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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여행] 백우금관(百牛金冠) 전설을 찾아, 왕을 내린 명당 준경묘로!

김형석 |2011.10.28 15:44
조회 53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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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여행] 백우금관(百牛金冠) 전설을 찾아, 왕을 내린 명당 준경묘로!

 

삼척으로의 가을여행을 시작하며 가장 기대가 큰 곳이

관동팔경의 하나인 죽서루와

대금굴, 환선굴, 신라장군 이사부 사자공원, 해신당 공원, 척주동해비,

새천년 해안도로 드라이브, 해양레일바이크 체험 등

 

 

 

 

 

"참, 좋구나. 대지로다. 대지로다."

 

"5대손 안에 왕이 태어날 명당인데

개토제 때 반드시 소 백 마리를 잡아 제사를 지내야 하고,

관은 금으로 만든 것을 써야 한다."

 

 

 

그러나 가을여행, 삼척 투어 중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다

어릴 적...(TV에서 '전설의 고향'도 하기 훨씬 전)

라디오 프로 '전설따라 삼천리'에서 들은 '백우금관' 전설이 떠올랐다.

 

어린 소년에게 꿈과 상상력을 준

'스토리'의 힘에 이끌려 찾아나선 준경묘

 

1박 2일...일행과 헤어진 후, 뜻이 맞는 여행 동행자와 함께

신라 천년고찰 천은사와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집필한 동안사를 들린 후

준경묘를 찾았다.

 

전설따라 삼천리: 대한민국 MBC 라디오(AM)에서 1965년 5월 시작되어 1983년 10월까지 15년간 밤 10시에 방송된 라디오 드라마 프로그램이다. 1978년 7월 방송 4천회를 맞이하였으며, 이후 한동안 폐지되었다가 1982년 9월부터 계속되기도 했다. 전통 미풍 양속을 되살리는 취지로 시작되었으며, 한국 각지의 전설을 조사하여 각종 효과음을 곁들여 극화하였다. 시그널 곡으로는 드뷔시의 〈조각배 (En Bateau)〉가 사용되었다.

 

 

 

* 백우금관(百牛金冠) 전설:

조선왕조 창업의 산실로 불리는 준경묘에는 유명한 백우금관(百牛金冠) 전설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목조 이안사가 삼척으로 이주하여 살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게 됩니다. 목조는 아버지의 묘자리를 찾기 위해 산 속을 헤매다가 나무 밑에서 잠시 쉬는데, 한 도승이 지나다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두루 살펴보고 인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혼잣말로“참 좋구나 . 대지(大地)로다”라고 하였다. 이안사가 나무 밑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없는 줄 알고, 도승은 계속해 “개토제(開土祭)에 소 일백 마리를 잡아 제사를 지내고 관을 금으로 만들어 장사지내면 5대 안에 왕이 출생하여 기울어 가는 이 나라를 제압하고 창업주가 될 명당이로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안사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골몰히 생각하였으나 가난한 살림살이에 소 백마리와 금으로 만든 관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안사는 궁리 끝에 흰 소를 한자로 쓰면 백우(白牛)이므로 숫자상 일백 백자와 발음이 통하므로 소 일백마리는 흰 소 한 마리로 대신하고 귀리 짚이 황금색이니 이것으로 금관을 대신하면 될 것이라 판단하였다. 마침 처가에 흰 소가 있어 부인에게 내일 밭갈이를 하려고 하니 처가의 흰 소를 잠시 빌려오라고 하였다.
다음날 부인이 몰고 온 흰 소를 잡아 제물로 사용하고 황금색 귀리 짚으로 관을 만들어 장사를 지냈다. 이렇게 장례를 치른 후 이양무의 5대손인 이성계가 마침내 왕이 되어 조선을 건국하였다.[출처: 삼척시청 홈페이지]

 

 

푸른 기개를 가진

범접하기 어려운 형상의 꼿꼿한 소나무들이

나그네를 맞이 한다^^

 

내 그림자는 항상...바람의 나라를 피해 

해의 나라,

태양의 은신처 동쪽으로 향한다.

