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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수들의 오만방자함

도투루 |2011.12.02 10:12
조회 125 |추천 1

 

'나꼼수' 탁현민이 한 '취재통제'의 含意

구세주로 착각한 나꼼수들의 오만방자한 독선

 

* 박주연 미디어워치 기자의 시가에 편집인의 주석이 달렸습니다. 나꼼수가 하도 가증스러워서*
 
'나꼼수' 기획자 탁현민 '취재통제' 논란(박주연 미디어워치 기자)

30일 여의도 나꼼수 공연에 앞서 공연기획자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트위터에 “조중동 취재금지다. 취재는 현장에 프레스 부스에서 나에게 직접 프레스카드를 받은 분들만 가능하다”고 경고한 것을 두고 MBC 최명길 논설위원이 “탁씨가 취재거부를 밝힌 것은 권한의 밖의 일”이라고 비판했다. (편집자 주: 탁현민 같은 군중인간은 마음에 드는 자를 천사처럼 숭배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자는 악마처럼 배척한다. 조지 소렐이 지적한 것처럼, 군중인간은 과학적 분석이나 합리적 토론은 배격하고, 맹목적 행동으로 내몰린다. 데이비드 엡터가 말한 '무자격자의 주권행사로 인한 독재'가 바로 탁현민 등 '나꼼수'들에게서 발견된다.)

최 논설위원은 1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탁씨가 나꼼수를 100%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해도 중요 역할을 하는 사람이 공개된 자리에서 하는 행사를 두고 누구누구에게 취재하라 마라 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라며 “보수단체가 하는 행사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하면서 “물론 기성언론이 나꼼수를 바라보고 보도해왔던 데 대한 장난과 조롱이 섞여 있는 표현이거나, (이런 판단을 하게 된 이유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렇게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성공하는 콘서트가 아니냐. 온라인 세계와 오프라인 세계가 나름대로의 독특한 가치가 존재하는 만큼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편집인 주: 군중선동꾼들은 생존의 구조상 정상적 민주사회와 공존하기 힘들다.)

앞서 30일 자신이 진행하는 MBC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오프닝멘트에서도 “여의도에도 비가 오는데 나꼼수 공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각하헌정 방송을 내건 이 팟캐스트가 대박이 나게 한 각하의 그 끝 모를 인기를 절감한다”라면서도 “그런데 공연기획자는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사는 취재를 봉쇄한다고 했다고 한다. 2011년 말,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 또 한 단면”이라고 탁씨의 월권적 언론 검열 행위를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편집인 주: 지금 탁현민은 자신들이 망해가는 줄 모르고 자신들의 마치 구세주나 되는 듯한 환상의 희생자일 뿐이다. 군중선동의 마지막 부산물은 환멸(illusion)이다.)

MBC 민주방송실천위원회 이재훈 간사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어떤 심정으로 탁현민 교수가 그렇게 말했는지는 이해가 가지만 취재를 제한한다는 것 자체가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면서 "언론의 자유라는 것은 취재까지 다 포함을 하고, 언론의 취재는 항상 허용되어야 한다, 기사를 왜곡되게 내는 경우가 많아서 '당신네들 언론사 믿지 못하겠다'는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취재를 하는 것 자체를 막는 것은 또 하나의 언론통제"라고 비판했다.(편집인 주: 구스타브 르봉의 지적처럼, 지금 군중의 열광주의에 도취한 탁현민은 선과 악의 심판주로 착각하여 거짓과 진실을 구별할 판별력을 잃어, 대화와 타협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88만원세대’ 공저자인 박권일씨 역시 오마이뉴스를 통해 “나꼼수 공연이라는 게 비밀 부흥회도 아니고 공적인 이야기를 하는 장”이라면서 “보수매체들이 잘 했다는 것도 아니고, 왜곡 보도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개방하는 것이 더 모양새가 좋아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편집인 주: 지금 나꼼수는 정치광신도들을 위한 정치부흥회를 하고 있다. 이들은 이분법적 단순성으로 이 세상을 선과 악으로 재단하며 자신들의 패당이 아닌 상대방을 악마로 마녀사냥 하는 정치굿판을 벌이고 있다. 이 전체주의적 군중선동꾼들은 개방성, 다원성, 관용성, 상대성이 중시되는 자유민주사회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 일방적이고 반복적인 선동의 세팅 속에서는 이들은 정치선동의 광대가 된다. )

