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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트라우마를 지울수가 없습니다.

|2011.07.22 03:02
조회 175,176 |추천 2,493
안녕하세요..
이제까지 판은 보기만 하다  누군가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털어놓으면괜찮아 질까하고 여기에 쓰면 되는건가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

판에 글을 한번도 써본적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많이 길어질지 모르니,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너무 길어 한명도 읽어주지 않을지 모르지만,그렇다면 그냥 저혼자만의 속내를 털어놓는다생각하고 글을 쓰겠습니다. 

 저는 3살때부터 아버지께 폭력을 당해왔습니다.

당연히 3살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어릴때 제가 잠귀가 밝아 말소리에 깨어이모가 어머니께 이야기한것을 들은 기억이죠. 그때의 나는 코피가 터져서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라고반복을 해도 계속 맞기만 했다는 군요. 

어릴때 이모가 종종 저희집에 자고 가는 일이 있었는데시끄러워 이모가 잠에서 깨어 목격을 했다는 군요. 

저희 어머니는 22살 어린 나이에 속도위반으로 저를 낳으셨다 들었습니다.당시 9살차이나던 노총각이었던 아버지의 공장에 어머니가 경리로 들어오셨고젊었을때 꽤 미인이셨던 저희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어찌어찌하여 저를 먼저 가지고낳고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어릴때 일찍이 저에게는 외할아버지인 아버지가 돌아가셨기때문에,나이차이가 났던 아버지에게 안정감을 찾으려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그렇게 어머니께 들었네요. 

하지만 세상물정모르고 철썩같이 아버지만 믿고 따라온 어머니는아버지가 어머니가 저를 임신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바람을 피우셨고,어머니께 상습적인 폭행을 행사하였습니다. 

제가 기억나는건 유치원다닐 나이때,빈번한 아버지의 폭력에 어머니가 저와 동생을 데리고 외갓집으로 도망쳤던 기억뿐이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건 식탁의자로 바닥에 누워계신 어머니를 아버지가 찍으려 한 기억이 아직도머리속에 맴돕니다. 

그뒤,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때,이제는 저에게까지 폭행을 행사하셨습니다.그전까지만 해도 가끔씩있던 폭행이,자주 일어났습니다. 

어린아이가 잘못을 하면 얼마나 할까하겠냐만은그것뿐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투면서 어머니에게 폭행을 행사하는걸,제가 말리면 저에게 화가 닿아서 그것때문에도 많이 맞았네요. 

아직도 그생각만 하면 손발이 차가워지고 손이 떨립니다. 머리채를 잡혀서 안방에 들어갑니다.

그리곤 아버지가 문을 잠그지요.
저는 두려움에 자꾸만 구석으로 피합니다.

멍청하게 구석으로 피하면 맞는 곧이 곧대로 다 맞는데 저는 그렇게 똑똑하지 못했나 봅니다.

어떤 날은 벨트로 맞고어떤날은 옷걸이 봉으로 맞고또 어떤날은  돌돌 꼬아서 만든 세탁소 옷걸이로 맞기도 하고주먹으로, 발로 참 안맞은 도구가 없다고 할 정도로 온갖걸로 맞았네요. 그러면서 이야기하셨습니다. 너같은 말안듣는 딸년 누구도 안좋아할거라고. 너가 큰아들이였으면.

저는 아버지에게 자식도 인간도 아니였습니다.  
아버지의 바람은 여전했고,어머니는 병들어가서 저에게 화풀이하며 손찌검하는 날이 늘어나고아버지가 오지 않는 밤엔 부엌에서 술을 마시며 우는 날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던 9살 때,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가을쯤의 금요일 밤 10시 23분,여전히 아버지는 공장 경리랑 눈이 맞아 들어오지 않았던 밤어머니께서 코트차림으로 집을 나서려 하더군요.

