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0년을 전후한 시기의 국내외적 대격변의 충격으로, 386(현장파)들이 인생의 로드맵을 새로이 설정할 때 나는 30~50대를 엔지니어·전문 경영인으로 설정했다. 그 이후에는 공공의 일을 하러 나올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로드맵과 달리 공공정책담론 내지 정치콘텐츠를 아예 업으로 삼게 된 계기는 몇 번의 황당한 경험 때문이었다. 첫 번째 경험은 1990년대 후반 대우자동차-대우그룹-한국 자동차산업 구조조정과 관련된 한국 사회의 황당한 대응이었다. 김우중도, DJ정부도, 은행도, 노조도, 목소리 높이는 논객들도 하나 같이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지금도 세계로 뻗어가는 현대·기아차의 기세와 브랜드마저 상실한 대우자동차(쉐보레)를 보면 2000년 전후한 시기의 대우그룹과 대우자동차에 대한 엉망진창의 구조조정은 천추의 한으로 남아있다. 어쨌든 나는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낀 분노와 위기의식을 기반으로 2001년에 내 첫 번째 책을 펴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DJ정부의 4대 개혁을 볼 때도, 이를 신자유주의 운운하며 비판하는 진보 세력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4~8년의 열린우리당/대통합신당과 참여정부의 대응은 더 황당했다. 물론 이명박 정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더 했다. 천인공노할 방식의 노무현 죽이기, 대북정책, 천안함 관련 대응이 그것이다. 각설하고, 나는 지금 한미FTA에 대한 민주 진보 진영의 대응을 보면서 동일한 느낌을 받는다. 2. 한미FTA에 관한 한 나는 담론 소비자이다. 그래서 나는 협정문 원문을 한 번도 뜯어 본 적이 없다. 나는 단지 이 분야를 깊이 연구한 논객들이 쓴 찬성론과 반대론 글을 읽고, 전문가들의 TV토론을 보고, 라디오 인터뷰를 듣고 상식에 입각해서 판단할 뿐이다. 물론 담론 소비자라고 해서 담론의 품질과 진위를 가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를 만들지 못한다고 해서 자동차의 품질 성능, 고장 여부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안경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안경을 써 보면 그 품질을 안다. 참된 지혜는 상식의 그물망으로 허위사실, 침소봉대, 장님코끼리 만지기식 해석 등을 걸러내는 것이다. 머리털 나고 나서 내가 접한 반대담론 중에서 한미FTA 만큼 성격과 지향이 다른 것은 없었다. 제2을사늑약이라며 결사반대하는 사람, FTA를 원칙적으로 찬성하되 순서를 문제 삼는 사람(한중-한일FTA부터 먼저), 우리 보다 산업 발전 수준이 낮거나 같은 나라와 해야 한다는 사람, 절대 폐기해야할 독소 조항을 몇 개 들먹이며 재협상을 주장하는 사람, ISD만 문제 삼는 사람 등. 한미FTA 찬성론자들과는 민주통합당을 같이 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런 중구난방 자체가 반대담론이 가진 근원적인 취약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배우는 사람의 심정으로 다양한 반대론, 재협상론을 살펴보았다. 혹시 2006~7년에 비해 세련되거나 정교해진 반대담론이 있나 해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하나 같이 근거가 너무나 허술하였다. 내 상식의 필터를 통과하는 반대론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자신이 읽은 반대담론 중에서 말이 좀 된다고 생각하는 글을 소개 좀 해 달라. 최모, 정모, 이모씨 글, 노무현 재단 글 다 보았지만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솔직히 한미FTA 관련하여 민주 진보가 취한 스탠스를 보니 아무래도 퇴행하면서 왼쪽으로 가 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3. 한미FTA 관련해서 먼저 내 얘기를 해야겠다. 민주 진보의 한미FTA반대론과 외통위점거로 상징되는 극단적인 반대 방식은 나라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집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정치가 본래 진영 간 패싸움이고, 나와 친하게 지내는 분들, 진보 진영의 지도급 인사들이 반대나 재협상 관련해서 목소리를 높이기에 웬만하면 이해해주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지난 십 수 년의 경험으로 볼 때 비슷한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민주진보가 우르르 몰려가는 길은 망하는 길이었고, 국민적 상식과 내 상식이 일치하는 길은 적어도 망하지는 않는 길이었다. 