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2011-11-30]
벵거는 버리고 박주영은 놓친 칼링컵
아스널이 칼링컵 8강에서 탈락했다. 아스널은 손해 볼 것 없는 패배, 그러나 박주영(26)에겐 일시적이나마 상심이 큰 결과였다.
아르센 벵거 감독은 자신의 공언대로 박주영을 선발로 내세웠다. 상대팀 맨시티의 전력상 벵거 감독의 선 택은 매우 위험해 보였다. 같은 2군 전력이라고 해도 맨시티의 칼링컵 팀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에딘 제코를 비롯해 사미르 나스리, 아담 존슨 등 의 스타플레이어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런 상대팀과 토너먼트 단판 승부를 펴야 하는 벵거 감독으로선 고민이 컸을 것이다.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벵거 감독은 결국 칼링컵을 버렸다.
맨시티전에서 아스널이 힘을 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져도 큰 타격이 없기 때문이다. 칼링컵은 시시한 대회다. 빅클럽 주도로 몇 년 전부터는 완전히 후보들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처럼 변질된 지 오래다. 오프시즌 돈벌이용 컵대회나 별반 차이가 없다. 중소 구단으로선 칼링컵 우승도 대단한 성취겠지만 아스널 수준의 빅클럽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타이틀이다. 칼링컵 탈락을 비난하거나 혹은 아쉬워할 팬들은 거의 없다.
결정적으로 다른 팀도 아니고 맨시티에 졌다는 사실이 벵거 감독에겐 완벽한 면죄부였다.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나온 팀에 아스널 2군이 패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벵거 감독은 미소를 띤 채로 임했다. 그 만큼 여유 있는 패배였다. 더군다나 아스널은 최근 10경기에서 8승2무로 고공비행 중이었다. 50일만에 졌다. 누가 뭐라 하겠나.
그러나 박주영에겐 달랐다. 유일했던 선발 출전의 기회가 사라졌다는 박탈감이 크다. 아스널 입단 후 박주 영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한번도 뛰지 못했다. 실력 여하를 떠나 아예 기회가 없었다. 칼링컵 16강 데뷔골로 얻은 UEFA챔피언스리그 선발 기회를 날렸고, 아부 디아부가 복귀하자 박주영은 벤치에서마저 밀려났다. 이제 박주영이 기대할 기회는 내년 1월부터 참가하는 FA컵 정도다. 바쁜 연말연시 일정도 크게 기대하기가 어렵다. 로빈 판페르시와 마루아네 샤마흐 2명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더군다나 리그 적응에 애를 먹는 박주영보다 월컷을 3순위 공격수로 활용하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른다.
이번 맨시티전에서의 활약이 필요했다. 맨시티라는 강팀을 상대로 결과를 만들면 박주영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는 작은 목소리도 힘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경기는 영국 전역으로 TV생중계되었다. 같은 시간대 3경기 중 가장 관심 카드였다는 뜻이다. 보는 눈이 많은 경기에서 골을 넣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박주영은 그 미션에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동료들과의 연계가 안 좋았다든가 슈팅수가 부족했다는 지적에는 동감할 수 없다. 어차피 공격수는 골로 말하는 포지션이다. 90분 내내 사라졌다가 한 골만 넣어도 칭찬받는 게 최전방 스트라이커다. 박주영이 질책 받아야 할 점은 득점 실패지 경기력 부진이 아니다.
박주영의 장밋빛 아스널 꿈은 깨졌는가? 그렇진 않다. 박주영의 오늘이 굉장히 암울해 보이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언론과 팬들의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 때문이다. 영국 현지에선 박주영에 대한 실망감이 크지 않다. 한국만큼 기대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아스널 팬들 입장에서는 그저 그런 선수가 와서 그저 그런 활약을 하고 있으니 그저 그럴 뿐이다. 축구 선수들이 늘 말하듯 A선수가 B팀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만약 벵거 감독이 영입 3개월 동안 4경기에서 써보고 나서 “이 녀석 정말 엉망이군”이라고 판단할 만큼 조급한 지도자였다면 박주영 같은 무명 선수보다 값비싼 스타플레이어를 샀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박주영에겐 앞으로도 기회와 위기가 뒤섞여 찾아 든다. 기회가 위기로, 위기가 기회로 마구 바뀐다. 1월 샤마흐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출전이 기회라곤 하지만 그 때문에 벵거 감독이 새 공격수를 영입하면 위기가 될 수도 있다. 판페르시는 지금 당장 박주영에게 큰 장애물(위기)이지만, 부상이라도 당하면 기회로 급변한다. 샤마흐의 시즌 도중 이탈과 마찬가지로 판페르시의 존재도 박주영에겐 기회이자 위기란 뜻이다.
〔스포탈코리아 홍재민 기자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