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보다 장맛이 좋다’ 참 듣기 좋은 칭찬이다. 여행 또한 내용이 좋아야 한다. 종로 골목길 여행, 관광객이 참고할 수 있는 코스와 구성이 야무지다. 교남동에서 출발해 사직동을 거쳐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지도보다 걷는 맛이 좋다.
이번 여행은 대중교통이 편리하다. 서대문역에서 첫발을 내딛고 경복궁역에서 마무리되는 순서다. 넉넉하게 물과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신발 끈을 조이면 준비완료.

돈의문 터·경교장, 쓰라린 역사 자국 더듬다

돈의문 터, 이곳에 돈의문이 있었다
독립문역 4번 출구에서 곧장 앞으로 약 5분 걸으면 돈의문 터가 나온다. 왜 ‘터’ 자가 붙었을까. 일제강점기, 도로확장을 이유로 돈의문을 헐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사대문 중 서대문은 두 차례에 걸쳐 만들어진 특별한 경우다. 태조에 만들어진 ‘서전문’이 첫 번째 서대문이다. 세종에 들어 도성을 고쳐 쌓으면서 좀 더 남쪽으로 서대문이 옮겨진다. 이때 새로 만들어진 서대문이 ‘돈의문’이다. 새로 만들어졌다 해서 신문 또는 새문이라고도 불렸다. 돈의문 터 앞 신문로의 어원이기도 하다.

경찰박물관으로 견학 온 학생들 6·25 전쟁기의 경찰 모습
돈의문 터를 지나 약 50m 거리에 경찰박물관이 있다. 5층부터 1층으로 내려가면서 관람하는 방식이다. 역사, 이해, 체험, 환송이라는 주제로 각 층을 구성. 막연히 알고 있는 경찰의 업무, 분야를 포함해 변천사까지 알 수 있어 학생과 일반인 모두에게 유익하겠다. 특히 조선시대 경찰에 대한 정보, 6·25 전쟁기의 경찰 모습이 인상적이다.

경교장
다시 돈의문 터로 돌아와 골목으로 들어가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던 ‘경교장’을 만날 수 있다. 이화장, 삼청장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건국활동 3대 명소 중 한 곳이 여기다. 1층 완만한 곡면의 돌출장, 2층의 아치창 등 곳곳에 단아한 옛 건축미가 남았다. 김구 선생은 광복 후 경교장에 머물며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1949년 6월 26일, 두 개의 총알이 2층의 침실 창문을 뚫고 나간다. 김구 선생이 저격당한 당시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경교장에서 3년 7개월밖에 머물지 못했던 김구 선생을 회상해 본다.
보통이 아닌 교남동 골목길

경교장과 홍난파 가옥 사이 구간의 골목길 풍경
다음 목적지는 홍난파 가옥이다. 이 사이 구간은 80~90년대의 평범한 풍경 그대로다. 걷는 도중 옆으로 뻗은 골목길로 시선을 돌리면,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또는 버텨온 옛 모습에 발길이 멈추기도 한다.

월암근린공원 공원에서 보이는 풍경
갈림길에서 오른쪽 오르막길로 들어가자. 서울성곽 공사가 한창이다. 오르막 너머 작은 공원이 나타난다. 월암근린공원이다. 생각보다 지대가 높다. 인왕산과 안산 자락에 기댄 무악동, 천연동이 시원하게 드러난다. 공원 한편에 홍난파 노래가 새겨진 조형물이 세워졌다.

홍난파 가옥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니 바로 홍난파 가옥이 나타난다. 독특한 외모다. 새빨간 벽돌과 뾰족하게 솟은 지붕 등이 평상시 보아온 주택 겉모습과 구별된다. 이는 1930년대 서양인 주택의 특징. 담쟁이넝쿨이 풍성하게 벽을 덮어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집 같기도 하다. 1930년 송월동에 위치한 독일 영사관의 영향으로 이곳에 독일인 주거지가 형성됐지만, 지금은 이 집만 남은 실정이다. <고향의 봄> 작곡자로 유명한 홍난파가 이곳에서 1935년부터 6년간 지내면서 ‘홍난파 가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홍난파 가옥을 지나면 교남동 속살 깊이 파고든 셈이다. 좁으면서 경사진 계단 길을 오르며 보게 되는 가로등, 옷걸이에 걸려 마르고 있는 채소들, 골목길 곳곳에 화초… 홍난파 가옥을 넘어가면서 사뭇 진해진 골목길의 정취다.

홍난파 가옥을 지난 후 골목길 풍경
관광코스라서 그럴까. 이곳의 주민들이 유난히 깔끔하기 때문일까. 깊숙한 골목길치고 깔끔하다. 곧 나오는 갈림길에서 왼쪽부터 가자. 권율장군 집터와 딜쿠사(Dilkusha)까지 80미터 남았다는 표지가 보인다.