내가 아는 지식과 상식에 입각해서 볼 때 2008년 금융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자동차 분야 양보)과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한미FTA 이행법안은 민주당이 외통위까지 점거하면서 결사반대할 근거가 못된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크게 논쟁이 된 ISD, 역진불가조항, 서비스업 네거티브 방식 개방 등은 지금 다시 뜯어봐도 참여정부의 해명이 역시 설득력이 있다. 괴담 수준의 비판은 참여정부 시절에 거의 논박이 되었다. 가장 그럴듯한 재협상 근거는 노전대통령도 언급한 ‘2008년 금융위기의 경험과 교훈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2007년에 마무리한 협상 자체가 워낙 방어적으로 해 놓았기 때문에 금융위기를 계기로 변경할 금융서비스 관련 조항이 거의 없다. 미국은 한미FTA와 상관없이 스스로 바꿀 것이 많고, 많이 바꿨지만....... 이는 비유하자면 미국 금융은 시속 150KM로 달리는 자동차라면 우리는 소달구지 수준이고, 한미FTA를 하면서도 미국 금융이 한국에서 영업하려면 한국의 도로 환경(규제 환경)에 맞게 움직이도록 조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손 볼 조항이 거의 없는 것이다. 실제 금융 관련 조항의 어떤 부분을 손봐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2008년 위기를 들먹이며 세상이 변했다면서 한미FTA를 하지 말자는 사람들은 분석에 도통 구체성이 없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한미FTA는 신자유주의 수용인데, 2008년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파탄 났으니 근본적으로 재검토 하자.” 솔직히 논리의 마디마디가 허술하기 짝이 없고, 단어 하나하나가 그 의미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과 자동차 관세 철폐 시한, 그리고 개성공단 관련 부분을 양보한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협상은 상대가 있고, 어차피 현재의 조건도 우리에게 큰 이득이 있다면 양보 좀 했다고 협상을 파기해서는 안 된다. 솔직히 재협상이 정말로 절실했으면 지난 4월 한-EU FTA 비준을 전후해서 미리 강력하게 제기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민주당은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4. 나는 한미FTA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회의 대화·토론 문화, 갈등조정 능력, 법안의 품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외통위(나중에는 본회의장) 점거 농성이 초래할 길고 긴 패악이 정말로 걱정스럽다. 물론 상임위, 본회의장 점거 농성은 ‘절대악’은 아니다. 할 수도 있는 것이다. 2004년 대통령 탄핵과 같은 사태가 터지면 나라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FTA가 과연 그런 정도 사안인가? 만약 한미FTA가 을사늑약과 같은 반열의 악법으로, 야당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막아야 할 악법이 맞다면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서 고위직을 한 사람들이 모조리 석고대죄하고 공직에서 물러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 땐 잘 몰랐다는 정도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명박이 재협상을 통해 바꾼 부분이 1%--그것도 협상의 질적 성격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이명박 탓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뿐만 아니라 한미FTA와 그 정신과 내용이 그렇게 큰 차이가 없는 한-EU FTA를 주도한 자들(여기서는 개별 유럽 국가들과 ISD를 맺었다)과 이를 비준한 의원들과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저지 하지 못한 의원들도 석고대죄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반대의 선봉에 선 재야인사들도 대국민 사과 정도는 해야 마땅하다. 물론 나는 한미FTA도, 한-EU FTA, 한-칠레 FTA도 우리 경제와 사회에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제성장과 국운 융성의 결정적인 계기라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안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경제성장에도 사회통합에도! 정말로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식으로 상임위-본회의장 점거농성이 정치 관행으로 될 경우 2012년 총대선을 통해 구성될 국회와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백낙청 선생이 2013년 체제를 얘기할 정도로 차기 국회와 정부는 기존의 대한민국 시스템을 재건축 수준의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 차기 국회와 정부가 주도적으로 바꿔야 할 시스템이 부지기수다. 