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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을 가다! - 하행편

박교빈 |2011.03.17 00:38
조회 2,117 |추천 7

한라산 북쪽코스인 관음사 탐방로는 성판악 탐방로와 더불어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 을 오를 수 있는 8.7㎞의 탐방로이며, 편도 5시간 정도 소요된다. 계곡이 깊고 산세가 웅장하며, 해발 고도 차이도 커 한라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전문 산악인들은 물론, 성판악 코스 탐방객들도 하산 할 때 주로 이 코스를 이용한다.

 

 

하산 중, 볕이 좋은 데크에서 남은 김밥을 먹다가 김밥 한 개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동물들이 발견했으면 좋겠다.'

김밥을 주워 데크 기둥 위에 올려 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까마귀 세 마리가 내 주위로 날아든다.

그러고는 데크 기둥 하나씩 자리를 잡고 일렬로 앉는다

“엄마아~!”

시커먼 새들이 일렬로 앉은 모습이란. 게다가 그들은 닭마귀라고 해야 할 것처럼 크다.

시커멓게 생긴, 큰 동물이 일렬로 앉아 있는 모습! 내가 놀라 고개를 돌린 사이 한 놈이 잽싸게 김밥을 물어간다.

 

까마귀들이 "아악아악" 해댄다. 저희들끼리 말을 주고 받는 듯 하다(우리는 까마귀가

'까악까악' 운다고 배웠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아악아악'하고 우는 것 같다.)

 

'폭설로 먹을 것이 전혀 없을 테지. 그러니 사람을 가까이 않는 까마귀가 내 근처까지 와서 김밥을 먹었겠지.'

 

                                      

진짜 까맣다, 하행길에 만난 까마귀.

 

 

 

 

하산을 하며 멋진 풍경을 보니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세상아, 가끔은 나를 버려줘. 그래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너의 또다른 면을 보기 위해 이렇게 혼자서라도 떠날 작정을 하지.'

 

 

 

첫 산행이 한라산인 이 아이젠

 

 

 

 

   

실제 등산로는 이 눈폭탄 아래 저기 데크인데...

 

 

거대한 나무들이 눈폭탄 속에 푹 파묻혀 있다.

 

 

 

 

 

                                            

나무 꼭지에 앉아 있는 까마귀 세 마리

  

배가 고파 어제 먹다 남겨, 얼마 남지 않은 카스텔라를 꺼냈다. 까마귀가 멀리서 '아악아악' 울어대니 신경이 쓰인다. 저들도 나처럼 배가 고프겠지.

한편으로는 까마귀떼가 내게 날아들어 손에 있는 이 빵을 잽싸게 물어가지는 않을까,

은근히 무서웠다.

빵은 못줘도 카스텔라에 붙은 종이를 떼어 주고 싶었다. 어렸을 적에 이 종이를 먹은 적이 있는데 그 맛은 좋지도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았던 기억이 있다.

 

"아악아악, 일로 와 먹을 것 줄게."

그들이 내 말을 알아듣기를 바라며 소리쳤다. 누가 보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까마귀 울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계곡 바람에 카스텔라 종이를 날렸다.

내 뒤에서 오던 아저씨가 그 모습을 보고 말한다.

“쓰레기를 그렇게 버리면 어떡해요?”

“까마귀들 먹으라고요.”

“그러면 야생성이 떨어져요.”

“지금 폭설이 내려 먹을 게 전혀 없잖아요.”

 아저씨는 아무말 없이 나를 앞질러 간다.

그런데 그 때 거짓말 같이 까마귀 무리가 나타났다.

저 아래 계곡 바위에 떨어진 카스텔라 종이를 가운데 두고 열댓마리가 신경전을 벌이는 듯 하다. 내가 쳐다보니 모두 가만히 있는다.

내가 잠깐 고개를 돌리자 한 녀석이 잽싸게 물어 날고 나머지 무리가 '아악아악' 하면서 뒤따른다. 신기하다.

 

 

 

성판악 탐방로와는 다르게 길이 험하다. 사람들이 자꾸 자빠진다.

일자형 아이젠은 무용지물처럼 보였다. 체인형 아이젠도 조심조심.