저는 어머니께 어디 가느냐 물어봤고,어머니는 그런 제 질문에 아파서 병원에 갔다 오겠다라며집을 나섰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고,아침이 되어 일어났을땐 어머니는 여전히 집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학교 갈 시간이 됐는데도 오지 않으셔서 학교에 가지않고 기다렸습니다.
종일 내내,
 4살차이 나는 제 남동생은 엄마를 찾으며 울며 보챘고,저도 아무것도 할줄 모르는 어린 아이인지라,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먹고 동생에게도 먹이며이틀을 보냈습니다.

이별이란 말도 ,거짓말이란 말도,모든걸 간파할수 있는 나이가 아니였기때문에,그저 어머니만 기다리는 이틀째 되던날,아파트 인터폰으로 경비아저씨가 짐을 찾아가라고 하더군요. 

동생과 저는 경비실에서 제 키만한 하얀 비닐봉투를 힘겹게 집에 들고왔고,그안에 들어있는건 남자애들이 좋아할만한 로봇과 장난감 차,그리고 저에게는 인형과 연필깎기 그외 학용품들,뜻밖의 선물에 철없던 저희는 어머니가 오지않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설레며 하나씩하나씩 꺼냈고, 바닥을 드러낸제일 밑바닥에 편지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편지에는,엄마는 너무 힘들어 하늘나라로 먼저 가있는다.우리 XX와 XX는 다신 볼수 없지만 나중에 한참 나중에 하늘나라로 오면 만날 수 있다그때까지 엄마가 지켜볼테니, 동생 잘 챙겨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커야 한다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죽음이 어떤건지 다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나이였지만,그래도 하늘나라는 죽은 사람들이 가는것정도는 알기때문에,미친듯이 울었습니다.

제가 우니 남동생도 따라 울었습니다.차마 동생에게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서 저도 9살짜리 아기였기에 그냥 울기만했습니다.

그 나이때 세상의 전부는 부모인데 세상의 전부를 잃었었습니다.얼만큼 소리내서 울었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그 며칠동안,저는 여전히 학교에 가지 않고 아버지는 여전히 여자에 빠져 집에 들어오지 않으시고,모르겠습니다.

그때 기억은 도무지 나지 않네요.. 
아무튼 며칠의 시간이 지났을때,누군가 벨을 눌러서 놀란 저는 문을 황급히 열었고,보인 사람은 어머니가 아파트에서 친하게 지낸 아주머니였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제가 학교에 며칠동안 나오지 않으니,어머니와 같은 학부모회에 있었던 아주머니가 어찌어찌해서 제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되어 찾아오신것 같네요.. 어쨌든 아주머니가 놀라시며 저희를 데리고 집에 데려가 밥을 먹이고,어찌어찌해 아버지가 오셔서 저는 한동안 고모집에서 밥을 먹고 통학을 했는데,잘 기억에 나진 않지만, 밥을 먹는 제앞에서 고모께서 그 썩을 년은 어디 쳐가서..하며했던 말이 기억이 나네요.

 어찌어찌해,보름이란 시간이 지났나.다신 못볼것 같던 어머니가 집에 오셨고,저는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할머니와 고모에게 아버지의 외도와 그동안의 행적을 어머니께서 말을 했고,그런 어머니에게 할머니와 고모는 온갖 욕이란 욕은 다 하셨고,  셋째이모와 같이 아버지가 바람핀 상대인 공장경리 집에 엎으려고 찾아가니,아버니는 그 년과 그 년의 방에 누워있었고, 오히려 경리년 가족들은 미안해서 고개를 못들긴 커녕이모와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아버지조차 이모와 어머니를 폭행하며 입에 담지 못할욕을 했다 합니다..

그때 당시에 아버지의 사업이 잘되고 있었고, 경리년 가족은 남자가 돈이 많으니,계산을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도저히 감당할수 없어진 어머니는 ,수면제란 수면제는 약국을 돌아다니며 다 사셔서,외할아버지가 묻혀계신 산소에 가서 죽을 생각으로 약을 먹으셨는데,산소관리하시는 분에게 발견이 되어, 병원에서 위세척을 받고 입원하셨다고 한참 뒤에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오시고나서 외가쪽과 친가쪽의 집안어른들은 저희 집에 와 집안이 발칵 뒤집어 졌고,어찌어찌하여 무마가 된것 같이 보였습니다. 

