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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차라리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오빠야 좀 ... |2011.02.21 21:44
조회 439 |추천 1

 

안녕하세요. 서울시 마포구 사는 25세 여자입니다.

요즘 회사에서 한가할 때 판 보면서 낄낄대고 지내고 있네요.

그러다 한창 자기 오빠 얘기들이 많이 올라와서, 동감 반, 부러움 반으로 읽다가

문득 제 속만 썩이다 연락 두절된 오빠가 생각 나게 됐습니다.

 

다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오빠와 티격태격 재밌게 잘 지내는 글 올리시는데

제가 지금부터 쓰려는 글은 절대 재밌고 유쾌한 내용은 아닙니다.

평소 같으면 저도 음슴체 쓰며 재밌게 쓰려고 해볼 테지만ㅠㅠㅠ

이 글만은 저를 마음껏 동정하며 읽어주셔도 될 진지한 글이에요.

딱 봐도 재미없겠다 싶으신 분은 그냥 스킵해주세요ㅎ_ㅎ

그리고 스압 쩝니다. 인생 찐따 같이 살아온 저와, 거기에 일조해준 저희 오빠의 구질구질한 얘기,

그런 것에 흥미 없으신 분들은 되도록 읽지 마세요. ㅠㅠ

 

 

 

 

 

 

 

1. 조금 모자란 우리 오빠.

 

 

오빠와 저는 세 살 터울입니다. 지금 하려는 얘기는 오빠가 많이 어렸을 때 얘기고요.

제가 갓 유치원 다닐 즈음, 저희 오빠는 지능과 관련된 클리닉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오빠가 아마 여덟 살 정도였을 텐데, 다른 아이들보다 지능이 좀 떨어져 부모님이 걱정하셨었죠.

단적인 예로 오빠 보라고 사다 놓은 이솝 우화 전집은 제가 서너 살 때 다 읽지 않았으면

그냥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질 뻔했습니다. 오빠는 글을 읽고 쓰는 것 자체가 매우 서툴었으니까요.

어쨌든 아이큐가 대략 70 정도밖에 안 되던 상태의 오빠가 걱정된 부모님께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런 것들을 조금 나아지게 해줄 클리닉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또한 지금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어머니가 당시엔 무당에게 많이 의지를 하셨었죠.

각종 부적들이 온 집안 가득할 정도였고 저는 늘 그 무당집 가서 만화를 보며 논 기억이 납니다.

 

이런 노력들로 인해 오빠의 모자란 지능은 많이 회복이 되었습니다만,

머리가 좀 좋아지니 이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며 어머니 지갑도 털곤 했습니다.

뭐 어릴 때 부모님 지갑 뒤지는 건 많이들 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저희 오빠 같은 경우엔 그 정도가 심했고, 거짓말도 너무 심하게 했습니다.

아마 그래서 그런 버릇을 고치려고 부모님이 교회도 보내셨던 것 같아요.

(그 당시만 해도 기독교를 지독하게 싫어하시던 분들이^^;;;;)

 

하지만 별로 나아지는 건 없었습니다. 오빠는 여전히 작은 도벽이 있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요.

 

 

 

 

2. 왜 그렇게 맞고만 다니니?

 

 

오빠가 클리닉에 무당에, 교회 등등 돌아다니며 살던 내발산동을 떠난 후의 일입니다.

가세가 기울어져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화전동 전셋집으로 이사를 갔었죠.

그때 전 이제 막 6살이 되었고, 유치원을 1년밖에 못 다닌 채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그것 때문에 많이 울었기도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1년 잘 놀았네요^^;

어쨌든 오빠는 이미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전학을 가야 했습니다.

 

근데, 와, 저는 전학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아 몰랐는데,

참 텃세라는 게 무섭더군요. 아무리 좀 모자란 오빠여도 천성이 악하지는 않아

이전 살던 동네에선 따돌림을 당하는 일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는 큰 따돌림이 있던 건 아니지만 오빠가 폭력에 많이 노출됐습니다.

워낙 순둥이 같이 생겨서 울기도 잘 울고, 그 당시만 해도 체구가 작아 만만하게 보였나봐요.

돈 빼앗기고, 얻어맞고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 과정에서 그 순둥이 같던 오빠가 언제부턴가 입에 욕을 달고 살게 됐습니다.

 

한 번은 오빠와 제가 함께 하교하던 길, 동네 살던 초등학교 고학년 오빠를 마주쳤습니다.

고학년이라지만 그래도 초등학생 치곤 꽤 큰 덩치였던 걸로 기억하네요.

그렇다고 뭐 좀 놀고 잘 나가는 오빠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저학년이나 괴롭히는 찌질이?

아무튼 그 오빠가 저희 오빠를 불러 다짜고짜 이리저리 치며 괴롭히는 게 아닙니까.

저는 어릴 때도 성격이 불 같아, 당장 달려가 우리 오빠 괴롭히지 말라며 덤볐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 고학년에게 여성의 중요 부위를 걷어차이게 되었고요.

뭐 지금이야 괜찮지만 그때만 해도 이러다 애 못 갖는 거 아닌가 걱정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그 고학년을 이기지 못하고 분한 마음에 오빠와 집에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독하디 독하신 저희 아버지(수틀리면 사람을 산 채로 머리만 빼놓고 땅에 3일 묻으셨던 분)는

당장 그 새끼 집으로 인도하라시며 저희를 앞장세우셨고,

원래 어디 사는 놈인지는 몰랐으나 집에 가는 길에 고자질하려고 살짝 미행했던 저는

그 집으로 당당히 아버지를 모시고 갔습니다.

그 집은 뭐 그냥 완전히 뒤집어졌고요. 다만 그 후 그 고학년 개자식의 여동생,

아 얼굴도 안 잊혀지네요. 그냥 시장통에서 안 팔려서 살만 찐 토끼 닮았습니다. 딱 그 정도.

아무튼 그 여동생이 한동안 저한테 정말 별 개 지랄을 다 했던 기억이 나네요. 게다가 저보다 선배.