엄청 목마르다. 물이 없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도 먹어 봤다. 달게 먹을 수 있는 그런 맛은 아니다. 숙소에서 500ml를 담아오고 산에 가면 물을 구할 수 있겠거니 했는데 폭설로 물은 구경도 못했고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한 병 산 것은 이미 바닥이 났다.

 

 

 

 

  용진각. 까마귀들이 '사람들이 던져주는 음식 차지하기 대회'를 열고 있었다.

 

이정표에 삼각봉대피소가 있다. 저기 가면 물을 사서 마실 수 있겠지.

 

이런, 아니다. 무인 대피소이다. 무식하면 고생한다.

 

 

등산로는 저 아래인데,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삼각봉 대피소. 오후 2시45분.

평상시 내 키면 저 대피소 지붕은 보이지도 않았을 터이다.

눈 덕분에 호강했다.

  

 

 

삼각봉 대피소애서 해바라기하며 삼각봉 바라보기  

 

 

성판악 탐방로부터 자주 만나며 약간의 말을 주고 받았던 ‘남자 무리’ 중 한 명의 가방에 양쪽으로 물병이 꽂혀 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염치불구하고 말했다.

 

“저 죄송한데요 제게 물 한 병 파시겠어요?”

총각은 그냥 마시라 한다.

하지만 어찌 이 힘든 산행에 짊어져 올라오고 내려가는 길에 그냥 받아 마실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누룽지 한 봉지와 비스킷을 답례로 주었다.    


 


나의 까마귀 일화 마지막.

관음사에 거의 다 내려올 때 쯤이었다.

배가 고픈데 먹을 게 없구나, 하며 시름에 찬 채 걷는데 서울에서 가방에 넣어온, 먹다 남긴 초코바가 생각났다.

그것을 가방에서 꺼냈는데 까마귀 울음 소리가 또 들린다.

“이건 안 돼. 내거야. 나도 양이 적어.”

한 입 먹었는데 까마귀가 마음에 걸린다.

땅콩이 든 초코바를 한 입 물어 손으로 집어 주변 나무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것만 먹어. 나도 먹을 게 없어.”

초코바 조각을 데크 기둥 위에 올려 두고 몇 발자국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귀신처럼 초코바 제일 가까운 나뭇가지에 작은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아 있다.

 

“먹어.”

내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모르는 척 하자 얼른 낚아 채 날아간다.

   

 

오후 4시25분, 현 위치.

 

 

 

관음사 탐방로를 다 내려와 뭔지 모를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았다.

관음사 탐방로 입구, 오후 5시 10분.

 

길을 건너 편의점이 있고 택시가 대여섯대 주차 되어 있다.

택시 기사들이 모여 있다가 나를 보고 한 기사가 슬렁슬렁 걸어온다.

숙소 주인이 말해주길, 관음사 앞은 주말에만 버스가 다니고 평일에는 50분을 걸어야 버스를 탈 수 있으며 5천원을 내면 택시가 버스 타는 데까지 태워다 준다고 했는데

택시 기사는 그런 것 없다며 서귀포시까지 택시를 타라 한다.

그 모양이 순수해 보이지 않아 나는 택시는 단념하고 편의점에서 우유를 한 개 사서

마시고 걷기 시작했다.

'흥, 올레 길도 걸을려고 왔는데 이걸 못 걸어.'

 

다리가 아프고 엄청 추웠다.

'한라산 등반도 모자라 이렇게 걷다니!'

 

이제껏 제주의 좋은 인상은 그 택시 기사로 하여금 물거품이 되었다.

인생은 부메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은 씨앗을 뿌리면 그것이 되돌아오고 나쁜 씨앗을 뿌리면 그 씨앗이 열매가

되어 내게 돌아올 것이다.

1시간 여를 걸어 제주의료원 앞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아침에 버스를 탔던 ‘구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로 왔다. 

춥고 힘들고 배가 고파 식당부터 찾았다. 약간 허름해보이지만 현지 사람들로 북적이는 동완식당에 들어갔다.

벽면을 보니 음식 값이 대부분 5천원이었다.

 

“저 따뜻하고 맛있는 게 뭐예요?”

