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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해양경찰 복무하면서 겪은 일입니다.

수거용마대 |2011.07.15 17:29
조회 1,411 |추천 0

 

  날이 저물었다. 해경파출소 청사 외벽 빨간 벽돌에도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싸한 초가을 바람이 불어오자 소내에 남아있던 당직자들이 창문을 닫고 불을 켰다. 일근자들은 모두 퇴근하고 없는 터라 사무실에는 최 경위와 김 경장, 심 순경 이렇게 셋 뿐이었다.

  이젠 날도 저물었겠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가는구나 하며 최 경위가 TV 앞에 서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여유있게 돌리던 찰나 전화벨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퍼졌다.

"감사합니다. 정성을 다하는 해양경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전화를 건 신고자는 꽤나 다급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초조한 듯 보였다.

"아 그러니까 오늘 민박하러 온 손님들이 뻘에 들어갔는데 아직도 안 돌아왔다는 말씀이시죠?"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 신고자의 설명은 이러했다. 민박을 하러 온 다섯명의 일행이 뻘로 망둥어낚시를
나갔는데 그 중 두 명이 해가 지고 물이 들어찼는데도 돌아오지 않자 일행 중 하나가 걱정이 되서 신고를
해달라 부탁한 것이었다.

"최 주임님, 이거 지금 물때가 이제 빠지는 물이라 RIB보트 끌고 나가야 겠는데요."

"아냐, 혹시 스크류에 걸릴 지도 모르니까 일단 김 경장하고 심 순경하고 순찰차 끌고 가서 육안으로 확인해봐."

  최 경위는 행여나 뻘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실종자가 구조보트 스크류에 휘말려 다칠까 순찰차를 타고 갈 것을 지시했다.

  뻘. 썰물에 뻘이 드러났다. 물론 해는 이미 넘어가고 별조차 뜨지 않은 밤이라 바다와 뻘이 구분될 여간은 없었다. 다행히 해안가 비포장도로에 설치된 가로등 하나가 뻘 사이로 나있는 시멘트 도로를 희미하게나마 비추고 있어 어디서부터 뻘이 시작되는 지는 분간할 수 있었다.

"김 경장님, 일단 서치라이트 켜 놓고 내려가죠."

"네, 그럼 트렁크에서 장화하고 구명장비만 좀 꺼내주시겠어요?"

  액티온을 개조한 순찰차가 뻘이 시작되는 지점에 다다르자 경광등 사이에 설치된 서치라이트에 불이 들어왔다. 서치라이트가 180도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몇 차례 갑자기 김 경장이 어느 한 지점에서 조명의 회전을 정지한다.

"저기, 저 저!! 심 순경, 보여요?!"

  간출암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사람으로 보이는 실루엣이 서치라이트의 강한 불빛에 일렁였다. 순찰차에서 100m정도 거리에서 누군가 낚싯대를 들고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저거 육안으로 컨택되요? 아까 신고자가 말한 인상착의가 맞는 것 같죠?"

  심 순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화로 갈아신고 구명동의를 착용했다. 김 경장은 일찍이 갈아신고 차에서 내려 멀리 있는 남자에게 소리쳤다.

"선생님!! 선생님!!"

  남자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 지금은 낚시하시면 안됩니다. 얼른 나오세요!!"

  남자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안 들리나 본데요. 일단 한 번 가보죠."

  결국 둘은 차에서 내려 남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발이 미끌어지고, 따개비더미에 찍히고, 뻘 깊숙이 쳐박히길 수차례, 남자가 있는 곳에 거의 다 도착했다. 그리고 심 순경이 들고온 휴대용 서치라이트로 전방을 비추었다.

"어?! 이상하네. 분명히 이 근처였는데... 김 경장님, 발자국도 안 보여요."

  심 순경은 그렇게 말하며 두리번거리다, 아무리 기다려도 김 경장이 대꾸가 없자 서치라이트를 든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심 순경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서치라이트가 내뿜는 불빛과 뻘에 난 자신의 발자국뿐,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김 경장이 보이지 않았다.

 

"김 경장님!! 김 경장님!! 어디 갔어요!?"

  TRS 단말기를 꺼내들어 김 경장의 번호로 통화를 시도했다. 그 때 서늘한 밤공기를 가르는 TRS 벨소리가 심 순경에게서 3, 40m는 족히 떨어진 곳에서 들려왔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TRS 송신버튼을 눌러 통화를 중지하고 김 경장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 김 경장님 거기 계시면 어떡합니까. 놀랐잖아요."

  하지만 김 경장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심 순경과는 반대 방향으로 계속 나아갔다. 뻘을 마치 평탄한 길을 걷는 양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시간이 지날 수록 심 순경과의 격차가 자꾸 벌어지자 심 순경이 소리쳤다.

