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톡에는 처음 글을 쓰는 SINSIA라고 해요. 이번에 수능보는 고쓰리구요.ㅎㅎ
질릴만큼 평범하구요. 절대 공부를 잘한다거나, 역사 점수가 잘나온다거나 그런 특별한 건 없어요, 저는.
게다가 대한민국을 위해서 특별한 노력도 한 것이 없습니다. 뭐, 글짓기나 클럽활동도 안했구요.
하지만 보잘것 없는 글솜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는요, 제가 대한민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렸을때도 지금도 우리나라의 숱한 부당하게 피해받은 역사를 들으면 화가 났어요. 독도문제라던가, 북한과의 관계라던가, 아니면 5.18문제라던가 식민지 문제라던가, 치외법권 등등...그러다가 이제 자각하게 된거죠..화만 낼게 아니라 내가 직접 대응해야 겠다. 작지만 모이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그 말을 믿고 지금 열심히 활동하시는 '대한민국 지키미' 네티즌에 합류하려고 합니다.ㅎㅎ 정말 글솜씨 없구요..;; 가끔 말이 앞뒤가 안맞을 때도 있어요. 어휘력도 심하게 떨어집니당..(똑똑한 녀자가 아니기 때문에 ㅎㅎ;;;)하지만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니..뭐..그러면 용서가...되..될까요..?
혹시, 일본 외무부 홈페이지 들어가 보셨어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일본 외무부 홈페이지에는 '다케시마'가 있답니다.
버젓히 당신네 나라라고 주장하고 있는 글이 말이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외무부는 국가기관이잖아요.
http://www.mofa.go.jp/region/asia-paci/takeshima/index-k.html
바로 여기가, 일본 외무부의 '다케시마'에 관한 글이 있는 곳입니다. 일본어, 영어,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어서 여러분도 읽기 편하실거에요..그럼 이제 일본이 주장하는 '다케시마'소유권에 대한 글을 살펴볼까요?
네, 보시다시피 일본 외무부는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봐도, 국제법 상으로도 다케시마는 명백한 일본의 고유토 라구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봤을때 과연 일본은 그토록 당당할 수 있을까요? 붉은 줄 그어놓은 마지막 제시문에는 독도가 대한민국 땅이라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고 하고 있죠? 오늘 제가 그 명확한 근거를 파헤쳐 보렵니다. 잘봐, 일본국. 눈 똑바로 뜨고 독도가 일본땅인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땅인지 판단해 보라고!!
팜플렛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포인트.」입니다.
꼭 보시길 바래요. 일본측이 주장하는 다케시마가 일본영토인 이유 10가지 입니다.
http://www.mofa.go.jp/region/asia-paci/takeshima/pamphlet_k.pdf
한국이 옛날부터 다케시마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
대한민국은 예전부터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512년 삼국사기에 등장해서,
1900년, 대한제국 독도 관할 측령에 이르기까지, 무려 1400여년동안 지속되어 온 증거가 있습니다.
특히 고려, 조선에 인식의 증거가 정말 많은데요.
증거 1.「삼국사기(512년)」
13년 여름 6월, 우산국이 귀순하여, 매년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기로 하였다. 우산국은 명주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인데, 울릉도라고도 한다. 그 섬은 사방 1백 리인데, 그들은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항복하지 않았었다. 이찬 이사부가 하슬라주의 군주가 되었을 때, 우산 사람들이 우둔하고도 사나우므로, 위세로 다루기는 어려우며, 계략으로 항복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곧 나무로 허수아비 사자를 만들어 병선에 나누어 싣고, 우산국의 해안에 도착하였다. 그는 거짓말로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는다면 이 맹수를 풀어 너희들을 밟아 죽이도록 하겠다"고 말하였다. 우산국의 백성들이 두려워하여 곧 항복하였다.
삼국사기(1145년 기록)에 보면, '독도는 서기 512년 신라가 우산국을 복속한 한국의 영토” 라고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우산국은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한 주변 섬들을 아우르고 있던 나라죠.
증거 2. 「고려사(1396년)」
"우산도와 무릉도는 본래 두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바람이 불고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증거3.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新羅時稱于山國 一云鬱陵島"
우산, 무릉 두 섬이 동해 가운데에 있고 두 섬은 거리가 멀지 않다.
날씨가 청명한 날에는 바라볼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우산국, 혹은 울릉도라 불렀다.
실제로, 울릉도에 가면 맑은 날에 독도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똑똑히 보이시죠? 울릉도에서 찍은 독도 사진입니다.(네이버 지식인에서 퍼왔어요..ㅎㅎ 감사감사..)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87.4km입니다. 일본의 오키군에서 독도까지는 157.5km이구요.
