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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미학'을 보여준 채플린의 영화

이석영 |2011.04.15 02:21
조회 47 |추천 0
  모던 타임즈 - Modern Times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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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신문 선정 영화 베스트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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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코미디의 원형이 된 '현대인들의 서글픈 자화상 모던 타임즈'
채플린의 마지막 무성영화 '모던 타임즈'는 AFI로부터 그들의 100년사/100개 영화와 100년사/100개 희극리스트에 뽑혔으며, 영화평론가 Pauline Kael은 이 영화를 “채플린의 가장 행복하고 쾌활한 영화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다른 영화 감독들은 사실상 무성영화를 그만두었던 그 시절, 채플린은 직업에 좌절하고 포악한 사장에 지친 공장 근로자를 코믹하게 표현하며 재미있고 통쾌한 걸작을 만들었다. 자본과 힘의 논리에 구속당하고, 기계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해버린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서글픈 자화상’을 풍자한 블랙 코미디 '모던 타임즈'는 발성 영화를 싫어하는 채플린이 무국적어로 ‘티티나’를 불러 처음으로 목소리를 들려준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사람이 톱니를 조이는 기계와 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것과 여유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기계적인 점심 시간, 선반에서 롤러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 등이다.

                                                                                               (Warner Home Video: www.whv.co.kr)

 

 

 

 

 

 

 

고전적인 흑백의 영상에서 간결하면서도 당시 사회의 문제를 풍자한 듯한 이 영화는 1930년대 산업의 급격한 발전 이후 미국 경제공황 당시의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20년대는 전세계 특히 미국의 거대한 경제 팽창기였다. 20세기까지 미국경제는 대개 유럽과 독립되어 있었다. 1차 대전 이후 미국은 전례없이 유럽열강들과 동맹을 맺게 되었고 미국 상품에 대한 수요가 유럽에서 크게 증가했다. 그 결과 미국은 농업뿐만이 아니라 제조업과 금융업에 있어서도 세계의 지도국이 되었다. 기업과 개인들 모두 전례 없이 투자를 증대시킴에 따라 미국 주식시장에서 회사주식의 가치는 급격히 증가했으며 실업률은 0% 수준에 육박했다.

 

이후 1928년 불경기가 시작되었을 때 많은 미국인들은 이를 단기적인 현상이라고 판단하였다. 주가 현황판의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한 1929년 10월 24일 그 거품은 마침내 터지고 말았다. 월 스트리트에서는 하루 아침에 무일푼이 된 많은 투자자들이 마천루에서 뛰어내려 죽음에 이르렀다. 그 결과 3000만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직장을 잃었으며 그 중 반수가 미국인들이었다. 대공황은 10년 이상 계속되었으며 전세대의 삶과 인생관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서 기계의 일부처럼 일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찰리 채플린 특유의 눈물과 웃음, 유머와 페이소스, 사회적 풍자와 비판으로 담아낸 영화가 '모던 타임즈'이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은 모두 기계식으로 변해서 옛날에 비해 훨씬 많은 물건을 빨리 생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람마저 기계로 변해 가는 것 같아. 게다가 아무리 공장 기술자가 열심히 일해도 공장 주인만 부자가 될 뿐 공장 기술자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잖아.”


“히틀러가 독일의 영웅일는지는 모르지만 히틀러는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살인마야. 전쟁은 어떤 이유로든 일어나서는 안 돼.”

 

- 찰리 채플린 -

 

 

 

     

 

 

찰리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자신의 영화를 보고 

한바탕 웃으면서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길 바랬다 

그리고 희망과 용기를 얻어 영화관을 나오길 바랬다

 

 

 

 

 


 

 

찰리 채플린(Chaplin, Charles Spencer, 1889~1977)은 영국 런던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뮤직홀의 단골 가수였고 어머니는 유랑 극단 배우였다. 어렸을 때 그는 날마다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해야 했다. 어머니 한나가 후두염으로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어 어머니 대신 처음으로 무대에 섰을 때는 찰리의 나이 다섯 살이었다.

 

찰리의 걸음걸이는 주위의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몸짓을 관찰하면서 만들어졌다. 걸음걸이가 자연스럽게 그의 것이 될 때까지 날마다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것으로 귀한 것을 만들듯 그는 고통 속에서 소망을 만드는 연기를 시작한 것이다.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채플린은 전쟁에 반대하고, 권력에 맞섰으며, 독재자를 풍자했다.

 

영화 속의 그의 캐릭터는 초라하고, 가난하고, 약해보이지만 희망이 사라지고 불행해져도 언제나 다시 우뚝 일어서보인다. 그것은 채플린의 부단한 연습과 노력, 그리고 가난을 극복하고 일어선 배경과 닿아 있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인류 역사상 가장 황폐하고 불행한 시기에 그의 연기는 많은 사람에게 건강한 기쁨과 소망을 주었다.

 

수많은 예술가들을 비롯해 영국의 처칠, 중국의 저우언라이, 소련의 흐루시초프와 같은 정치인에서부터 과학자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채플린을 뜨겁게 지지하면서 그에게 머리 숙였다.

 

그의 연기는 한번 웃고말 재치가 아니었다. 슬픈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정의를 향한 갈망을 담고 있었다.  

 

['05 봄호 역사산책 - '찰리 채플린'/최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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