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권에는 ‘라마단’금식월과 ‘하지’성지 순례의 기간이 가장 대표적인 축제로 간주된다. 종교의식을 치룬 이후 무슬림들은 그들이 알라의 인도로 무사히 금식기간을 지내거나, 성지 순례를 끝낸것에 대해 감사하고 서로 축하의 인사를 나누며 축제를 즐긴다. 2001년도 하지축제(Id al-Adha)는 3월4일부터 시작된다. 이날이 이슬람력 12월인 두울핫쟈(Dulhajja)의 10일이다. 이날이 되면 이슬람성원(Masjid)에서 특별 축제기도를 행한다.
신자들은 목욕재개를하고 정갈한 옷차림에 남자들도 향수를 뿌린다. 탈비야(하지축제때 사용하는 특별 기원문)를 몇사람의 선창에 따라 외친다. 그리고 이맘(기도안내자)이 기도를 주도하고 설교를 행한후 축제가 시작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집으로돌아가 제물을 바친다. 양이 산제물로 많이 사용되는데 사람들은 반드시 이때 알라의 이름을 뇌인다. 사람들은 가족단위로 친척을 방문하는데 사촌지간 혼인이 이루어지는 나라에서는 성년이 된 친척남녀끼리 서로를 확인하고 경우에 따라 몇달씩 친척집에 머문다.
* 순례의식 중 중요부분 소개
한편,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순례행사지인 메카근교 “미나"에서도 순례객이 참석한 가운데 축제기도와 설교가 순례의 한 의식으로 이루어 진다. 기도가 끝나면 자마 (Zamarat : 악마를 상징하는 커다란 기둥) 3개중 하나인 알 아까바(Zamarat al-Aqaba)에 달려가 기둥을 향하여 힘껏 조약돌을 던진다.순례객들은 이때 “알라와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시다)” 라고 큰소리로 웨친다. 한꺼번에 밀려든 순례자로 질서가 무너지면 밟히거나 다치는 경우도 있다.
이곳은 선지자 무함마드가 2개의 선서를 메디나 무슬림에게 행한 곳이기도하다. 여기에서 한가한 장소로 옮겨 머리를 짧게 깍거나 아예 삭발을 한다. 작년 하지순례에 참석한 50여명의 일본 순례자들은 2명만 제외하고 모두 삭발을 하여 신앙심을 표시하는 일본식 단체 데몬스트레이션을 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제물을 바치는 특정장소가 있는데 그곳에서 개별적으로 산제물을 바친다. “고기도 피도 아니고 이렇게 하므로서 경건한 신앙심이 알라에게 도달한다"라는 코란 계시가 그 순간의 적절한 서술이 될것 같다. 제물은 6개월 이상된 양이나 염소가 대부분이나 여러명이 합동하여 낙타나 소를 제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이날의 순례객들은 2일전 이곳에 와서 숙소를 배정받고 다음날 9일 아라파트(Arafat) 산과 무즈달리화(Muzdalifa)에서 낮과 밤시간을 보내고 10일 새벽에 돌아와 이날 10일의 축제행사를 맞이하는 것이다. 아라화트(Araft)는 2백피트의 낮은 산이나 동쪽으로 가면 산세가 드높기로 유명한 휴양도시 타이프에 연결된다. 정해 진 시간동안 이 장소에머물러 있는 것은 순례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진다. 모든 인류가 여기에 모여 최후의 심판을 받게된다고 순례객들은 믿고있다.
