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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해서오줌찌리게해줌

ㅋㅋㅋ |2011.07.01 13:57
조회 23,491 |추천 61

1.

 


나한테는 두 다리가 없는 형이 하나 있었다.

형이라고 부르기에도 상당히 부끄러운, 내 인생에 있어서
도움은커녕 짐밖에 되지 않는 못난 형.

 

온몸을 방바닥에 문대며 두 팔로 기어가는

혼자서는 화장실변기에 앉지도 못하는, 그

렇게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항상 형 노릇을 하려는

못난 형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형이 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항상 내 옆에서 같이 TV를 보고,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같이 나가서 뛰어 놀 수만 없었을 뿐이지,

그 외의 다른 모든 것들을 형과 함께 했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비록 다른 형제들처럼 손잡고 함께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형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 특수학교에 갈 때마다 혼자서 학교에 가는 내 걱정에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차 조심하고, 누가 괴롭히면 형한테 말해. 형이 꼭 지켜줄게."

 

그런 형이 작아 보이기 시작한 건 중학교를 들어가고서 부터였다.

물론 덩치는 형이 다리가 없어서

나보다 항상 작았지만 형의 존재가 작게 느껴진 건 그 때부터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랑 같은 반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 알았다.

 

 

 

다른 사람들이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같은 반 친구들은 장애를 가진 친구가 엉뚱한 짓을 할 때마다

 

그 친구를 도와주기는커녕 장애인이라고 무시하며,

빙 둘러싸고 욕을 하고, 심지어는 때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사실을 버젓이 알면서도 항상 주의만 주고 끝냈다.

 

그렇게 반 친구들의 괴롭힘이 계속되자 학기가 끝나기 전에

그 장애를 가진 친구는 견디지 못하고 전학을 갔다.

하지만 전학을 갔어도 소용없을 것이다.

 

특수학교에 가지 않는 한 일반학생과

다르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나마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비교적 양심이 있던

그 시절의 나는 장애를 가진 친구가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형이 생각나서 도와주려고 했지만,


 

 


그 분위기, 장애를 가진 친구를 놀림감으로

여기는 분위기에 휩쓸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장애인에 대한 관념이 머릿속에 잡혀버린 나

는 장애인 형을 가지고 있다는 게 점점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내내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하지 않은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형이 창피해서.


 

 


하지만 형은 내 생각도 모르고

항상 친구들 좀 집으로 초대하라고 그랬다.

 

“진수야, 너는 친구도 없냐? 집에 친구들 좀 데려와, 같이 놀게”

 


형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친한 친구가 별로 없다고 둘러댔다.

“아, 내가 아직 친한 친구가 없어”

 

“그래? 너 혹시 왕따야?”

 

“그런 건 아니야”

 

 

“누가 너 따돌리면 말해. 형이 꼭 지켜줄게”

 

형이 그럴 때마다 형이 조금씩 미워졌다.
모든 게 형 때문인데 내 마음도 모르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형이 본격적으로 싫어졌다.

순전히 형의 장애 때문에 형이 싫어진 것은 아니었다.
사실 형을 증오하는 마음을 키운 것은
내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부모님의 탓이 컸다.

 

 


내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이.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절실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언제나 내게 형의 수발을 들라고
하시면서 강제로 나의 시간을 빼앗으셨다.


고작 지 몸뚱이 하나 제대로 못 가누는 병신 때문에
나는 번번이 내 자신을 억누르고 참아야했다.
한 번은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형이 말했다.

 

“나가도 좋아, 나는 괜찮으니까 하고 싶은 거 하고 와라.
엄마가 뭐라고 하면 형이 꼭 지켜줄게.
걱정 말고 다녀와”

 

왠지 선심을 쓰듯이 말하는
형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너무나 고마웠다.

나는 그렇게 형을 믿고 나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싸대기를 맞았다.

아버지는 내게 실망을 하셨다며 나를 때리셨고,
어머니는 방바닥에 똥을 싸지른 형을
씻기느라 나는 신경 쓰지도 않으셨다.