헌법,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과 조세재정, 보건의료복지, 행정체계, 공공부문, 교육 시스템 등 너무나 많다. 이들은 정말로 심도 깊은 숙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또한 엄청난 갈등 사안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찌그러져도 100석을 넘길 거대 정당이 똘똘 뭉쳐 반대하면 통과시킬 수 있는 법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이 1987년 이후 최강의 힘을 보유했다는 것을 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석 남짓의 민주당이 결사반대하자 제대로 통과 시킨 것이 별로 없다. 방송법 정도를 날치기 통과시켰을 뿐이다. 4대강은 대체로 기존의 권능으로 했을 뿐이다. 그런데 차기 국회와 정부가 통과시켜야 할 법은 국가보안법, 사학법, 과거사법과 방송법 보다 훨씬 파급력이 큰 것이 대부분이다. 상임위, 본회의장 점거농성은 민주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민은행 앞 촛불시위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날치기 통과 한번 하고 나면 그 후환이 만만치 않다. 1년에 재보궐선거 2번 있고, 2년 있으면 지방선거가 돌아온다. 진보는 보수에 비해 이념정책적 스펙트럼이 더 다양하고, 조중동과 재계, 사학, 종교계 등 후견그룹이 약하기에 일사불란할 수도 없다. 따라서 한나라당처럼 날치기를 할래야 할 능력이 없다. 그러면 한나라당이 버티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하나도 없다. 당연히 민주진보는 콩가루 집안에 무능하기까지 한 놈들로 각인된다. 그래서 2012년 총대선에서 요행히 이긴다 하더라도, 2013년 재보궐선거부터 기나긴 진보의 죽음의 시대가 계속된다. 한나라당은 이기겠지만 청년세대와 비기득권층은 계속 죽어나고, 나라는 계속 망가질 수밖에 없다. 5. 2006년 말 국회에는 3000개 넘는 법안이 쌓여 있었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관련한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말도 안 되는 딴죽 걸기가 주효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 이상의 법안이 쌓여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나라당은 준만큼 되돌려 받는 것이다. 이런 문화가 정착되다 보니 제출되는 법안은 양적으로는 많아도 대부분은 면밀하게 검토가 안 될 수밖에! 그 중에 옥이 좀 섞여있겠지만, 지금의 국회는 뭐 하나 심도 깊은 심의를 못하니 옥석구분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옥석구분이 안 되면 몽땅 석으로 취급되기 마련! 부실 심사, 부실 감시가 필연이라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이익집단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법안은 사전에 거의 다 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익집단의 기득권은 강화하고 소비자와 국민 다수의 권리, 이익을 침해하는 법안은 무사통과할 것이다. 다른 나라는 비교적 무난히 처리하는 FTA협상을 놓고 온 나라가 애국과 매국을 들먹이며 결사적으로 싸우고, 정작 필요한 FTA관련 정교한 대안들은 거의 내 놓지 못하는 나라가 어떻게 굴러가겠는가? 이것은 국가적 위기이자, 민족적 위기이다. 6. 순전히 2012년 총대선의 유불리 관점에서 한미FTA를 한번 생각해 보자.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날치기 통과를 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한나라당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조속히 처리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면 당연히 총선 쟁점으로 가게 되어 있다. MB실정에 대한 심판 구도가 한미FTA 찬반으로 희석 될 수밖에 없다. MB와 한나라당은 한미FTA를 통해서 민주당의 뒤집기, 무책임성, 반대론의 시대착오성을 계속 부각시킬 것이고, 상당한 표심의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매체 영향력 때문이 아니다. 진보도 SNS가 있으니까! 문제는 한미FTA반대론 자체가 대단히 허술한 논리적, 사실적 토대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것이다. 대통령 국회 방문, 대국민 호소, 관계장관들 담화, 상임위 소집 시도, 본회의 직권상정 용의 표명, TV토론 등을 통하여 국민들이 잊을 만하면 한미FTA를 국정 현안과 쟁점으로 부각시킬 것이다. 