하지만 저는 당하는 타입이 아니었으므로 적당히 되갚아주며 다신 절 못 건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분통이 터지네요. 정말 웃기는 남매였습니다.

 

또, 오빠가 동네 친구에게 빌린 돈 500원을 갚지 않아 정말 쪽팔리게 교문 앞에서 맞은 적도 있습니다.

사실 진짜 500원을 빌렸는지 어쨌는지도 의문이네요. 뭘 빌릴 만큼 용기 있는 오빠가 아니라-_-;

아무튼 친구와 사이 좋게 하교 중 친오빠가 교문에서 개 맞듯 맞는 걸 보고 전 또 눈이 돌았습니다.

그때 그 고학년 놈이 제 중요 부위를 걷어찬 기억이 나서 일단 거길 걷어찬 후에,

옆에 있는 제 친구에게 500원을 빌려 돌려주고는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오빠를 데려갔습니다.

그걸로 해결이 됐냐고요? 아뇨. 그 개자식은 이후 저희 오빠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뭐 5부 이자?를 달라고 난리를 쳐댔었습니다.

결국 제가 학교 앞 문방구 아저씨를 모셔와서 야단을 쳐달라고 해 해결이 됐고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2~3일에 한 번씩 그렇게 당하기만 하던 저희 오빠였지만

내가 왜 이렇게 맞고 있어야 하나, 싶어 한번 되받아친 후로는 더는 맞고 다니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부터 또 시작이 됩니다.

 

 

 

 

3.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은 놈

 

 

오빠가 초등학교 대략 4학년 즈음부터 맞고 다니지 않기 시작하면서,

이젠 때리는 데에 재미를 붙였는지 점점 하는 짓이 불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바로 뒤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하고서는 자기가 무슨 동네 양아치라도 되는 양,

사고라는 사고는 다 치고 삥 뜯으며 다니고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나름 촌구석(?) 학교인지라 그 정도가 지나치진 않았습니다.

헌데, 일산에 있는 제법 알려진 정보산업고로 진학을 한 후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처음 입학해서는 특유의 사교성과 유머러스함으로 친구를 잘 사귀는가 싶었고,

뭐 반장과도 친해졌고 친구들도 다 성격 좋단 식으로 말해 잘 됐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를 곤죽이 되도록 두드려 팼더군요.

오빠 말을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야, 나도 진짜 놀랬다. 내가 XX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애들한테 밟어! 하면

 그래도 실제로 밟는 애는 하나도 없었거든. 근데 얘네 진짜 무서워.

 장난으로 야, 밟어! 한 마디 했는데 진짜 눕혀 놓고 발로 밟더라.

 화장실 타일에 피 흐르는데 진짜 무서웠어.”

 

네, 뭐. 저희 오빠도 그럴 줄은 몰랐다고 하네요.

하지만 노는 스케일이 다른 친구들이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그런 피칠갑한 현장을 두려워하던 저희 오빠도 똑같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장에서 비열하게 눈 찌르고, 아니면 흙 뿌리고 누굴 두드려패는가 하면,

근처 실업계 고등학교와 시비가 붙어 서로 집에도 못 가게 길바닥에서 막고,

자기 친구는 둔기로 맞아 병원 실려갔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합디다.

하지만 전 어차피 오빠 입에서 나오는 얘기고 워낙 거짓말을 잘 하는 인간이기에

허세일 거다, 허풍이다, 괜히 세 보이려고 그러는 거다 믿으며 웃어 넘기곤 했죠.

그러다가 일이 터진 겁니다. 대체 학교에서 어떻게 싸우길래 이중창을 다 깨부숩니까?;

저는 싸움질하며 학교 다닌 적은 없어서 정말 궁금할 따름이네요.

없는 형편에 부모님이 그거 물어주러, 그리고 굽신거리며 사과하러 오빠 학교까지 가셨습니다.

다친 학생과 어떻게든 합의 보려고 아빠도 성격 죽이고 사과하고 그러셨는데

솔직히 이가 좀 부러진 정도였다고는 하는데(직접 안 봐서 모르겠네요),

맞은 학생 부모님께서 좀 도가 지나친 합의금을 요구했다고 하네요. 학교 측에서도 만류할 정도로요.

결국 참을 만큼 참으신 저희 아빠가 폭발해서,

“오냐, 이 새끼는 어차피 집에서도 내놓은 자식이니까, 빵에 처넣든 말든 마음 대로 해라. 알 바 아니다!”

하시는 바람에 적정 수준에서 합의가 되었고요, 저희 오빠는 정학 처분으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아버지 말씀이 심하다 여기실 분도 계시겠지만요, 이미 부모님도 두 손 두 발 다 드셨을 땝니다ㅠㅠ)

 

그 후로는 오빠가 사고 치면 부모님 말고 저한테 연락했습니다.

전 살면서 그렇게 경찰서를 자주 들락거리게 될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버지가 하신 말과 똑같은 말을 제가 또 하게 될 줄은 몰랐고요.

전 저희 오빠가 싼 똥 치우는 자식이었습니다.

내가 가서 합의 좀 하자고 싸바싸바하고, 하다하다 안 되면 뻔뻔하게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상대가 질리게 해서 합의 보게 하는… 제가 정말 경멸스러울 정도의 짓을 많이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라도 그 분들께 사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정말로 그 분들이 요구하신 돈을 다 드릴 형편이 안 됐습니다.

가세가 기울 대로 기울어 화전역 근처의 단칸방에 네 식구가 산 적도 있습니다.

그게 저 초등학교 5학년 때니, 자랄 만큼 자라서 얼마나 불편하고 민망했겠습니까.

모아 둔 돈도, 담보할 금품도, 팔 집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안 준 게 아니라 못 준 겁니다. 달라는 돈 못 주면? 저희 오빠는 그냥 법 대로 처리되는 거죠.

어쩔 수 없이 발악해서 오빠를 수렁에서 건진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정말 괴로운 나날들이었습니다.