“옥돔 미역국 드세요.”

“네, 그걸로 주세요.”

 

 

 

 옥돔 미역국

 

음식을 기다리는데 내가 추워하니까 가스 히터를 켜준다.

몸보다 마음이 더 따뜻해졌다.

생미역과 옥돔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있는 국은 옥돔은 옥돔대로, 미역도 맛있고 시원했음은 말하지 않는다고 누가 모를까.

옆 테이블에 앉은 중년의 제주도 아저씨가 말을 건넨다. 아저씨는 젊었을 때에 서울에 오랫동안 살았다고 한다.

“제주도가 살기 좋으세요?”

“아! 좋지요.”

“저도 살고 싶은데 먹고 살게 없을 거 같아요.”

“제주도는 살기는 좋은데 일자리가 없으니 오려면 자기가 먹고 살 것을 가지고 와야

해요.”

그래서 서울 사람들이 제주도로 이민오면 카페며 민박집을 하나 보다.

“물찬 오름가보셨어요? 제주도에 오면 이 오름을 꼭 가봐야 해요. 해가 뜰 때, 구름이 낀 날, 또 새벽에 가면 그 오름의 모습이 정말 다양하고 장관이예요.”

 

식당 주인 아주머니까지 합세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8시가 다 되었다. 나는 서울에서 밤 12시 넘어서도 대중교통이 있는 상황에 익숙해져 느긋한데 오히려 옆에서들 버스 끊긴다고 서두른다.

캐리어를 가지러 숙소로 가니 안내실 앞에 귤이 한아름 있다. 파는 거면 좀 사려고 했는데 그냥 먹으라 한다. ‘귤귀신’이 주머니에 몇 개 담아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허겁지겁 먹었다.

버스 앞자리에 앉으면 기사님들이 먼저 '여행 중이냐?'며 말을 건네거나 내가 뭔가를 여쭈어보기도 한다. 한라산 이야기가 나왔을 때 기사님들 말씀은 항상 이것이다.

“우리는 백록담 안 가요.”

나는 이 말이 어찌나 우스운지 모르겠다.

꼭 서울 사람들이 연인 사이 아니면 남산 갈 일 없다는 것과 같다.

또 어떤 버스 기사님은 그랬다.

굉장히 자랑스러워 하며,   “우리는 한라산 안 가요. 나는 유달산에서 설악산까지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익숙한 환경보다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고 싶어 하는

본능을 지녔나 보다. 

 

 

2011년 3월 4일 한라산 여행비 지출 내역

 

김밥 3000원

성판악 버스비 1500원

아이젠 35,000원

진달래밭 대피소 생수 700원

우유 750원

관음사 →서귀포 버스비 2500원

옥돔 미역국 6000원

서귀포 → 산방산 게스트 하우스 차비 1500원

게스트 하우스 : 36000원(2일치) 

총 86,9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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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무모한 산행이었다. 등산 장비도 식수도 그렇다. 눈꽃산행에 면스판 바지 두 장을 겹쳐입고 면장갑을 끼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제주에서 첫 날 만난 버스 기사님은 기능성 등산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한라산 등반은 죽을거라고 말렸다.

그런데 숙소 같은 방 여자들이, ‘청바지 입고 올라 간다’, ‘운동화만 신고도 올라간다’, ‘입구에 가면 아이젠을 판다’. 하는 말들을 하여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 질러 보자.’

하는 심산으로 갔다.

 

 

등산 중 “혼자 왔어요?”라는 말로 자주 들었다.

“대단하시네.”

할 때마다 마음 속으로

‘뭐가 대단해요? 여럿이 오면 누가 업고 올라가 주나요? 다 똑같이 제 발로 올라가는

것을...’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말 뜻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다시 서울에 와서 처음 본 '한라산 국립공원 홈페이지'의 '실시간 탐방로 정보' 란의 ‘성판악 탐방로’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하산 시 다리골절이나 체력소모로 인한 탈진 등의 안전사고가 발생될 수 있으므로 그룹 탐방을 하는 것이 좋다.]

 

나는 진정 무식했다. 그래서 용감했고 한라산에 오를 수 있었다.

 

추천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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