문제는 한미FTA가 국민들의 큰 관심사가 되면 될수록 민주당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그 누가 뭐라 해도 한미FTA는 99%가 참여정부의 작품이다. MB가 재협상으로 바꾼 것은 1%도 해당되지 않는다. 2008년 금융위기, 미의회의 이행법안을 빌미로 외통위점거농성까지 하면서 협정을 파기하라? 재협상 하라? 명분상 너무 구차하다. 도대체 참여정부가 통상 관료들에게 놀아나서 나라 팔아먹을 짓을 했다는 선동이 먹히겠는가? 한미FTA가 나라 망친다고 하지만 중국, 일본, 유럽연합, 아세안 등 많은 나라들이 하고 있거나 하려고 하고 있다. ISD 조항 있지만 FTA로 인해 고유의 경제사회 정책이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한국은 멕시코와 너무 다른 나라이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하는 TV토론(시청률 5~10%나 되나 모르겠지만)을 보니 반대론이 확실히 밀린다. 나는 민주당이 공천 과정에서만 배심원 제도를 활용할 것이 아니라, 한미FTA 관련한 당론 결정 과정에도 배심원제도를 한번 활용해 봤으면 한다. 요즘 유행하는 원탁토론--300명이 참여한 충남도민 정상회의식--을 여기에 적용해 봤으면 한다. 7. 한미FTA반대론과 재협상론이 가장 심각한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하는 ISD관련 유명한 소송 사례를 살펴보았다. 결론은 ISD가 있든 없든 상식에 비추어 볼 때 투자자에게 배상할만한 사례였다. 현재도 우리나라는 민간이 정부의 행정 조치로 권리, 이익이 침해당하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그래서 법원 판결에 의해 국가가 응분의 보상 혹은 배상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법원은 절대 정부의 하수인이 아니다. 몰상식하지도 않다. 이로 인해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은 정책과 사업을 집행할 때, 또 규제를 만들 때 민간의 정당한 권리, 이익 침해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나는 한국 법원이 판결을 하든, 외국의 어떤 기구가 판결을 하든 정부 정책으로 인한 배상 수준이 얼마나 다를지 의문이다. 게다가 ISD에 대한 극도의 우려 때문에 참여정부는 공공정책에 대해서는 외국인 투자자가 함부로 소송을 걸 수 없도록 치밀한 장치를 해 놓았다. 그나마 ISD는 기회비용 전체를 배상하지 않는다. 실제 일어난 소송도 많지 않고, 그 내용도 결코 심각한 것이 아니다. 제소 당할 만 한 것이 제소 당했다. 황당한 제소는 투자자가 거의 승소하지 못한다고 알고 있다. (필립모리스사가 호주정부 금연 정책(캠페인)에 대해 홍콩법인을 통해 호주 정부를 제소하였고, 이 때문에 미국-호주FTA에서 ISD조항이 빠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승소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ISD는 이미 80개국이 넘는 나라와 체결되어 있지만 별일 없지 않는가? 나는 ISD는 우리의 규제의 품질을 높이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모든 일은 위기적 측면과 기회적 측면은 있는데 ISD는 우리의 대응 여하에 따라서 기회적 측면이 더 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내가 걱정되는 것은 미국도, 한국 법원이 민간기업이나 투자자의 권리, 이익을 충분히 옹호해 주는 것을 알기에, 한미FTA에서 ISD를 일정 기간 유보하거나 심지어 폐기하는 것도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꼭 소송이 필요하면 다른 80개국의 현지 법인을 통해서 얼마든지 할 수도 있다. 문제는 미국이 ISD 관련해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들어주면서 요구할 반대급부이다. 그런 점에서 ISD관련 거의 의미도 없는 양보를 미국에 받아내고, 미국에 엄청난 실리를 주는 것이다. 구체적인 기억은 지워졌지만 김영삼정부 때 우루과이라운드에서 김영삼의 쌀관련 언명--대통령직을 걸고 쌀 개방 막겠다-- 때문에 다른데서 상당히 많은 양보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래도 ISD는 이렇게 흘러갈 것 같다. 8. 나에게 있어서 한미FTA의 의미 내지 기회는 이런 것이다. 잘못된 생각이 있으면 지적해 달라. 1) 한미FTA의 최대의 의미는 관세장벽의 인하겠지만, 그 못지않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미국의 일방적이고 갑작스런 무역 장벽 혹은 보복에 재갈을 물린 것이다. 한중 마늘파동때 경험했듯이 한국과 중국, 한국과 미국은 시장 규모가 너무나 차이가 나서 상호 무역 보복시 충격이 비교가 안 된다. 한국이 입는 충격이 월등히 크다. 내가 아는 한 현대기아차 등이 한미FTA에 대해 거는 기대의 핵심은 2.5% 수준의 관세율 인하가 아니다. 