오창석 미디어비평가는 논란이 되고 있는 탁씨의 언론 검열 행위에 대해 “과거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주최 토론회 같은 데서도 조선일보 기자 출입금지 팻말을 붙여놓고는 했다. 기자를 막는다기보다는 단체의 성격과 성향을 분명히 드러내는 캐치프레이즈 효과 차원의 선언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하지만 나꼼수는 누구나 즐기라는 ‘쇼’인데 출입 금지를 내세우는 건 명분이 애매하다. 굳이 왜 그래야 하는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편집자 주: 구스타브 르봉이 지적한 것처럼, 탁현민과 나꼼수들은 '절대적 확신의 소유자'들이 때문에 비합리적, 반지성적, 비타협적 독선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오창석 미디어비평가는 “정확히 말하면 언론탄압인데, ‘너희는 싫으니까 오지 말라’는 것인데, 왜 굳이 그래야만 하는지 근거가 부족하다”며 “우파행사에서 한겨레나 오마이뉴스 등 이런 좌파언론의 취재를 거부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언론의 취재권을 막는 방법으로 내 생각과 다른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면서 소통을 말한다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편집자 주: 탁현민을 비롯한 나꼼수들은 자신들이 고상하고 헌신적이고 용맹스러운 영웅인데, 누가 감히 자신들을 비판할 기사를 쓰느냐는 비합리적 교만에 찌들어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이들은 찬박하고 비열하고 이기적인 군중인간일 뿐이다.)

‘월권논란’ ‘언론통제’ 논란 당사자인 탁현민씨는 30일 자신의 트위터에 "조중동은 취재금지입니다. 무대사진 함부로 찍어서 소설에 갖다 부치지 말기 바랍니다. 취재는 현장에 프레스 부스에서 저에게 직접 프레스카드를 받은 분들만 가능합니다. 관객분들도 주변에 취재하는 기자가 보이면 어디인지 꼭 확인해주삼." "KBS, MBC, SBS, YTN, MBN 취재 금지입니다. 괜히 와서 분위기 흐리지 마세요. 압니다. 일선기자들 그 상황에서 고생한다는 거. 하지만 제대로 쓰지도 못할 거 서로 맘 상하지 맙시다. 카메라 내려놓고 공연 즐기세요. 그냥." 라고 적어 논란을 일으켰다. (편집인 주: 이런 꼼수쟁이들은 2008년 방송사들이 광우난동사태를 일으킬 때에 격분했을까?) 박주연 미디어워치 기자: http://bignews.co.kr/

나꼼수 류의 저질 군중선동에 대한 옛날 군중연구가들의 분석들(조영환)

 구스타브 르 봉은 자신의 개성을 잃고 집단에 휩쓸리는 익명의 인간을 군중으로 봤다. 르봉은 "군중은 변증법적 논리나 합리적 설명 대신에, 일방적 프로파간다를 훨씬 더 선호한다. 군중은 진리를 오류로부터 구별할 비판정신을 소유하지 못했다. 군중인간은 예속감정의 노예이다. 군중은 우상이 암시하는 단순성과 과장성에 중독되어 광신적 희생을 한다"며 "군중인간을 미혹하려는(자극하려는) 정치종교지도자는 절대적 확신과 위엄의 소유자이어야 한다. 군중은 우상을 바라기 때문이다. 과장하고, 주장하고, 반복하고, 비합리적으로 우기는 것이 정치선동가의 논쟁방식"이고 주장했다. 설명과 토론 대신에 선동과 억지에 의존하는 '나꼼수'의 군중선동극이 연상되지 않는가?
 
