엄청 쫄깃하고 고소하다!! 같이 나온 빵에 크림을 발라 먹으면서 한 숟갈 먹으니까, 마음도 속도 따뜻해지고 든든해지는 느낌.. 너무 맛있다!! 먹다가 좀 심심하다 싶으면 고추를 한 입 베어 먹으면 됐다!
원래 음식을 잘 안 가리는 편이긴 하지만 이건 정말 훌륭했다. 마침 국물 요리가 먹고 싶던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했지만 소내장이라는, 한국인에게 생소하지 않은 재료를 가지고서는 루마니식으로 치즈로 넣어 고소한 맛을 내어 내 입을 사로잡았다.
다양한 음식을 먹기 위해 같은 요리를 다시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치오르버 데 벌타 때문에 그 결심이 좀 흔들릴 것 같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이 음식은 현지인들도 좀 힘들어한다고 한다.)
겉모습은 영락없이 오랫동안 고아낸 사골국물이다.빵과 소스, 고추까지 포함해서 가격은 8레이 (약 3,200원)
기분 좋아서 맥주를 또 마셨다. *'ㅛ'*맥주 한 병은 4.5레이 (약 1,800원)스프만으로도 배불렀는데 거기에 빵까지 먹으니 너무 배가 불렀다. 오래 걸어서 발이 아프기도 했고 일정도 세우고자 잠시 쉬기로 결정. 식당은 동네 어르신부터 시작해서 하교길의 아이들로 조금 분주했다. 그래도 마을 자체가 워낙 아담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한적했다.
일기도 쓰고 오늘 내일의 계획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한 아주머니가 가게에 들어와서는 신문을 판매하기 시작하셨다. 그래, 여행지에 왔으면 이 곳의 신문 같은 것도 한번 사봐야지! 가격도 1레이 (약 400원) 밖에 안 하길래 부담 없이 한 부 구입했다.
물론 무슨 말인지는 전혀 모른다..1시간쯤 쉬고 발도 이제 괜찮은 것 같아서 다시 동네 구경! 하교 시간이라서 그런지 학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이 동네 아이들은 무얼하면서 놀까? 놀이문화는 참 중요한데.. PC방이나 당구장이 있을리 없었고 놀이터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집에 가방만 두고는 다시 거리로 뛰쳐 나온다. 삼삼오오 모여 어디론가 뛰어가기도 하고 거리에서 수다도 떤다. 그렇게 애들을 보니 나는 점점 루마니아 사람들의 삶이 궁금했다. 우리나라와 같은 입시 지옥도 없을 이 곳 아이들의 꿈은 무엇일까? 그 꿈을 위해 아이들은 하루하루를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나 역시 '한국식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지만, 이게 옳다고는 생각 안 한다. 학생이 선택하기 보다는 사회적 기준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우리의 현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기 보다는 점점 악회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 뿐이다. 그런 교육 속에서 자라온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세상은 너무나도 조그맣고, 그게 사회라고, 현실이라고,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무기력해진다.
정답은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받고 자라온 교육만으로 세상을 이해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놓치는게 아닐까? 평생 속은 채 살아가는게 아닐까?

배운게 그것뿐이라면 인생도 그것뿐이다.
좀 쉬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발이 너무 아팠다. 어쩌면 쉬었기 때문에 다시 걷기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여행의 3일차인데 이대로 나머지 일정을 어찌 소화하나.. 정 힘들면 정말로 발에 편한 신발을 하나 새로 사든가 해야겠다 그리고 이 어그부츠는 장렬하게 불태워버리겠다..는 건 농담이다. 하교길의 아이들은 나에게 영어로 인사를 건네며 말을 걸어왔고, 자기네들 놀러가는데 같이 가자는 넉살까지 부리는 녀석도 있었다. 함께 놀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지만 곧 안드레아가 퇴근하기에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꼭 같이 놀자면서 아쉬운 작별을 나누었다.
인근 교회에서는 엄숙했지만 무겁지 않은 분위기로 장례식이 진행 중이었다.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루마니아인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다.
거리에서 종종 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앞의 저 강아지는 마차가 움직일 때 앞에서 경적을 울리듯 짖어댔다.일종의 마차를 몰고 다니는 개인 셈이다.
옛 건물을 그대로 이용하기 때문에 관공서 건물 하나 하나에도루마니아의 오랜 역사가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발이 아픈 탓에 오래 걷지는 못 했지만 어느새 3시가 되었다. 다시 안드레아의 병원에 가니 그녀도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드레아 : 어땠어요? 재밌는 것 좀 찾았어요? 용석 : 네! 재밌었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있었어요. 안드레아 : 여기에는 교회들이 많은데 거기도 가봤어요? 용석 : 어떤 걸 말하는지 알 것 같네요. 멋진 교회들이 많더라고요. 안드레아 : 정말 잘 다닌 모양이네요 ㅋㅋㅋ 혹시 배고파요? 용석 : 아까 점심을 먹기는 했지만.. 안드레아는 점심 먹었어요? 안드레아 : 난 제대로 못 먹었어요. 밥 먹으러 갈래요? 용석 : 그래요. 안드레아, 배 많이 고프겠네요. 안드레아 : 괜찮아요! 뭐 먹을래요? 피자? 파스타? 아니면 루마니아식? 용석 : 루마니아식이요!! 아까도 치오르버 데 벌타 먹었는데 짱이었어요! 안드레아 : 좋아요, 그럼 일단 식사부터 하러 가죠!
