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말이다. 그러나,
어쩌면 만족이란 아주 소박하고 단출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오산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저녁을 먹고
나는 7시와 8시 사이에 며칠 동안 같은 카페에 앉아 있었다.
도로변에 쉽게 차려진 로컬카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과
거리와 가게들 위로 밤이 내려 앉는 것,
행상과 여행자들을 우두커니 지켜보곤 했다.
딱 이 시간이 정말 절실하게 카페인이 필요하기도 할 때여서
한 잔으로는 부족해
커피를 꼭 두 잔 정도 씩 마신다.
이 때면 어김없이 내 속에 깊은 곳에서 아주 만족스런 기분이 생겨났다.
마음이 행복감 같은 걸 자꾸 낳는 거다.
아마도 여주인 일 것 같은 30대 중반 정도의 여자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싱긋- 웃는다.
그녀가 가게를 만지거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친절하면서도 어딘지 자존심 같은 게 있어서
난 틀림없이 그녀가 주인일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어쩌면 그녀의 아들이거나 조카일
고등학생 정도 되는 잘생긴 청년은 아주 멀리에서
친구들과 잡담을 하다가도
손님이 오거나, 자리를 치워야하거나, 계산을 할라치면
눈썹이 휘날리도록 부지런히 뛰어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점원이라기 보다는
일찍 결혼한 여주인의 든든한 아들 정도였으면
더할나위 없이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커피나, 그 날 분위기에 따라 함부로 수첩 위에 적히는 짧은 메모나
혹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때론 낯선 사람의 카메라에 대한 다소 귀여운 경계심
사람들이 가끔 눈을 마주칠 때 웃어주는 웃음
그리고 밤에 찾아갈 클럽과 만날 친구들과의 약속
낯선 세상에 대한 흥미와 몇 가지 일상의 고민들
딱 이만큼, 내가 감히 만족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건
결국 지금 딱 이만큼이었다.
무슨 삶의 중요한 열쇠를 발견한 것도, 어떤 섭리를 깨달아버린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갑작스럽게 기도를 하게 되기도 한다.
두고두고 멈추는 일이 없을 나의 여행이 부디 오늘과 같기를.
그리고 어쩌면 11월의 나는
바로 이 기분을 위해 이곳에 와있는 것일까,
내 앞에 아직 알지 못하는 세상이 있고 뒤로는 카오산의 저녁이 익는다.
새로운 바람이 좁은 어깨를 마구 흔들어서 잠을 깨워주지
어제까지 몰랐던 사람들이 이게 살아가는 법이야, 라며 생존의 방법을 일러주기도 하지
누가 내 눈을 닦아서 더 크고 또렷하게 세상을 보게 될 때도 있지
어쩔 때 스스로의 무게를 다 견디지 못하고 휘청거릴 때마다
언제나 세상에 너 혼자 절망을 이고 가는 게 아니라고 속삭여주지
아주 깊은 밤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려고 할 때
누가 가만히 등을 만져주네
여행은 외롭지만 행복으로가는 길을 일러줄 때가 있지
Bangk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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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