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아빠가 회사를 그만두신것까지 이야기했던거 같은데 ..맞죠?
제가 삼학년때 아빠가 돌연 회사를 관두시고 시골로 내려오시게 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카드빛때문이셨어요.
아빠가 일주일에 오일은 외박하셨다고 했잖아요.
카드 내역서보니까 술집, 모텔,.....이런곳이 많더라구요
그렇게 한 팔백만원?정도의 빛이 계셨구요
그걸 할머니한테 갚아달라고 땡깡쓰러 혼자 내려가신거였어요.
그렇게 저와 동생과 엄마는 여자셋이서 서울집에 남겨지고,
그렇게 제가 오학년이 될때까지 약 이년?일년반동안 생활하게되요
엄마는 밤마다 참치집에 나가셔서 서빙하시고, 팁받는..그런일을 하셨구요
저는 저학년이라 학교가 일찍끝나서 학교끝나면 혼자서 학교 도서관에서 다섯시까지
책읽다 오고 동생은 어쩔수없이 학원같은곳에 맡겼었어요.
학원비가 좀 부담이라서 저는 그런건 못다니구요...
제가 집에오고나면 동생도 집에오고 엄마는 우리 저녁챙겨주시고
일하러 나가시고 그런 일상이 반복되었어요.
그당시에 동생이 한양대학교 병원에서 약을 먹고지냈었어요.
동생..그 머리아픈것때문에..
머리가 더 좋아지거나 그런 약은 없었구요 그냥 지금 그 상태에서 지능이 더 떨어지지 않도록
보조해주는 그런 약이었어요.
근데 아빠가 지원이 끊기자 그 약도 못먹게 됬구요.
솔직히 저는 지금도 동생이 그 약을 계속 먹었더라면 나아질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약은 동생이 아주 어렸을때부터 꾸준히 먹어왔던 약이라 그걸 못먹게 됬다는건
정말 집이 많이 힘들었다는 이야기거든요.
저 학교 급식비도 다 외삼촌이 내주시고, 심지어 저 준비물 값도 외삼촌이 내주셨어요.
엄마월급으론 세금이나 생활비하기도 어려웠기때문에
쌀은 외할머니가 농사지셔서 보내주시고,
반찬은 이모들이 주셔서
겨우겨우 살았었는데
솔직히 그렇게 자꾸 받으면 엄마도 이모나 삼촌들에게 미안하시잖아요.
그래서 달라는말도 좀 못하게 되고....
이모들이나 삼촌들은 정말 우리를 물심양면으로 다 도와주셨는데
저는 아직도 그분들한테 빚졌다는 생각에 만나도 편하지가 않아요.
좀 기억에 남는게 엄마가 된장국을 끓이실려고 냄비에 된장을 풀었는데
냉장고에 넣을게 아무것도 없는거예요...
근데 시장가기엔 생활비가 빠듯하고 그래서
그냥 아무것도 안넣고 된장만 풀은 된장국을 삼일동안 먹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도 엄마는 저 학교에서 기 안죽이실려고
소풍 이런거 꼬박꼬박 보내고 그때만큼은 과자같은것도 사주시고
돈없다고 해서 라면같은거 먹이지 않으시고 아무것도 안들어간 된장국이라도 꼭 밥먹이시고
정말 저희를 위해서 힘쓰셨어요.
엄마랑 아빠는 부부싸움이 정말 잦으셨어요.
제가 태어나던 날부터 지금까지.....
아빠가 엄마를 때리기도 하셨고
한달에 두세번쯤은 꼭 싸우셨던것 같아요.
어린 저랑 제 동생은 큰소리가 날때마다 둘이서 이불속에 숨어서 울고
근데 정말 웃긴게 저는 단련이 됬다고 해야하나
6학년쯤 되니까 엄마아빠 싸우는게 우습더라구요
또 그래? 이런거있잖아요 귀찮지만 나한텐 별로 상관없는거
쨋든 그정도로 많이 싸우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저는 아빠없는 서울에서의 이년이 정말로 행복했어요.
가난하고 그랬지만 엄마한텐 우리들이있었고 우리들한텐 엄마가계셨으니까요.
솔직히 그때도 엄마나이가 서른넷 다섯이셨는데
그래도 꿋꿋하게 잘 견디셨어요.
아빠는 시골에서 계속 놀고 먹고 할머니 잡일이나 하시고
그렇게 지내셨고
우리엄마가 할머니한테 빌고 빌어서
받아낸 돈도 중간에 가로채시고
심지어 동생약값도 ....... 할머니는 부치셨다햇는데
엄마는 받은기억이 없다고 하시니...............아빠께서..그러신것같아요.
그러다 오학년 올라가는 겨울방학에 할머니가 엄마를 찾아와요
엄마한테 시골로 내려오라고.(시골이 깡촌 이런곳이아니라 도시예요.그냥 할머니집이라서 시골이라고 하는거예요.)
시골만 오면 집도주고 생활비도 주고 세놓은거 세도 받게 해주겠다
한달에 이삼백은 앉아서 받아먹는거라고
그리고 아빠 당구장도 차려주신다고 하시더라구요
아빠 카드값도 갚아주시구요.
엄마는 엄청 고민했죠
엄마가 서울로 올라오시면서 다짐했던게
죽어도 다시는 거기로 안내려간다는거였거든요.
근데 할머니가 와서 설득하고,
아빠도 엄마한테 울면서 잘하겠다고 하고
주변 친척들도 이혼은 안된다고하니까
마음이 약해지셨나봐요.
솔직히 저는 지금도 생각하는게 그때 엄마가 여기로 내려오시면 안됬었구요
할머니가 아빠 카드빛을 갚아주시면안됬었어요.
그때 엄마아빠는 이혼을 했어야햇는데
제가 꼴에 우리 아빠라고 막 울면서 말렸었거든요.
근데 참웃긴게
저는 어릴적에 아빠와 추억같은게 전혀없거든요.
제기억속에 아빠는 아예 실루엣조차 없어요
그때까지 같이 가족여행한번간적없구요(집앞 산이라도)
가족사진 하나 없었어요.
그냥 놀러가서 찍은사진이요.
학교숙제로 가족끼리 찍은사진 가져오라했을때
저는 아빠사진은 따로 붙여야했어요.
근데도 우리아빠라고 이혼하면 안된다고 햇던게 너무신기해요.
저희는 할머니가 일단은
물질적으로 도와주신하고 하니까
정말 그거 믿고 이제 좀 먹을것도 먹고
다니고 싶었던 학원도 다니고
그렇게 살 수 있을줄 알았어요.
근데.....내려와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
다음편에 이어서 쓸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