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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특급 제41화 (흉가①편)

smile*at*me |2008.07.31 02:20
조회 2,636 |추천 0

 아래 내용은 '[출처]공포를 즐기는 사람들' 에서 원문(실화)을 가져왔으며, 스토리상 문맥이 맞지않는 부분과

좀 더 스펙타클하게 옮긴이가 부분 수정 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흉가 ①편

 

 

 

 

어제 였던것 같습니다, 집에서 텔레비젼을 시청하는데 우리 나라에 있는

흉가를 주제로 한, 어떤 프로를 보게 되었죠. 그 프로는 흉가에 얽힌 전설이나 이야기를

게스트들의 시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진위여부를 가려내는 프로였는데

무척이나 저에게는 흥미롭게 다가 왔습니다. 

 

 

그 프로를 보면서 문득 고등학교때 본의 아니게 친구와 함께 흉가에서 5개월간

거주하면서 겪었던 일 들이 기억이 났습니다. 무섭고도 괴상한 그리고 믿지못할 일 들을

저 혼자만의 기억으로 남겨 두기에는 너무 아쉬워 여러분께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참고로 저희(저와 같이 자취한 친구)는 나주사람이 아니라

외지인이라, 그 곳이 흉가인지 모르고 살게되면서 겪은 이야기임을 알려드립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2월말에 부모님과 함께 나주에 와서 그 자취방을 살펴보게 되었는데,

제 친구의 부모님께서도 저 와 같이 자취를 하는게 여러모로 낫다 싶으셨는지 저 와 같이 자취할수

있도록 허락을 해주셨고 그렇게 저 와 친구는 함께 그 곳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습니다.

 

 

매 월 10만원씩 계산하여10개월의 방세를 미리 선불로 100만원 줄 것을 요구하여 계약때

100만원 을 선불로 주고 살게된 집, 그러나 10개월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서둘러 짐 싸들고 죽지

않을려고 도망치듯 다른 곳으로 옮겨야했던 속 쓰리고 아픈 기억이 있는 집.

 

 

귀신이 나오고 유체가 이탈되어 또 다른 나를 보았던, 그리고 그후로도

계속되는 말도 안되는 정말 겪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할정도로 말도 안되는 그러한 체험들...

저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을 겪으셨다면 평생 잊을수도,

잊혀질수도 없음을 알게 되실텐데....

 

 

저녁이 되면 붉게 물 든 노을이 나주 평야를 샛 빨갛게 물 들이고,

논밭에 곡식들은 퍼렇게 익어가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던 그런 집,

어느 누군들 그런 집에서 귀신이 나오리라고는 과히 상상도

못할 그런 이쁜 집 이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우리가 처음 귀신을 겪은것은 1994년 쯤으로 어느 이른 봄 날 이었습니다.

장소는 전남 나주시 남평면 무슨리였는데 자세한 주소는 민폐가 될 수도 있기에 과감히

묻어두겠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친구와 함께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외관상 보기에는

아주 멋진 2층 양옥집 이었던것으로 기억됩니다.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있고,

그 한복판엔 작은 연못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그 연못을 가로지르는

디딤돌이 놓여져 있었죠.

 

 

친구와 전 2층에서 따로히 거주를 했기에 실내에 화장실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그 디딤돌을 딛고 연못을 가로질러 가야 외부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 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마 2층에 테라스 비슷무리한 공간이 있었는데, 월세가

10만원에 그런 집을 얻기란 쉽지 않을 그런 좋은 집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건 그렇게 큰 집인데 사는 사람이라고는 저 희 뿐이었습니다.

집주인은 서울에서 사니깐 그렇다 치더라도, 동네 사람들이 그런 집에서 전세로 살지 않는다는게 이상하게 생각되긴 했지만 아마도 학교(초등학교)와 담벼락을 같이하고 있어 시끄러워서

그래서 그런가 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넘겨버렸죠.

 

 

외지인인 친구와 저에게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도, 들은바도 없기에

그 집의 내력에 대해서 전혀 알수가 없었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좋은 집 이었는데, 다만 좀 흠이

되는것이 그 집 대문앞에서 좌측으로 약 20m 정도 떨러진 곳에 폐가가 있었기에

가끔 그 곳을 보고 있노라면 오싹함과 싸늘함을 느껴야만 했었죠.