저는 너무 어렸고 할수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아버지는 이제 저에게 폭행만 행사하는게 아니였습니다.

자꾸만 제 몸을 보시고,자주 옷을 걷어올려 제 젖꼭지를 꼬집으며 요즘 애들은 발육이 빠른데 넌 왜 가슴조차 나오지 않냐며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사춘기가 저에게 찾아오고 나선 그게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는 행동이란걸알게 되었습니다. 

13살의 어느날,어머니가 볼일보러 가시며 아버지께 동생과 목욕탕에 가라 하시며 나가셨고,아버지는 집에서 목욕한다며 저보고도 옷을 벗고 들어오라 하셨습니다.

그때의 나는 초경을 한데다가 가슴이 나오는 시기였고,거북감을 느껴 싫다고 했습니다.그런 저에게 아버지는 계속 옷벗고 욕실에 들어오라고 했고,아니면 동생과 나가서 한동안 안들어올거다.

엄마도 한동안 안들어오니 너혼자 이 넓은 집에있어야 한다라며 반 협박을 했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또 때릴까 무서웠던 저는,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갔고,너무 적나라한 아버지의 눈길에 빨리 나가고 싶었지만,가슴이 왜이렇게 작냐며 젖꼭지를 꼬집고 만지고 밑에 털났는지 보자며 만지시면서,미국에서는 아버지와 다큰 딸이 같이 목욕을 한다.이상한 일이 아니다.라며 전혀 논리 적이지 않은 말로 저를 설득시키려 했습니다. 

그뒤로도 그런 말을 몇번이나 했지만,뭔지는 모르지만 이건 나쁜거라는 인식과 너무 수치스러웠기때문에 거절을 하였고, 그와 동시에 오는건 이제 어머니에게 올 폭행의 횟수가 저에게 많아짐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에 들어갔고, 어머니의 뒤틀린 저에대한 기대와 집착으로,늘 제방은 제가 학교가고 나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뒤졌고,저는 어릴때부터 늘 겪었던 일이기 때문에뭐가 나쁘고 뭐가 옳은지 판단할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어머니의 폭언과 뺨을 때리면 맞았고,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이르면 또 머리채를 잡혀 문잠긴 안방에서맞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일기를 일기장에 쓰지않고 다이어리에 적었다 하여 죄지은 사람처럼 소릴들었고 맞았고만화책을 보지말라 했는데 몰래 빌려왔다 하여 맞았고,그림그리기를 좋아해 몰래 그림을 그렸다며 맞았고고집이 세다며 억세다며 맞았고성적이 나오지 않아 맞았습니다. 

저는 개였습니다.저는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저는 딸이 아니였습니다. 
어머니에게 저는 화풀이상대가 되었고아버지에겐 인형,노리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게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못하고 다 받아냈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자신의 아픔만을 생각하지 않고 언젠간 제 상처도 보듬어 줄거라는 희망아버지가 정신차리고 자상한 아버지가 될거라는 희망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수 있을 거란 희망 희망은 매일매일 무너졌고또 다시 멍청하게 희망을 가지고또 무너지고, 그러던중, 어머니가 찜질방에 간다고 한 날. 아버지를 기다리다,저는 동생과 먼저 잠을 잤고술취한 아버지가 밤늦게 들어와 구두를 신은채로 저희가 자고 있는 방문을  연날,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있는 제게 입을 맞추려 했고,놀라 깬 제가 반항을 하자 무참히 늘 당해왔던 폭행을 행사했습니다

구둣발로 밟기도 하며 저를 눌렀습니다.
순간 저는 밑에 자고 있는 동생이 생각났고,동생은 남자라며 손찌검을 아버지가 하지 않는게 기억나,터진 입술로 미친듯이 동생이름을 불러서 깨운뒤 동생 뒤에 숨었습니다.

하지만 술이 떡이 된 아버지는 제가 동생 뒤에 숨는게 열받았던지,말는 동생을 구둣발로 마구 밟았고,밀리고 밀리다 책상밑까지 밀려 저와 제동생은 힘없이 당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다음날 어머니에게 자세히 이야기하면 충격먹을까 맞았다는 이야기만 했고제가 말한걸 알게된 아버지는 저에게 와서 한마디 했습니다.왜 쓸데없는걸 이야기했냐고. 

