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33 살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고,
신앙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칼뱅주의(Calvinisme)에 반대함으로써
교황 클레멘스 8 세에 의해
회개할 줄 모르는 완강한 이단자로 몰려 공식적으로 사형이 선고된 브루노는
1600 년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불에 타죽었고,
니체는 말년에 그 총명한 정신을 놓고 몇 년을 미쳐서 살다가
1900 년에 몽달귀신으로 죽었고,
< 변신 (Verwandlung) >을 쓴 카프카는 41 살에 무명으로 죽었고,
스피노자는 법정 상속인도 없이 44 살에 폐병으로 죽었고,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운명이다..."
는 유서를 남긴 노무현은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63 살에 자살했고,
피터팬 신드롬과 메시아에 대한 망상과 공황장애 등으로 인해
"Wacko Jacko(괴팍한 재코)"라는 억울한 별명으로 불리면서도,
그의 노래 'Billie Jean' 을 통해
"And be careful of what you do, 'cause the Lie becomes the Truth."
(언행에 유의해야 하는 것은 거짓이 진실이 되기 때문이다)
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노래했던
'팝의 황제(The King of Pop)' 마이클 잭슨은
꽃(!)같은 나이 50 살에 '급성 심박정지(SCA)'로 죽었다.
¡¡죽음에 이르는 경지(境地)!
경지란,
삶의 우연성이 깊이를 만들어 놓아,
그 곁을 지나는 인업(因業)조차 빠져드는 블랙홀 같은 것.
그러므로
그저 세월이 죽음에 이르는 '경지'를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쉽게 죽는 것도 아니고,
죽는다고 경지에 다다른 것도 아니다.
오래 살 욕심이면
천년 묵은 향나무 같은 맵시를 얻을 수 있던지...
¡¡¡내 죽음에 대한 몇 가지 구상, 혹은 소망 :
1) 앉아서, 또는 서서 죽을 것 ;
2) 그 때와 곳을 미리 알 것 ;
3) 마지막 호흡에 이르도록 내 몸과 마음을 추스릴 것 ;
4) 주위 없이 혼자서 죽을 것 등등...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했던 예수를 떠올려 본다.
"내 고독은 형용할 수 없는 것이오" 했던 니체를 생각한다.
촛불 촛농에 검지 손가락 끝을 대어보면서
브루노(Giordano Bruno)를 느껴본다.
나를, 그 나를 쳐다 본다.
아, 나른한 나르시시즘.
¡v언제였더라,
대학 시절이었나, 연구소 시절이었나...
뜬금 없고 난데 없이 차를 몰아 물어물어 다산초당에 간 적이 있었다.
도착한 것은 어둑해질 무렵이었고,
차에 있던 소니 캠코더 플래시를 라이트 삼아 다산초당에 올랐다.
(근데 캠코더가 왜 차에 있었던 거지? ㅡ.ㅡ;;;)
정조 사후 '신유사옥'으로 인해
1801 년부터 무려 18 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정약용이
1808 년 봄부터 머물렀다는 다산(茶山)초당은
그야말로 그가 많은 저작을 다산(多産)할 수밖에 없었을 법도 했다.
다산초당 주변은 그의 외로움이 도처에 삭아있어 보였고,
정약용은 그렇게 외로움 속에서 글을 썼으리라.
글쓰기는 인간주의를 넘어서기 때문이고,
그를 감당할 동무가 없기 때문이리라.
v한 20 일여 시간에 쫒겨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고,
그 와중에
사람이 그립지 않은 경지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기분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제, 오늘은 마치 상처입은 동물처럼 12 시간 이상을 잤다.
느즈막히 일어나
해질녘, 잠시 나섰다가
문득 지나가는 여자의 손바닥만한 짧은 치마에
잠시 눈이 머물렀는데,
그 손바닥만큼의 깨우침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하아얀 여름 햇살의 한쪽은
여인의 허벅지를,
다른 쪽은
선사의 이마를 연상시킨다.
몸으로, 성숙으로...
v¡저녁엔 마침 케이블에서 해주는
영화 < 진주만(Pearl Harbor) >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 내용과 관련해서, 아니 어쩌면 무관하게,
그리움과 아쉬움이 한 가지씩 떠올랐다.
그리움은,
순정(純正)한 지향과 신념을 관철하기 위한 고집만으로 살고,
나눈 뜻과 의리에 죽는 삶이 불현듯,
언제 살아보기라도 한 듯이 그리워졌다.
그게 내 그리움이고...
아쉬움은,
글에 손이 무디고
책에 눈이 무딜 때
금융과 경제와 경영과 법률로 가슴이 무딜 때,
설령 어눌하더라도
간간히 정교한 사색과 감성의 흔적이 드러나는,
그러나 반복되면서 유형화되고,
그 유형이 급기야 감상주의를 내비치는 결점으로 떨어지지 않는,
그런 가까운 동무와 담소하고 싶다.
그게 내 아쉬움이다.
고답적이고 전형적인 법률용어나,
메마른 컴퓨터 용어나,
일방적인 업무 지시 따위의
죽은 말들이 아닌.
v¡¡혼자 오래 견디며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는 삶에
너무 깊이 젖은 탓인지
조그만 변화에도 감가상각이 있으니,
아직도 내 공부는
'그리워하지 않기' 에서,
'아쉬워하지 않기' 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가.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고 살려고 했는데,
치솟아 올라가는 롤러코스터의 숨가쁨처럼 살려고 했는데,
틈을 주지 않는 일출(日出)의 매정함처럼 살려고 했는데,
아, 덫을 놓은 다정(多情)과 어울려 오늘도 지지부진,
심정은 궁상을 떨고,
사념은 번뇌일 뿐이다.
부단번뇌득열반(不斷煩惱得涅槃),
몸으로, 성숙으로...
v¡¡¡달, 달아!
운명보다 한 발 앞서 만나고,
운명보다 한 발 앞서 떠날 나에게,
그러나
오늘 밤은 더디게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