물론 오키군에서는 날씨가 아~주 맑은 날에도 독도가 안보입니다. 저 먼 거리에 있는데 보일리가 없죠.^^
증거 4.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안타깝게도, 화질이 좋지 못하네요.. 네. 신증동국여지승람입니다. 역사 하시는 분들 정말 많이 보셨죠 ㅋㅋ 질리도록..? 아무튼 동해쪽에 보면 울릉도와 우산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안쪽(우리나라 쪽)에 있는게 우산국이군요. 이를 이용해 일본측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우산도가 다케시마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섬은 울릉도 동쪽의, 울릉도 보다 훨씬 작은 섬으로 그려질 것 입니다. 그러나 이 지도의 우산도는 울릉도와 거의 같은 크기로 그려졌으며 한반도와 울릉도 사이(울릉도의 서쪽)에 위치하는 등 전혀 실재하지 않는 섬이라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일본국은 저희나라를 예전부터 그래픽 기술이 뛰어나며, 항해 기술이 뛰어나고 또 측량 기술이 '21세기와 같이' 뛰어난 나라로 여겼던게 틀림 없던 모양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기록된 시기는 1530년입니다. 그때에는 독도가 우리나라에 큰 비중이 아니었죠. 게다가 위에 말했다 시피 그래픽이 뛰어난 것도 아니며 항해 기술이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측량 기술또한 마찬가지죠. 물론 저희나라 기술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저 당시에 섬의 자세한 면모까지 표현해 낼 수 있는 그런 기술이 있었을까요? 정답은 no입니다. 예전엔 중국 다음으로 저희나라를 지도에서 크게 그렸죠. 때때로 일본국은 없던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치면..저희나라 엄청 넓어지네요..^^
증거 5. 「일본 태정관 발행 문서(1877년)」
'書面 竹島外一島之 義本邦關係無之義卜 可相心得事'<일본국립공문서관 소장 '태정관(太政官 문서> "울릉도(당시 竹島)와 그 외 1개 섬인 독도(당시는 松島)는 우리나라(日本)와 관계없다는 것 등 심득(心得,마음에 익힐 것)할 것".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아닙니까?! 당시엔 심득! 마음에 익힐것!! 이라고 똑.똑.히 명시해 놓고서 이제와서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다니요. 정말..한입으로 두 말하면 안돼죠.
증거 6. 「안용복 사건(1693년)」
1693년 울릉도에서 오타니가(家)의 일행과 경상도에서 고기잡이를 온 안용복(安龍福) 등 조선어민 사이에 커다란 충돌이 일어났다. 그리고 오타니, 무라카와 두집안이 일본 정부인 막부에 이를 호소해 이 문제는 일본과 조선이 외교경로로 울릉도의 어업권, 영유권을 다투는 이른바 「竹島一件」으로 발전했다. 이 외교교섭 도중 쓰시마(對馬)번은 노골적으로 조선으로부터 울릉도를 빼앗고자 했다. 조선정부에서는 한때 방침이 흔들렸으나 안용복이 두번이나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 우산도(독도)는 조선령이라고 주장한 것이 계기가 돼 영의정 南九萬등의 대일강경자세가 지배적이게 됐다. 역사적으로 울릉도가 신라시대부터 조선에 속했던 것이 분명한 것이었기 때문에 일본 막부는 마침내 쓰시마번의 움직임을 억누르고 대조선 협조정책을 선택했다. 즉 1696년 1월 오타니, 무라카와 두집안의 죽도도항이 금지되고 1699년 1월 일본측이 울릉도가 조선령임을 정식으로 승인해 이 「죽도일건」은 결착됐다. 그리고 그 외교문서에 직접 송도(그때 일본이 독도를 부른 말)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독도가 죽도(그때 일본이 울릉도를 부른말)의 부속섬으로 비쳐져온 이상 그 영유권도 마찬가지로 처리된 것으로 생각된다. 17세기 일본인의 독도에서의 어업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울릉도에서의 어업에 따른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울릉도 도항금지와 함께 끝날 수 밖에 없었다. 그 증거로 그후 오타니, 무라카와 두집안이 독도만을 목표로 도항한 일이 전혀 없었다.
증거 7. 「대일본전도(1877년)」
똑똑히 보이시죠?(화질은 별로 안좋지만ㅜㅜ키우다 보니 저렇게 됬어요.) 대일본전도인데 독도가 표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일입니까. 현재 일본은 독도를 버젓히 일본국 지도에 표기하고 있는데 말이죠. 역사는 진실을 말해줍니다!
