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에 일어나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방에 널고 보온병과 물병만 채운 채 8시 35분에 숙소를 나섰다. 어제 외돌개를 갈 때 만났던 남성마을 입구까지 걸었다. 올레 길을 표시하는 리본을 다시 보니 왠지 반갑다.
저 편으로 보이는 마을의 아침 풍경이 호주 최남단 섬 태즈마니아의 호바트를 떠올리게 한다. 낮게 드리운 구름이나 그 아래 물기를 머금은 채 말갛게 단장을 하고 서 있는 숲이며 나무, 집들의 모습이.
5번 버스를 타고 아왜낭목에서 내리니 추워서 방풍 자켓 안에 코듀로이 남방을 더 입었다. 갑자기 허기도 몰려와 가방에서 누룽지를 꺼내 먹었다. 먹었다는 말보다는 ‘흡입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제 먹다 남은 귤 3개 중 2개도 먹었다. 2차선 도로를 따라 걷는데 길을 청소하는 아저씨가 있다. 눈이 마주쳐 살짝 목례만 했다. 약천사 앞을 걷다가 리무진 버스정류장에서 따뜻한 물을 마시기 위해 가방을 내려놓고 있는데 청소하는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아마도 관광객들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에 아무데나 버려진 쓰레기만 치우는 것 같다. 따뜻한 물을 마시는데 약천사라는 절의 규모가 멀리서 봐도 범상치 않아 보여 망설이다 큰맘(?) 먹고 그리로 향했다.
관광버스가 한 대 세워져 있는 약천사 휴게소를 지나 화장실에 들렀다가 테이블이 몇 개 늘어져 있는 곳에 가방을 내렸다. 서귀포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커피나 한 잔 마셔야겠다.’ 숙소에서 한 개 집어 들어들고 나온 커피믹스를 보온병 뚜껑에 탔다. 갑자기 하늘에서 눈이 휘날린다. 손도 시렵다. 그래도 바다를 보며 마시는 커피는 포기할 수 없었다. 비스킷도 정말 달콤하다.
‘이 거대한 절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법당으로 갔다. 절 곳곳의 하귤 나무는 탐스럽게 열매를 달고 바닥에도 흐드러지게 떨어져 있다 .
청아하게 들려오는 염불 소리. 주일 미사를 거르지 않는 가톨릭인 내가 뭔가에 이끌려 운동화를 벗고 법당에 들어섰다.
스님 세 분이 사시예불을 하고 계신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늘어있는 방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간절한 기도는 종교를 가리지 않고 전부 통하는 것이리라. 그러니 이리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평온해지며 나를 잡아끄는 것이지.
기도 스님은 감기라도 걸리셨는지 간혹 코를 훌쩍이신다. 그러면서도 맑은 기도 목소리는 변함이 없다.
약천사 큰법당은 단일 법당으로는 동양에서 제일 크다.
1층 마루 바닥에서는 부처님의 좌대가 너무 높아 바로 보기가 힘들고
2층에 올라가서 참배하면 그 웅장함을 더 느낄 수 있다.
비로자나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명칭은 ‘대적광전(大寂光殿)’이 된다.
법당안 입구에 앉아 공양미를 팔던 보살님이 내게 와서는 보시하라고 한다.
“죄송한데요, 저 돈도 없구요, 천주교예요.”
좀 멋쩍었지만 사실대로 말했다.
보살님도 약간은 멋쩍은 듯 웃는다.
앉은 자리가 불편해졌다. 바다를 향해 문이 활짝 열려진 법당 안은 꽤 쌀쌀하다. 스님의 감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밖으로 나왔다. 절에서 일하는 직원인듯 한 아저씨가 지나간다.
“저기요, 지금 저 기도문이 뭐예요?”
“아, 삼귀의인 것 같은데요, 법요집 없으세요?”
“네? 네.”
“기다려 보세요.”
아저씨는 다시 법당 안으로 들어가더니 품에 무엇인가를 안고 나온다.
“가방 가지고 이리 와 보세요.”
아저씨는 내 가방이 당신 가방인 양, 법요집을 집어넣고는 단단히 잠근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네, 고맙습니다.”
졸지에 공범이 된 것 같다.