그뒤로도 위가 안좋은 저에게 배를 문질러준다며바지를 골반 밑까지 내린뒤 음부 털을 장난친다며 뽑는다던지가슴을 만진다는 행동은 계속 되었고, 폭행은 점점 심해져 맞은 다음 날은 학교에 결석하거나 지각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제가 어머니는 창피함이 먼저였는지 거짓말을 해라고 했기때문에 늘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17살되던해,저는 모든게 분노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릴때 저희를 버리고 죽으려 했던 어머니도 증오스러웠고,아버지는 혐오감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사업부도가 났고 ,집이 경매가 넘어가고가구마다 빨간딱지가 붙었습니다. 

집에는 매일 빚쟁이라는 어른들이 찾아와,벨을 누르고 문을 차고 두드리고 욕을 해대고,그럴때면 쥐죽은듯 없는 것처럼 숨죽이고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나쁜 길로 빠져,담배를 배우고 술을 배웠습니다.   
어차피 개가 되도 맞는 거면그들이 의심하는대로 나쁜 길로 빠져도 더이상 나쁘게 될것도 없었으니까 분노와 관심받고 싶은 마음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증오 혐오감 한번 꺼내니 모든게 다 터져나왔습니다. 충동적으로 가출을 했습니다.집이 집처럼 안느껴졌으니까.

이틀째 가출을 하고 잡혀들어갔습니다.
의외로 아버지는 잠잠했고 어머니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조금의 희망과 동시에 비웃음이 났습니다. 

내가 겪은 고통과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부모가 나를 이렇게 몰아세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죄책감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어떻할거냐 질문을 했고저는 자퇴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실업계였고 당시 어머니의 기대에 한참 못미치는 학교였기때문에쉽게 승낙이 되었습니다.그런뒤 머리카락을 잘렸습니다. 아니 잘렸다기 보다 빡빡 밀렸다는 표현이 맞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서울 큰이모집으로 보내졌습니다. 
나를 밀어냈다는 좌절감이 물밀듯이 밀려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멍청하게 또 희망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던 저에게 혐오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전화도 인터넷도 밖에도 마음대로 다니지 못했습니다.항상 허락을 맡아야 사용할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4개월을 보낸뒤 저는 다시 집으로 부산에 있는 집으로 보내졌고다시 반복이였습니다.  
저는 더이상 인간자체에 믿음도 없고미련도 없고  살 의지도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일가시고 아버지와 어쩔수없이 집에 있게 되면구실을 내세워 제몸을 훑어 보고는 몸을 더듬고가슴크기를 재봐야한다며 가만히 있어라며 아빤데 어떻냐며훑어댔습니다.

수치심은 느꼈지만 그때처럼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폭행을 당해도 더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맞으면 죽을 것 같아서,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죽을 용기는 없으니까 죽여줬으면 했습니다.
 저를 죽이면 저는 해방되서 더이상 이런 구역질 나는 날들을 하루하루 보내지도 않을거고,아버지는 살인자가 되서 법의 처분을 받을거고,그럼 어머니도 해방 되는거니 손해볼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이 모든것들이 손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항상 유서를 준비했습니다.
내가 죽었다면 죽인 사람은 아버지다라고 써놓은 유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맞을때마다 꽤 심각할정도로 맞았기때문에 절대 과한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절을 한번 잠깐동안 했었습니다.
아마도 정신잃기전에 아버지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제 팔을 억세게 잡아당기며 쑈하지 마라구요.
저라는 존재는 이미 오래전부터 없는 거였고,나는 동물보다 못하게 다뤄지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 일부러 더 때리도록 말대꾸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제가 바라는대로 흥분해서는 머리채를 잡고 가구에 머리를 박아댔습니다.죽여달라고 수없이 빌며 몸으로 다 받아냈습니다.