증거 8. 「독도 의용 수비대(1953년 4월~1956년 12월)」
배경 일본은 한국이 해방 이후 한국전쟁의 혼란함을 틈타 자주 침탈하려고 하였으며, 심지어 1950년 8월에는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독도에 상륙, '시네마현 오키군 다케시카[島根縣隱岐郡竹島]'라는 표목을 세우는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이렇게 일본의 불법 침탈 행위가 계속되자, 일본의 터무니 없는 독도 소유권 주장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근해에 나타나는 일본인들을 쫓아냄으로써 일본 어선의 독도 근해 어로 작업 방지 및 울릉도 주민의 생존권 보호를 위해 독도의용수비대가 1953년 4월 20일 조직되었다.
조직 1953 4월 20일 조직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당해 특무상사로 전역한 울릉도 출신의 홍순칠(洪淳七)씨가 1952년 가을부터 수비대를 조직하기로 결심했고, 부산으로 가서 단신으로 독도를 지킬 각종 무기와 장비를 구입했다.
무기와 장비가 어느정도 갖춰지자, 홍순칠씨는 1953년 4월 20일 드디어 울릉도 청년 45명으로 수비대를 조직하였다. 대장에는 홍순칠씨가, 편제는 각각 15명으로 이루어진 전투대 2조, 울릉도 보급 연락요원 3명, 예비대 5명, 보급선 선원 5명으로 짜여졌다. 이들은 3명을 제외하곤 모두 한국전쟁에 참전한 전투원 출신이다.
장비는 경기관총 2정, M2 3정, M1 소총 10정, 권총 2정, 수류탄 50발, 0.5톤 보트 1척 등이었고,나중에 박격포 등을 추가로 구입하였다. 수비대원 가운데 자의로 빠진 이를 제외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대장 홍순칠씨를 포함해 모두 33명이다.
활동 수비대는 조직과 동시에 보트를 타고 독도에 도착해 경비를 시작하였다. 수비대는 1953년 6월, 독도에 접근한 일본 수산고등학교 실습선을 귀향 조치한 뒤, 7우러 12일 독도에 접근하는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함 PS9함을 발견하고 경기관총을 집중 사격해 격퇴시켰다. 이 전투는 수비대 최초의 전투로 기록되었다.
첫 전투에서 장비의 보충이 시급함을 깨달은 홍순칠 대장은 다시 육지로 나가 어렵게 M2 2정과 박격포 한 문을 구입하였다. 이어 8월 5일에는 동도 바위 벽에 '韓國領(한국령)'이라는 글자를 새겨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확고히 하였다.
1954년 8월 23일, 독도에 접근하려는 일본 순시선을 총격전 끝에 다시 격퇴시켰고, 11월 21일에는 1,000톤급 일본 순시선 3척과 항공기 1대와 총격전을 벌여 역시 격퇴하였다. 이 전투로 일본 측에선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에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항의각서를 보내기도 하였다.
이후 1956년 12월 30일 무기와 임무를 국립 경찰에 인계하고 울릉도로 돌아갈 때까지 수비대원 33명은 한국 영토인 독도를 지키는 데 전념하였다. 이 공로로 홍순칠 대장은 1966년 5등 근무공로훈장, 나머지 대원들은 방위포장을 받았고, 홍순칠 대장은 1996년 보국훈장 삼일장이 추서되었다.
대원 수비대원 33명 : 고성달, 구용복, 김경호, 김병렬, 김수봉, 김영복, 김영호, 김용근, 김인갑, 김장호, 김재두, 김현수, 박영희, 서기종, 안학률, 양봉준, 오일환, 유원식, 이규현, 이상국, 이필영, 이형우, 정원도, 정의관, 정재석, 정현권, 조상달, 최부업, 하자진, 한상용, 허신도, 홍순칠, 황영문
증거 9. 「국제해저지명집 동해 해저.」
강원대지, 울릉대지, 우산해곡, 우산해저절벽, 온누리분지, 새날분지, 후포퇴, 김인우해산, 이규원해산, 안용복해산 등 동해 해저의 지명이 한국식으로 국제해저지명집에 등재된 것은 지난 1974년 국제등재 업무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었다.
증거 10.「대한제국 칙령 41호(1900년)」
“1900년 대한제국의 칙령 41호로 독도가 울도군의 소속이 된 것이다. 일본인들의 울릉도 불법침입과 산림 벌채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자 대한제국은 울릉도와 독도를 행정구역상 독립된 군으로 승격 시키고 ‘도감’ 대신 군수를 두었다. (땅사랑님, 출처)
증거 11. 「연합군 총사령부의 1946년 반환 섬 명기.」
“1946년 연합국 최고 사령관 총사령부 지령으로 독도가 한국 영토로 확정”된 것이다.1943년의 카이로 선언은 일본이 강압과 폭력으로 탈취한 새 영토를 반환시킬 것을 정하고 있다. 또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 총사령부는 1946년 1월 29일자로 울릉도·독도· 제주도를 반환해야 할 대표적인 섬으로 명기했다 (땅사랑님, 출처)
증거 12. 「UN으로부터의 승인.」
1952년 미국과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이 포기하는 영토에 독도가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법적으로 독도가 일본의 영토임이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한국측 입장은, 대 일본강화조약이 맺어지기 전인, 1948년, 독도는 대한 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UN으로부터 독립국가로서 이미 승인을 받은 대한민국의 부속 영토이므로 이는 국제법적으로도 일본의 주장에 앞선다는 것이다.