칠보각(불교용품점)에 들어갔다. 보살님이 있다. 제주도 사람이 아닌 객지 사람이다. 친절하다.
“저 기도하는 스님은 누구세요?”
“기도 스님이라고도 하고 부전 스님이라고도 해요. 달마도를 아주 잘 그리세요. 왜요?”
“아, 기도 소리가 너무 좋아서 스님께 싸인 받아 가려구요.”
“하하, 11시가 조금 넘으면 끝날 테니까 기다려 봐요. 혹시 싸인 못 받아도 말씀 전할게요.”
보살님은 이런저런 불교 이야기와 함께 달력과 불자용 작은 수첩도 선물로 주었다.
법당 내부의 마루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는 25m.
외부에서 볼 때는 3층이지만 내부의 둘레는 4층 구조로 되어 있다.
다시 법당으로 오니 입구에 있는 보시 보살님이 2층에 가서 8만불을 구경하라
한다.
‘2층이 있었구나. 잠깐 둘러보고 갔으면 못 보았을 것들.’
2층으로 올라가니 작은 부처님들이 빙 둘러져 빽빽히 놓여져 있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신기했다. 3층까지 둘러보고 다시 1층으로 오니 보살님이 8만불에
이름 새기라는데 10만원이라고 한 것 같다. 신용카드도 가능하다고.
“저는 가난해서 그런 거 못하구요, 제가 자발적으로 불전함에 돈 넣을게요.”
가난한 여행객의 지갑에서 5,000원이 나왔다.
8만불보살은 큰법당 2층 회랑에 모셔져 있다.
여기에 모셔진 부처님은 많은 불자들이 동참하여 원불로 모신 부처님이다.
3층에는 4개의 윤장대가 있으며, 여기에 많은 불자들의 인등을 밝히고 있다.
예불은 끝나지를 않는다. 보시 보살님이 나더러 스님들 뒤에 앉으라고 한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불교회관에 다닌 적이 있어 아직도 반야심경이나
찬불가 몇 개를 부를 수 있다.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같은 불교를 믿어서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오면 어느 집에 모여 다함께 연꽃잎 모양의 종이로
연등을 만들고, 연등 거리 행진에 참여한 적도 있다. 또 자녀가 많은 우리
외할머니는 그 만큼 걱정거리도 많으셨는지 항상 ‘나무관세음보살’을
읊조리셨다.
스님들 뒤에 앉아 나도 아는 구절이 나오면 입만 벙긋하며 따라했다.
드디어 예불이 끝났다. 보시 보살님이 기도 스님한테 큰 소리로 내가 싸인
받으려고 기다린다고 말한다.
‘아, 창피하게... 작게 말씀하시지.’
스님들은 법당 구석 작은 방에 들어갔다 나오셨다.
“스님이 기도 스님이세요?”
“네.”
“싸인해 주세요.”
“왜요?”
“기도 소리가 너무 좋아서요.”
“하하하”
스님 웃음 소리가 호탕하다.
“스님은 고향이 어디세요?”
“태어난지가 하도 오래 되어서 생각이 안 나네... .”
“아이구, 하여튼 기도하시는 분들의 말장난은... .”
나도 농을 했다. 성당 신부님들의 말발도 보통을 넘기 때문이다.
스님은 내 수첩 앞 장에 달마도를 그리셨다. 달마도는 스님의 자화상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스님 성함은 뭐예요?”
스님이 달마도 밑에 이름을 쓰셨다.
스님이 칠보각에 가신다. 나는 괜히 따라가다 칠보각 옆 식수대에서 물병을
채웠다. 스님이 나오시나 안 나오시나 기웃거리다 안에 앉아 계신 것을
확인하고 들어가서 휴대전화기로 스님 사진을 찍었다. 사실 좀 멋쩍었다.
다시 길나서기는 아쉬워 큰법당 앞을 어슬렁거리다 한 개 가지고 있던 볼펜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스님께 돌려 받았는데 어디 흘렸나 본데 안 보인다.
‘아, 볼펜 없으면 안 되는데.’
스님이 칠보각에서 나와 저리 가고 계시는 것을 보고는 뒤쫓아갔다.
“스님, 기도 스님! 기도 스님!”
“왜?”