미국이 과거 일본차의 일취월장 시절에 종종 휘둘렀던 수입 규제를 한국차에 대해서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솔직히 한국에서 팔리는 현대차의 옵션 감안한 차 가격과 미국에서 팔리는 그것을 비교해 보면 미국은 현대차에 대해 언제라도 덤핑 제소를 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슈퍼301조 같은 카드가 언제라도 튀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FTA 환경이라 하더라도, 긴급 수입제한 조치를 아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까다로운 절차(사전 통보, 협의 등)를 밟아서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되면 업계로서는 물량조절, 로비, 법적 대응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한국은 자동차 외에도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재화들이 많기에 한미FTA틀 내에서 거침없이, 안심하고--한참 잘 나갈 때 수입 제한에 걸려서 엄청난 재고부담으로 기업이 도산할 수도 있다--미국 시장을 질주할 수 있다. 미국의 통상관련 규제에 재갈을 물렸다는 것은 한국도 재갈을 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ISD, 역진방지 등은 그런 재갈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주권 침해라고 하면 맺을 수 있는 국제 조약이 어디 있을지 의문이다. 2) FTA는 기본적으로 서로 최혜국 대우를 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국가를 상대적으로 차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칠레와 FTA를 맺으면서 교역 조건이 좋아지자, 과거에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것을 칠레로 돌렸다. 그래서 칠레로부터 수입이 늘어났다. 게다가 구리 값이 폭등하면서 무역적자가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대칠레 무역적자의 대부분은 FTA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또한 무역적자가 났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데서 수입하던 것을 (더 싸고 좋은 것을 공급하는) 칠레로 수입선을 돌렸기에 나쁜 것도 아니다. 한미FTA는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을 최혜국 대우하면서, 중국, 일본 등을 상대적으로 차별하는 것이다. 중국, 일본이 한미FTA에 대해서 떨떠름하게 보는 이유이다. 3) 서비스산업에서 네가티브 방식 개방에 대해서도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한국직업사전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직업의 숫자는 대략 8천개(통상적으로 1만2천개)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조사 기관이나 방법에 따라 숫자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 대략 2만5천여개(1987년 기준)와 미국의 3만여개(1991년 기준)라고 한다. 이 대부분은 서비스업 일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의 양극화 해소 전략이자, 일자리 창출 및 서비스 산업 비중을 올리는 핵심 전략은 벤처중소기업 친화적인 제도 정책과 더불어, 불합리한 創職•創業 장벽(법, 제도, 기술, 금융, 인지도)을 제거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내가 있는 여의도에서도 바로 변호사 기득권 때문에 ‘로비스트’라는 직업 창출이 안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791년에 제정된 수정헌법 제1조로 로비를 합법화 하였다. “의회는……불만의 시정을 위해 정부에 청원할 권리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한국은 로비를 직접 규제하는 법률은 없으나 공무원의 직무나 정치 풍토의 청렴성 보장을 명분으로 변호사법, 정치자금법,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을 통하여 사회적 약자의 청원권(로비)을 옥죄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로비를 음성화하거나, 변호사 혹은 김앤장 같은 로펌이 독점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정치생태계가 피폐하게 되다 보니 한국은 변호사, 돈 잘 버는 배우자를 둔 사람, 갑부(자식) 아니면 직업 정치를 하기 힘들게 만들어 놓았다. 한미FTA반대의 선봉에 선 변호사들이 그 에너지의 10%만 돌려도 새로운 직업이 만들어질텐데....... 아무튼 한미FTA가 되면 미국의 다양한 서비스업이 들어올 것이다. 아니 들어오도록해야 한다.(물론 그렇게 해도 로비스트라는 직업은 못들어오겠지만.....) 이는 바로 새로운 직업과 고용의 창출로 연결될 것이다.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는 서비스 중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됐던 금융서비스의 경우, 미국에 회사를 차려놓고 (야동처럼) 인터넷을 통해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한국에서 돈만 빨아가는 방식의 서비스는 틀어막았다. 