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 장군 전기』1.난세에 태어난 혁명가의 어린 시절 ⑷

대모달 |2011.08.28 18:51
조회 25 |추천 0

★ 어머니가 사온 민며느리

 

서당을 그만 둔 양세봉은 동생들인 원봉·시봉과 함께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지었다. 세 마지기 논을 빌려 경작을 했는데, 한 마지기에서 대략 20~30석을 거두었다. 수확량 중에서 절반은 지주에게 현물로 바치고 면에 각종 세금을 내고 나면 곡식은 30석 가량밖에 남지 않았으니 겨우 생활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모종을 기르고, 모내기를 하고, 잡초를 뽑고, 수확을 해서 탈곡을 하다 보면 일년 내내 한가할 틈이 없었다. 날이 밝기 전에 일을 시작하면 해가 떨어져야 끝났다. 해마다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었으며 매일 아침 일찍 나가서 밤이 늦어서야 돌아왔다.

 

어머니 역시 고단한 생활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사는 물론이고 베도 짜야 했다. 면화나 삼으로 실을 만들고, 풀을 먹여 말린 후 다시 낡은 베틀로 베를 짰는데, 부지런히 발판을 밟고 북을 돌려 감치느라 덜그럭대는 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매일 밤마다 어두운 등잔불 앞에서 밤늦게까지 일했다. 어머니는 솜씨가 좋아 하루에 광목은 스무 자, 옥양목은 열 자 가량 짤 수 있었다. 당시 집에서 짜는 베를 조포(組布)라 했는데, 폭은 한 자 정도 되었다. 베 한 자에 5~6전 정도 받을 수 있어 이것을 팔아 생긴 수입은 가정 살림에 요긴하게 쓰였다.

 

그 당시 일본의 중앙은행인 제일은행(第一銀行)은 조선 땅에서 지폐를 발행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금표(金票)’라고 불렀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여전히 조선왕조시대에 달행한 상평통보(常平通寶)와 당오전(當五錢)을 사용하였다.

 

어느 날 베를 팔고 돌아오던 어머니가 시장 모퉁이에서 남루한 옷을 걸친 삼십대 초반의 사내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곁에는 7~8세 가량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머리에 파는 물건이라는 표시를 한 마른 풀줄기를 꽂고 서 있었다. 사내는 주위에 둘러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이 애를 팔고 싶습니다. 누구 사실 분 없어요?”라며 침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머니는 여자 아이가 남루한 차림에 신발도 없이 맨발로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매우 불쌍히 여겼다. 그러다가 퍼뜩 집안이 가난하여 17, 18세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장가를 들지 못한 큰아들 세봉이 떠올랐다. 이 아이를 데려다가 몇 년 키우면 며느리로도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를 얼마에 파시렵니까?”

 

“이 아이는 내 친딸이에요. 당신이 알아서 주세요.”

 

어머니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마음을 굳혔다.

 

“좋아요. 제가 살게요. 저랑 우리 집에 갑시다. 집에 가서 돈을 줄 테니.”

 

어머니는 사내와 여자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하지만 먼저 남편의 의향을 물어야 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인데 식솔을 하나 더 늘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봉녀에게 밭에 나가 있는 아버지를 모셔오게 했다. 얼마 뒤 대문에 들어서는 아버지를 붙들고 어머니는 자초지종을 말했고, 마음씨 좋은 아버지는 어머니의 뜻을 혼쾌히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밥을 지어 부녀를 대접했다. 양세봉의 아버지는 사내와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곁에 앉은 여자 아이는 마구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내는 자신의 본관을 말하며 이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어촌에서 산다고 했다. 여자 아이의 이름은 임재순이며 올해 여덟 살인데 어릴 때 어머니를 여위었다. 아버지가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는 어민이기에 임재순은 배에서 자랐다. 작년에 배가 망가져서 선주에게 돈을 꾸어 수리했지만 올해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아 돈을 갚지 못했다. 3일 안에 갚지 못하면 경찰서에 알려서 잡혀가게 하겠다고 선주가 을러대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딸을 판다고 하였다.

 

사내가 식사를 끝내자 아버지는 어머니더러 돈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어머니는 옷장에서 아껴 모은 동전 다섯 냥을 내놓았다. 아버지가 한 냥을 더 주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다시 한 냥을 더 꺼내왔다.

 

임재순의 아버지는 “됐어요. 이만큼이면 됐어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양세봉의 부모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양세봉의 어머니는 “너무 그러지 마세요. 나중에 사돈이 될 텐데……”라며 임재순의 아버지를 만류했다. 그러나 임재순의 아버지는 “저 아이에게 밥이나 제대로 먹여 키워 주시면 저야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죠”라고 말하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양세봉의 부모는 너무 가엾은 마음이 들어 딸과 함께 며칠 묵고 가라고 권했지만 사내는 끝내 사양하고 눈물을 보이며 떠났다. 양세봉의 아버지는 동네 밖까지 배웅하고는 자주 놀러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 연락이 끊겼다.

 

양세봉과 그의 두 동생이 집에 들어서니 웬 낯선 여자 아이가 말도 없이 울고 있었다. 어머니가 낮에 있었던 일을 알려 주자 세봉은 얼굴을 붉히며 “우선 누이동생으로 여길래요. 그 다음은 이 아이가 자란 뒤에 다시 얘기해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재순과 딸 봉녀를 한방에서 재웠다. 이들 둘은 동갑이었지만 봉녀는 재순이를 언니라 불렀다. 아버지는 달빛 아래서 재순에게 줄 짚신 한 켤레를 삼으면서, 세봉에게는 누이동생에게 줄 짚신을 한 켤레 삼도록 하였다.

 

재순은 똑똑하고 영리하며 천진하고 활발한 아이였다. 그녀는 봉녀와 늘 붙어 다니며 친자매보다 더 친하게 지냈다. 함께 어린 남동생을 데리고 놀기도 하고 들이나 산으로 다니며 땔감도 해오고 나물도 캐러 다녔다. 세봉과 그의 동생들고 재순을 살뜰히 보살펴 주어서 괴로웠던 기억을 모두 잊고 금세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화목하게 지내니 비록 살림살이는 가난했지만 가정에 생기가 넘쳤다.

 

【계속】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