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 토요일 오후 2시.
김해공항에서 나리타로 가는 JAL기에 올라타면서
짧은 여름방학동안 다녀오는 유학이
마냥 설래기만 했습니다.
1년 반 이상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고
모자란 부분은 어쩔수 없이 부모님께 손을 벌렸지만
두달동안 열심히 살 거라는 다짐을 하며 비행기에 오를땐
별 감흥이 없었죠.
성수기에, 예산도 넉넉치 않았던 지라
케나다까지 직항을 타지 못하고, 도쿄를 경유해서 가는 20시간가량의 이동시간
얼른 도착해서, 열심히 학교 다니고, 많은 경험 하고
돌아갈 땐 좀더 나은 인간이 되어있길 다짐하며
도착한 벤쿠버..
그리고 약 20일 가량이 흐른 지금
미치도록 생각나는게 있습니다.
가족... 이라는 한마디
학교를 마치고 집 문을 들어서며
다녀왔습니다~ 라고 하면, 아들아 왓냐~ 하고 맞아주시던
오빠 왔어? 라고 웃어주던
아버지, 어머니, 동생
길을 걷다 마주칠지라면
반갑게 인사를 건내던 이모님, 사촌누나들..(저희집은 외가쪽 친척들이랑 모여 살아서요 ^^:;)
어쩌다 술자리로 늦을 때면
어김없이 전화하셔서 일찍 들어오라고 역정을 내시던 부모님의 목소리도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즐기고 있으면
어김없이 배게로 날 깨워주던 동생도
이순간은 미치도록 그리워지네요..
대학 3학년이면서 아직 철이 없어
길가다 몰래 담배한대 물고, 멀리서 친척이 보이면 후다닥 숨어버리던 내 모습이 떠올라
동기들과 과제를 끝내고 술집에 앉아 우리집 너무 빡빡하다고 한탄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오늘은 어떻게 하면 집에 늦게 들어갈까 궁리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지금에 와서야 정말.. 부끄럽고 죄송스럽습니다.
며칠전에, 홈스테이 아저씨랑 술을 한잔 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일주일째 아이들을 다 데리고 휴가를 가셔서
아저씨 혼자 집에 남아 집안일을 하고, 학생들 식사를 챙겨주시는게
어지간히도 외로우셨나 봅니다.
4시간이 넘는 이야기의 요지는... 일주일이나 가족을 못 봐서 너무 힘들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와 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아저씨의 모습에서, 부모님을 발견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가족의 모습을 그리워하던 아버지..가족을 위하시던 어머니...
폭염이 쏟아지는 여름날, 힘든 몸을 이끄시고 집안에 고장난 창문을 뜯어내고 새로 다시는 모습을 보면서
땀으로 흠뻑 젖어, 물을 뒤집어 쓴 듯한 모습의 아버지의 등을 그저 바라보며, 딴짓하던 내가 떠올라서..
어머니의 너도 좀 도우라는 말에, 속으로 사람 쓰면 될 것을... 이라고 못마땅해 하며 성의없이 돕던 내 모습을 떠올라서..
참 부끄럽더군요..
내가 과연 우리 가족의 일원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I'm not your ATM. son..."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보며 낄낄거리며 웃던게 얼마 전인데
내가 저런 아들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치며
눈물이 나려 하더군요.
이젠 부모님의 머리도 하얗게 변해가고 있는데..
그 넓던 아버지의 등이 좁아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인플란트가 300만원이나 한다며
시린 이빨은 그냥 두시겠다며, 나이가 들면 다 그런거라면서
한사코 거부하시면서
제 모자란 유학비용.. 400만원은 흔쾌히 매꿔 주시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그래도 내가 300은 벌었잖아..'라며 뿌듯해 하던 모습이 쓰라리더군요
생전 보내지 않던 매일을
여기 와서 있는 22일 가량의 시간동안,
부모님께 20통이나 보냈습니다.
매일을 받을 때마다 느껴지는 가족의 따듯함은
큰 힘이 되더라구요..
한국에 돌아가면
재일 먼저, 부모님께 23년동안 밀렸던
사랑한다는 말... 한번에 몰아서라도 해 드려야 겠습니다.
남은 학기 열심히 알바를 한다면.. 아버지 인플란트 비용은 만들수 있겠지요..
후... 지갑속에 가족 사진을 넣어오지 않은게 너무 후회되네요.
이렇게 보고싶을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가족이 있으신가요?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 동생, 누나, 오빠..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는 말 해 본지가, 얼마나 되셨나요?
아침에 학교를 가면서, 출근을 하면서, 밝은 목소리로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인사는 하고 오셨나요?
아버니... 어머니.... 동생아..
많이 보고싶습니다... 많이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