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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줄수 있어 아빠는 행복해[서창현]

랑때지기 |2011.10.31 22:08
조회 19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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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줄 수 있어 아빠는 행복해
-특별기고- 조금은 슬픈 일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아빠’라는 타이틀로 육아에 참여한다는 소문은 해당되는 아빠를 대단한 사람으로 보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엄마만 해야 할 일이 아님에도 아빠가 육아에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뉴스가 되는 웃기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죠. 아빠라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 아빠가 이런 것도 한다는 뉴스로 변신하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심지어 아빠들도 육아에 참여하자는 운동이 정부 주도하에 진행되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이런 현실을 만들어버린 아빠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아빠들도 할 말은 많습니다. 웬만하면 집에 보내주기 싫어하는 직장, 퇴근 시간에 퇴근하는 사람을 월급도둑으로 몰아버리는 사회 분위기, 물려받은 재산이 없다면 죽어라 일해도 빠듯한 살림살이를 고수해야 하는 신기한 경제구조의 나라에서 아빠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양육을 도외시하는 못난 아빠의 이미지를 스스로 떠안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양육에서 조금 떨어진 아빠들에게 무조건 돌을 던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조금 비켜 생각해보면 아빠들이 양육에 참여하는 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별도의 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으며 훌륭한 육아를 위해 특별한 학위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저는 ‘아빠가 읽어주는 동화책’이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리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아님에도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줬다는 사실을 엄청 대단한 일로 봐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론 감사하지만 한편으론 조금 민망스럽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하루 30분 남짓, 그것도 매일 하지는 못했기 때문이지요. 아빠를 잘 알아보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책을 처음 읽어준 건, 순전히 아내의 잔소리 때문이었습니다. 아내는 아이에게 책이라도 읽어주라는 핀잔을 계속 날리곤 했죠. 당신에게서 생명의 일부분을 받은 아이에게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당신의 체온을 느끼게 해주라는….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마른 장작이 굴러다니는 느낌의 뻑뻑한 목소리로 어떤 감정도 싣지 않은 채 의무감으로 읽어줬습니다. 목은 아프고 책의 내용은 어찌나 유치한지 아내는 저를 보고 긴 한숨을 쉬곤 했습니다. 아내와 말다툼도 했고, 숨 막히는 냉전의 시간도 보냈습니다. 그게 싫어서 아이에게 조금 더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목소리를 바꿀 수도 없었고 구연동화 전문가처럼 재미나게 읽어주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표정과 눈빛을 보며, 그림과 글을 조금 더 집중해서 보고 읽으며 저는 변해갔습니다. 옹알이 수준의 소리만을 낼 수 있는 아이였지만 눈빛으로 아빠가 읽어주는 동화책 내용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을 주곤 했습니다.

아이가 책을 읽어주는 아빠를 빤히 바라봅니다. 아이의 눈빛은 정확히 제 얼굴을 향해 빛을 내고 있었죠. 가끔은 미소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이의 반응,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아이의 눈빛과 미소가 행복을 준다는 사실을요. 그 행복감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즐기게 하는 원동력이 돼버렸죠. 다양한 종류의 그림책은 아빠에게도 신기함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다양한 반응은 아빠에겐 말할 수 없는 행복이었죠. 그거 아십니까? 사실, 아이를 위해 뭔가를 해준다는 생각은 잘못이라는 것을.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부모가 해주고 싶어서 무엇인가를 해주는 것이죠.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해주는 순간 부모는 뿌듯한 행복감을 맛보게 되니까요.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정서함양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라는 마음은 잠시 넣어두셔도 괜찮습니다. 누구를 위해서라는 마음은 쉽게 스스로를 지치게 만드니까요. 그저 스스로에게 행복한 순간을 주겠다는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책을 읽어주는 그 시간, 책을 읽어주며 아이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 보는 시간, 책을 읽어주며 아이의 미소, 아이의 웃음소리, 아이의 흥분된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 엄마, 아빠에게 행복을 줍니다. 행복하다면 지치지 않고 엄마도 아빠도 아이도 그 시간을 즐기게 됩니다.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에 비해 아빠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가정에서 존재감이 없어져버리죠. 아무리
“나는 가장이다” 외쳐도 돌아오는 대답은 “그러던지!”입니다. 아이에게만 정성을 쏟는 엄마의 문제일까요? 친구들과의 시간만을 소중하게 여기는 아이들의 문제일까요? 혹시 가정을 지킨다는 명분하에 오로지 바깥으로만 눈을 돌린 우리 아빠들의 문제는 아닐까요?

아빠들도 행복했으면 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나도 아빠들이 소외감 없이 가정에서 존재감을 발휘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사춘기 여드름 청춘이 된다 하더라도 아빠들과 얼굴 맞대고 대화하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렇게 만드는 건 아빠들의 몫입니다. 하루 15분에서 30분 시간을 내 평소 말투 그대로 책을 읽어주면 됩니다. 책을 읽어주다 보면 아이들의 반응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그 반응에서 행복을 느껴보십시오. 아주 조그만 행복이지만 그건 사회적 성공, 명예, 돈이 주는 행복감에 비해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을 줄 겁니다. 그 행복감을 느끼셨다면 이제 당신도 생물학적 아빠의 위치를 벗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죠. 반드시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행복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책이 아니더라도 아빠와 아이가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니까요. 아이들과 나들이 하거나 살 맞대며 샤워를 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아빠의 행복을 맛보게 하는 것이니까요.

제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한 살 때부터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책을 읽어줬으니 딱 10년을 읽어준 셈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책을 읽어줘 아이에게 어떤 교육적 효과를 봤느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그때마다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교육적 효과 때문에 읽어준 것이 아닙니다. 제 자신이 아빠의 행복을 느끼려고 읽어준 것이죠. 책이 주는 교육적 효과는 대단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것 때문에 책을 읽게 하는 것은 아니죠. 책은 그저 매개체였습니다. 아빠로서 나의 아이와 다정한 대화를 나누게 해주는….” 지금도 아이에게 어떤 교육적 효과가 있는지는 궁금하지도 않고 특별히 관심도 없습니다. 하지만 한가지만은 부모님들께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책을 읽어주던 그 시간들이 나와 내 아이에게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을요.


서창현_『책 아빠』 저자, 블로거(blog.naver.com/maius37) / 2011년 10월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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