이곳은 이미 이슬람 이전에도 정해진 순례지였다. 그 당시 세도가 쿠라이쉬 부족(사도 무함마드의 출신 부족)이 순례길을 통제하였다. 이날 10일의 의식은 처음 시작했던 메카의 하람성원(al-Masjid al-Haram ,사진참조)을 방문하고 돌아와야 끝을 맺게된다. 이 성원 역내에는 카아바신전(al-Bait al-Haram), 돌 언덕 사화(Safa), 여기에서 버스정류장으로 1.5정거장 거리의 또다른 돌언덕 마르와(Marwa), 그리고 샘물(Zam Zam)이 있다. 카아바신전 은 가로35, 세로 40, 높이 50 피트의 크기로 두꺼운 검은 실크천으로 장방형 4면 벽이 덮혀있고 그천에는 코란문양이 수놓여 있다. 동남방향 모서리에 직경 8인치의 적흑색 돌이 박혀있고 북동쪽 벽면에 사다리를 놓고 들어 갈수있는 황금으로 된 문이 있다.
알히즈르(al-Hijr)라는 반달형 울타리와 8피트 높이의 6각 유리관에 쌓여 있는 이브라힘 성소(Maqam Ibrahim)는 카아바신전의 부속건물이다.유리관 안에 돌발자국이 안치되어있다. 하람성원에서의 순례의식은 3가지 순례형식에 따라 다르다.(그형식은 탐마투(Tam-matu), 이흐라드(Ifrad), 끼란(Qiran) 인데 이것은 본인이 마음속으로 선택 결정하되 한번 결정하면 그 번복이 어려운 조건이 붙게된다. 순례참여를 위해 메카로 들어 오는 입구는 모두 5군데이다. 입구에 들어설 때 의사를 결정해야한다.)
카아바에서 타와흐(Tawaf)라는 의식과 두 돌언덕 사이에서 싸이(Sa'ee)라는 의식을 행하면 순례의식이 모두 끝난다. 순례복장인 이흐람(Ihram)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 입으면서 순례의식의 제약에서 평상으로 돌아 오게된다. 이론상 순례는 이것으로 종결되나 순례객은 “미나”로 되돌아가 라미 알지말(Rami al-Jimar)이라는 의식을 행하면서 11일이나 12일 가능하면 13일까지 더 머문다. 귀로에 메디나에 있는 선지자 성원, 이슬람형성기의 여러 유적지와 성전(Jihad)을 치룬 격전지를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순례행사와 관계없는 개별형식의 답방이다.
* 동향
메카의 지형지물은 거대한 암반위에 도시를 얹혀 놓았고, 얹혀있는 그 도시는 더이상 뻗어 나 갈수 없으며, 동편으로 펼쳐지는 하지순례장 미나 의 입구와 출구를 봉쇄하는 이점과 난점을 공유하는 형상으로 보였다. 사우디 근대화에 앞장 서왔던 현 국왕은 초기에는 사회기반확충에, 후기에는 종교 시설 확충에 심혈을 기우려 온것 같다는 느낌을 이번 하지순례 참석으로 받게 되었다. 고층으로 숙박시설을 해결하려했던 노력에 한계성이 나타나자 암반에 여러개의 터널을 뚫어 메카외곽의 광대한 평야에 숙박시설을 분산시켰다. 순례행사장의 이동거리도 많이 단축되었다. 하지순례장에 설치된 임시텐트는 반영구식 텐트로 대체하고 냉방시설을 갖추었으며 순례대상의 수급을 제도적으로 조절 한 듯 보인다.
제2종교도시 마디나 무나와라는 근대화시설로 그 면모가 쇄신 되어있다. 종래의 건물 보다 많은 부속건물을 지어놓고 주변에 대형건물을 병풍식으로 건축하여 순례자 숙박시설을 고급스럽게 하고 상가를 화려하게 해 놓았다. 성원본관과 부속관의 지붕은 체육관 스타디움처럼 개폐식으로 되었다. 메카쪽으로 보낼 냉풍을 메디나에서 만드는 대형시설을 성원 별관에서 만드는 중이라고한다. 아마도 순례행사장의 좀더 나은 냉방시설에 사용되지 않을가 하는 예측이 든다.