‘지켜줘? 누가 누구를 지켜줘? 똥오줌도 못 가리는 병신주제에’


그 날 나는 아버지에게 맞은 뺨을 눈물로 쓸어내리며 잠들었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내 배 위에 누가 앉아 있는 것 같은 답답함에 눈이 떠졌다.

눈을 뜨자 내 배위에 어떤 사람의 등짝이 보였다.
그 사람은 내 배 위에 눌러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답답해서
그 사람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그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포기하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나를 돌아봤다.

형이 웃고 있었다.

 

“으악!!!”


내 생에 가장 끔찍하고 더러운 악몽이었다.

 


그 날 이후로 우리 집에는 휴대용 변기가 생겼고,
나는 그 변기를 닦고, 처리하는 일을 도맡았다.

고등학생인 내게 형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쓰는 것은
너무나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만약 내가 어른이 되어도 형이 내 곁에 있다면?

 

내가 성인이 돼서 독립을 하더라도,
형이 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은 안 봐도 뻔했다.

그래서 나는 형을 죽어야 할 사람으로 취급하고 막대하기 시작했다.

형이 알아서, 눈치껏 떠나주기를 바랬다.

내가 형을 막 대하는 태도에
어머니는 형이 불쌍하지도 않느냐고 하시지만,
그것은 어머니께서 스스로를 옭매는 사슬이었다.

장애인 아들을 낳은 어머니의 죄책감이라는 끊어지지 않는 사슬.

사실 어머니는 불쌍한 여자다.
누구보다 형에게 얽매인 삶을 사셨으니.

 
신발, 망할 놈의 형, 너만 없으면 모두가 행복해질 텐데.’

 

그리고 나는 오늘 계획을 세웠다.
그 망할 새끼를 패주기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일하러 나가신 오늘.
나는 형에게 슬며시 다가갔다.

형은 공부를 하는지 종이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병신이 공부해서 뭐하게?”

 

나는 형의 머리를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일반사람이랑은 말 섞기가 싫냐?”

 

나는 발로 치는 강도를 높였다.
있는 힘껏 형의 얼굴을 발로 찼다. 형의 코가 옆으로 꺾이면서

시뻘건 코피가 쏟아졌다.
나는 피를 쏟으며 아파하는 형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형을 밟았다.
지난 17년 동안 억눌려있던 분노를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터뜨렸다.


얼마나 두드려 팼을까?
형의 얼굴은 이미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에는 이미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죽었나? 몰라, 될 대로 되라지.”

 


나는 집밖으로 나왔다.

윗배가 아려오는 불쾌한 고통이 느껴졌다.
너무나도 불쾌한 기분을 씻어내 줄 시원한 바람이 필요했다.

나는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까워지자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인가? 신발, 몰라 어쩌라고’

 

사이렌 소리 너머로 구급차에 실려 가는 누군가가 보였다.
형이었다.

온몸이 터져서 알아볼 수는 없지만 형이었다.
그 때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아이고!! 어쩌면 좋아!! 민수가 자살을 했어!! 자살을!!”


다음날 알았다.

형이 유서를 쓰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을.

그 때 형은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형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방안의 내 죄의 증거인 피를 전부 닦아내고
자신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뛰어내린 것이었다.

형이 어렸을 때부터 줄곧 하던 말이 떠올랐다.


“형이 꼭 지켜줄게”


윗배가 아려왔다.
그 기분 나쁜 고통.

내 신체의 일부가 떼어져 나가는듯한 아련한 고통.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이 흘렀다.
어느 정도 충격에서 깨어나서 회복을 하시던 어머니께서

내게 사진 한 장을 건네셨다.
형과 내가 아기 때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아니, 자세히 말하면 형과 내가 함께 붙어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아기는 두 다리는 서로 공유한 채,
상체만 따로 가지고 있었다.