르 봉은 "군중선동가는 군중에게 ‘신비적 의식(mystique consciences)'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면 군중은 절대 복종하면서 열광주의(enthusiasm)에 빠진다. 즉 군중은 귀신에 들리게 해야 어중이 떠중이로부터 초월해서 영웅으로 자기승격을 하면서, 폭발적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군중은 군중선동가의 신비주의적 기만과 암시에 미혹되어 반지성적 폭도가 된다. 그 결과 사실(reality) 보다는 현상(appearance)에 의존하는 피상적 판단자가 된다"며 "후기전통사회에서 파편화 해버린 ’중간집단‘에의 소속감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체주의 운동에 가담한다. 혼자 있을 때에는 교양인이 군중의 익명성에 휩쓸리면, 폭도로 돌변한다. 익명성은 군중을 무책임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폭도가 되어 패륜과 반란을 즐기는 '나꼼수'의 군중인간들이 연상된다.
 
르 봉은 "군중은 충동성, 과잉반응성, 추론력 결핍, 판단력과 비판정신 부재, 과장된 감정표현을 포함하는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군중의 심리 P. 58). 군중은 오직 단순하고 극단적인 감정들만 인식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암시된 견해, 사상, 신념을 전체로 뭉뚱그려 수용하거나 거부하고, 절대적 진리로 여기거나 절대적 오류로 치부해버린다(P. 83). 독재성과 편협성을 군중에게 일단 부과되면 군중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들을 실천으로 옮기며 기뻐하기까지 한다. 군중은 강자에게는 순종하며 존경심을 표하지만, 자신들이 받는 약간의 친절도 약점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P. 85)"며 "군중은 방자한 무정부주의자와 비굴한 노예의 상태를 왔다 갔다 한다"고 주장했다.
 
르 봉은 "군중은 환상과 이미지를 추구하지 진실을 추구하지 않는다. 군중을 상대로 설득을 하려는 정치인은 개념보다는 이미지를 줘야 한다. 군중은 언제나 환상의 창조자에게 더 많은 신전과 동상을 만들었다(P. 166) 군중은 환상을 선사할 군중선동가를 마치 불을 찾는 불나방처럼 본능적으로 찾아나선다(P. 20)"며 "군중은 노예상태를 원하기 때문에 그들을 노예로 삼을 강력한 확신이나 의지나 폭압이라도 (선동가는) 있어야 한다(P. 183) 군중선동가는 확언, 반복, 전염력을 가진 연설을 할 수 있어야 한다(P. 187). 군중의 여론과 신념을 유포시키는 것은 감염력이지 이성적 추론은 아니다(P. 198). 군중을 미혹할 지도자는 언제나 성공해야 하고, 위엄이 없으면 선동에 실패한다(군중의 심리 P. 209)"고 주장했다.

좌익진영의 성공적 군중선동의 사례로 꼽히는 '나꼼수'에 대해 오르테가 가세트는 '무자격적 군중의 폭력'으로 규정할 것이다. "완전한 직접 민주주의는 전체주의를 초청할 것이다. 군중현상을 무자격자들에 의한 주권행사 혹은 민주적 폭군(democratic tyranny)의 지배를 뜻한다. 지식인(귀족)의 군중(천민)화와 군중(천민)의 지식인(귀족)화가 군중운동에 의해서 발생된다. 배운 무식장이(learned ignoramus)가 나타난다. 공중 혹은 엘리트는 집단에 헌신하면서도 자신의 개체성을 유지하는데, 군중은 집단에 자신의 개체성을 자진해서 포기하는 순응주의자(자발적 노예)이고, 군중은 남에게 부화뇌동하는 게으른 다수의 쭉정이 인간들이다"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the revolt of masses p. 14-15/엄격한 직역이 아니라 의미에 따른 의역).
 
유럽사회에서 군중이 엘리트를 정복하고 문명을 야만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보일 때에, 헤겔은 묵시론적으로 “군중은 앞으로 내몰린다”고 말 했고, 오그스트 콩트는 “군중이 설치는 시대에 새로운 정신혁명이 없으면, 인류는 재앙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고, 니체는 “나는 니힐리즘의 홍수 파도를 봤다”는 말을 했다고 오르테가 가세트는 소개했다(the revolt of masses p. 59). 군중을 선동해서 한국사회를 정치적 광신도들의 아지트로 만드는 김대중-노무현 추종세력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망가뜨리는 문명파괴자가 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최근 파괴심리에 찌든 군중인간들에게 마술적 호소력이 있는 나꼼수의 주역들과 같은 군중선동꾼들은 오르테가 가세트가 말한 문명파괴자들일 것이다.
 