웃으면 더 맞았습니다. 
저를 밟을 때의 그 눈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러다 어머니가 도망치라면 동생과 외갓집으로 도망쳤고,버스안에서 울다울다 도착하면 이모는 또 온몸에 번진 피멍과 피딱지를 보며분노했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누구도 나를 여기서 꺼내주지도 손을 내밀어주지도 알아주지도 않았습니다.  
외갓집으로 도망친 어느날,처음으로 전화로 어머니께 울면서 말했습니다.
제발 이혼해라고.. 애원했습니다.
살려달라고 어머니는 울먹거리며 그것만은 안된다며당신은 어릴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때문에 어떤 인간이든 아빠는 필요하게 되있다며안된다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울면서 속내를 말했습니다.
어머니아버지는 선택한 길이었지만,나는 선택해서 태어난게 아니잖아요.어머니 아버지는 선택한 결과지만나는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왜 이래야 하냐며 처음으로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나는 외갓집에서 며칠 지내다 다시 제발로 그 구역질 나는 곳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반복됐습니다.
 하루에도 수백번 죽였습니다.
죽일 용기가 없어 수백번 죽였습니다.
머리속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방식으로 죽였습니다. 

그러던중 이모의 권유로  대안학교에 보내졌습니다. 
하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상당히 위험한 생각만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자기 방어만을 일삼았습니다.
 상처받기 싫고 마음을 줘서 고통받기 싫었습니다.
 그런데 말을 하지 않아도 저를 보며 울어주며 안아주는 곳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버지께 맞아서 실명될 뻔한 눈을 안대로 감싸고 어머니가 가르쳐준대로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거짓말을 하는 걸 알아채려주고 그저 머리를 토닥여주며 소리내서 울어도 된다고 말해준 곳은처음이었습니다. 

저는 사랑을 받고 주는 것보다잃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을 먼저 배웠기 때문에,그 곳에 마음을 주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도,몰아세우는 곳보다 기다려 주는 곳 또한 처음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오히려 집처럼 생각했고, 그 안에 있는 동안은 내 꿈을 생각할 수 있어 좋앗습니다.
 치유가 되는 기분이었고 뭐든 할수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20살되던 1월달 ,집에 돌아오니 부모님은 싸우고 계셨고,아버지는 짐을 챙겨 다신 여기에 오지 않을거라며 나갔습니다.그당시에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여자네집에 갔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갑자기 희망이 보였고,집도 없고 돈도 없었지만,외할머니께서 세주는 방에 셋이서 들어가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비록 산동네였지만 살면서 비막고 밥먹고 잘수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아니 아버지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대학캠퍼스도  학교마치고 알바하러 오는 동갑내기 아이들의 학교투정도 너무 부러웠지만,긍정적으로 살려고 했습니다. 

어머니도 괜찮아질거라 생각하면서어머니,나,동생 이렇게 열심히 셋이서 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이제 너에 관한 모든걸 다 알아서 하고생활비를 달라길래 알바월급의 반은 생활비로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돈이 없으니 어머니는 점점 예민해져갔고저 또한 예민해져 갔습니다. 자주 갈등이 있었고,너가 해준게 뭐냐는 소리에저는 항상 생활비를 보태줬지 않느냐 하면고작 그거 줘놓고 이러냐는 그런 식의 갈등은 계속 됐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저는 다시 무기력해지면서 책읽듯이 이상을 꿈꿨습니다.

  어머니는 너를 안낳았으면 나는 내인생을 살았을텐데라는 말을 술에 취하시면 하기시작했고, 저는 또 차라리 그럼 저를 낳지 말지 그랬냐며화를 내며 울었습니다. 

존재자체가 부정당하는건 익숙한일이었는데도 서러움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를 여전히 몰라주며 갈등이 날때마다 울면서 못살겠다며이모와 외할머니에게 전화하며 저를 나쁘게 만드는 어머니,늘 동생만 감싸며 저를 안아주지 않는 어머니가 너무밉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독립아닌 독립을 했었고,저와 2살차이나는 남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쉽게 처음을 주었습니다.

남자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싶어서그게 없으면 조금이라도 없어질것 같아서 사랑도 했습니다.