“제 볼펜이 없어졌어요.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스님 것 하나 주세요.”
“왜 없어, 아까 돌려줬는데...”
“모르겠어요.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하나 사, 저기서...”
“스님이 선물로 하나 사 주세요.”
그렇게 스님은 발길을 돌리셔서 칠보각으로 앞장 서셨다.
나도 쫄래쫄래 뒤따라갔다.
“하나 골라봐.”
나는 염치없이 나지막히 말했다.
“연꽃, 연꽃요.”
진심 뻘쭘했다. 스님께 삥을 뜯다니. 한편 기분은 좋았다. 스님께 선물(?)
받은 새 볼펜이라. 무엇인가 좋은 물건이 생기면 스님께 택배로 보내드리리라
마음 먹으며 절을 나섰다.
선궷내로 들어서자 눈보라가 매섭게 휘날린다. 뒤에서 불어와서 다행이다.
앞에서 불어왔다면 눈을 뜨지도, 걷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 하나, 고어텍스
자켓과 모자의 소중함을 알겠다. 이런 날씨에도 몸이 젖지 않아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계곡이고 해변이고 제주 특유의 현무암석이라 물기가 있어도
미끄럽지가 않아 다행이었다.
10분 정도 그러다 젖은 배낭만이 눈보라가 내렸던 것을 말해 주고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반짝인다.
숲이 물기를 머금은 채 빛을 내고 있다.
대포포구에 잠시 앉았다. 햇살은 좋은데 바람이 무척 세다. 보온병이 바람에
넘어져 해안가로 떨어질까 염려될 정도였다.
대포감귤농원 앞, 무인판매라고 씌어있고 한 바구니에 2000원이라고 되어 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네에!”
안에서 반가워하며 아주머니가 나온다.
“저 천원어치만 사려구요, 돈이 없어서요.”
“네에... .”
실망한 눈치다.
“아주머니, 약천사 달력 필요 있으세요?”
숙소를 이동하며 지내는 걷기 여행에 달력은 조금 무리수이다. 나는 손에 들고
걸었던 약천사 달력을 드렸다. 귤이 천 원어치 치고는 좀 많다.
“귤이 너무 많아요.”
“괜찮아요, 드세요.”
“고맙습니다.”
또 가방에서 법문집도 꺼내어 드렸다. 서울로 갖고 가서 쭉 한 번 훑어보고
싶었지만 남은 일정이 4박 5일인데 그 때까지 함께 하고 서울까지 가기엔 여행이
고달플 것 같았다.
귤이 참 맛있다. 화약약품 처리를 하지 않아 겉은 볼품 없지만 그 맛은
일품이다. 나도 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겉모습은 그저 그래도 껍질을 까면
예쁜 색깔에 달콤한 맛을 지닌, 여러 모로 꼭 필요한 사람.
제주 땅에 있어도 보험이니 대출, 할인판매 같은 광고나 스팸문자를 받는 것은
육지나 다름없다. 지금 나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데 이런 문자가 오면
‘아, 내가 한국에 있지.’ 그 때서야 느낀다.
대포해안 주상절리대는 천연기념물이자 최고의 비경이란다. 나는 입장료
(2천원)가 있고 들어가기도 귀찮고, 이미 많은 시간을 약천사에서 보낸터라,
어제처럼 해질녁까지 걷고 싶지 않아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대포연대를 지나 한적한 해안가 햇살 아래 자리를 잡고 또 귤을 먹었다.
비록 그 유명한 대포해안 주상절리대는 못보았지만 내가 자리 잡고 앉은 이
해안이 천국같았다.
왼쪽으로 바다를 끼고 씨에스 호텔 정원을 걷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씨에스호텔은 특이하게 제주도 전통 가옥을 공들여 고급 호텔로 만든 것 같다. 이런 좋은 호텔 정원을 올레꾼에게 내놓다니. 촌놈이 서울구경 하듯 두리번거리다 올레 표시를 따라 호텔 밖으로 나오니 이런, 주원앓이의 주역, 드라마 '시크릿 가든’ 촬영지였다.
그나저나 나는 배가 고팠다. 많이 고팠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않았는데 벌써 오후 2시가 넘었다. 오늘 코스에서는 중문 해녀의 집 전복죽이 맛있다고 본 것 같은데 그 집이 나오지 않는다.