오르테가 가세트는 "정부가 한번 군중선동세력에게 굴복을 하게 되면, 관료들도 거짓과 반란을 부추기는 군중선동세력에게 끌려가게 되면서, 결국 한 나라는 군중의 폭력에 밥이 되어 망할 수가 있다. 독재자가 선동가를 척결하는 경우는 그나마 군중선동가에게 정부와 국민이 먹힌 나라에 비해서 훨씬 더 다행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the revolt of masses p. 153) 한번 정부의 지배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군중은 패륜과 반란에 자신감을 얻어서, 파괴충동에 휘둘리면서 이기심의 미로에 빠져 헤매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군중을 제압하지 못하는 경우가 가장 패륜적이고 파괴적임을 오르테가 가세트는 지적했다(the revolt of masses p. 154).  나꼼수나 촛불폭란을 방치하는 것은 사회적 암을 키우는 것일 게다.

군중인간은 무엇이든지 다 자기 뜻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교만한 인간이다. 그 결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천박한 사회의 기생충으로 전락하고도 수치감을 느끼지 못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누려야 한다고 공동체에 강요하는 폭군이라고 봤다. 오르테가 가세트에게 귀족이란 자신의 능력을 열심히 계발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해 남들보다 더 잘 알려진 성취자라고 규정하면서, 군중은 주어진 웰빙의 혜택을 누리기만 하려고 하면서 문명의 원칙을 무시하고 이 세상의 이치에 무지하는 고집불통의 부자집 망나니인데, 아무리 높은 귀족의 자녀라고 문명에 감사가 없고 자신을 계발하지 않고 자기교만에 빠진 고집불통은 군중이지 귀족이 아니라고 했다(the revolt of masses p. 73).

그런 무기력하고 자신에 갖힌 인간은 자신의 지식과 능력은 남들보다도 탁월하다고 자만하고 있다가, 어떤 순간이 오면 만사에 개입하는 습성을 가졌다고 오르테가 가세트는 주장했다.  군중들의 토론이 없는 직접적 의사표현(폭력행사)은 문명을 파괴하게 된다. 군중은 사회적 제약, 기준, 예절, 간접적 소통방식, 정의, 이성 등을 모조리 파괴하고 오직 단순화된 구호를 사회적 난제의 해답으로 강요한다(the revolt of masses p 82). 자기열등감과 자기확신감을 마음에 동시에 품은 군중인간은 남에 대한 공평한 배려가 없고 굴종하지 않으면 군림한다. 군중현상이 만연된 곳에서는 토론과 타협이 사라지고 쇠파이프를 던 폭도가 문제의 가장 확실한 직접적 해결사들이다(the revolt of masses p9. 82-2).

에릭 호퍼는 "좌절과 소외에 시달리는 마음(the frustrated mind)을 가진 군중은 모든 것을 자신이 신봉하는 망상을 위해 내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사회적으로 좌절된 군중은 기존체제를 타도하기 위해서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확신범이 되고, 그 군중에게 도덕적 성실성(moral integrity)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군중인간은 단방에 모든 삶의 곤경과 문제를 해결할 꿈을 꾸는 광신자로서 마치 고상하고 용기 있고 두려움이 없는 초인간의 상징처럼 보인다. 보통 세속인들은 합리적 계산에 따라서 악과 타협하기도 하고 고통을 피해 도망도 가지만, 확신을 가진 군중인간은 목숨을 던져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용사가 된다. 실패자들인 군중인간은 한번의 혁명으로 완벽하게 바꾸겠다고 꿈꾸는 몽상가들"이라는 취쥐의 분석을 했다.
 