 

 

 

 

4. 나도 꿈이 많았는데

 

 

어릴 때부터 저는 잔재주가 많았습니다. 오빠 대신 책 읽어 치우느라 글 재주가 늘었고,

어머니를 닮아 손재주가 있었으며, 아버지 집안 대대로 음악을 해왔던지라

그 피를 물려받아 음악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 흔한 피아노 학원 한 번 못 다녀봤지만요.

지금 생각해보면 세 가지 재주 중 하나만 뒷받침이 됐더라도 좀더 즐겁게 살았을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 학원이라곤 다녀본 적도 없고, 과외는 나와는 먼 이야기였고,

대학도 포기하고 일하겠다 마음 먹은 고3, 이건 아니다 싶어 수능 100일 전부터 공부해

그래도 인서울(서울에 전화기만 있는 여대-_-;;) 하나 싶었더니 등록금이 없어 재수.

사실 재수도 진짜 하기 싫었습니다. 저도 공부 체질은 아닌지라 100일 공부한 것도 힘겨웠거든요.

어떻게 1년을 더 합니까. 그래도 부모님이 애원하셔서 다시 수능을 쳐 대학엘 갔습니다.

학원? 인터넷 강의? 하나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냥 시립도서관에 도시락 싸들고 다닌 게 다입니다.

학원 가라고 해도 싫어했을 저이지만, 솔직히 서럽긴 서럽더라고요.

 

왜냐면 저희 오빠는 많은 혜택을 누렸으니까요.

집안 살림이 그나마 넉넉하던 시절, 저희 오빠는 유치원 대신 미술학원과 태권도를 다녔습니다.

그 중 태권도 학원은 저희 유치원 아래 층에 있던 곳이고요. 아침마다 거기서 아침 조회를 했던 기억이^^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지만 노태우 대통령께 감사하는 시간을 매일 가졌습니닼ㅋㅋㅋㅋ 니가 내한테 해준 게 뭔뎈ㅋㅋㅋㅋ 쩝-_-)

뭐 아무튼 그러고서 가세가 기울어 이사한 후에도 저희 오빠는 주산 학원, 속셈학원,

심지어는 컴퓨터 학원까지 다녔습니다! 뭐라도 하면 좀 나아질까 해서요!

이건 제 친구가 해준 얘긴데요, 형제가 여럿 있는 집안이 형편이 어려울 때,

어느 정도 가난하면 큰 자식에게 투자를 하게 되고,

정말 그나마도 못해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하면, 첫째가 희생을 하게 된다고요.

맞는 말 같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전셋집은 살 정도였으니까요.

보증금 200에 월세 15짜리 단칸방에 네 식구가 살 정도는 아니였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미술학원도 다니고 싶었고, 피아노 학원도 다니고 싶었지만 하나도 못 다녔습니다.

이후 중고등학교 때의 미술 선생님들이 해주신 칭찬이 제겐 늘 상처로 남았어요.

“넌 정말 기초부터 잘 배웠으면 지금쯤 크게 됐을 텐데.”

감사한 말씀이지만 안 듣느니만 못한 얘기여서 서러움에 많이도 울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빠가 다니기 싫은 학원 다닐 동안 많이 뛰논 것으로 위로를 삼으며 살았습니다.

오빠가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인간’이 되기 전까지는요.

 

 

 

 

5. 내 오빠에게 삶의 목표란 없는 것인가

 

 

오빠는 정말 하고 싶은 건 다 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공부하기 싫다고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대다수 실업계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이 무슨 미안한 사고방식입니까?)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놀고 싶다고 대학도 안 갔습니다.

실업계에서도 내신 관리 잘하고 자기 방향만 잘 잡으면 번듯한 대학 잘 가고,

솔직히 막말로 뭣도 모르고 죽어라 수능만 들이 판 학생들보다,

이것저것 사회경험도 미리 해본 실업계 친구들이 자기 갈 길도 빨리 찾고 그러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희 오빠네 학교는 내신 거저 주는 데였습니다.

공부하라곤 안 할 테니 뽑아주는 문제 답 순서만이라도 외워라. 딱 그대로 나온다, 하는 학교였죠.

그래도 공부 죽어라고 안 하더니 대학에 가려는 시도는 커녕, 군대부터 덥석 가더군요.

뭐 사실 군대는 늦게 가는 것보단 나을 수도 있고, 자기 선택이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와, 군대 대단하더군요. 키도 약간 180 못 되고 빽도 뭣도 없는 저희 오빠가

어쩌다 헌병으로 뽑혀 복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무릎에 물 찬다고 투덜대면서도,

야 헌병 이게 진짜 간지야 ㅎㅎㅎㅎ 하며 밝게 잘 지내는 것 같더군요.

무엇보다 오빠가 규칙적 생활과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철이 많이 들었습니다.

부모님도 기대가 크셨고요.

하지만 저는 오빠를 너무 잘 알았습니다.

“군대 힘든 거 뻔히 알고 친오빠에게 할 얘기 아닌 건 알지만,

 그래도 내가 보기엔 오빠는 거기 말뚝 박아야 사람답게 살 것 같은데.”

라고 농담보다 진담이 좀더 섞인 얘길 부모님께 하기도 했고요.

야단? 많이 맞았죠.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도 한숨 쉬시며 말합니다.

“그냥 그때 네 말 대로 저거 그냥 말뚝 박았어야 했는데.”

 

하아. 전역하고 한 일주일은 그렇게 바른 생활 사나이가 없었습니다.

뭐 군대 꿈을 꾼다든지 “잘 못 들었습니다?” 드립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정말로 아침 일찍 일어나 가족과 함께 밥을ㅠㅠㅠ 먹기도 하고ㅠㅠㅠ

마당도 쓸고ㅠㅠㅠ (이때는 여전히 비슷한 가격 월세지만 그래도 방 3칸짜리 더 시골집일 때!)

오빠가 사람 됐구나 싶었습니다. 또 열심히 알바 자리를 구하려고 노력도 하고요.

그래, 이제라도 성실히 어딘가에 자리 잡고 일하면 금방 남들 따라잡을 거야! 힘내! 응원도 해줬습니다.

근데 이게 웬 걸? 은행 청원 경찰이 됐다더니 3일만에 다시 집에서 놉니다.