사실 아까 너무 많이 먹은 탓에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현지인의 소개로 루마니아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드레아가 식사를 안 했기에 밥 먹으러 출발!
안드레아는 이 곳 바이아 스프리에가 아닌 바이아 마레에 루마니아 음식을 잘 하는 곳이 있다면서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바이아 마레는 내가 내일 갈 곳이니 미리 봐둬도 좋을 것 같았다.
안드레아와 함께 온 곳은 바이아 마레에 위치한별 3개짜리 호텔 레스토랑이었다.안드레아는 이 곳 사장님과 아는 사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다른 스프를 시켜보았다.돼지고기 뿐만 아니라 소고기, 닭고기도 들어있었다.안드레아는 디저트로나 먹을 법한 빵을 하나 시켰다. 아까부터 치오르버(스프)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나는 이번에 시킨 국물 요리도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안드레아 : 마라무레슈 지방 전통 요리 한번 먹어볼래요? 용석 : 어떤 거에요? 먹기 힘들어요? 안드레아 : 글쎄요.. 용석이 좋아할지 모르겠네요.. 용석 : 저 음식 잘 안 가려요, 한번 먹어 볼래요! 안드레아 : 좋아요. 그럼 한번 도전해보세요!
그리하여 주문한 마라무레슈 전통 음식뮤시 데 비타 라 그라타 (Muschi de vita la gratar)옥수수로 만든 반죽에다가 치즈와 돼지고기를 얹은 음식. 아, 근데.. 이건 진짜.. 치즈 때문에 먹기가 너무나도 힘들다.. 난 진짜 음식 안 가리는데, 이건 정말로 이건 좀 힘들다.. 옥수수를 빻아서 만든 반죽도 뻑뻑해서 잘 넘어가질 않았고 무엇보다도 치즈 냄새가 너무 강렬해서 가까이하기 힘들다.
안드레아 : (웃으며) 어때요? 용석 : 아.. 맛있어요.. 맛은 있는데.. 치즈가 좀 강하네요.. 안드레아 : 그래요? 루마니아 사람들은 곧잘 먹는 치즈에요. 용석 : 아까는 이런 맛의 치즈가 아니었는데.. 안드레아 : 치즈 종류가 워낙 다양하니까 그렇겠네요. 용석 : 안드레아도, 한 입 먹어 볼래요? 안드레아 : 아, 나는 채식주의자에요. 용석 : 그랬군요!! 전혀 몰랐어요.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몰랐네요. 안드레아 : 우리집 냉장고 봐서 알잖아요, 고기는 하나도 없어요. 아, 이멀라 빼고요 ㅋㅋㅋ
이런 거라도 좀 사다줄걸 그랬나?문제의 마라무레슈 전통요리는 끝까지 먹지 못 했다. 음식 남기는 걸 엄청난 죄악으로 여기는 사람으로써 무엇보다도 안드레아가 추천해준 음식을 남겼다는게 너무 미안했었다. 배가 덜 불렀으면 괜찮았으려나?
안드레아 : 혹시 여기에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 있는거 알아요? 용석 : 아뇨? 어떤 거에요? 안드레아 : 유럽에서 두번째로 높은 목조교회가 있었어요. 용석 : 아! 얘기는 들었어요. 마라무레슈에는 목조 교회가 많다고. 안드레아 : 네, 오래되기도 오래됐고 높기도 굉장히 높아요. 용석 : 여기서 멀어요? 혼자 갈 수 있을까요? 안드레아 : (웃으며) 지금부터 나랑 가게 될거에요. 용석 : (깜놀) 네?? 안드레아 : 내가 데려다 줄게요!!
이후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안드레아도 퇴근했으면 집에서 쉬고 싶었을텐데, 나에게 그 교회를 꼭 보여주고 싶다면서 함께 가자고 했다. 아, 안드레아.. 당신은 정말 너무 너무 친절한 사람이에요!!
그녀의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교외로 달려 나갔다. 창문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마라무레슈의 드넓은 벌판은 내가 여행을 오기 전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본 모습이었지만 보다 뚜렷하고 보다 선명하게 내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바이아 마레 근처에 위치한 수르데스티 (Surdesti) 교회유럽에서 두번째로 높은 목조 교회이자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이다.
18세기에 지어졌다는 이 교회는,너무 높아서 한 화면에 잡기도 힘들었다.
종교인은 아니지만 이렇게 높은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면 분명 하늘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교회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던 것인지 문은 잠겨 있었다. 그래도 오래된 교회의 숨결이 그대로 묻어있는 목조 건물은 나를 아무 말 없이 주변을 계속 맴돌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주위에는 묘지들도 있었는데 평생을 이 곳에서 기도를 드리다가 생의 마지막을 이 교회에서 맺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다.
