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백교
조선 후기 철종(哲宗) 때 최제우(崔濟愚)가 유(儒) ·불(佛) ·선(仙) 삼도(三道)의 교리를 종합
·절충하여 동학(東學)을 창시하였는데, 이 동학에서 많은 유사종교가 파생되었다. 백도교는
그 중의 하나인데, 나중에 백도교가 다시 분파하여 인천교(人天敎)와 백백교로 갈라졌다.
1923년 차병간(車秉幹)이 경기도 가평(加平)에서 퇴폐한 민심을 교화하여 광명세계를 실현
한다면서 포교(布敎)를 시작하였는데, 처음부터 뚜렷한 교의(敎義)나 깊은 사상적 근거를
갖지 못한 사이비종교로서 타락과 부패의 길을 걸었다.
더구나 전해룡(全海龍)이 교주(敎主)가 되면서 백백교는 하나의 범죄단체화하여, 우매한
민중을 현혹하여 그들의 재물을 편취하고 여신도(女信徒)들을 속여 간음을 자행하였다.
전해룡은 일종의 변태성욕자로서 많은 여신도들이 보는 가운데서 정사(情事)를 벌였으며,
이를 신(神)의 행사라고 하였다. 이 같은 범죄행위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자, 그것을 은폐
하기 위하여 비밀을 누설할 염려가 있는 자들을 심산유곡(深山幽谷)으로 끌고 가서 가차
없이 죽여버렸는데, 이 일을 책임진 자를 벽력사(霹靂使)라고 하였다.
백백교에 들어가 재산은 물론, 딸까지 바친 신도가 있었는데, 그 아들이 백백교의 범죄
행위를 경찰에 고발함으로써 그들의 악행이 백일하에 드러나 당시의 사회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경찰에 쫓긴 전해룡이 자살함으로써 끝장이 났는데, 그들에게 피살된 시체만도
48구(具)가 발견되었으며, 그 밖에 시체마저도 나오지 않은 희생자는 더 많았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전해룡의 두개골은 범죄과학연구소에 범죄형 두개골의 표본으로서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