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톡을 즐겨보는 직딩 29남이에요.
맨날 인터넷 뒤적뒤적 거리다 혼자보기 아까운 글이라서 남겨요!
[출처] (울지마톤즈)故이태석신부님 울지마톤즈 감동적이야기|작성자 피터
설특집으로 KBC1에서 방송된 故이태석신부님의 일대기를 다큐식으로만든 영화
울지마톤즈가 방영되어서 보았어요.
종교적인것을 떠나 이태석신부님의 희생과 헌신적인이야기가 너무너무 감동적이였어요.
부산의 가난한 집 10남매의 아홉번째로 태어나
의과대에 진학해서 신부가 되기로 결정 신부가 된후에
우리나라에도 가난하고 돌볼사람들이 많다는 주의의 이야기를 뒤로한채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로 그는 길을 떠난다.
마을 사람들은 톤즈의 아버지였던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딩카족이다.
수단은 내전으로 남북이 갈라져 내전이있는곳
딩카족은 그들의 전제산인 소를 지키기위해 총을들고 싸웠다.
딩카족의 가장큰 수치는 눈물이라고 생각하는 딩카족
그들이 눈물을 흘리는이유는 그들의 아버지 같은 졸리신부(故이태석신부님)때문이다.
의사로,건축가로,음악선생님,수학선생님,여러가지로 톤즈의 아버지로
그들의 한가지한가지 모든 일상의 모든것을 그의 손이 안거친것이 없을정도로
그는 톤즈의 아버지 쫄리신부로 인생을 살았다.
그는 의료활동을 통해 수단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그의 소문을 듣고 몇날몇일을 걸어서 치료를 받으러 온사람들도있고,
밤에도 문을 치료를 받으러 오는사람들을 하루종일 진료에 피곤할텐데
웃는얼굴로 그들을 진료해주고,,
내가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라고 그는 이야기 했지만 실로 그가 톤즈에서 일궈낸 성과는 대단했다.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운 이태석 신부는 누구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아프리카의 가장 가난한 땅 톤즈로 향하게 된 것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삶이 독립된 혼자만의 삶이 아닌 톤즈 사람들의 삶이기도 했다.
한센인들에게 그들만의 마을을 만들어 살게해주고,
신발이 없어서 상처나고 그상처가 곪아서 썩어가는것을 보고
한사람한사람의 발모양을 그려서 그들만의 신발을 만들어주고
백신이 열에 약해서 상해버리는것을 막기위해
태양열 집열판을 만들어 전기를 생산해서
냉장고에 백신을 보관하고,
그는 또다른생각을 했다.
하나님이라면 톤즈사람들에게 성당을 먼저만들어주셨을까?학교를 먼저 만들어주셨을까?
학교를 먼저만들어주셨을꺼야 라는생각에
폭격으로 페허가된 학교를 벽돌한장한장을 만들어 학교를 제건했다.
이태석 신부는 직접 수학과 음악을 가르쳤고,
케냐에서 교사 자격증이 있는 교사들을 선발해 데려와 학생들을 가르쳤다.
보통다른학교에서는 선생이 부족해서 선생님이있대만수업을하는데
돈보스코 초. 중 고등학교는 항상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고 있고,
고등학교의 수업은 3시까지 알찬 수업으로 짜여져 있어,많은학생들이 찾아오곤했다.
학교 근처에는 기숙사도 만들어서 집이 먼 아이들이 숙식을 해결하며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는 부족한 전기양에도 항상 불을 켜놓라는곳은 아이들이 공부할수있게
기숙사에는 항상불을 켜놓게 했다.
오랜 전쟁으로 몸과 마음이 부서진 톤즈의 아이들은 이태석 신부의 꿈이 담긴 학교에서
드디어 자신들의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고 사랑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총대신 악기를 들게 해서
브라스 밴드를 결성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리치고,
황페해진 아이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달래주었다.
악기를 다루기전에 착한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쳤고.
남부수단에서는 유명한 밴드가 되어서,
각종 큰행사에는 초대를 받을정도가 되었다.
그가 한국으로 떠나기전에 아이들에게 해준것은 학생증을 만들어주고떠났다고한다.
이장면에서 너무너무 짠한 감동이 밀려왔어요
톤즈의 아버지로 그가 따난것을 너무너무 슬퍼하고 우는 톤즈 주민들...
나이먹은 자기를 델고가지 왜하필이면 쫄리신부냐고 모든사람들이 이렇게 말을 했어요.
혼자TV를 보면서 눈물 닦어내느라 정신이없었어요..
한국으로 휴가를 받아 귀국 지인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받게되고.
대장암 말기를 선고받고,그는 톤즈로 돌아가지못했어요.
대장암말기를 선고받고 그가한말은 톤즈에 돌아가야한다고,
어런저런 남겨놓고온것들이 많다고,이야기했다고한다.
말기암선고를 받고도,기부공연에서 아무한테도 이야기를 않하고,
모금공연에 참석한장면이에요..
이때도 너무너무 짠하더라고요.
그는 수십번의 항암치료를 받아가면서도 웃음을 잃지않고,
항상웃음을 지었어요.
어머니가 면회를 올때면 아픔을 참아가며, 어머니를 대하고,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되어 증세는 점차 나빠졌으며
결국 2010년 1월 14일 새벽 5시 4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그의 짧은 삶에서 너무너무 많은것을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종교적인것을 떠나 꼭한번은 볼만한 영화에요.. 정말 어머니랑 제 마누라랑 보면 정말 다른영화 보면서 아무리 슬퍼도 눈물을 안흘리는데.... 이 영화만큼은 무의식적으로 눈물이 나오더군요......ㅜㅜ 영상 시작하고 10분부터 저희 어머니와 마누라는 끝날때까지 눈물을 흘렸어요ㅜㅜ... 저는 집안이 무교이고 , 신앙심을 안믿지만... 정말 종교적인걸 떠나서 故이태석신부님에 존경심이 드네요..... 월래 영상내용은 한국에서 진단을 받고 대장암말기를 받으셨다지만 원래 사실은 그전에 신부님께서 알고있엇다네요.... 결국 몸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는 바람에 어쩔수없이 귀국한거고... 지금 당장 치료를 받아도 모자랄판에..... 끝까지 다시 돌아가야된다... 아직 할일이 많이 남아있다 하시면서... 마지막 영상에... 항생재치료때문에.. 머리카락을 다 잘르시고... 웃는모습이 아직도 기억이나네요... 이때 정말 폭풍 눈물을 흘렸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죽음이 점점 다가오고 몸이 점점 죽어가고 있엇지만...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봉사를 하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 故이태석신부님은 죽음 뒤에도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톤즈 사람들 속에 "쫄리 신부님"으로 살아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 열악한 수단의 톤즈에서 그들과 함께 하신 쫄리 신부님의 그 사랑법을 배워야겠습니다..... 故이태석신부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