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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저당잡히는 복지

투캅스 |2011.11.08 11:30
조회 141 |추천 1

젊은이의 미래를 착취하는 복지

 

하루가 다르게 심화되는 양극화로 전세계가 신음하고 있다. 특히 젊은이의 경제적 기회가 급속히 줄어들었고, 이를 반영하듯 미국에서 시작된 월 가를 점거하라(Occupy Wall Street)는 시위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속에는 소득불평등문제와 그로인한 박탈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불만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유럽에서 촉발되어 사회적 폭동으로 이어진 것을 보았다. 프랑스는 고등학생까지 거리로 뛰쳐 나와 세대간의 갈등임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우리나라도 외환위기와 신용대란 이후 끊임없이 양극화의 주름살은 깊어져 왔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의 실업난은 심각한 지경이며, 경제적 참여 기회 박탈에서 오는 분노는 사회적 뇌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얼마 전 필자를 찾아온 어느 20대 중반의 처녀를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청년실업의 단상을 접할 수 있었다. 가난한 집안사정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졸업하고자 온갖 아르바이트도 마다치 않고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졸업후에도 아르바이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재학시 받은 학자금 대출은 1,000만원이 넘고 있었고, 아르바이트를 하여 받는 월급 90여만으로 이자 갚는 것도 힘들어했다.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 하며 빚을 갚았지만 3년 동안 갚은 대출원금은 고작 일, 이백만원을 넘지 않았고 상환금 대부분은 이자금으로 소진되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편의점, 시간제 학원 강사, 일용직 놀이방 보조 등 제한적 일자리 밖에 없었다. 그나마 2-30만원이라도 더 주는 식당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구직활동에 할애할 시간이 없었다. 등록한 구직 싸이트, 고용센터 등의 연락은 전무했고, 취업을 위한 이력서 작성하는 것도 지쳐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필자의 가슴 한 켠에 납덩이를 달은 것처럼 답답했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아 보이는 40-50대도 사정은 끔찍하기는 마찬가지다. 조기퇴직의 위협 속에 언감생심 노후는 생각조차 할 수 없고, 살인적인 사교육비에 시달려야 하고, 백수로 지내는 자녀의 용돈까지 쥐어줘야 한다.





서울시장에 당선된 박원순 시장과 민주당 등은 “보편적 복지”를 지상최대의 과제로 삼고 세를 벌리고 있다. 또한 양극화의 모든 근원을 복지부족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면 복지국가들은 양극화 문제에서 자유로운가를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 복지 최강의 영국과 프랑스의 폭동에서 보듯, 복지문제가 양극화 방어와 해소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아울러 양극화는 복지 부족이 초래하고 있지 않음도 설명된다.





지난해 유엔개발기구(UNDP)에서 발표한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를 순위별로 발표했다. 1위부터 6위까지 보면 홍콩, 싱가폴, 미국, 이스라엘, 포루투갈, 뉴질랜드 순이었다. 과도한 복지로 국가부도에 직면한 포르투갈이 포함된 것이 눈에 들어온다.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뉴질랜드는 36.2(우리나라 31.5)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를 자랑하는 뉴질랜드가 세계 최고 수준의 양극화 국가이며, 젊은이는 만성적 실업난, 고물가, 주택난에 시달리며 해마다 뉴질랜드를 떠나는 젊은이가 늘어나고 있다. 4명중 1명은 조국 뉴질랜드를 떠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는 뉴질랜드를 복지 지상낙원으로 생각하고 이민가지 못해 안달이다.





양극화 해소 방안이 복지를 통한 재분배가 될 수도 있고, 경제적 참여 기회를 유연화 하는 방법도 될 수 있다. 복지비 부담은 경제활동 인구가 부담하는 것은 철칙이다. 따라서 경제활동기회가 많은 젊은이가 많은 복지비용을 부담할 수 밖에 없고, 반면, 경제활동 기회가 적은 고령자일수록 부담하는 복지비용은 적다.





복지의 강화는 세금을 바탕으로 하며, 국민의 주머니를 통해 조달된다. 경제적 참여기회가 월등한 젊은층은 복지 확대가 학자금 대출 갚듯이 평생을 시달려야 할지 모른다. 은퇴자는 복지를 강화하면 할수록 책임 없이 수혜를 누리게 된다. 특히 좌파 정치인들은 젊은이의 미래를 저당 잡을 수 밖에 없는 과도한 복지, 보편적 복지를 화두로 삼아 정치세를 불려왔다. 이는 어디까지나 젊은이의 미래를 도적질하면서, 그들을 위하는 것처럼 혹세무민한 것이다.





복지는 지불한 비용만큼, 감당할 수 있는만큼 누릴 수 있다는 평범한 진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아니된다. 분에 넘치는 복지는 죄악이며, 이러한 죄악을 저지르려는 악질 정치인 심판에 젊은이가 나서야 할 것이다.





프런티어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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