나보고 혼자 구경하라고 말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린 안드레아는 잠시 뒤 누군가와 함께 돌아왔다, 그녀의 친구가 여기서 일하나?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잠겨있던 문을 열어줬다. 안드레아는 이 곳을 관리하는 목사의 부인이라며 그녀를 소개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교회 안은 너무 예뻤다.오래된 나무의 냄새와 새로 짜여진 직물의 냄새가이 자그마한 교회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벽화는 비록 빛을 바래가고 있었지만그 의미는 여전히 숨쉬고 있음이 느껴진다.
예배당의 모습. 아직까지 이 곳에서는 예배가 이뤄진다고 한다.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었을 교회.많은 사람들의 바람이 이 곳에서 이뤄졌기를 꿈꿔본다.안드레아 : 어때요? 용석 : (입을 다물지 못하며) 아, 너무 좋아요... 왜 안드레아가 보여주려고 했는지 알거 같아요. 안드레아 : 루마니아에는 이런 목조 교회가 많아요. 하지만 나는 이 곳이 가장 멋진다고 생각해요. 용석 : 그래요, 이보다 더 멋진 곳이 있다면 그건 정말 말도 안 될거에요! 안드레아 : 근처에 여기 말고 또 다른 목조교회가 있어요. 그곳도 한번 가볼래요?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아랑곳 않았다. 어차피 이 근처니까 여기까지 온 김에 가자던 안드레아. 이 목조교회에서 느낀 감격이 채 사라지지도 않았건만 우리는 또 다른 목조 교회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근처에 위치한 프로피스 (Propis) 교회.앞서 본 교회보다 더 뒤에 지어졌다.
이곳 역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벽화의 보존 상태가 훨씬 좋았다.
이건 분명 화려한 것일뿐이지, 호화로운 것은 아니었다.그렇게 안드레아의 친절로 마라무레슈의 목조 교회를 본 나는 벌써 내일이면 그녀와 헤어지게된다는 사실에 덜컥 슬퍼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었는데 내가 얼마나 그녀에게 감사하고 있는지, 얼마나 좋았었는지 내 마음을 꺼내서 보여주고 싶었는데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는 오늘 하루가 얼마나 멋졌는지 생각해 봤다. 혼자서 낯선 마을을 산책하면서 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처음으로 먹어본 루마니아 음식이 무한 감동을 하기도 했고, 내가 못 먹는 음식도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안드레아를 만나서 함께 할 수 있어서 그리고 그녀가 나를 얼마나 위해주는지 느낄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 오늘 하루가, 이곳에서의 여행이 값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안드레아와 내일 아침이면 헤어져야 한다.
용석 : 안드레아, 당신도 알겠지만 난 내일 아침에 떠나요. 안드레아 : (놀라며) 뭐라고요? 벌써요? 용석 : (미안해하며) 네.. 처음에 3일 있겠다고 했잖아요.. 안드레아 : 맙소사, 벌써 내일이 3일째란 말이에요? 용석 : 그러게요, 나도 믿을 수가 없네요. 안드레아 : 용석, 부탁이에요. 하루만 더 머물면 안 돼요? 용석 : 안드레아.. 나도 그러고 싶기는 해요.. 하지만.. 안드레아 : 미안해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용석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은 거죠? 용석 : 네.. 나도 안드레아랑 헤어지게 돼서 아쉬워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안드레아를 알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이제껏 만난 루마니아 사람들이 모두 친절하기는 했지만 안드레아는 정말 친절est of 친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 그런 안드레아를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을 꺼내들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포스트잇 메모지.케이스는 나전칠기로 되어있는 가장 한국적인 선물이었다.용석 : (선물을 건네며)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이에요. 부디 안드레아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안드레아 : 오 마이 갓! 너무 예뻐요!! 안은 메모지로 되어있군요!! 너무 멋있어요! 아아, 속지는 아까워서 쓰지 못 할 것 같아요. 용석 : 쓰라고 있는 선물이잖아요. 날 생각하면서 팍팍 써요 ㅋㅋ 안드레아 : 내가 이거 다 쓰면 용석은 또 놀러 올건가요? 용석 : 그래요, 그렇게 할게요. 이거 다 쓰면 또 놀러 올게요. 안드레아 : 진짜로 팍팍 써야겠네요 ㅋㅋㅋ 용석 : 안드레아, 우리 같이 사진 안 찍을래요?

용석 : 이게 뭐야 ㅋㅋㅋㅋ 안드레아 : ㅋㅋㅋㅋ 너무 어둡게 나왔어요 ㅋㅋ 용석 : 게다가 난 머리도 잘렸어요 ㅋㅋ 안드레아 : 다시 찍어요!
너무나도 고마웠던, 나의 첫번째 루마니아 친구 안드레아와 함께그렇게 안드레아와의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억지로 그 시간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썼고 그럴수록 애처로워지고 마음 아파지는 것은 우리였다.
내일이면 나는 마라무레슈의 주도 바이아 마레로 떠난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벌여지고 누구를 만날지 모르겠지만 안드레아와 같은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를 그만 놓아주기로 했다.
고마워요, 안드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