서로 붙어있는 사진을 보고, 당황한 나를 보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뒤에 있는 게 진수 너고, 네 윗배에 붙어 있는 게 네 형 민수야.
 서로가 꼭 붙들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불쌍한지.
사진봐, 서로의 손을 꼭 쥐고 있지?

 
엄마는 정말 고민 많이 했어.
둘 다 살리려면 하나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


울먹이면서 말을 하시더니, 끝내 어머니는 슬픔에 말을 잇지 못하셨다.

윗배가 아려왔다.

내 신체의 일부가 떼어져 나가는듯한 아련한 고통.

 

아주 먼 옛날에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뱃속에 있을 때,
나는 뒤에서 형을 끌어 안으며 말했다.

 

“형, 무서워”

 

형은 조그만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걱정마, 형이 꼭 지켜줄게”

 

 

 


“누가 너 따돌리면 말해. 형이 꼭 지켜줄게”
 
 
 
2.
 
 
저는 결혼 8년차에 접어드는 남자인데요..
저는 한 3년전쯤에 이혼의 위기를 심각하게 겪었습니다.
그 심적 고통이야 경험하지 않으면 말로 못하죠...


저의 경우는 딱히 큰 원인은 없었고
주로 와이프 입에서 이혼하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더군요..
그리고 저도 회사생활과 여러 집안일로 지쳐있던 때라 맞받아쳤구요.


순식간에 각방쓰고 말도 안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화가 없으니 서로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갔구요..
사소한 일에도 서로가 밉게만 보이기 시작했죠..


그래서 암묵적으로 이혼의 타이밍만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도 눈치가 있는지 언제부턴가 시무룩해지고
짜증도 잘내고 잘 울고 그러더군요..


그런 아이를 보면 아내는 더 화를 불같이 내더군요..
저도 마찬가지 였구요..


계속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가 그러는 것이 우리 부부때문에 그런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요..

가끔 외박도 했네요..
그런데 바가지 긁을 때가 좋은 거라고 저에 대해

정내미가 떨어졌는지 외박하고 들어가도 신경도 안쓰더군요..


아무튼 아시겠지만 뱀이 자기꼬리를 먹어 들어가듯이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었답니다.


그러기를 몇달..하루는 늦은 퇴근길에..
어떤 과일아주머니가 떨이라고 하면서

귤을 사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에 남은 귤을 다 사서

집으로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주방탁자에 올려놓고 욕실로 바로 들어가 씻고 나오는데,
와이프가 내가 사온 귤을 까먹고 있더군요..


몇개를 까먹더니 하는 말이
"귤이 참 맛있네"
하며 방으로 쓱 들어가더군요.


순간 제 머리를 쾅 치듯이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아내는 결혼전부터 귤을 무척 좋아했다는 것하고,
결혼후 8년동안 내 손으로 귤을 한번도 사들고

들어간 적이 없었던 거죠..


알고는 있었지만 미처 생각치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순간 먼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예전 연애할 때에 길가다가 아내는

귤좌판상이 보이면 꼭 1000원어치 사서

핸드백에 넣고 하나씩 사이좋게 까먹던 기억이 나더군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해져서 내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답니다.
시골집에 어쩌다 갈때는 귤을 박스채로 사들고 가는 내가

아내에게는 8년간이나 몇백원도 안하는 귤한개를 사주지

못했다니  맘이 그렇게 아플수가 없었습니다.

 

결혼 후에 어느덧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전혀 쓰지 않게되었다는걸 알게 됐죠..
아이문제와 내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말이죠..

 


반면 아내는 나를 위해 철마다 보약에 반찬한가지를 만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신경 많이 써 줬는데 말이죠..

 

그 며칠 후에도, 늦은 퇴근길에 보니 그 과일좌판상

아주머니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또 샀어요..


그리고 저도 오다가 하나 까먹어 보았구요..
그런데 며칠전 아내말대로 정말 맛있더군요..
그리고 들어와서 살짝 주방탁자에 올려놓았구요..


마찬가지로 씻고 나오는데 아내는 이미 몇개 까먹었나 봅니다.