수령 200년 이상을 쉽게 넘을 듯한 나무 한 그루가 압도적 분위기를 뽐낸다. ‘어느 집인지 몰라도 좋은 나무를 가졌구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무가 있는 곳으로 조금 더 가보니 담장 안에 있어 보이는 착시였다. 권율 장군이 직접 심은 것으로 알려진 수령 400년의 은행나무다. 이곳이 행촌동이 불리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행주대첩의 승장인 권율 장군의 집터지만 그 흔적은 도심의 한복판, 평범한 동네 구석 400살 은행나무와 그 그늘이 유일하다. 그늘이 유난히 시원하다.
[왼쪽]권율 장군 집터 근방, 눈길을 끄는 나무가 집안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른쪽]권율 장군이 심은 것으로 알려진 수령 400년의 은행나무

알버트 테일러 일가가 머물던 딜쿠샤
뒤쪽으로 돌아서면 이국적인 양식의 주택이 보인다. 그 주택의 이름은 ‘이상향’ ‘행복한 마음’이라는 뜻의 힌두어 ‘딜쿠샤’이다. UPI 통신사 특파원 알버트 테일러(Albert Taylor)가 1923년 지은 주택이다. 알버트 테일러는 3·1운동 소식을 전 세계로 알리고 독립 운동가를 도왔으나 1942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됐다. 이 같은 내력은 2006년 알버트 테일러의 아들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사직단에서 풍년을 기원

왔던 길을 80미터 되돌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자. 사직터널을 건너는 유일한 보행 길이 있는 방향이다. 터널 입구 위를 지나 오르막을 조금 오르면 좌우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인왕산과 서울성곽, 오른쪽은 사직공원 방향이다. 우회전하자. 내려가는 길 오른편으로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바람도 시원하다. 사직공원 입구가 보이고 그 왼쪽에 단군성전이 있다.
[왼쪽]교남동에서 사직동으로 넘어가는 구간

갈림길, 사직공원 방향 풍경

단군성전
단군성전은 단군을 모시는 사당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공공건물로 서울시 보호문화재이기도 하다. 한반도 민족의 상징 단군 영정에 섰다. 개천절에만 단군을 떠올리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사직공원의 율곡 이이, 신사임당 동상 사직단
사직공원 방향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사직공원이다.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동상이 솟았다. 나란히 서 있는 율곡이이선생과 신사임당 동상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에 빠지지 않는 율곡 이이와 조선시대 대표적 여류 예술가 신사임당을 중심으로 많은 시민이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동상의 시선이 향한 곳에 사직단이 있다.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국가 제례가 이곳에서 이뤄졌다. 사직문 입구 옆, 물감으로 그린 사직공원 조감도에 눈길이 간다. 컴퓨터를 통해 접하는 지도가 익숙하기 때문일까. 손수 쓴 숫자, 손을 들고 뛰어가는 아이가 담긴 조감도가 정답다. 이 같은 조감도 앞에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던 때가 애틋하다.
미술관 옆 경복궁

볼거리 풍성한 경복궁 역 내부 서울메트로미술관
사직문을 나와 왼쪽으로 가자. 이번에는 경복궁역을 경유한다. 역으로 내려가면 서울메트로미술관에서 시시때때로 열리는 작품전을 감상할 수 있다. 이 혜택 놓칠 수 없다. 감상하면서 미술관을 지나면 국립고궁박물관과 연결된 5번 출구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왕실 관련 유물들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과 대한제국 시대 왕실 관련 유물 약 4만 점을 소장·전시하고 있다. 조선왕실 문화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면서 관람료가 따로 없는 열린 공간이다. 부담 없이 들어가 보자. 사극 드라마, 영화에서 접했던 조선왕실 모습, 그 실제와 마주하니 하나하나가 새롭고 감격스럽다. 상다리의 정교한 무늬, 왕비가 사용한 비녀 끝 봉황, 왕실 복식 문양 등에서 발견한 정교함과 왕실의 미학적 관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왕기록, 국가의례, 궁궐 건축 등 좀 더 자세한 설명은 해설사를 통해 들을 수 있다. 한국어 해설은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4시 하루 3번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도착시각을 고려해 여행계획 세우는 것이 이득이다.

근정전 조선시대, 경복궁의 일상을 짐작하며 걷고 느껴보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당시의 궁 생활모습을 짐작했다면, 이젠 경복궁으로 들어가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보자. 광화문 입구에서 근정전, 사정전이 일직선상에 놓였다. 이 축은 남북방향으로 좌우 대칭의 기준이기도 하다. 북악산, 인왕산, 낙산이 경복궁 주위를 두르고, 궁 전면에는 청계천이 흐른다. 땅의 좋은 기운을 부르는 신중한 입지 선택이 약 6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도 서울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복궁은 한번에, 단번에 파악하기가 어렵다. 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용도에 따른 공간이 다양하고, 한 공간 안에서도 다양한 전각이 구성되기 때문이다. 경복궁 내에 배치된 소책자도 좋지만, 경복궁에 관한 전문서적을 지참한다면 더 큰 감동을 찾을 수 있다.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안정수 취재기자(ahn856@gmail.com)
◆ TI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