 

 

 

가을의 시/강은교

 

 

 나뭇가지 사이로

 잎들이 떠나가네

 그림자 하나 눕네

 

 길은 멀어

 그대에게 가는 길은 너무 멀어

 

 정거장에는 꽃 그림자 하나

 네가 나를 지우는 소리

 내가 나를 지우는 소리

 

 구름이 따라나서네

 구름의 팔에 안겨 웃는

 소리 하나

 소리 둘

 소리 셋

 無限

 

 길은 멀어

 그대에게 가는 길은 너무 멀어


 

 

준경묘 가는 길,

아름드린 낙락장송 소나무의 크기를 보아라.

땅이 좋은 지...남쪽에선 보기드문 아름드리!

 

이 곳 소나무들은 경복궁 중수할 때

궁궐의 대들보로 쓰였다고 한다.

 

 

가난한 살림에...

백마리 소를 흰소로 대신하고,

황금으로 된 관 대신

가을 추수철...황금빛으로 물든 들판을 보고

귀리 짚으로 관을 덮은

조상의 창의력으로 제왕을 터를 훔치다!

 

전주 이씨 목조 이안사의 공으로 

발복하여 왕이 된 이성계 장군?

 

 

 

 

 준경묘

 

 

준/경/묘ㆍ영/경/묘  종목 : 강원도기념물 43호 명칭 : 준경묘(濬慶墓) 분류 : 묘 수량 : 1기 지정일 : 1981.08.05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삼척시

준경묘는 조선 태조의 5대조부인 양무장군(陽茂將軍)의 묘이고, 영경묘는 양무장군의 부인 이씨의 묘이다. 준경묘는 활기리에 있고, 영경묘는 약 4㎞ 떨어진 하사전리에 있다.

1899년에 왕명으로 묘소를 짓고, 재각(齋閣:제사를 지내기 전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 머무는 공간 또는 제사에 필요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공간)·제실(祭室)·비각(碑閣) 등을 세웠다. 준경묘 앞에는 앞면 3칸·옆면 2칸짜리 제각이 있는데, 지붕선이 옆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이 제각은 왕릉에 세워지는 정(丁)자형이 아니라 단순한 일(一)자형으로 되어 있다.

이 일대는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되어 있어 원시림의 경관을 구경할 수 있는 경치가 좋은 곳이며, 이곳의 소나무들은 경복궁 중수 때 자재로 쓰였다고 한다.

[부속문화재]

이성계의 5대조부 양무장군의 묘로 1899년에 영경묘와 같이 묘소를 수축하여 정자각, 비각을 건축하고 舊居址에 재실, 비각을 건축하였으며, 특히 이 일대는 울창한 송림으로 되어 있어 원시림의 경관을 여기서만 구경할 수 있는 산자수려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 전주이씨의 실묘로는 남한에서 최고의 시조묘로 매년 4월 20일에 전주이씨 문중 주관으로 제례를 올리고 있다. 1984년 8월에는 삼척군에서 영경묘와 함께 재각, 비각, 재실, 홍살문 등을 일제히 보수하였다.

묘 앞의 제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일자각(一字閣)으로 왕릉의 제각(祭閣)인 정자각(丁字閣)과는 그 규모가 다르다. 그리고 제각 우측에 "어제준경묘비(御製濬慶墓碑)"라 적힌 비가 비각 안에 있는데, 이 비는 광무 3년(1899)에 자헌대부 이근명이 비문을 서했다. 활기리 마을에 있는 재실은 ㅁ자 와가(瓦家)로 대문은 솟을대문으로 되어 있고 여기에 제기(祭器)가 보관되어 있다. 재실 바로 앞에 "목조구거유지(穆祖舊居遺址)"라는 비와 비각이 있으며, 이 비는 광무 3년(1899)에 이중하가 어명으로 세웠고, 재실도 이때 이중하의 감독으로 지어졌다. 영경묘는 태조의 5대조모 평창 이씨의 묘로, 1899년에 준경묘와 같이 묘소를 수축하여 정자각, 비각을 건축하고 영경묘라고 하였다. 이 묘는 준경묘와 함께 전주 이씨의 실묘로는 남한에서 최고 시조묘이며 매년 4월 20일 전주 이씨 문중에서 제례를 지낸다. 비각 안에 있는 "어제영경묘비(御製永慶墓碑)"는 광무 3년(1899)에 정헌대부 민병석이 서(書)했다.

1981년 8월 5일 강원도기념물로 지정되었는데 그 대상은 묘, 재각, 비각, 비, 재실이다. [삼척시청]

비각 비각 재실재실 제례행사 제례행사 준경묘준경묘

 

 

풍수의 대가들은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가 막중지세이지만

우백호가 힘이 더 강해

맏아들보다는 차남 등에서 왕이 많이 나왔다고 하네요.