또한 한국의 금융 규제로 칭칭 감아놓았다. 그래서 한미FTA가 비준되면 미국의 발달된 금융서비스 업체가 한국에 지점을 내지 않고는 영업을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는 바로 고용으로 연결된다. 기존에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로 엄청난 돈을 번 금융기관들의 수익이 줄어들겠지만 그게 무슨 대순가? 이것이 한국의 청년 백수와 미국의 발달된 금융서비스 업체에 가는 것이 왜 나쁜가? 무엇보다도 소비자가 좋다. 어차피 한국 고용의 76.6%, 피용자 소득은 75%, 부가가치는 69.7%는 서비스업에서 나온다. 앞으로도 고용의 대부분은 여기서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핵심은 사회서비스를 늘리는 것이겠지만, 좋은 일자리는 미국이 강세를 보이는 금융서비스나 생산자 서비스에서 나온다. 바로 이런 서비스업이 한미FTA를 계기로 한국에 많이 들어올 것이고, 우리는 이것을 배워 빠른 속도로 따라 잡고 결국은 해외로 진출할 것이다. 문제는 한미FTA협상 과정에서 서비스업에 워낙 방어장치를 튼실하게 만들어 놓아서 미국이 한국 시장에 별 메리트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4) 나는 대단히 걱정하지만 사람들이 별로 거론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의 산업, 고용의 이중구조다. FTA는 기본적으로 비교우위론에 기초해 있다. 비교우위 부문은 성장하고, 비교열위 부문은 위축되는 것이 정상이다. 문제는 한국은 산업연관효과, 수출의 고용계수 등이 약화되어있고, 노동시장 역시 귀족시장과 평민시장의 이중구조를 갖고 있기에, 비교우위 부문이 창출한 가치(고용, 부가가치)가 널리 확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한미FTA의 최대의 수혜주인 현대기아차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현대기아차는 늘어난 물량을 신규 고용이 아니라 잔업, 특근으로 소화해 버린다. 늘어난 수익도 노조와 임직원들의 고임금과 복리후생비로 가져간다. 전후방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은 나눠 줄 것이다. 자동차 산업이 입지한 지역도 좋을 것이다. 물론 법인세, 소득세, 부가세도 많이 징수될 것이다. 물론 주주 배당과 특수 관계 회사로 이윤 빼돌리기도 일어날 것이다. 나는 비교우위 부문이 신규 고용 창출과 부가가치를 확산하는데 인색한 이런 현상은 한국 최대의 고질병으로 , 한미FTA와 관계없이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미FTA 반대 전선이 아니라, 한미FTA로 인한 위기를 최소화하고 기회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중지를 모으는 것이 진정한 진보의 모습이자 국회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5) 한미FTA 관련 최대의 우려는 FTA로 인해 각종 장벽이 제거되어 결과적으로 경제가 상당 부분 통합되어 미국적 모순부조리가 한국에 그대로 이식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이는 한국 사회와 미국 사회를 동일시 하면서 생긴 우려이다.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사회’로 통칭되는 미국적 모순부조리는 의료, 금융 등 너무 많은 것을 자유시장, 소비자 선택권, 대외 개방에 맡긴 결과라는 것이 중평이다. 그 결과 CEO, 금융자본과 금융전문가,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이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되었고 대다수는 실질임금이 늘어나지 않았다. 한편 조세재정 정책을 지렛대로 한 국가의 재분배 정책도 후퇴하고, 외교안보 측면에서는 과도한 개입주의까지 가세하여 이를 악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양극화와 청년세대의 3피(연애, 결혼, 출산 기피)로 통칭되는 한국적 모순부조리는 기본적으로 보수∙진보 기득권의 담합의 산물이다. 미국같이 자유롭고 공정하고 소비자선택권을 철저히 보장한 시장 시스템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독과점, 내부자거래, 허술한 소비자보호, 이익집단 편향적 규제정책과 재정정책 등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한국에서 힘센 자들은 시장, 경쟁, 개방, 유연화 등이 대충 비껴가고, 이것은 오로지 힘없는 자들에게만 강제된다. 지금 한국의 노동시장, 금융시장, 부동산시장, 자동차 및 유류시장, 통신서비스 시장, 민간보험 시장, 보건의료시장, 유통 시장, 대학과 공공부문, 정치시장, 언론(종이 신문 및 방송)시장 등 우리의 삶을 규율하는 핵심 영역은 대체로 소비자선택권과 공급자 경쟁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이는 공공성의 원리에 의해 그리 된 것이 아니다. 공공적 의도, 이익집단과 관료의 농간, 발전국가의 잔재, 한국적 특수성(부동산, 교육) 등 오만가지가 뒤섞여 있다. 