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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의 여왕’ 연수영 」8여자 영웅의 비극적인 죽음 ⑶

개마기사단 |2011.10.15 22:30
조회 88 |추천 0

● 연개소문의 의심

 

서기 650년 고구려 수군원수(水軍元帥) 겸 비사성주(卑沙城主)인 태대사자 연수영(淵秀英)은 건강을 회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해에 연수영은 어느새 서른 네 살의 중년 여인이 되어 있었다.

 

갓난아기 양희는 그 동안 어미의 품보다는 거의 유모의 손에 의해서 키워졌다. 그래도 무사히 백일을 지나자 때때로 방싯방싯 웃어 보이기도 했다. 양희가 웃는 귀여운 모습을 볼 때마다 연수영은 잠깐이나마 모든 근심걱정을 잊었다.

 

어느 정도 몸을 추스리고 일어난 연수영은 다시 일에 매달렸다. 당연히 수군을 정비하는 일이었다. 피폐해진 민생도 큰 문제였지만 당군이 언제 어디로 다시 쳐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부족한 수군을 뽑아서 병력을 보충하고 이들을 열심히 훈련시켰다. 또한 낡은 군선은 수리하고 새로 건조하기도 했다. 그렇게 3년을 오로지 수군 증강에 전심전력한 결과 연수영이 거느린 수군 병력은 군사가 8만명에 이르고 대소 군선도 1천여척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는 여당전쟁(麗唐戰爭) 개전 전보다 두 배가 넘는 막강한 전력(戰力)이었다.

 

이제 수군원수 연수영은 단순히 군사적 영향력만 두고 볼 때 고구려에서는 최고 권력자인 대막리지(大莫離支) 연개소문(淵蓋蘇文)에 버금가는 실력자로 부상했다. 수군뿐만 아니라 요동의 육군 장수들 가운데서도 연수영의 지지 세력이 많았다. 이제 고구려 군부에서 연수영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확고부동(確固不動)의 실세였다.

 

권력의 속성이란 예나 이제나 다를 바 없다. 권력을 나누어 가진 독재자는 없었다. 이는 부자간이건 형제간이건 예외가 없었다. 최고 권력을 두고 부자간, 또는 형제간에 피비린내 진동하는 유혈 참극이 일어난 적이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따라서 나 아닌 다른 존재가 군부를 장악한다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로지 잠재적 경쟁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정치적 경쟁자는 제거의 대상이었다.

 

연개소문도 그런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게다가 연수영은 비록 사적으로는 친 누이동생이고, 또한 여당전쟁에서 여러 차례 영웅적인 수훈을 세운 유능한 장수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하찮은’ 여자였다. 고구려의 역사도 사내들이 이끌어왔고,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천대받는 존재였다.

 

그리고, 연개소문에게는 이미 아들이 셋이나 있었다. 비록 어미는 다르지만, 맏이 남생(男生)은 지난해에 성년식을 치렀으니 올해 16세였다. 불과 아홉 살 때 중리소형(中裏小兄) 벼슬을 내려 연수영에게도 듣기 싫은 소리를 들었던 그 맏아들 남생에게 연개소문은 제7품관인 중리대형(中裏大兄) 벼슬을 내렸다. 이는 남생을 자신의 후계자로 확정했다고 천하에 공공연히 선포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제 연수영이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군부에서 추종세력이 늘어나게 되자 그녀를 참소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연수영을 중상 모략하는 중심에는 보장태왕(寶藏太王)과 형에게 개처럼 비굴하여 아첨하여 제2품관인 태대형(太大兄)으로 슬그머니 조정에 복귀한 연정토(淵淨土)와 제3품관 을상(乙相) 계진(桂珍) 그리고 중리대부(中裏大夫) 선도해(先道解)·대대로(大對盧) 부기원(扶奇遠) 등이 가세했다.

 

그 무렵 연개소문의 주변에는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요동방어군의 주요 지휘관이었던 추정국(鄒定國)과 양만춘(楊萬春)은 오래 전에 죽었고, 개인적으로는 연개소문의 장인이기도 했던 병마원수(兵馬元帥) 고정의(高正義)와 태대사자(太大使者) 해철주(解鐵周)마저 차례로 병사(病死)하고 말았던 것이다. 두방루(豆方婁)와 술탈(述脫) 등 심복 장수와 온사문(溫沙門)·뇌음신(惱音信) 같은 옛 친구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군사적 통솔력과 용맹 말고는 더불어 국정을 논할 만한 정치적 안목이 없었다.

 

고정의가 죽은 이후 군부는 연개소문 자신이 직접 지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성의 방어와 치안은 내사부 군주 술탈에게, 요동의 육군 군단은 위두대형(位頭大兄) 고문(高文)에게 신임 병마원수로 임명하여 각각 맡겼고, 수군 함대는 연수영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연수영을, 자신의 친 누이동생이기도 한 수영을 또 하나의 배 다른 동생인 연정토가 다른 중신들과 더불어 정적(政敵)으로, 잠재적 역적으로 몰아 끊임없이 모함하고 참소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연정토가 연수영을 음해하고 모함한 일이 하루이틀 지난 일도 아니었지만 연개소문은 속이 편치 못했다. 연수영이 수군은 물론 육군 사이에서도 신망이 높다고 하지 않는가? 전쟁 중에도 백성들의 민생고를 보살펴주어서 지금도 칭송이 자자하다지 않은가? 민심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건안성주(建安城主) 고원부(高元部)와 정을 통하여 딸까지 낳고 깊은 관계를 맺었다고 하지 않는가? 만일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 막강한 요동함대, 건안성과 신성의 수만 기병과 보병군단이 연수영의 무력적 기반이 될 판이었다. 연개소문은 평양에 앉아서도 거미줄처럼 깔린 정보망을 통해 이런 저런 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다.

 

연수영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혹시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연개소문은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그래도 연정토나 선도해처럼 덜 떨어진 인간들의 말만 듣고 연수영을 마구잡이로 숙청할 수는 없었다. 먼저 사실 여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연개소문은 비사성에 은밀히 사람을 파견했다. 이런 일을 시키기에는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고죽리(高竹離)만 한 인물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수영이 모르는 사람을 보내는 게 좋았다. 그래서 고죽리가 후계자로 삼아 첩보 활동의 기술을 전수하는 부하 가운데서 영리하고 민첩한 젊은 인재 소형(小兄) 석광(石光)에게 밀명울 주어 보냈던 것이다.

 

열흘쯤 뒤에 돌아온 석광이 그동안 은밀히 염탐한 내용을 보고했는데, 연수영과 요동 수군이 반란을 꾀하는 낌새는 전혀 없다고 했다. 계속해서 전함을 만들고, 군사들을 조련하고는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당군의 재침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연수영이 거느리고 있는 막장(幕將) 사이에서는 조정에 앉아 연수영을 모함하고 있는 연정토와 선도해 등에 대한 불평 불만이 높더라고 했다.

 

또한 비사성과 석성, 오고성을 비롯한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 연수영은 단순한 전쟁영웅을 넘어 거의 여왕처럼 떠받들고 있더라는 보고도 덧붙였다.

 

연개소문은 수영에 관한 문제는 일단 이대로 덮어두기로 했다. 공연한 의심을 키워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비록 낳아준 배는 다르지만 정토나 수영이나 친 동생이 아닌가? 분명한 증거도 없이 수영을 역모혐의로 잡아 가둔다면 세상 사람들이 대막리지 연개소문과 동부가를 어떻게 볼 것인가 말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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