마트 직원이 됐다고, 급여 통장이랑 연결된 카드도 만들고 하더니, 일주일만에 다시 집에서 놉니다.

근데 카드는 씁니다. 당연히 연체가 되고, 정지가 됩니다. 집에 전화가 많이 옵니다.

오빠는 신용불량자(요새는 다른 말로 바뀌었죠? 채무불이행자? 뭐였더라;;)가 됐습니다.

 

그리고 다시 군대 가기 전 오빠로 돌아옵니다.

방에 처박혀서 낮이고 밤이고 게임을 합니다. 무슨 게임인지는 몰라도,

계속 헤드셋 끼고 앉아서 떠들면서 합니다. 뭐 그런 게임이 있다고는 들었습니다만.

오빠 방과 제 방은 기존에 방 하나이던 것에 파티션을 나눈 정도라 소리 아주 잘 들립니다.

시끄러운 것까진 참습니다. 그런데 게임하며 만난 여동생, 남동생들에게,

세상 천지 이렇게 좋은 형님, 오빠는 없다는 듯이 인생 상담 및 훈계를 합니다.

자려고 누웠을 때 오빠가 잘난 척 인생선배 노릇하는 소릴 들으면 배알이 꼬입니다.

솔직히 동생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요? 저도 참을 만큼 참은 겁니다.

한 번은 정말 화가 나서 오빠 방에다 대고 “개자식아 너나 잘해!!”라고 소리친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 날도 오빠가 사고 치고 들어온 날입니다.

30분 정도 무릎 꿇고 아빠한테 훈계 듣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게임하며 멋진 인생 선배 드립을 치는데,

어느 누가 화가 안 나겠습니까. 집안은 다 뒤집어 놓은 놈이.

다시 생각해도 열불이 나네요.

 

아무튼 그렇게 몇날며칠을 방 안에서 게임만 하는 저희 오빠,

똥 쌀 때 빼고 나오지도 않습니다. 방은 자연스레 쓰레기장이 됩니다.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홀아비 냄새 나는 방은 생전 처음 봅니다.

아뇨, 이건 뭐랄까, 그냥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을 하는 방이었습니다.

가끔 제가 넉넉한 사이즈로 사 둔 후드 점퍼 같은 거 갖다 입고 그 쓰레기장에 둡니다.

그 옷은 그냥 버린 셈 칩니다. 약았습니다.

 

그리고 오빠는, 언제나 생라면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우리 집은 가난해서 뭘 모을 여유가 안 되면 그냥 잘 먹기라도 하자 주의입니다.

(랄까 솔직히 아빠가 좀 이상스레 마트 가면 이것저것 군것질거리 사시는 버릇이ㅠ_ㅠ 그리 말려도ㅠㅠ)

그래서인지 냉장고에 늘 콜라든 주스든 페트병으로 한두 개씩 있습니다.

오빠는 가끔 거실로 나와 박스에 있는 라면과, 페트병 하나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곤 생라면과 음료수 1.5L 한 병을 혼자 해치웁니다. 쓰레기는 버리지 않습니다.

새로 산 밀키스를 한 방울도 맛 보지 못한 적이 한두 번도 아닙니다.

뭐 먹는다고 욕하는 게 아닙니다. 좀 사람답게 먹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어차피 집에서 노는데 가족끼리 얼굴이라도 보면서 먹든가,

부모님 잔소리가 듣기 싫으면 부모님 교회 가셨을 때(봉사하시느라 자주 가십니다)

나한테 밥이라도 차려달라고 해서 먹든가. 살만 쪽쪽 빠지고 그게 뭔지.

나중엔 화가 난 엄마가 간식 거리를 산 후에 숨겨 두기 시작했습니다.

숨겨 뒀다가 조금씩만 꺼내 놓고, 그 간식이 어디 있는지는 제게만 가르쳐주시고요.

당시 저는 휴학하고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잘 못 먹고 다니는 절 위해 아빠가 아침에 저 먹으라고 시리얼 사둔 것도 오빠가 다 아작냈습니다.

집에서 놀기만 하면서요… 노는 놈이라고 속 편하겠냐 싶어 안쓰러웠던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놈은 속 편합니다. 이젠 오빠 소리도 안 나옵니다. 이제부터 놈이라고 칭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이놈은 신용불량자입니다.

카드 값도 안 갚는 놈이 핸드폰 요금을 잘 낼 리 없습니다.

놈의 핸드폰도 결국 정지가 됐습니다. 집으로 자꾸 독촉 전화가 옵니다.

말씀 드렸듯이, 전 일하는 중이었습니다. 120 받으면 60을 부모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60이 남네요? 집에서 출퇴근하니 돈 쓸 일 그다지 없네요?

어머 조금만 바싹 땡겨 일하면 등록금도 생기겠네~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죠. 제 허황된 꿈이었습니다.

제 모든 월급의 대부분은 집안 생활비와 오빠의 채무 청산에 쓰였습니다.

1년 반 정도를 일하고도 한 푼도 못 모았습니다^^ 나중엔 자도 자포자기하게 되더군요.

 

그러던 와중! 오빠놈이 일을 구하려고 하는데 휴대폰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미 오빠에 대한 신용은 커녕 가족애마저 상실할 정도로 고생을 한 저로서는

(참고로 120 받던 때, 하루 13시간씩 일했습니다. 어떤 달엔 한 달에 이틀 쉰 적도 있네요.

 나중 되니까 월급의 거의 반 정도 되는 초과 근무 수당까지 나옵디다. 저는 그냥 일하는 소였어요.)

근데 뭐 어쩌라고 볍신아, 하는 반응을 보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다릅니다. 끝까지 자식을 믿어주십니다.

그래도 그렇지 그 놈을 왜 믿으시는지 정말 저로선 이해가-_-

아무튼, 놈이 이제 맘 잡고 일한다니까 한 번만 네 명의로 해줘라, 하십니다.

(저희 부모님도 당시 두 분 모두 파산 신청한 후라 신용 회복이 미처 덜 됐을 때입니다.)

