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비판과 안티크리스챤 [3]

오택만 |2011.09.18 23:05
조회 100 |추천 0

다섯째로 안티크리스챤들은 옛신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과 인간적인 영웅심리는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개인의 양심에 거스르지 않는 선한바와 옳은 바를 따라서 최선을 다하여서 살아가고 싶어하고 그것을 꺾지 않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보기엔 옳은듯하고 자신의 내면이 느끼기에도 옳은듯 하지만 사실은 자기 의 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수 없는 육에 속한 성질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선비가 책만 읽다가 배가 고파서 견딜 수 없어서 그것이 진리든 아니든 하나님께 무어라도 얻어 볼까 하고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옳은 순종의 한 가지 예인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통하여서 경제적인 풍족함을 누린 사람들의 경우엔 경제적인 영향력과 이해관계를 떠난 부모의 사랑과도 같은 사랑의 사역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옳은 논지와 진리와 비진리에 대한 실제적인 계산에 부족한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

중심의 진실함이란 자신의 육에 속한 자기 의가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순수하고 올곧은 믿음과 신앙을 갖게 되는 유일한 길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성령의 도우심을 입는 길 외엔 없는 것입니다.

즉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며 기도 외엔 하나님의 역사가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배도자의 예가 있습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서 바울을 떠나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티크리스챤의 내면과 의지와 정신이 하나님을 선택하고 예수그리스도께로 나아오지 않는 한, 그리고 지속적으로 성령의 능력과 강권적인 은혜가 그들을 붙들어주지 않는 한 그들은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자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유다서 5-10절 말씀입니다.

여섯째로 그들의 이해가 너무나 몰지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접하고 생각하고 논리에 사용하는 정보들은 그야말로 실제로는 기독교의 중심을 전혀 모르는 정보들입니다.

그들이 접하고 사용하고 생각하며 토대로 삼는 메시지들의 출처와 내용들은 아주 껍데기에 해당되는 정보들입니다. 아직 진실을 열어보지도 못한 상태로 어둠의 영이 주는 경로대로 육체가 즐기는 비방과 거짓이라는 죄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둠에 둘러싸인 인간의 죄성은 멸망과 파멸로 인도하는 사탄의 원함과 계획에 따라 말하고 생각하고 글쓰고 읽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성령의 권능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까지 목숨이 붙어있는 피조물은 회개의 기회가 있습니다.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가 없이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회개가 없이는 자기의 눈에 씌인 어둠의 끈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나라에서는 사탄의 불법적인 점거가 당신의 영혼 위에 드리워 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지만 예수그리스도 밖에서는 당신의 죄로 말미암은 합당한 보응이 그 위에 머물러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사탄의 거짓과 멸망시키는 권세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회개가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나는 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서 기도합니다.

끝으로 비판에 대하여서 말하고자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훌륭하신 어느 목사님께서는, ‘누구에게든지 비판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하는 것과 같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반면 어떤 목사님께서는 비판하는 내용과 쟁점들에 대하여서 치열하게 설명하시고 반박하시는 설교를 하시기도 합니다.

신기한 것은 비판에 대하여서 어떤 태도를 갖고 있든지간에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열정 안에서 전하는 말씀이 있는 곳에서는 새롭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비판 자체에 대하여서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주관과 역사하심이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판에 대하여서 말씀하시기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도 비판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약간 미신적인 논지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지금 비판한다면 훗날 그대로 비판당할 것이라는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누군가를 헤아린다고 하여서 내가 훗날 똑같이 헤아림 당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으며 보장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문장을 사실 그대로 믿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언뜻 생각해보면 예부터 전해 내려온 권선징악의 교훈과 비슷한 것처럼 보입니다.

심은 대로 거둘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교훈은 세상에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민족전통이나 이야기, 전설 등에 담겨 있는 교훈들과 다를바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성령의 메시지라는 것은 조금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 다른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것을 기대하고 큰 것을 기대하며 깊은 것을 기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대면하였을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예 판단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옳은 것을 판단치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옳고 그른 것, 판단해야하는 것에 대하여서는 분명하고 명확하게 판단하고 자세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와 비진리를 구분하기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 이름으로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됨을 알고 믿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비판의 원인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비판하는 그 내용의 이유가 어떻든 상황과 문제의 심각성이 어떻든 상관없이 비판이 있다면 그 비판이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마음과 영혼이 받은 영향력으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비판하는 영 자체가 있고, 그러한 영에 속박되거나 자신이 노출되었을 때에 그 영에 의하여서 이성이 사고작용을 하게 되며 비판이라는 논리가 창조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것, 용서하는 것, 즐거워하는 것, 슬퍼하는 것, 기뻐하는 것 등등의 것들과도 마찬가지인 것인 것입니다. 즉, 비판하는 영, 비판케 하는 영의 작용, 비판하고자 하는 영적인 동력을 갖출 때에 비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판하는 영을 향한 쪽으로 마음의 움직임의 방향을 잡을 때에 비판이라는 요소가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예수그리스도의 성령은 지혜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3장은 14절로 18절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사람은 내면이 정결할 때에 즐겁습니다. 진정으로 가장 고차원적인 기쁨은 거룩함 안의 기쁨이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될 때에 얻게 되는 기쁨인 것입니다. 우리가 비판하는 영에 자신을 맡긴다면, 비판함에 속한 영의 영역을 지배하는 사탄의 영역과 관계 맺는 것이 되며 그것은 자신의 영혼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그러므로 결코 느끼기에도 좋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선한 것을 주시길 원하시며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서 우리는 정결케 되고 거룩케 되며 하나님의 영역 안에서 우리의 영혼이 생명수를 마시고 소생하여서 강건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아가서 예배드려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에게 성령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 그 어느 때 보다도 힘 있게 성령과 은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모이기를 힘쓰라” 라고 성경으로 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된 약속을 그대로 이뤄주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약속들을 통하여서 기도할 때에 특별히 그 기도는 응답되었다고 믿어도 좋습니다. 회개에 대하여서 다양한 견해들을 갖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아십니다. 진심이란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믿느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선하든 않든 그것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자비하심 앞에서 구원하실 것을 믿는 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럼 성경에 기록된 회개에 대한 약속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우리가 비판한 죄에 대하여서도 하나님께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기꺼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을 깨끗케 하시고 그에 속한 모든 불의로부터 구원하실 것입니다. 반드시 구원하실 것입니다. 당장에 구원하실 것입니다. 확실한 사실입니다.

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드와이트 무디는 거대한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한번도 사업을 진행하거나 정기적인 후원금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그는 오직 성경을 펼쳐놓고 그 성경에 약속된 구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하나님 앞에서 그 약속대로 이뤄주시길 기대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는 기적적으로 고아원을 여러차례 늘려가면서 필요한 모든 재원을 충당하고 운영할 수 있었고, 오늘날 그는 5만번의 기도응답을 받은 위대한 기도의 사람으로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 있습니다.

성령의 힘이 아니고는 영혼을 옳은 방향으로 두고 하나님 안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령을 늘 간구하고 성령을 주시길 기도하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지키시고 함께 계시며 힘 주실 것입니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