"뭐하시는 거에요?! 김경장님!! 뭐라도 찾았어요?"

  서치라이트로 김 경장을 비추었다. 그제서야 김 경장은 걸음을 멈추고 심 순경을 돌아보고는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언제 그렇게 멀리 갔어요?"

"멀리 가다니요. 아까 차에서 봤던 곳으로 가보니깐 그 남자는 커녕 김 경장님도 안 보이고..."

"......."

  어색한 침묵을 서늘한 가을밤 공기가 삼켜버리자 김 경장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아까 오던 중에 분명히 이 자리에서 아저씨 한 분이 저희 쪽을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어요."

  다시 침묵이 흘렀다. 아까와는 달리 무거운 침묵이었다. 어느 누구도 선뜻 먼저 말을 꺼내려 하지 않았다. 심 순경이 휴대용 서치라이트로 주변을 비춰보지만 뻘과 곳곳에 보이는 물웅덩이 말고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황량하다.

"우리가... 뭐, 뭘 잘못 봤나요?"

  김 경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 분명히 남자를 봤는데..."

  그리고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평소 낚시객들이 망둥어 포인트라며 즐겨 찾는 간출암 부근까지 걸어가기 시작했다. 질퍽거리는 그들의 걸음소리만이 까만 정적속에 무규칙적인 리듬감으로 울려퍼졌다.

"이래가지고서는 힘들겠는데..."

"그럼 오늘은 이만 철수하고 내일 물때 맞춰서 다시 수색 재개할까요?"

  그 때 심 순경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파출소용 휴대폰 조회기가 울렸다. 마치 불이라도 난 듯이 급하게 주머니에서 조회기를 꺼내들어 전화를 받았다.

"예, 감사합니다. OO파출소 심 순경입니다. 무엇을..."

   심 순경의 표정이 잠깐 일그러지더니 어딘가를 응시하며 서치라이트를 비춰본다. 참새바위.

"아, 예 알겠습니다. 지금 그리로 갈게요. 기다리고 계세요."

  전화를 끊기 무섭게 김 경장을 한 번 돌아보더니 방금 전 서치라이트로 비췄던 장소로 걸어갔다. 김 경장도 그를 뒤쫓아가며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방금 낚시객하고 직접 통화를 했는데 참새바위에 고립되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대요."

"아니 뭘 했길래 고립이 된거야..."

  참새바위에 가까워질수록 뻘은 더 질퍽거리고 발은 더 무거워져만 갔다.

"참새바위가 이렇게 멀었나..."

  김 경장이 투정을 하는 사이 바위에 도착한 두 사람은 못 볼 것이라도 봤다는 듯이 그자리에 멈춰서서 굳어버렸다.

"시...심, 심 순경, 저...저거 사람 팔 맞지?"

  심 순경이 서치라이트로 비추자 일그러진 실루엣이 하얀 불빛 아래 드러났다. 뻘이 묻은 손가락, 빨간 긴 팔 소매... 참새바위 아래까지 차오른 뻘에 팔이 파묻혀 있었다. 아니 사람이 파묻힌 채 팔만 뻘 위로 솟아 올라있었다.

"심 순경, 아까 전화한 사람이 누구라고 그랬지?"

  심 순경이 휴대폰 조회기를 꺼내 통화내역을 뒤져보지만 가장 최근에 통화한 것은 신고를 받고 출동 나오기 전 육군 TOD에서 걸려온 것이 전부였다.

"......."

"심 순경, 일단 이건 내가 신원파악할 테니까 아까 우리 있던 곳으로 가서 한 번 잘 살펴봐. 아까 분명 두 사람이랬어."

  심 순경은 기이한 현상에 혀를 내두르며 불안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질퍽거리는 뻘을 걸어갔다. 방금 전 김 경장이 있었던 장소로 도착할 즈음 또다시 전화가 왔다. 분명히 신고자다. 민박집을 한다던 그 사람. 번호가 맞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고나서야 전화를 받는다.

"예, 아까 신고하신 분이시죠."

  통화가 길어지는 듯 싶더니 어느샌가 심 순경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표정이 굳어갔다.

"아니, 그러니까 해상안전사고는 119가 아니라 122로 신고를 주셔야 됩니다. 특히나 해양사건, 사고는 육상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분초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해상구조장비가 완벽하게 갖춰진 전문구조기관으로 빨리 연락을 취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해양경찰의 업무는 해상치안, 경비구난, 구난구조, 민원처리 등이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아직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위급한 상황에도 제때 조치를 취하지 못해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119에 신고를 하셔도 해상안전사고의 경우 다시 해양경찰 상황실을 통해 저희기관으로 상황발생보고가 넘어올 때면 이미 2,30분은 족히 지난 후라 심하면 인명에도 큰 타격이 올 수 있습니다.
해양안전사고, 122로 신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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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말고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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