싫다. 난 저 놈 못 믿는다. 그렇게 당하고도 모르시겠느냐, 고사에 고사를 했으나,

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든가요. 저희 부모님은 저희 오빠를 못 이겼고,

부모 이기는 자식도 없나봅니다. 저는 저희 부모님께 졌습니다. 핸드폰, 해줬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또 몇 달간 악몽의 빚 갚기 사이클이 시작됩니다.

나는 누굴 위해 일한 것인가…

 

그렇게 방에서 게임질에 여자 꼬시기 바쁘던 오빠놈,

방은 쓰레기장이어도 어디 나갈 땐 벅벅 씻고 향수 좍좍 뿌리고 나갑니다.

계이베르셰키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하지만 그냥 꺼져주는 게 더 고마웠습니다.

이 새끼는 어찌 된 게 중학생 때 이후로 여자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여자와 100일이 채 못 가 헤어집니다.

참, 놈이 군대 가기 전 사귀던 미용실 다니는 예쁘고 착한 언니가 하나 있는데요,

군대 가 있는 내내 기다리고 편지 쓰던 그 언니에게 전역해서 놈이 뭐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응? 너 왜 나 기다렸냐? 너랑 나 사귀었어?”

아, 대박. 저 그 언니랑 그렇게 안 친했지만 제가 나서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습니다.

(라는 건 오바고, 싸이 쪽지로 엄청 사과했습니다. 저딴 놈 잊고 좋은 놈 만나시라고ㅠㅠ)

아무튼 뭐 모든 여자에게 진지함이라곤 없는 자식인데 이상하게 인기는 많았습니다.

덕분에 초콜릿에 빼빼로 얻어먹은 걸 부정하진 않겠어요.

하지만 놈처럼 되기 싫어서 연애를 오랫동안 꺼린 건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꼭 사람 가지고 노는 애처럼 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관계로 발전 중이라고 해도 본보기가 저 모양이다보니,

연애란 거지 같은 것이다. 하고 싶어도 하지 말자! 하는 마음이 저를 구속했지요.

하지만 그냥 제가 잘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욕 먹으면서 살았는지 후회되네요.

상대방 입장에서는 저희 오빠보다 제가 더 나쁘게 보였을 수도 있잖습니까. 어장관리라고-_-

아니라는 걸 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네요. 오빠 핑계 같긴 하지만 정말 큰 이유입니다ㅠㅠ

 

어쨌든 게임질하랴, 여자 꼬시랴,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랴,

일주일에 한두 번만 나가도 백수 지갑 거덜나는 것 순식간입니다.

아무리 친구들이 형편 괜찮아서 다 사주고 한다고 해도 여자한테까진 신세 질 수 없었나봅니다.

언제부턴가 제 지갑에서 놈이 얼마씩 꺼내가기 시작했습니다.

제 방에 가방을 두고 안방에서 TV를 보는 사이에, 혹은 제가 자는 사이에,

적게는 몇천 원, 많게는 몇만 원씩을 꺼내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귀가 시에 지갑 속 잔액을 확인하기 때문에 바로 들통이 났지요.

그럴 때마다 제가 화를 내면 아버지께서 그 돈을 메꿔주셨습니다.

왜 아빠가 이걸 주냐고, 화를 내면서 도로 돌려드려도 한사코 받으라고 하십니다.

아빠도 어려운데… 하면서 방에서 펑펑 울며 오빠놈한테 이를 갈았습니다.

 

가장 화가 나는 건, 오빠 뻔히 돈 없는 거 아는데,

학교 다닐 때 학자금 대출 받으면서 생활비도 대출 받아 용돈 타서 썼고,

휴학하고서는 그래도 돈 벌면서 다니는 동생이 있으면,

돈이 필요하면 필요하다 그냥 부끄럽더라도 솔직히 말하면 될 텐데요.

달라고 하면 줄 것을 왜 훔쳐가냐는 겁니다. 그게 더 부끄러운 일 아닌가요.

오빠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부도덕한 일입니다.

저는 오빠가 백수에 바람둥이인 것은 참아도 손버릇 나쁜 것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집안에 폐는 끼쳐도 어디 가서 욕 안 먹고 다니는 성품의 소유자인데,

아무리 적은 돈일지언정 몰래 손 대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오빠 때문에 경찰서 오가는 건 정말 다신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로요.

가난한 건 부끄럽지 않지만 비뚤어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잖습니까. 떳떳하게만 살면 그걸로 된 건데.

너무너무 속상해서 한동안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냥 어디 나가는 것 같으면 몇 푼씩 쥐어 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큰 후폭풍을 가져오는지는 아시는 분은 아실 테니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어느덧 부모님보다 더 오빠를 야단치며, 타이르며, 용돈 챙겨가며 살다보니

오빠는 부모님 말보다 제 말에 더 껌뻑 죽고 제 말을 더 잘 듣게 되더군요.

어떻게보면 권위적인 아버지보단 제가 말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고요.

뭐라도 말을 하면 잠깐이라도 고치는 기색이 있어 기대를 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러다 오빠가 26살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제가 오빠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어도, 오빠가 그렇게 마음 대로 살 수 있는 거 올해까지만이야.

 정말 26살과 27살의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크니까, 세상이 이해해주는 것도 이제 끝이라고.

 많은 내 주변 사람들 보면 27살 정도 되면 자기 하는 일에 어느 정도 자리도 잡고,

 사귀는 여자 있으면 결혼도 생각해보고 철도 드는 그런 나이야.

 오빠 철없게 구는 거, 26살까지는 사람들이 그러려니 할지 몰라도,

 내년 돼서까지 그러면 그거 진짜 이해 못 받고, 욕 먹어. 그니까 내년부턴 정신 좀 차리자.”

좋게 좋게 말하니 오빠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좀 변했을까요?

욕 좀 해도 됩니까?ㅡㅡ 아 ㅅㅂ 변하긴 개뿔 쥐똥 이 새낀 뭐 하는 새낀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위에 실컷 열심히 나열한 삶, 27살이 돼서도 계속 반복하더군요.

