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아가다 한 두 번은 힘든 시기를 겪게 마련이다. 나 역시도 대학을 졸업하고도 6년 동안 취업을 하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나는 장장 30개월의 군 생활을 마친 후 다니던 전문대를 중퇴하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영역에로의 도전의지는 원하던 대학은 아니었으나 나를 스물 여섯의 나이에 법대로 진학하게 하였다. 삶은 고정된 것은 아니라는 확신으로 나의 의지로 세상을 바꿀 것 같았던 그런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고시합격과 출세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비싼 대가를 치르기 전에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헌법 강의시간에 늘 옆자리에 앉던 여대생의 아리송한 미소에 군대에서 찬 겨울의 칼바람을 맞으며 벼린 출세의 의지도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사람 좋은 미소로 가볍게 술 한 잔 하자던 고시계 노장들의 인사말에 바위에 세긴 청운의 꿈은 일순간에 잊혀지고 나는 늘 그 바위 옆 잔디밭에 고꾸라져 토하곤 했다. 그리고 이런 어이없는 낭만은 나의 20대와 함께 쓸쓸히 끝나버리고 나는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그것도 그 당시에는 보기 드문 30대 백수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졸업 후에도 고단한 고시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도 가끔은 일찍 자리 잡은 친구들이 찾아와 나의 외로움과 고립감을 해소해주어 삶의 활력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곤 했다. 그날도 백수친구, 직장인 친구 와 조를 맞춰 내 영혼의 무료함과 외로움을 고스톱으로 해소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국민연금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한다. 이 아르바이트는 5개월 과정인데 마치고 나면 입사시험의 기회를 줄 지도 모른다며 직장인 친구가 나 아닌 다른 친구에게 적극 권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국민연금 상담원 채용공고였고 그 직장인 녀석은 바로 국민연금에 다니고 있었다. 어두운 차취방 뽀얀 담배연기속에서 나는 서광을 보았고 그 고스톱판이 새벽까지 이어지던 철인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감긴 눈은 번쩍 뜨였다. 그리고 그 새벽에 뛰어가 즉시 원서를 작성하여 다음날 제출하였고 결국 나에게도 면접의 기회가 주어졌다.
아! 그러나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월급 60여만원에 5개월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이 3:1 정도 되었다. 게다가 지금과는 달리 만 35세라는 나이 제한까지 있었던 터라 나는 내심 불안했다. 그때가 2003년 7월로 내 나이 서른 다섯 딱 커트라인이었다.
면접은 나의 절박함이 비춰질 수 있도록 정말 최선을 다해 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았고 고시생이 이런 일 하겠냐는 면접관의 질문으로 비춰봐서 가능성이 없겠구나며 지레짐작으로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전화가 왔고 선발되었으니 교육받고 출근하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 첫 출근지가 대구의 모지사였다.
스무 명 정도의 상담원과 함께 나는 지역자격 업무를 했다.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입사의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상담원 업무는 말 그대로의 아르바이트일 따름이고 국가예산으로 청년 실업자에게 용돈 주는 것 정도로 이해하는 동료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그들의 업무태도를 통해 오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입사시험의 나이제한을 풀어 시험 칠 기회를 얻고자 하는 의도는 나 혼자밖에 없었던 것같았다. 뿐만 아니라 시험기회를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둥 시험이 없을 수도 있다는 둥 헛소문이 돌아 나는 더욱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로서는 공단의 약속을 믿고 열심히 근무를 하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단 한명에게 기회를 준다면 그것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 했다. 물론 힘든 시간도 많았다. 내가 만난 대부분은 국민연금이 반드시 필요한 선량한 서민이었으나 아닌 사람도 있었으니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난무하는 욕설에 뭐 이런 사람도 있는가 싶을 정도로 황당한 경험도 있었고 책상머리에 앉아 팬대만 굴린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뙤약볕에 검게 그을려가며 자전거 출장도 많이 다녔다. 가끔씩은 다방커피 대접도 받으며 사람 살아가는 모습도 많이 보고 느꼈다. 그때의 경험은 과연 국민연금의 주인은 정부도 공단도 아니라는 지금의 생각을 고착화시키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국민연금의 주인은 국민이다.
이렇게 바삐 보내기를 5개월, 공단의 약속을 믿었던 나의 신뢰를 공단이 져버리지 않아 나에게도 시험의 기회가 주어졌고 필기시험과 면접을 통과해 마침내 나는 최종합격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절박한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근무한 내 상담원시절 근무지인 그 지사로 첫 발령을 받았고 나는 지금까지 여기서 근무를 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상담원 시절의 절박함이 나의 입사 성공기의 열쇠였던 것 같다. 나는 입사의 기회를 얻기 위한 절박함으로 모든 역량을 집중하였고 모든 일에 열정적으로 임하였다.
2008년 6월 10일로 입사한 지 5년차가 된다. 늘 반복되는 고객과의 상담,설득으로 심신이 지칠 때면, 그래서 문득 일하기 싫다는 내면의 진실을 목격하여 내가 타성과 나태로 서서히 물들어간다고 느낄 때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나 역시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다고는 하더라도 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두 아들로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이 직장에 입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열정을 다해 노력했기 때문임을 나는 명심하여야 한다. 그래서 지금 이 글과 같은 나의 입사성공기가 아니라 나의 직장생활 성공기라는 주제로 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게 열정적으로 생활하여야 한다.
나는 그날이 올 것을 알고 또 오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