 지나친 집착때문에제 목을 조르며 계속 내옆에 있게 하고 싶어서라는 정신병자같은 말을 해도,사랑에 눈이 멀어 멍청하게 만났습니다. 

그러다 임신을 했고,남자친구의 권유에 수술을 했고, 그것때문에 죄책감에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런 내가 지겨웠던지 남자친구에게 여자가 생겼고, 저는 버림받았고추잡하게 매달렸습니다.
온갖말을 들으면서도 매달렸고 그러다 반강제적으로 관계를 맺고죽고싶고 고통스러웠지만그렇게 반강제로 당하고나니 안될것같아 포기하려 노력했습니다.
 몰두할게 필요했습니다.
어머니와 사이가 조금은 호전이 되어 혼자 있으면 일저지를것 같아 다시 집에 들어갔습니다.
간절히 원했던 대학을 가고 싶어대출을 받아서까지 입학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아버지의 빚때문에 사람들이 학과사무실까지 전화가 와다닐 수 가 없었습니다.  전 다시 헛돈을 썼었습니다.
너무 길어지네요..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버려 어질해집니다..   저는 지금 손쓸수 없을만큼 망가진것같습니다.긍정적으로 생각할려고해도멍청한 희망도 생겨나지가 않습니다. 
25살인 이나이가 빨리 먹어버렸으면 합니다. 너무 지쳐서 그냥 모든걸 놓아버리고 싶습니다.  메말라서 더이상 나올 눈물이 없습니다.로봇이 된 기분입니다.  
행복한걸 바랬던 것도 아니였습니다.만족할정도의 욕심을 바랬던 것도 아니였습니다.

 평범하게만 살고 싶다는 그게 너무 컸나요.
저에게 과분했던것 같습니다. 
이젠 살 힘조차 없어졌습니다. 
저는 신이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진짜 존재한다면 이렇게 불행만을 주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사람이 미칠것 같고 조금만 정신놓아도 돌것같으니,절박한 심정으로 교회가서 기도도 해보고절도 가보고 성당도 가봤습니다. 정말 뭔가 이뤄진다기 보다,정신을 다잡고 싶어서요.  

그런데 그것도 한순간 뿐이더군요.. 죽어야 할까요?
더이상 살아봤자 의미도 못느끼겠고,이렇게 산시체나 다름없이 살거라면,그만 두고 싶습니다. 사람이 사는데 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다는데저는 그의미를 잘 모르겠네요.

저는 없었으니까요. 머리가 혼미해지네요..그만 써야 할것 같습니다. 생각하면 너무 힘들어져서 애써 외면하고 살고 싶었는데,어머니 외할머니 3억이란 빚을 지게 해놓고 사람 신용불량자로 다 만들어놓고정작 아버지란 인간은 빚을 다 갚았는지 어쨌는지,자기 명의로 만든 신용카드 갱신다됐다며 저희집 우편함으로 봉투가 와서설명할수 없는 감정이 다 터져나올것 같아서썼는데 너무 길어졌네요.. 

 다들 힘들때 술을 찾는다던데,저는 힘들때 저혼자 버텨올수 밖에 없고 어디가서 말할 수 도 없었기 때문에친구들에게 기댄적이 없네요..마음을 잘 열지도 않고 그렇게 연락하는데 미련을 가지는 성격도 아니라서친구도 이제 얼마 안남았구요.. 

그냥 복잡한 감정들이 자꾸 가슴속에 맴돕니다.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남들은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보면 웃음나는 일이 한가지라도 있겠지만저는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보면 괴로움밖에 안느껴지네요.어떻게 지금까지 살았나 싶기도 하고,숨쉬고 있는 내자신이 독하기도 하고,  2시간 내내 혼자서 풀어내듯 나오는 대로 쓰고풀어내면 저도 감당못할 이야기들이 많아 감출건 감추고..그래서 내용이 뒤죽박죽 같을 거라 예상합니다. 

그럼에도,만약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진심으로 그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다들 보니까 이렇게 감사의 말을 올리던데 민망하네요..