 

 

그리고 집에 오려면 반듯이 거쳐야하는 아주 큰 고목이 있는데, 나중엔 안 사실이지만

그 고목이 마을을 지키는 고목 즉, 사당나무 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그 나무를 사당나무라고는 전혀 생각치를 못했는데

그 이유가 더운 여름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그 나무 밑에 평상을 깔고 장기도 두고

막걸리도 마시고 했던 곳이라 그냥 더위를 막아주는 오래된 나무라고만 생각을 했던거죠.

그래도 밤만 되면 어찌나 을씨년스러운지...

 

 

아까도 언급했듯이 우리 자취방은 안에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바깥 화장실을 써야 하는데,

연못을 가로질러 화장실을 가야하는데 화장실은 초등학교 화장실(남평초등학교)과 맞붙어 있었고

집을 둘러싼 벽은 초등학교벽과 맞닿아 있었던것으로 기억 합니다.

 

 

그리고 자취방 창 너머 왼편으로는 초등학교가 보이고 그 초등학교 안에 있는 소나무 숲

중앙의 늪지까지 보이는데. 제가 그걸 9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건 아침이되면 자취방의

작은 창문으로 햇살이 비춰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동쪽에서 해가 뜨면 햇살이 그 늪지의 표면에 반사되어 우리가 자취하던

그 방 안까지 햇살이 들어오기 때문에 아침이면 작은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보기가 상당히

어려워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봅니다.

 

 

제가 그 자취방이 마음에 들었던건 방에 굉장히 큰 창문이 책상 우측으로

나있어서 공부를 하다가 창문을 열면 소나무 가지 사이에 살짝 가린 달이 너무 운치있게

(그당시엔 지금은 가라해도 못감)

느껴져 아마 그래서 그 자취방에 매료되었나 봅니다.

 

 

학교가 끝나서 밤 11시에 친구와 함께 자취방에 갈때는

언제나 그 큰집이 컴컴한 어둠속에서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려준것같았고,

방에 들어가 불을 켜면 그 집에 우리가 생명을 불어

넣어준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건 아무리 보일러를 돌려도 방이 방바닥만 따뜻하고

늘 싸늘하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어르신들이 흔히 말씀하시는 웃풍이 쎄서 그렇다는 얘기가 있어서,

우린 그래서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여름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라며 여겼습니다.

 

 

늦 봄이 되었습니다. 수업받을때 땀이 주루룩흐를정도로 무더운 날씨였는데도

자취방에만 들어가면 꼭 에어컨을 틀어놓은것처럼 시원했습니다.

특히 발목 아래로는 한여름에도 발이 시릴정도로 차가움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저녁 늦게 공부를 하다보면 자꾸 창문에서 누군가 날 쳐다본다는 그런 느낌 이랄까?

창문이 바로 책상오른쪽에 있어서 한참 공부하다보면 기분이 이상해서 오른쪽을 쳐다보면 아무도

없고 다시 공부를 하다보면 또 누군가가 보는것 같아 다시 또 창문쪽을 보면 아무도 없고....

 

 

아무튼 그렇게 늦 봄이 흐르고 초 여름이 왔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친구들이 내일은 일요일이라 학교를 안가도 되니 새벽에

황소개구리 잡아 먹으러 가자고 해서 자취방에서 도보로 4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논에 가 맨발로 뛰어다니며 황소개구리를 잡으러 다녔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잡다보니 작은 쌀가마니로 한 가득

잡게되어 개구리 잡는것을 그만하고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오던중 장난기사 발동해서

맨 뒤에 쳐져 따라오는 종석이만 남겨두고 뛰어가자고 친구들과 작당하고

'하나, 두울, 셋'에 맞쳐 '셋'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종석이만

남겨둔채 모두가 재빨리 자취방으로 뛰었습니다.

 

 

뒤에서 들려오던 종석이의 고함소리, 아마도 자신만 빼놓고 작당한것에 배신감을 느끼며 욕이란

욕은 다 하는 듯... 우린 그런 종석이를 뒤로한채.. 무작정 뛰었습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출처] 공포를 즐기는 사람들               옮긴이: smile*at*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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