증거 13. 「독도와 울릉도는 기반암이 같은 화산암이다.」
울릉도와 독도는 기원물질이 동일합니다. 즉 해저를 보면 연결된 산맥이라는 거죠. 하지만 일본의 오키군도와는 기원물질이 다릅니다.
증거 14.
우체통, 있습니다^^
저희의 소중한 독도의 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급 독도리 1-96번지 입니다.
편지 쓰면 정말 독도로 가요. 징짜!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독도를 자국의 땅이라고 우기고 있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식민지 정책 아래에서' 였습니다. 솔직히 피지배국 국가의 국민들이 지배국 국가에게 '독도를 돌려달라' 라고 요구하는것은 굉장히 무리입니다. 식민지란 이유로 탈취당하고, 전쟁에 끌려가고, 위안부에 끌려가고, 죽고, 맞고, 굶고! 이러한 일본의 주장은 100%, '강제적 논리'입니다. 말도 안되는 생떼를 쓰고 있는거죠.
일본은 다케시마 영유권에 관한 문제를 국제 사법 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한국이 이를 거부한다. -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다케시마-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입니다. 그것은,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이듯이 아주 명백한 사실입니다. 뜯어 고칠래야 고칠 수 없는 사실이죠. 때문에 우리는 굳이 독도를 세계무대에 올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유는 한가지 입니다. 대한민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증거요? 제가 위에 제시한 내용보다 더 많은, 훨씬 방대한 증거가 있습니다. 저희는 일본이 무섭기 때문에 국제 사법 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독도가 대한민국 땅이라는 당당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거부하는거죠.
이에 대하여 중국과 생카쿠 열도를 가지고 일본은 씨름을 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일본의 이중적인 모습이 또 드러나게 됩니다. 일본은 생카쿠 열도를 국제 사법 재판소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독도가 중요한 이유.
독도 근해어장 -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황금수역지이며 청정수역지이다.
송어, 연어, 대구, 명태, 꽁치, 오징어, 상어, 다시마, 미역, 소라 전복 등 해양동물과 해조류들이 풍성히 자라고 있어 어민들의 주요한 수입원이 된다. 또한 특유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지하자원적 가치 - 독도주변 해역에 천연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존재한다.
'하이드레이트'란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가 얼음처럼 고체화된 상태로서, 기존 천연가스의 매장량보다 수십배 많은데다가 그 자체가 훌륭한 에너지 자원이면서도 석유자원이 묻혀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시자원'이라고 한다. 또한 해양석유자원의 보유가능성이 높다.
관광자원 - 괭이갈매기의 본거지 독도. 시스텍이나 시 아치등으로 경관이 아름답고 신선하다. 관광자원으로서의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
군사적 가치 -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독도에 통신기지를 구축하여 전략적 기지로 관리하고 있으며, 이곳 관측소에서 러시아의 태평양함대와 일본 및 북한 해·공군의 이동상황을 손쉽게 파악하여 동북아 및 국가안보에 필요한 군사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제가 올린 글이 어쩌면 뒷북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만큼 여러분의 독도에 대한 관심이 강하다는 증거 겠죠!(또 제가 올린 글이 흔한 것들이라는 증거도 되겠군요..) 혹시나..ebs 특강 보신분들..어?! 하시는 분들 많으셨을 거에요. 네 그렇습니다. ebs특강 보고 만든거랍니다. 하지만 모든 내용을 기록하고, 또 인터넷을 뒤지며 좀더 정확한 자료와 사진을 찾고 또 의견을 쓴건 제가 맞습니다. 지금 4시간째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열심히 쓰고 있다구요 ㅜㅜ..
저는 뒷북이니 뭐니 그런 말 듣기 싫습니다. 뒷북이어도 좋습니다. 어느 누군가가 제 글을 클릭해 주시고 독도에 대한 진실을 깨닳아 주신다면 그걸로 정말 만족합니다. 독도 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치를 갈면서도 독도가 대한민국 땅이라는 분명한 근거를 대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독도를 일본에게 빼앗기고 마는 날이 올거라고 생각해요.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저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작정 사탕을 달라고 떼쓰는 어린아이보다는 사탕을 가지기 위해서 근거를 차근차근 대는 아이가 좀더 효과적으로 사탕을 얻을 수 있을테니까요. 여러분. 독도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영토입니다.
※오타지적 받을게요..^^ 둥글게둥글게 말씀해주세요. 즉시 수정하겠습니당~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