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바위에 붙은 노송

은하철도 |2003.12.13 11:27
조회 278 |추천 0
 

바위에 붙은 노송



높은 바위에 노송 한그루가 자란다.  단단한 바위에 뿌리를 박고 뻗어 오른 몸체가 스스로 회전하여 비틀어졌다.  몇 개 되지도 않는 가지를 해가 비치는 방향으로 펼쳤지만 정작 햇빛을 흡수하는 솔잎은 듬성듬성하게 붙어있다.  척박한 노송의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 쳐다보며 한마디씩 던진다.

“참으로 기괴하다.  어떻게 저런 바위에서 소나무가 자라고 있지?”


어린 동양소년이 시카고 뒷골목에 쓰러져있었다.  겨울날 눈보라에 덥혀 얼어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덩치 큰 미국인이 지나가다 발로 그 소년을 툭 찼다.  굶주려 허기진 소년은 꿈틀하는 몸짓만 보였을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미국인은 소년을 들쳐 업고는 따듯한 방으로 데려갔다.  따듯해지는 체온에 의식을 회복한 소년의 눈에 빵과 스프가 보였다.  허겁지겁 달려들어 허기를 채우는 순간 굵은 시가를 입에 문 미국인은 씩 웃었다.


알 카포네와 제이슨 리

알 카포네는 이태리 이민자의 자식으로서 27세에 시카고 폭력조직을 평정한 희대의 거물이었다.  제이슨 리는 아직도 출생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한국인 소년이다.  20세기 초에 금주령이 내려진 시카고에서 밀주와 매춘으로 거부가 된 일급 범죄인과 동양소년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구한 범죄인과 그 소년은 손을 잡았다.  의리와 담력이 출중했던 소년은 알 카포네의 행동대로서 명성을 날린다.


굶주림 속에서 얼어 죽을 뻔한 동양소년에게 범죄집단의 괴수는 식량과 잠자리, 그리고 여자도 제공했다.  그의 용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의 중간보스 자리도 마련해 주었다.  1929년, 반대파 범죄조직을 소탕하려는 알 카포네의 조직은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다.  붙잡아 온 반대파를 벽에 일렬로 세워놓고 기관총을 무자비하게 쏘아서 학살했다.  바로 유명한 발렌타인 학살사건이었다. 


시카고 검찰의 추적을 피해 다니던 제이슨 리는 일본으로 도망쳤다.  숨어살던 제이슨 리의 옆에는 젊은 한국인이 의리를 지키며 붙어있었다.  그는 제이슨 리가 도와주던 가난한 유학생이었다.  무식하며 글도 몰랐던 제이슨 리는 그에게 물었다.

“꼭 원숭이처럼 생긴 녀석이 누구더라? 얼굴에 털이 많이 난 자식 말이야.”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이름이 뭔데요?”

“이름은 모르겠는데, 책을 잘 쓰는 놈 말이야.  해가 어쩌구 하며 오른다고,”

“아~ 헤밍웨이 말씀이군요.”

“그 녀석 이름이 헤밍웨이인가?”

“네, 맞습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라는 책을 썼죠.”


제이슨 리는 어디서 출생했으며 어떤 경로를 통하여 시카고에 갔는지, 또한 어디서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미국범죄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시카고 검찰의 불랙리스트에 그의 이름이 올라 있을 뿐이었다.  그는 바위에서 자라던 기괴한 소나무였다.


불란서의 작가 빅톨위고가 탄생시킨 장발쟌은 기괴한 소나무의 극치다.  지금도 모든 사람들은 바위에 붙어있는 소나무를 쳐다보며 한마디씩 던진다.  평생을 경찰에게 쫓기면서 버려진 여자아이를 곱게 키우다가 시집보내고 어둠속으로 사라진 장발쟌의 이야기는 지금도 생생히 살아있다.  불온한 사상가로 찍혀서 평생을 쫓겨 다니던 작가의 삶이 장발쟌으로 소생한 것이었다.

비비 틀어져 올라간 소나무가 또 하나의 소나무를 탄생시켰다. 


어제는 쉰여섯 살 된 남자 중국교포와 갈비탕을 먹으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불법체류자로 쫓기는 그는 취직자리가 없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빵조각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와 따듯한 물을 달라고 했다.  평소에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서 마침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말하자, 그는 주춤거리며 거절했다.  돈은 내가 낼 테니 걱정 말고 뜨거운 고깃국물이나 같이 먹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가 쥐고 있던 빵을 뺏어서 그의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단속을 의식하며 그와 나는 구석진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요즈음은 어떻게 살고 계셔요?”

나는 기괴한 소나무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소한 체구에 겉늙어 뵈는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뜨거운 갈비탕 국물에 굵은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며칠 전에 교포가 길거리에서 얼어 죽었다는데, 잠은 어디서 자는 거예요?”

드디어 그가 참았던 눈물이 갈비탕 국물위로 뚝 떨어졌다.  배고픈 자의 밥그릇위로 떨어지는 눈물처럼 가슴 찡한 것은 없다.  나도 위로 눈을 돌리며 한참 있었다. 

“더럽고 치사한 나라인데,  그냥 중국으로 돌아가시죠.  아무리 고국이라고 해도 설마하니 자기의 뼈가 굵은 땅보다 더 좋겠어요?  가난한 자는 가난한 사람끼리 살아야 사람대접을 받는 법인데......”


마석가구공단에 있는 천주교신부는 사방천지를 뛰어다니며 한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고국으로 돌려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외국인은 이국땅에 와서 에이즈에 걸렸다.  뼈만 앙상한 몸으로 죽음만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소나무가 보인다. 

“참으로 기괴하다.  어떻게 저런 바위에서 소나무가 자라고 있지?”


 

추천수0
반대수1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