‘지나쳤나. 아, 배고파.’
아무 식당이라도 나오길 바라며 걷는데 ‘중문 어촌계 해녀의 집’ 이정표가 보인다.
‘아, 살았다.’
배가 고프고 추우니, 이정표를 본 후 식당까지 가는 길도 참 멀게만 느껴진다.
전복 내장을 넣고 끓여 고소한 전복죽(1만원). 두텁게 썰은 전복이 들어있다.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어 창밖으로 바로 바다가 보였다.
내 따귀와 온 몸을 때리던 바람이 중문해수욕장에 오니 잠잠해졌다. 바람만 그쳐도 살 것 같다. 아까는 무릎이 아릴 정도였으니.
세계의 여행 전문 작가들이 뽑은 ‘아시아의 베스트 10 해수욕장’ 중 하나인 중문 해수욕장은 보기에 아름다울지 몰라도 걷기에 썩 좋은 해수욕장은 아니다. 다리도 아픈데 모래 속에 발이 푹푹 빠지며 옆으로 밀리는데 걷기가 영 불편하다. 한 걸음 한걸음이 힘들었다.
하얏트 호텔 산책로로 진입하는데 나무 계단에 새가 앉아 있다. 나를 보고 도망가지도 않는다. 반갑다. 어째 인기 폭발 올레에 오늘은 사람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이름 모를 새라도 가까이서 보니 반가웠다.
갯깍 주상절리대. 주상절리는 암석이 규칙적으로 깎인 기둥형태를 말한다.
갯깍 주상절리대는 신비롭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단박에 보여준다. 그 모습에 반해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천장에서 금방이라도 바위 덩어리들이 우르르 떨어질 것만 같다.
‘이러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지.’
동굴 반대편으로 나와 보니 푯말이 하나 서 있다.
“낙석 위험이 있으니 동굴 안으로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이봐, 이봐 죽을 뻔 했잖아.’
혼자서도 잘하는 ‘짜릿한 여행’의 묘미.
올레를 걷다 보면 간혹 무덤을 만나게 된다.
무덤은 특이하게 돌담으로 둘러쌓여 있다.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이 돌담을 ‘산담’이라고 한다.
산담은 조상의 묘가 불에 태워지거나 방목 중인 소와 말로부터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울타리이다. 또한 제주 사람들은 산담이 죽은 자, 곧 영혼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산담이다.
예래동을 지나는데 촌부들이 무슨 채소를 부지런히 수확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채소가 잘려진 밭을 보니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있잖아요, 이 채소 이름이 뭐예요?”
“유채, 유채나물요. 우리가 서울 사람들 먹여 살려요.”
“이거 맛봐도 돼요?”
“네.”
구석에서 조금 잘라 맛을 보니 어렸을 때 소도시 변두리에서 배추나 무 꽃대를 껍질 벗겨 먹은 그 맛과 비슷했다.
제주도에서는 유채를 겨울초라고도 한다.
유채나물은 유채꽃이 피기 전에 먹어야 맛이
좋은데, 씹을수록 달콤쌉싸름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하예 해안가 유채꽃, 17시 35분.
저녁이 되면 바닷바람은 더욱 거세지는데
유채꽃은 흔들릴지언정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평포구. 오른쪽으로 박수절벽이 보인다.
대평마을 명물식당 출입문.
이틀이나 배낭을 메고 걸은 탓에 어깨도 아프고 피곤했다.
바람이 내가 느끼는 제주도 분위기와 내 감정과 내 기분을 마음대로 하는 것 같다. 춥고 배고프고 힘드니 어제보다 감동이 덜 하다. 평생을 이 바람과 함께 억척스럽게 살아냈을 제주 사람들은 그래도 객지 사람들이 뭔가 물으면 한없이 친절하다. 그런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2011년 3월 3일 여행비 지출 내역 :
남성마을→ 월평마을(아왜낭목) 버스비: 950원(T머니 교통카드)
귤: 1,000원
전복죽: 10,000원
대평슈퍼: 포테이토칩, 카스텔라: 1,900원
대평마을→ 숙소 차비: 950원
서귀포 농협하나로마트 : 5,300원
총 20,1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