남한테 한번도 제 속에 있는 것들을 털어놓은 적이 없어서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주는 것 아니냐는 미안함과   너무 수치스러운 기억들인데,부끄러움이 들어 글을 지우기 위해 들렀는데 여러가지 의미로안지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망설였거든요..  감사합니다. 
어쩌면 님들은 그냥 스쳐지나가듯 저에게 말을 건넨 것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을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평생 기억이 날 것 같네요..그래서 감사합니다. 
하나하나 몇번이고 읽으면서 나올것 같지 않던 눈물이 나왔습니다.몸이 들썩거리면서 자꾸만 눈물이 멈출줄 몰랐습니다.
숨이 넘어갈듯 울어본건 오랜만이네요. 

나와 공감을 해주고 잘못되지 않았어라고 품어주며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내가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나를 위해 울어주고 속상해해주며 나를 안심시켜주며 사랑한다고 말해주며 저의 재능을 찾아봐주는, 내가 가장 간절히 가까이에 있는 그들에게 바라고 바랬던너무나 바래서 그때문에 희망을 놓치 못하며 어린시절을 보냈는데그 모든 것들을, 어째서 그 사람들은 몰랐던걸까요?사람이란 참 묘합니다.멍청하기도 하고요.. 

가장 간단하면서도 나를 행복하게 할수 있는 답들을나는 나의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아무것도 아니였네요하시는 분들...결코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라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듯,힘든것을 받아들이는 것에도 정도는 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주어진 환경에서 불만을 가지지 않거나상처를 받지 않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해요. 

결코 저에 빗대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그저 각자 살아가는 다른 환경속에서 각자가 받는 상처나 힘든 점은 나보다 못하다 해서 우습게 보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던진 말한마디를 각자 다르게 받아들이듯이,나와 님들은 다른 사람들이니까요.다만 저를 보며 힘내시는 것은 좋아요..무슨 이유든 무슨 일이든 힘이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요. 왠지 모순된 말이여도, 비록 지금 한심하긴 해도 적어도 그런 생각은 해요.타인의 다름은 비교를 해야되는 대상이 아니라 그냥 인정하는것,  정리가 안되는데 무슨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어머니는 서울에 가시고 동생은 군대 입대를 하기때문에 지금은 같이 살지 않아요.다만 저 혼자만 이집에 머물러있네요..몇몇 분들이 아버지랑 산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것 같아서요..

 아버지는 그때 나간 제가 20살 이후로 같이 살지 않고 있어요.진작 이혼 좀 하지 제가 21살 되서야 강제이혼을 했고,등본말소를 시켰습니다. 생각해보니,..내가 애원애원할때는 들어주지도 않더니 엄마 진지하게 만나는 남자친구 생기니까저보고 진술서 써달라고 했군요.. 그때 생각하면 그냥 별 느낌이 안드네요.  음..그리고 제가 원래 속내를 털어놓고 기대는걸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요.

친구들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속내를 털어놨다는 이제는 전남친에게도 완벽히 털어놓은 적도 없구요.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고 하지 않을거라고 아마 생각해요..

나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무거운 것을 던져준다는 자체가 저에겐 오히려 부담스러워서요.

또 연락와도 별로 인간관계에 대한 중요성은 알지만 지연성은 못느껴서요.진심으로 나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언제든 만나도 어색함이 없을거고아닌 사람은 서서히 연락이 끊기고 어색해진다음 만나지 않아지는 것은 어쩌면자연스럽다고 생각하니까요.

저같은 타입은 아무래도 친구가 많지 않게 되죠.  많은 분들이 경악을 하실만큼 힘들었던 건가요..?

전 사실 너무 어릴때부터 이렇게 살아와서제가 뭐가 대단하고 이렇게 님들이 놀라워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그냥 저는 이게 제삶이였으니까요. 사실 힘들어한건지 어떤건지 모르겠습니다..

  살 의욕은 여전히 없어요.미련도 없구요.생기게 할려고 해도 없네요. 모르겠어요. 어릴때 너무 쉽게 죽는다는 것을 가까이 경험해서 그런지허무한것이 각인이 된것 같아요.  