어이가 없어서 니 친구년들(남자 분들 죄송ㅎㅎ;;)도 다 그러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럴 리가요.

같이 놀던 양아치 친구들도 다 자리 잡고 크든 작든 회사 다니고 그러더군요.

뒤늦게 정신 차리고 공부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쨌든 자기 할 몫은 다 합디다.

속이 안 터질 수 있겠습니까. 제 주변만 봐도 저희 오빠 같은 인간은 없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야 니는 하고 싶은 일 없냐? 뭐 하고 살래? 꿈이 뭐야?” 했습니다.

뭐 사실 오빠한테 오빠라고 안 부르기 시작한 지도 좀 됐네요. 제가 못돼서 자존심이 상합니다.

아무튼 그랬더니 자긴 음악하고 싶다고 합니다. 뭐 저희 집안에 음악하신 분들도 많고,

음악 워낙 좋아하는 거 뻔히 아니까, 아 그러냐, 그럼 열심히 해라! 응원해줬습니다.

솔직히 저도 음악하고 싶었긴 한데, 가난한 한 집에 두 명이 자기 욕심 내면 완전 망할 것 같아서,

그래도 이 놈이 열심히라도 하는 것 같으면 뒷바라지도 해줄 생각으로 한 말이었어요.

하아… 열심은 무슨. 그 쉬운 G코드 하나 제대로 못 잡습니다.

좋아하는 펑크 밴드 타브 악보 받아 그거나 좀 따라서 끄적거리는 정도?

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요. 하다보면 늘겠거니 했는데 기대치는 나날이 사라졌습니다.

자기가 치는 코드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되는 대로 후려갈깁니다.

가끔은 저 불러서 야 A코드 좀 잡아봐. 야, 이 악보에 이거 좀 쳐봐, 손 모양 보고 따라 치게.

아니 음악하겠다는 놈이 그게 귀찮으면 ㅅㅂㄹㅁ 그냥 뒤지라고 아오ㅡㅡ

라고 생각하면서도 도와준 저는 ㅄ입니다. 네.

그래도ㅠㅠㅠㅠ 이 등신아ㅠㅠㅠㅠㅠ 열심히라도 했으면ㅠㅠㅠㅠ 응?ㅠㅠㅠㅠㅠㅠ

니 좋은 기타 사주려고 돈 조금 모으던 거ㅠㅠㅠㅠ 니 핸드폰 요금으로 다 냈다ㅠㅠ 알간?ㅠㅠㅠㅠ

 

도대체가 이 인간, 삶의 목표란 게 있기나 한지 궁금합니다.

그냥 나한테만 얘기 안 해준 것이면 좋겠습니다. 제. 발.

 

 

 

 

6. 바늘 도둑이 소도둑

 

 

뭐 음악 실력이야 늘든 안 늘든, 양아치처럼 대강대강 하든 안 하든,

인생은 멋이며 멋 중 최고의 멋은 겉멋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듯한 오빠놈은,

알바를 찔끔찔끔 하며 번 돈으로 옷, 축구화(이 새끼 이건 한 너댓 개는 사 모은 듯?)로 탕진하고,

에피폰 기타 샀다가 돈 없으면 내다 팔고, 다시 돈 생기면 이번엔 진짜 깁슨을 사고,

그러다가 돈 떨어지면 깁슨도 또 팔고, 다시 돈 생기면 몇백 만원짜리 커스텀 기타 지르고…

뭔 음악한다는 새끼가 악기를 밥 먹듯이 사고 파는지… 뭐 자기 돈으로 하는 짓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아니 아빠한테 차비 타서 알바 다녔으면, 월급 타면 그거라도 갚는 게 당연한 건데

자기 입에, 몸에, 여자들한테 처바르느라 집에 돈을 보태긴 커녕 꾼 것도 안 갚습니다.

이미 그것부터가 도둑놈 그 자체라고 생각하지만 가족이니까 그렇다 치고요,

 

저희 오빠가 좋아하는 일본의 모 밴드는 제가 먼저 좋아했습니다.

한국에 알려지기 전부터 일본 인디 밴드들에 관심 가지면서 좋아한 것이고요,

오빠에게 그 음악들 들려준 것도 접니다.

남매가 사이 좋게 한 밴드 좋아하다보니 네이버 팬 카페에도 함께 가입돼 있었습니다.

저는 나름 그 카페의 활발한 회원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제 닉네임까지 언급되며 어떤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내용인 즉슨 저희 오빠가 사기를 쳤다고 하네요.

아니 뭐 그래, 그 새끼가 사고를 쳤음 친 거지 난 왜 물고 늘어져? 어디서 신상 털고 ㅈㄹ? 하며 보니,

와우, 이 놈이 기타 팔겠다고 글 올려서는 돈은 제 계좌로 받은 겁니다.

그 놈이 가끔 몇 푼이라도 필요하다고 할 때 돈 부쳐주려고 준 통장인데,

와 이렇게 악용을!!(아시다시피 놈은 신용불량이라 통장도 묶여 있었습니다.)

뭐 본의 아니게 제가 엮여들어갔으니, 그리고 그 카페에서의 제 이미지도 있고 하니

그 사기 당했다 주장하는 이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솔직히 그놈도 개념은 없었습니다. 조금 배송이 늦어진 건데 사기 드립 치는 어린 놈이었습니다.

 더구나 남의 신상정보를 그렇게 인터넷에 훌훌 터는 놈이면 말 다했지요.)

일단은 아무리 사기라고 의심되더라도 이런 식의 자력구제는 그 자체로도 위법이며,

누군가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것 역시 법적 처벌이 가능하다,

학생이 잘 모르나본데 이는 case-by-case로 다뤄지는 사안이기 때문에

오빠놈이 사기를 쳤더라도 그것과 무관하게 나는 내 신상을 턴 너를 고발할 수 있다,

그러니 협박 반 애원 반 해서 해당 게시물을 삭제해달라 요청했고요.

그리고 오빠놈이 진짜 사기를 치려고 한 건지 어쩌다 일이 꼬인 건지 아직까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빠놈도 잘 족쳐서 해당 사건은 기타를 보내주는 걸로 해결이 됐습니다.