성원건물 내부의 문양과 그 조화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왕은 증측시설물에 자기이름을 붙여 후세에 치적을 남기려 한것 같다. 압바스시대의 칼리파와 공주의 이름은 현재 사우디의 유적지에 이름이 남아있다. 순례에 초대받었던 사람은 한국 34명을 비롯 일본 50여명 그리고 동남아 기존 이슬람국 에도 많이 있다. 방콕에서 왕복 3일의 자유시간이 있었으나 사우디부터는 코스이외에 어떤자유도 없었다. 숙박시설은 좋았으나 즐길 여가가 없었다 식사는 아랍식이 아닌 기내식이나 줄을 서서 배급 받는 식이다. 젯다로 입국해서 마디나에서 출국했다.
* 역사성과 주관적 견해
하람성원의 중앙에 위치한 카아바신전은 역사적의미를 담고있다.기본적으로 지금의 순례의식과 같은 의식이 이슬람이전에도 카아바신전 자리에서 이루어 져 왔다. 기원전 1세기 어느 여행기에서 그 의식의 연원을 아득히 멀리 추정하고 있으며 (Muir,Life of Mahomet) 이브라힘이 처 하자르와 이스마일을 메카에 놓았을 때 이미 지금의 카아바신전자리에 신전이 있었을 것으로 코란계시(14-37)에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돌, 나무, 모래언덕을 우상으로 믿어 왔던 주변의 아랍인들은 그곳에 우상들을 안치시킨채로 신전자리에서 순례의식을 치루었던 것 같다고 어떤 이슬람학자는 말하고 이있다(Ahamad, Religion of Islam). 또 이슬람이전 자힐리야시대에 그 의식은 지금과 같았으나 옷을 벗거나 신발을 던지는 행위가 카아바신전에서 행하여 졌었다. 뿐만 아니라 3백60개의 우상이 신전 내부에 안장되어있었다. 헤지라 6년 이슬람 5번째 신앙적 의무로 하지가 제도화 된 이래 (al-Maktab al-Tauni, the Message of Haji) 이와 같은 관습은 철저히 제거되었다.
이 장방형의 신전은 4벽이 북서, 북동, 남서, 남동으로 구축되어 있다. 이슬람초기 진실한 무슬림들은 일상예배의 방향을 예루살렘으로 정하였으나 등 반대편으로 메카를 등진 자세가 마음에 걸렸다. 그 이유는 전통적으로 아랍인들의 순례중심이 되어 온 곳을 무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가 헤지라 18개월 까지 지속되었다. 그후 예배방향을 지금의 카아바신전으로 삼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였다.
하지순례의식중 코란과 하디스에서 직접적 근거를 찾아 볼수 없는 점이 많았다. 하지순례에 적혀있는 절차나 금지되어 있는 것들은 아주 명료하고 세밀하면서도 순례의식에 대한 배경설명은 하디스에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제시된 것이 없다. 그러나 순례참여자들이 지니고 있는 그 배경에 대한 지식은 모두 한가지였다.예를들어 라미(Ramy)의식(악마기둥에 조약돌을 던지려고 3일을 더 체재하는 의식)과 아드하(산제물을 받치는 행위)의식 배경이 모두 이브라힘과 이스마일을 배경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간단한 견문록을 쓰면서 알게 된것이 있다. 이슬람은 선지자 무함마드가 젊었던 메카시절 하니화정신을 깊히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이 역사기술가들의 공통견해 이다. 코란에는 이브라힘을 무슬림이라고 계시되었다. 이 두 선지자는 모두 하니화정신으로 묶여있으며 두 선지자는 모두가 고대에서나 자힐리야시대에 있어서나 전통 아랍사회에서 결코 용납 할 수 없게 보이는 무자비한 우상 철폐를 감행하였다. 이런사실이 오늘날 하지순례의식에 이브라힘이 등장하게 된 배경으로 이해된다.
내용출처 : [기타]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터 국제지역정보 제5권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