한국의 소극적인 재분배 정책도 지난 30년간 미국 사회를 풍미한 어떤 철학, 가치(신자유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천민자본주의, 분단국가, 성공한 발전국가 등의 합작품이다. 그런데 한미FTA 반대론의 토대를 형성하는 신자유주의 프레임은 시장, 경쟁, 개방 등이 과잉인 영역만 주로 보게 하기에, 미국적 모순부조리와 한국의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무엇보다도 양극화, 청년 실업, 비기득권자에게 기회와 도전의 죽음의 시대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자본(기업), 시장, 경쟁으로만 돌린다. 그러면서 규제, 복지, 노조강화라는 일종의 진통제만 대안으로 제시한다. 시장의 폭력성에만 주목하다 보니 시장이 가진 건강한 힘을 활용할 비전도 대안도 없다. 한미FTA는 시장을 10배 이상 키우고, 동시에 경쟁과 개방의 건강한 힘을 살리며, 그러면서도 국가와 사회(공동체)도 자신의 역할을 더욱 충실하게 하도록 만든다는 것이 기본 전략이다. 그런데 사물을 평면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시장 영역이 커지면 국가와 사회 영역이 쪼그라든다고 생각한다. 이는 전혀 사실도 아니고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9. 나는 한미FTA갈등과 1990년대 후반 이후 지금까지 한국이 겪었던 소모적 갈등을 뜯어보면, 천혜의 자연자원을 보유하고도 내전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여 국민을 도탄에 빠뜨리는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이 한국과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소말리아, 북한 같은 실패 국가들을 보면 그 사회에서 통하는 상식이 우리와 너무 다르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해적질, 도둑질, 뇌물이 일상이고, 상식이니까. 그런데 소말리아, 북한을 보고 비웃을 상황이 아니다. 선진국의 눈으로 보면 지금 한국에서도 도통 이해 못할 철학, 가치, 행태가 상식처럼 통용되니까! 단적으로 노동의 양, 질이 아니라 기업의 수익성, 교섭력을 따르는 임금체계와 그로 인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 고용률이 화두가 되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 노동 현안이 되는 현실, 9급 공무원 공체에 대졸자들이 몰여 100대 1의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월등한 공무원의 근로조건, 심의도 제대로 하지 않는 수천 건의 국회 계류 법안들, 그리고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무슨 매국노 집단처럼 여기는 작태와 물리적 의사진행 방해 등이 그런 것이다. 이런 꼴을 보고 있으면 우리 민족이 1945~53년에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 60년이 넘도록 휴전상태조차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 확실한 이유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차이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의 극단성과 저열함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의 비참한 노년과 자식 세대의 암담한 청년기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세계 최악의 출산율과 자살률과 청년세대의 3피(연애, 결혼, 출산 기피) 사태는 환경 변화에 맞춰서 법,제도를 변화시키지 못한 정치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2012년 총대선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민주 진보는 이제부터는, 국민들에게 국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정치집단이라는 느낌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차기 국회와 정부의 생산성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악순환의 고리를 누군가는 끊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언제까지 이럴건가? 백보 양보하여 이것이 당내 경선과 총선(본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김대중, 노무현 초상화를 당사 곳곳에 걸어 놓은 정당이 이럴 수는 없다. 백번 천번 고쳐 생각해도 이것은 두 대통령의 정신과 방법이 아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 연구소장 ------------------------------------------- 정독하고 댓글싸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