라고 생각하면 오산. 그 글 쓴 새끼가 신고만 하고 취하를 안 한 겁니다. 물건 받았대매 색갸!!

아 진짜 도찐개찐이라고 두 놈이 다 똑같아 보이면서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일산경찰서?로 출두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오빠놈은 그마저도 쌩깠습니다.

게다가 저까지 언급하며 저도 나오라기에 저는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오빠가 해결해야 했고요.

뭐 나중에 자기 여친이랑 가서 잘 해결했대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뭥미 한 반 년 후에 그 건이 미해결됐다며 경찰 출두를 독촉하는 서신까지 도착했습니다.

이 새끼 진짜 뭐 하는 새낀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사기 드립 둘.

사실 최근 저희 오빠는 나가서 어딘지 모를 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저 역시 작년부터 출퇴근이 너무 어렵고 눈만 오면 동네에 갇히기 일쑤라

고시원에서 지내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고요. 직장을 옮기게 되면 거처를 옮기는 식으로요.

아무튼 그러다보니 오빠가 없는 저희 집은 평화 그 자체였습니다.

여전히 제가 갚아줘야 할 빚들이 남았던 것만 빼고요. 아 ㅅㅂ 내 명의만 아니었어도ㅡㅡ

그러던 와중 아버지께서 지병인 당뇨에서 비롯된 다리 괴사로 입원을 하셨습니다.

생전 처음 입원하시는데 중환자실.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그때만 해도 오빠랑 연락은 되던 때라 오빠한테 연락을 취했고,

그 날 밤 오빠는 중환자실에서 아빠 손을 잡고 펑펑 울었습니다.

아 이제 정신 차렸겠구나! 하고 오빠를 보낸 후…

하, 고양시에 명지병원이란 데에 입원하신 건데요, 저희 아빠가 장기 입원 신기록 세우셨댑니다.

보통은 퇴원 후 다시 입원하는 식으로 장기 입원을 못하게 한대요. 이사진에서 뭐라고 한다고.

근데 저희 아빠가 그 기록을 깬 겁니다. 엄마 아빠 진짜 고생 너무 많으셨음ㅠㅠ

암튼 그렇게 100일 넘게 아빠는 병원에 계셨고, 그동안 저희 오빠, 한 번도 안 왔습니다.

연락도 없었습니다. 마음 약해진 아빠는 얘가 일하고 그러는 중인가보다 하셨지만,

저는 마음만 먹으면 이 새끼 뭐 하면서 어디 사는지 다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냥 병맛처럼 놀고 먹고 이상한 키스방 매니저 잠깐 하고 방탕하게 사는 게 다였습니다.

일을 해도 왜 그런 일을… 어휴. 오래는 안 했다곤 하지만 참…

 

뭐 연락 안 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솔직히.

근데 의료비 지원을 받는 절차에서 저희 오빠가 실종신고가 돼야 했어요.

솔직히 실종이나 마찬가지죠. 어디서 뭐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연락도 없고. 전화도 안 받고.

근데 이 미친놈이 기껏 실종신고 했더니 식구 전화는 안 받고 구청 직원 전화를 받은 겁니다.

이대로 의료비 지원은 물거품이 되는가… 다행히 병원의 복지 부서에서 여러 모로 힘써주고

어머니께서 백방으로 뛰어다니시며 문제를 해결했습니다ㅠㅠ

그리고 그때 이후로 오빠놈은 여전히 주민등록 말소 상태고요. 본인이 살리지도 않더군요.

사실 실감 못하고 있다가 새 직장에 제출할 등본 떼고서 실감했습니다.

사장님이 3식구냐고 묻는데,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하하.

어쨌든 나가서도 끝까지 도움은 커녕 방해만 되는 놈을 저는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아. 시. 발.

제가 최근 친구들의 반 강요로 트위터란 걸 시작했습니다.

이래저래 금세 팔로워도 늘고 폰도 아이폰으로 바꾼 후라(돈 벌고서 처음 한 이기적인 짓)

아이 재밌어 하던 참, 갑자기 미친 속도로 무언가가 알티되기 시작했습니다.

사기꾼을 찾습니다. 이름 : XXX 나이 : 27(나이는 잘못돼 있더군요)

거주지 : 고양시 일산구 화정동(뭐가 화정동이 일산구냐-_-;;)

(게다가 저희 오빠 그때 잠깐 연락 닿았을 때 자긴 무슨 대전인가 대구에서 캐디 일 배운댔는데-_-)

하는 일 : 실용음악(여기서 잠깐 빵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터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용인 즉슨 마찬가지로 무슨 악기를 거래하기로 해 놓고 10만 원 먹고 잠적. 트위터 탈퇴.

으응? 으응? 으응? 내가 아는 XXX 말이니? 어머 시발 뭐라고? 하면서

눈을 몇 번을 부비고 보았습니다. 사진이 마무리해주더군요. 오빠놈 사진이었습니다.

앜ㅋㅋㅋㅋㅋㅋㅋㅋ 뭐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면서 어이없게 웃으면서 일단은 그래도 그런 글은 무작정 알티하는 게 아니라고

일단 첫 작성자 및 다른 분들을 설득했습니다. 뭐 그 과정에서 욕도 더럽게 처먹었고요.

저도 솔직히 내가 이 새끼를 왜 옹호해주고 있나 싶었지만 저도 모르게 그리 되더군요.

사기 당했다는 아리따운 여성 분(아 왜 이런 분께ㅠㅠㅠㅠ)을 열심히 설득했습니다.

다행히 알티 사건은 잘 종결됐고, 오빠놈도 제가 연락처 알아내서 족친 후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그 후로 조용한 걸 보니 뭐 어떻게 해결은 한 모양이더군요.

저번 기타 사건도 그렇고, 솔직히 제 오빠지만 믿어줄 마음도 없습니다.

그래도 믿어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본인이 아니라고 했으니까요.

그래도 여전히 의구심이 남습니다. 제 생각엔 이 새끼 사기 치려던 거 맞는 듯합니다.