 

내가 묻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않던 아내가

 

" 이 귤 어디서 샀어요? "
" 응 전철입구 근처 좌판에서 "
" 귤이 참 맛있네 "

 

몇달만에 아내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도 몇알 입에 넣어주구요...


그리고 직접 까서 아이 시켜서 저한테도 건네주는

아내를 보면서 식탁위에 무심히 귤을 던져놓은 내모습과

또 한번 비교하게 되었고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뭔가 잃어버린 걸 찾은 듯 집안에 온기가 생겨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아내가 주방에 나와 아침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보통 제가 아침일찍 출근하느라

사이가 안좋아진 이후로는 아침을 해준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그냥 갈려고 하는데, 아내가 날 잡더군요..
한 술만 뜨고 가라구요..

 

마지못해 첫술을 뜨는데, 목이 메여 밥이 도저히 안넘어가더군요..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같이 울구요..


그리고 그동안 미안했다는 한마디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부끄러웠다고 할까요...

 

아내는 그렇게 작은 한가지의 일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작은일에도 감동받아 내게로 기대올수 있다는걸

몰랐던 나는 정말 바보중에도 상바보가 아니었나 싶은게

그간 아내에게 냉정하게 굴었던 내자신이

후회스러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후, 우리부부의 위기는 시간은 좀 걸렸지만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가끔은 싸우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귤이던 무엇이든 우리사이에 메신저역할을 할수 있는것이
주위를 둘러보면 아주 많다는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3.

 

초등학생일 때부터 나는 왕따를 당했다.
아이들은 장난삼아 나에게 돌을 던진 적도 있다.
나를 비호해 주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전학을 가게 되었을 때, 담임 선생이 말했다.


「너한테는 송별회 필요 없지?」


중학생 무렵. 주위는 초등학교때 나를 괴롭혔던 아이들 뿐이었다.
다시 괴롭힘이 계속된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무시당했다.쉬는 시간 중엔 계속 자는 체 급식 시간때 자리를 붙여서 먹는 애들도 있었지만, 나는 언제나 따돌림 받았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다.
다른 사람의 10배 정도는 노력했다.
그 결과 학년 20등 정도의 성적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공부해서 20등

 

-


고등학생 일때
평상시 술은 커녕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는 어머니가 취해 있는 모습을 봤다.
어머니는 나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미안해…널 낳아서 미안해…」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말이었다.


-

그런던 나에게 마침내 친구가 생겼다.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가 시작되는 날
앞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줬다.
기뻤다.

그 아이는 성격도 좋고 이래 저래 반의 중심에 있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말을 걸어준 것이다. 진심으로 기뻤다.

 

그러던 어느날 화장실 독실에서 일을 보던 중, 바깥에서 대화소리가 들렸다.


남 1 「어이, 너 그 뭐냐. xx 있잖아. 그 녀석이랑 사이 좋은 거야?」

남 2 「아, 맞아. 너랑 성격 맞아 보이진 않던데 말야.」


그리고, 이어진 친구의 말


「일단 자리 가깝잖아. 그러니 말은 붙여둬야 겠다고 생각해서 말야. 일단 나라도 인기 관리정도는 한단 말이지.

사람 사귀는데 제한 두지 않는다, 뭐 이런 이미지 관리랄까?

뭐, 진심으로 말하자면 진짜 친구는 되기 싫지만 말야」

그 날, 나는 하교 종이 칠 때까지 화장실에서 나갈 수 없었다.

 

-

 

아버지에게 고민을 털어 놓은 적이 있다.

나는 어째서 사는 건가요? 무엇 때문에 사는 건가요?

…이제 죽고 싶어요


부친은 나를 꼭 닮은 무뚝뚝한 얼굴로


「살다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 나는 네 어머니랑 만나 아들까지 얻었지.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그런 말로 날 위로했던 아버지가 죽었다.

과로사 였다.

회사는 그 사실을 일절 인정하지 않았다.

보상은 당연히 없었다.