(조선시대 27대 왕 중 7명만 장남)

 

또한, 대권 다툼의 골육상쟁 왕자들간의 난이 많았던 것도

이 곳 앞산들이 (풍수적으로 5개 큰 봉우리가 있어 오백년 동안)

대치형국이기 때문이라네요.

믿거나 말거나^^

 

 

소나무들이

성자처럼 서 있다

어떤 것들은

생각하는 것같이

턱을 괴고 있다

 

몸속에 숨긴

얼음 세포들

 

나무는 대체로 정신적이다

고고(高高)하고 고고(固固)한 것

아버지가 저랬을 것이다

 

오래된 나무는 모두 무우수(無憂樹)같다

 

 

아버지 가고

나는 벌써

귀가 순해졋다

바람 몰아쳐도

크게 흔들리지 않겠다

 

오래된 나무/천양희

 

 

 

 

준경묘는 삼척의 활기리에 있는데

활기리의 옛 지명은 황기(皇基)리.

즉, 임금이 태어날 길지,

'황제의 터'로 불렸다고 합니다.

 

여차하면 삼족을 멸했던

무지막지한 야만의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 파자 등을 통해

뜻을 숨기거나 은유적으로 표현을 했는데

역모의 땅이란... 천기누설을 감추기 위해 지명이 변한 것 같습니다^^

 

섬에서는 왕이 나올 수 없다고 풍수 전문가들이 말하다가

거제도 섬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나오자

거제도 고향 '대계(大鷄)리'가 품은 뜻인

대계...즉, 큰닭이 '봉황'이었다고 하던데 ㅎㅎ

 

 

영원한 안식처를 향한 인간의 몸부림...

왕후장상이라도 그 종착역은 결국?

 

100년도 못사는데...

업을 쌓지는 말고

덕을 쌓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

무덤을 보면 떠오른다.

 

 

고향에 가고 싶다.
큰댁 뒷동산에 있던 용틀임하던 소나무는
죽은 지 오래다. 내가 자라던 집은 흔적조차 없다.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에서 스무 걸음 떨어진 개울에는
물도 말라버렸다. 거기서 빨래하던 아낙들은 어쩌면 이제는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게 되었을 듯하다.
그런데 가고 싶다.
그래, 고향에 가면, 고향으로 돌아가면,
나는 비로소 나를 사랑하리라.
나는 나를 토닥거리고 싶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피곤한 마음도 상처난 몸도 쉬게 하고
아프지 않게 하리라.

- 정진홍의 《마당에는 때로 은빛 꽃이 핀다》중에서 -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 이안사는

이곳에 부친의 묘를 쓴 후,

전주에서 자신을 죽이려했던 별감이

관동의 안렴사가 되어 삼척으로 온다는 말을 듣고

함길도(지금의 함경도)로 도피한다.

 

그래서 태조 이성계는 함경도에서 태어나

도승의 예언처럼 5대 후에 조선왕조를 창업한다.

 

 

 

길손의 목마름을 달래준 샘물...

명당 옆에는 맑은 물까지 난다^^

 

 

 

산자수려한 곳,

명당의 기를 받은 기분이 들게 한 풍수여행^^

 

 

일본의 일부 극우학자들이

이성계가 여진족 후예라는 주장을 하며

조선조 500여년 여진족의 지배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반증의 역사적 유적임.

 

 

전설은 전설일 뿐, 설화는 설화이고...

 

백우금관...

너무 믿지는 마시고

용비어천가처럼

민심을 얻기위해

하늘의 뜻을 빌린 계책일 수도 있으니 ㅎㅎ

 

고금을 통틀어

정치하는 분들...다 이런 하수를 잘 씁니다.

이젠, 상수를 써야하는 세상!

 

사람 안에 길이 있고,

 사람이 하늘이며,

사람이 희망인 세상입니다!

 

 

푸르름의 아우성 속에 누렇게 물든 나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을 비우려 한다^^

 

 

준경묘 가는 길에 만난 정이품송과 혼례한 소나무

곧게 뻣은 기상이 예사롭지 않다^^

 

 

 

노송에 깃든 나무?

자연의

생존을 위한 생명력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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