윌리엄 콘하우저는 사회적 다원주의(자유민주주의)에 가장 해로운 적으로 ‘군중운동’을 지목한다. 콘하우저는 군중사회의 특징으로 ‘권위의 상실’과 ‘공동체의 상실’을 지적했다. 콘하우저는 "공동체에 소속감과 지도력을 상실한 군중과 엘리트들은 사회를 원자화시켜서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원자화 된 사회에서는 소외와 불안의 감정을 군중들이 가지게 되고 이는 군중들로 하여금 상징이나 리더를 숭배하게 만드는 심리적 조건을 만들 수 있다"고 의심했다. 그는 "원자화된 사회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외롭고 불안한 군중은 우상적 상징이나 지도자에 완전히 자신의 개체성을 포기하는 자아상실적 군중운동에 몰입할 수 있음"을 그는 지적했다(the politics of mass society p. 32-3)
 
전체주의 연구가 탈몬은 "완전한 민주화를 요구하는 전체주의자의 군중 장악과 예속의 음모를 경계해야 한다. 이른바 ‘완전한 민주주의 개념’은 사실상 전체주의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그것은 모든 개인들의 주장과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수 군중들의 주권을 한 개인의 의지 속에 예속시키려는 음모다. 오직 하나 밖에 없는 민중의 뜻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의 뜻(의견/권익)을 파벌적, 이기적, 불법적이라고 정죄하는 것이 바로 군중선동가가 말하는 ‘완전한 민주주의’"라고 갈파했다. 김대중의 ‘아테네 이후에 최고의 직접민주주의’라는 말은 전체주의적 선동가의 대표적인 본색 표출이다. 전체주의적 선동을 통하여, 인격이 말살된 군중은 우상적 선동꾼의 암시와 감정적 호소에 휘둘려서 방자한 폭력배가 된다.

데이비드 엡터는 "개발도상국가에서는 '권위주의적 정부의 부재'가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데에 적이다. 군중의 난동질이 민주화를 파괴하는 데에 가장 해로운 변수라고 주장"했고, 사무엘 헌팅턴은 "교육받은 ‘지식군중인간’이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원인"임을 지적했다. 개방도상국가에서 교육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군중선동이 더 증가하는 것을 주목한 헌팅턴은 합리적이고 권위적인 정부를 지식군중이 거부(터도)하는 현상을 주목했다. 칼 만하임은 "유토피안적 의식구조(환상)가 현실의 중요한 부분을 은폐시킨다. 현실을 오판하게 만든다. 그래서 유토피안적 환상에 대한 신념을 위협하거나 혁명에 반대되는 모든 것들로부터 군중들이 등을 돌리게 만든다"며 군중선동꾼들의 몽상성을 경계했다. 오늘날 전교조의 몽상성은 망국의 결정적 변수다.

군중사회에 대항한 인간(Man against Mass Society)의 저자인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간의 짐승화가 바로 군중현상이다. 군중인간은 지성과 사랑이 사라진 인간 이하의 짐승의 상태가 된다. 인간이 자동기계(automaton)가 되는 상태가 군중현상"이라고 지적하면서, "인간을 위협하는 두 개의 핵심적 변수가 있는데, 그것은 핵무기와 군중운동이다. 핵무기는 몸을 파괴하지만, 군중운동은 인간의 인격을 완전히 파괴하는 더 나쁜 인류의 적"이라고 갈파했다.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간의 지성과 사랑을 가르쳐주는 기독교가 악마적 군중운동을 제압할 수 있는 '평화유지자(peace-maker)'"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뇌를 통한 인간의 짐승화에 기독교가 처방전이 될 수 있음을 가브리엘 마르셀은 주목했다.

로버트 니스벳은 "수백만의 독일 민중이 나찌즘의 교리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독일 민중의 소외감, 환멸감 때문이었다. 맑시즘도 군중의 소외감과 환멸감을 악용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낙오자들이 자신들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군중운동에 참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지 소렐은 "거짓 환상을 쫓아서 폭력혁명에 나서는 인간들이 군중들이다. 그 환상은 곧 신화(myth)로서 합리적 토론과 과학적 진실을 배격한 맹목적 행동을 강요한다"라며 "참된 신화는 미래에 대한 합리적 개념이 아니라, 폭력혁명운동을 일으키게 하는 환상, 꿈 혹은 감각적 충동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과학적 분석이나 합리적 토론이나 취재까지 배격하는 나꼼수는 소외된 군중을 호리는 정치굿판이다. [조영환 편집인: http://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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