장례식에 왔던 회사 사람들이 장례식이후 모임에 대해 말하며 웃고 떠드는 걸 보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존재는 아무래도 좋은 거 였던 듯 싶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화도 나지 않았다.

다만 너무한 현실을 감당못해 멍해 있었을 뿐

어머니도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고등학교 졸업 후 작은 회사에 들어갔다.
운송업체의 사무원으로

웃기게도 아버지와 같은 업종이었다.
일하기 시작한지 3개월, 상사의 나에 대한 평가는


「쓸모 없는 놈」


상사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나를 욕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쓸모 없는 녀석이니까

-

 

일이 바빴다.

감기로 40도 가까이 열이 올랐지만, 쉴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의미론 행복했다.
바쁜 것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을 때는
동시에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에.

-


그 회사에서 일한 지 3년.
아직도 쓸모 없는 녀석 취급인 나에게 유일하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아가씨가 있었다.
내가 일한지 3년째 되던 해, 입사한 아가씨였다.


「안녕하세요」


이 한마디와 웃는 얼굴이 나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어 버렸던 나에게, 그녀는 한가닥 희망을 심어 주었다


-


수개월 뒤

아직도 웃는 얼굴을 보여 주는 그녀에게 저녁 식사 신청을 해봤다.
그런 자신이 이상하게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다른 인간이 된 것 같았다.

그녀의 대답은


「그거 좋죠~ 어디로 갈건데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에게 감사했다.


-


고백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생각한 뒤…몇번이나 연습한 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말할 수 있었던 건 딱 한마디


「…조, 좋아합니다…」


스스로도 한심할 정도로 짧았다.

-

 


「미안해요. 지금은 누군가랑 사귈 생각 없어요. 여러가지로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그녀의 대답이었다.

슬펐지만, 동시에 납득할 수 있었다.

나는 되려 기뻤는지도 모른다. 나를 거절한 그녀의 방식에

 

 

몇 개월 뒤, 그녀는 결국 퇴사했다.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상대와는 3년동안 사귀고 있었던 것 같다.


당연한 일이지만, 결혼식 초대는 받지 못했다.

 

-


실연…

그런 생각은 아예 날아가 버렸다.


「그렇지, 언제나 그렇지 뭐」


어느사이엔가 버릇이 되버린 체념

 

 

그래, 일에 생을 바치자. 아버지와 같이

나에겐 그것밖에 없다.

일만은 나를 필요로 해주니까.

…할 일은 많이 있어

-

 

「너, 역시 이 일에는 적합하지 않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어? 그런 일을 계속해도 괴로울 뿐이야
조금이라도 젊은 지금, 전직 같은 거 생각해 보는 게 어때?」


일한지 4년째 되는 시업식 날, 상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바보지만, 상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다음날 , 사표를 낸 나에게 상사는 밝은 어조로


「수고했어!」


직장 동료들은 언제나 처럼 일하고 있었다.
언제나 이상으로 바쁘게 움직이며.


-

 

그 날밤 늦게까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온 나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처럼 상냥한 웃는 얼굴로


「수고 하셨습니다」


라고 말했다.


「회사, 그만뒀어요」


나의 한마디에


「수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웃어주셨다.


-


지금부터 1년 전, 일자리를 찾고 있던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집에 어머니가 없었다.

밤 늦게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였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평소처럼 상냥한 목소리로, 몸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입원하란 말을 들었다고

오늘은 더이상 면회를 할 수 없으니 내일 필요한 것들은 병원에 가져오면 좋겠단 말을 들었다.

다음날 , 보험증이나 갈아입을 옷가지등을 챙겨 병원에 갔다.


-


의사에게 들은 한마디

위암 말기

더이상의 치료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이라고 했다.


여느 때처럼 상냥한 어머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혼자서 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불단 앞에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버지 앞에서 우는 건 이번이 두번째였다.