그래도 죽을 용기는 없으니,살겠죠. 행복해진 다는 확신은 없겠지만요. 이글은 평생 두고두고 볼거에요.힘들때마다 두고두고 볼거에요.   지금은 매일매일 하루에 한번씩 봐야 겠어요..

왠지 이글을 보면서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거든요..
 참 글은 신기해요..
그쵸? 그리고그 어떤 명언보다화려한 말보다더 가치 있는 말들이 많으니까요.   

 눈물이 멈추질 않네요..아프기도 한데 설레고 고통스럽기도 한데 동시에 따뜻함을 잠시 느껴요.. 님들은 저한테 어떤 것을 줬는지 얼마나 큰것을 선물해줬는지상상도 못하실거예요.. 

그냥 감사해요.너무나요. 그리고, 저에게 연인이 언니가 오빠가 아빠가 엄마가 동생이 선생님이 되서 저를 보듬어 줘서 너무 감사해요.. 넘치는 따뜻함을 전해줘서 너무 감사해요.. 

그리고,그거 아시나요?님들은 지금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신걸요. 
분명 글을 올린건 저지만,님들의 말한마디한마디가 저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힘이 되고 있네요..
그 다른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무엇보다 저는 그게 너무너무 고마워요..                  
님들은 제가 평생동안 가장 듣고 싶었던 말들을다 해주었어요. 

이 글을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행복과 함께 하길 빌겠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2024년12월23일
날씨가 많이 춥죠
13년이 지난 여전히 저는 저자신과 싸우고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한대로 저는 힘들때마다 13년동안 댓글을 봅니다

그래서 미안하기도하지만 지금까지 댓글을 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몇건이나 삶을 저버리고싶을때 산소호흡기처럼 찾았습니다.

아직까지 댓글써주시는 분들께 너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제가 언젠가 삶을 저버리고 싶었을때 그래도합리화사면서 한번만 읽고 가자고 했을때 여전히 쓰시는 댓글때문에 울기도 않이 울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저는 어쩌면 저의 무기력과 평생 싸워야할지도 모릅니다.
책은 꼭 쓸게요. 제가 감정을 지껄이듯이 썼지만 제글로 인해서 서로 아픔을 내비치고 위로하면서도 있고 제자신이 위로가 됐기때문입니다
그땐 지금까지 보신분들끼리 알아보는 힌트를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저는 그때와 다르게 때가 묻었지만전여전히 말이 없어도 말한것처럼 힘들때마다 십년넘게 읽고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살게 해주셔서 나의 민낯의 모습이 못났지않구나 깨닫게 해주셔서.

그리고 답이 늦어 너무 죄송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살고 싶어요

   
추천수2,493
반대수22
베플321|2011.07.22 11:48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아름답고 건강하고 훌륭한 여자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세상의 온갖 더러움에도 그 빛을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글이 흔히 말하는 소설 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남자는 정리하시고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있는 일을 먼저 시작 하세요 폭압받던 기억은 성욕으로 이어집니다 이미 그럴 수있겠지만 그럴 수록 더 남자에게서 벗어나려 하셔야 합니다 자신을 포기하지마세요 당신은 충분히 사랑스럽고 미래에는 존경받을 수있는 여성입니다
베플 힘내세요|2011.07.22 12:46
처음으로 댓글이라는걸 남겨봅니다. 읽는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네요. 글쓴님의 마지막 읽어주는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내용까지..님의 이야기를 함께 아파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많다는걸 알려주고 싶어서 글을 남깁니다. 사는게 너무 힘들다고 해서 절대로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주변이 없어서 뭐라고 얘기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지만...님의 답답한 마음을 여기에 털어놓으시면 열심히 들어드릴께요.. 기운내세요..님은 소중하고 귀한 사람입니다. 분명 행복해지실거에요..
베플|2011.07.22 13:27
저라면 못견뎠을 겁니다. 정말로.. 님은 충분히 지금 훌륭하세요.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고 행복을 찾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베플ㅈㅂ12|2011.07.22 18:08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니 잘못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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