그 후에도 트위터를 다시 가입해 열심히 친구 사귀며 놀던 이 새끼,

조용히 가서 멘션 씨부려 놓은 걸 보니 화정에 있는 것 맞습니다. 멍청하게 흔적이나 흘리고 다니고.

넌 내 손바닥 안에 있어.

 

어쨌든 제가 우려했던 것처럼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어 나타났습니다.

앞으로 더 얼마나 큰 사고를 칠지 걱정입니다ㅠㅠ

 

 

 

 

 

 

에휴 아무리 나열하고 나열해도 끝도 없는 저희 오빠 이야기는 이만 줄이려고 합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언제부턴가는 그냥 어디 가서도 저 외동이라고 합니다.

오빠 있다는 말을 꺼내면 이것저것 물어오는 게 피곤하기도 하고,

태생적으로 거짓말을 잘 못하기도 해서 뭐라고 포장도 못 해주겠어서요.

외동이라는 거짓말 한 마디면 그냥 끝나니까요….

처음엔 안쓰럽고 미안하기도 했는데 이젠 그런 마음도 안 듭니다.

 

자기가 하고픈 일은 다 하고, 하기 싫은 일은 어떻게든 안 하면서 잘 살았으면,

적어도 인간으로서 자기 몫만 하고 살아주면 그걸로 됐다 싶은데, 그게 그리 안 될까요.

정말이지 이럴 땐, 저 놈이 차라리 동생이었으면 패서라도 사람 만들었을 텐데!

내지는, 차라리 오빠가 없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휴학한 지 어언 2년째가 다 되어가는데요, 3학기를 남겨 놓고 졸업을 단념하는 중입니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어느 정도 돈을 모아 대출금 다 갚고,

나중에라도 하고픈 공부가 생기면 공부를 다시 시작해보려고 해요.

사실 좋아서 다닌 학교도, 좋아서 공부한 전공도 아니었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제가 사회복지 전공입니다ㅋㅋㅋㅋㅋ 근데 일단 나부터 좀 살면 안 될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휴 이렇게 생면부지의 사람들 앞에(읽어주든 그렇지 않든) 털어놓으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

가끔 제가 오빠랑 사는지 애를 키우는지 혼란스럽던 때가 많았는데,

저는 이제 그냥 다 신경 끄고, 열심히 돈 벌어서 부모님 생활비 보태드리고,

요샌 몸 불편하신 아빠 대신 엄마가 일용직ㅠㅠ으로도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서로 조금씩 참으면서 적금도 들고 해서ㅠㅠ 엄마 아빠 집 사드릴 겁니다.

지금 사시는 그 시골 동네가 곧 재개발이 되어 아파트가 들어설 건데,

실상 세입자에겐 돌아오는 게 그닥 없다고 하네요ㅠㅠ

그래도 이사 비용이라도 두당 받아야지 싶어서 전 전출신고도 아직 안 하고 있습니다.

뭐라도 보탬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에휴, 그 동네 공기도 참 좋고 좋은 동넨데 마음이 허하네요.

그래도 집주인 분이 좋은 분이라 보증금도 없이 월세를 최근엔 거의 10만 원만 받으셨고,

한 몇 달은 월세도 못 냈는데 어차피 곧 재개발되면 나가야 할 텐데,

당장 그것도 걱정일 텐데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있다고 가라고 해주셔서요,

정말이지 그 분께는 죽을 때까지 감사하며 살고 싶으네요.

 

 

한동안은 로또 1등 같은 허황된 꿈도 꾸고 그랬는데,

솔직히 2년 가까이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다가 한 두 달 정도 쉴 때나 그랬지,

막상 새 직장 들어와서 일하다보니 그냥 월급날만 소박하게 기다려지네요.

이번엔 정말, 깨알 같이 아끼고 모으고 해서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오빠는, 글쎄요, 언젠가는 정신 차리고 돌아올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가 되면 제겐 이미 늦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우고 살고 싶어요.

아무리 그래도 가족인데, 하는 생각마저 남지 않네요. 이런 제가 너무 못된 걸까요.

하지만 저도 어린 나이에 너무 고생을 많이 했고, 그 원인 대부분이 오빠여서인지,

쉽게 용서가 되지를 않네요^^;

 

티격태격하더라도 오빠로 있어주는 오빠가 있었더라면.

저는 그런 분들이 참 부럽습니다.

내게 야단 맞으며 기죽어 있다가도 나가서 사고만 치는 오빠 대신에,

날 괴롭히고 장난만 치고 눈치 없이 굴더라도,

그래도 한 가족답게 지내며 아옹다옹하는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그냥 저 혼자 다 감내하고 가더라도,

저 혼자였으면 좋았을 것 같기도 하네요. 부모님껜 너무나 죄송하지만요.

 

 

 

ㅎㅎ 아 문득 아는 언니 생각나서 웃음이 나네요.

몇 년을 알고도 화내거나 욕하는 걸 본 적도 없는 애교 많고 순둥이인 언닌데,

언젠가 제가 오빠 얘기를(최근 몇 년간의 엄청난 민폐 이전인데도!) 가만히 듣던 언니가 이랬습니다.

“아, 진짜, 남의 오빠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진짜 강아지….”

 

내 가족 나는 욕해도 남이 욕하면 화나는 게 보편적 반응인데,

전 그 날 배꼽 빠지고 눈물 쏙 빼게 웃었습니다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힘이 되더군요.

 

이걸 읽어주신 것만으로 감사하고, 같이 욕을 해주셔도 감사하고,

그냥 제가 불쌍하다고만 느껴주셔도 감사할 것 같네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의 내 가족과 내 삶을 소중히 여기실 수 있으셨으면 합니다.

전 소인배라, 그릇이 너무 작아서 그게 잘 안되네요^^;;ㅎㅎㅎ

 

 

모두들 가족끼리 사랑하시고 행복하세요ㅠㅠㅠㅠ

그리고 오빠야 니는 이 글 좀 꼭 봐라.

이 새끼야 차린 건 없지만 철 좀 드세요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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