 

-

 


입원한지 1개월 정도됐을 때, 어머니가 스치듯이 하지만 상냥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이제 살 수 없지? 알고 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여느 때와 같은 목소리로


「그래, 일자리는 찾았어? 어서 찾으면 좋겠는데」


나를 걱정했다.

그만 참지 못하고 울어 버렸다.

어머니는 그런 내 손을 아무 말 없이 어루만졌다.

 


-

 

얼마 안되는 친척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정말 좋은 사람인데, 어째서…」

「아까운 사람이…」


상투적인 대사들이 즐비했다.

나는 그저 담담하게 상주 역활을 수행했다.

 

 


-

그리고 지금, 혼자서 살고 있다.

안 그래도 휑하니 넓어보이던 집은 그 날이후 한층 더 넓게 느껴진다.

납골 단지는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가벼웠다.

나는 어머니의 물품을 정리하던 중 노트를 발견했다.

어머니 병실, 침대 아래에서 나온 노트였다.

 

 


-

일기였다.

입원한 이후 1개월 부터 돌아가시기 전 2 주 전까지의.

마지막 날 적힌 일기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적혀 있었다

2,3일 분의 일기를 읽고 울었다.

일기에 쓰여져 있는 건 전부 '나' 였다.

 

 


-

마지막 페이지에서 3일 정도의 내용

그건 모두 나에 대한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xx, 너 에게 계속 사과하고 싶었던 게 있었어

xx가 따돌림 당했던 것, 계속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약한 인간이니까, 단지 상냥하게 대해주는 수밖에 없었어

학교에 가볼까도 하는 생각도 했지만, 갈 수 없었어.

언제나 xx가 상냥한 얼굴로


「오늘도 즐거웠다」


라는 말을 했으니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노력하고 있는 xx를 배반할 수 없었어

기억하고 있니? 네가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취해서 말한 적 있지


「낳아서 미안하다」


라고.

정말로 미안하다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

네가 이렇게 괴로워 하는 건 다 내가 널 낳았기 때문이라고

 

(중략)

 

하지만 나는 너를 낳아서 정말로 행복했어.

그러니까, 너도 행복해지면 좋겠어

아니, xx라면 행복해질 수 있어

신님, 부탁합니다. 제발

 

 


-
놀랐다.

설마, 그렇게 취해있던 어머니가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슬펐다.

계속 후회하고 계셨다는 걸 알았으니까


괴로웠다.

그 날 이후 상냥한 얼굴로, 상냥한 목소리로 나를 배웅해 주신 게 죄책감 때문이란 걸 알았으니까


통곡 했다.

내 몸 어디에서 그렇게까지 눈물이 나올 수 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이틀 밤낮을 울고 또 울었다.

 

 

 


일어섰다.

아무 것도 변한 것 없었다.

나는 여전히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이며

인생은 역시나 괴로움 투성이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그렇다 해도

 


일어섰다. 행복해 지기 위해,

그러니까 그러니까

 

 

 

 

 

살아가자

 

 

 

4.

 

 

“내일이 우리 영호 생일인데, 뭐하고 싶니?”


재식은 자신의 9살 된 아들, 영호에게 물었다.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아빠 돈이 없잖아”


영호는 꽤나 암울한 이야기를 초롱초롱한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재식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들을 보고 가슴이 울컥했다.
 
외간남자와 바람이 나서 돈을 몽땅 가지고 도망간

마누라와 보증을 서달라고 애원하던 친구들 덕에
 
남은 거라고는 산더미처럼 쌓인 빚밖에

없는 재식으로서는 비참한 순간이었다.
 
자신의 유일한 핏줄인 아들, 영호에게 만큼은 멋진

 아빠이고 싶었던 재식은 끝내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빠 울어?”


“아니야, 피곤해서 그래. 근데 영호야, 아빠 돈 있으니까

 뭐하고 싶은지 말해도 돼. 아빠가 뭐든 해줄게”


재식은 붉어진 눈시울을 닦아내며 말했다.


“사실은 놀이동산 가고 싶어. 친구들은

다 갔는데 나만 못 가봤거든”


영호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내일 아빠랑 놀이공원 가자”


재식은 영호를 꼭 끌어안았다.


다음 날, 약속대로 재식은 영호를 데리고 놀이공원을 갔다.
 
재식의 지갑은 너무나도 얇았지만 아들의 행복한

생일을 위해서는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호 역시 아빠로 인해 생애 최고의 생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재식이 영호를

골목 구석에 데려가 숨기고는 영호에게 말했다.


“영호야,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아빠 금방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갑작스런 아빠의 행동에 놀란 영호는 울먹이며 말했다.


“아빠 빨리 와야 돼?”


“응”


재식은 그렇게 영호를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행복하십니까?”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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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날의 아버지가 떠나가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나이를 꽤 먹은 지금,

물론 아버지의 절박한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10살도 안된 어린아이를, 그것도 자기 자식을 버렸다는

 점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용서를 할 수가 없다.

버려진 이후로 나는 아빠를 찾아 몇 날을 울면서 헤맸고,

먹고 살기 위해 뭐든지 했다.

그늘 하나 없는 세상에서 나는 철저히 짓밟히면서도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 그 때의 아버지의 나이가 된 지금.

나는 나의 아버지가 나를 버린 그 저주스러운 날을

찾아가기 위해, 타임머신센터를 찾아갔다.

내가 평생 번 돈의 절반 이상을 써야할 만큼 많은

비용이 필요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날짜 2008년 5월 16일


매번 그 날의 악몽을 꾸다보니, 그 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스르르 시간의 흐름이 뒤틀렸고, 타임머신센터에

있던 나는 어느새 2008년 5월 16일에 도착했다.

나는 당장 기억을 더듬어 내가 갔던 놀이공원을 찾아가서 기다렸다.

역시나 나는 행복한 모습으로 아빠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 입장했다.

나는 놀이공원에 따라 들어가 어렸을 적의 나와 아버지를 미행했다.

그 둘을 보는 내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렇게 행복해 하는 어린 아들을 버릴 수가 있는가?

아무리 살아가기 힘들어도 그렇지.

버리기 전에 아들을 달래주는 아버지가 악마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복수를 다짐했다.

어렸을 적의 나와 아버지가 돌아가는 길.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왔다.

이제 곧 버리겠지?

역시나 아버지는 어린 나를 골목구석에 두고, 뛰쳐나왔다.

나는 서서히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행복하십니까?”


아버지는 웃으며 대답했다.


“행복합니다.”


‘행복하다고? 아들을 버려놓고?’


나는 품에서 칼을 꺼내 아버지를 사정없이 쑤셔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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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을 나오고부터 누군가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빚쟁이들인가? 하필이면 아들의 생일에...

집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자 더욱 가깝게 쫓아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아들을 우선 안전한 곳으로 숨겼다.

생일에 아빠가 빚쟁이들에게 맞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영호야,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아빠

금방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빠 빨리 와야 돼?”


“응”


나는 재빨리 골목을 나와 빚쟁이들을 찾았다.

 되도록 말로 해결하고 싶었다.

순간 뒤에서 빚쟁이가 나타나서 내게 말했다.

 


“행복하십니까?”

 


물론, 나는 오늘 하루 종일 행복했다.

아들의 웃는 모습도 보고 아들과 놀아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순간 지금 눈앞에 있는 빚쟁이에게 고맙기까지 했다.

아들이 없을 때 와줘서.

 


“행복합니다.”

 

 

 

하 ㅜ 무서운거 감동적인거 엄청많은데 너무길어서 여까지만올릴게요..

잼있게읽으셨으면 추천좀요 !!

추천수61
반대수5
베플양파즙|2011.07.02 12:07
나얘글쓴이아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이거다내싸이에잇는건데 이놈의자식이여따가올린거임ㅋㅋㅋㅋㅋ나베플해주세요ㅠㅠ 그럼내가얘싸이주소?사진?생각해보고올려드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잜쌩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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