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 거대한 게르(유목민의 이동식 가옥)조차도 드러내 놓고 떨고 있었다. 만주의 겨울이 시작된 것이다. 중앙의 화덕을 마주하고 앉은 사내는 우람한 몸집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불길만 바라보았다.
게르 안은 여느 부족민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꾸밈이 없고 검소했다. 짐승 가죽으로 만든 침구와 의장에 필요한 옷가지들만 반듯이 정돈되어 한구석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견갑(肩甲)을 걸친 젊은 장수가 들어왔다.
“좌현왕(左賢王) 전하(殿下), 소손형거(蕭遜兄渠)가 고구려군과 교전하다가 패사(敗死)하였고, 주변의 영자(營子)들 또한 고구려군에게 함락당했다 하옵니다.”
청년 장수의 다급한 목소리를 못 들었는지 사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머지않아 고구려군이 염수(鹽水)를 건너 이곳까지 쳐들어 올 것이옵니다. 소장이 나가서 저들을 막게 해주시옵소서.”
청년 장수는 사내에게 간청했다. 그제야 사내는 고개를 들어 그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갈무상(褐無相), 너는 이 소빈출거(昭斌出渠)를 믿지 못한단 말이냐?”
고요히 가라앉아 있던 그의 눈동자 속에서 순간 시퍼런 화광이 일었다.
갈무상은 금방 기가 질려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소장이 어찌 단 한순간인들 전하의 능력을 의심할 수 있겠사옵니까?”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리거라. 때가 올 것이다.”
소빈출거의 말 속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분부에 따르겠사옵니다.”
갈무상은 몸을 일으켜 돌아갔다.
소빈출거는 다시 화덕으로 눈길을 돌렸다. 맹렬하게 타오르던 불길이 어느덧 사그라들고 있었다. 가만히 두면 제 풀에 꺼질 모양이었다. 그는 고구려군의 형세도 이와 같다고 여겼다. 지금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치고 올라오지만 지리와 기후에 익숙하지 않은 고구려군 병사들은 시간이 갈수록 지쳐갈 것이었다. 더구나 고구려군 앞에는 차갑고 사나운 모랫바람이 시도때도 없이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사막이 가로막고 있었다.
소빈출거는 적군이 제 발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소빈출거는 장작이 잘 타오르도록 불쏘시개로 더미 사이의 틈을 벌렸다. 순간 불꽃이 튀며 불길은 다시 무서운 기세로 솟구쳤다.
소빈출거는 손을 뻗어 바닥에 내려놓았던 오자도(烏字刀)를 움켜잡았다. 칼집이 금으로 장식되었고 황금 고리가 달려 있었다. 황금으로 장식된 칼자루에는 연곡(淵曲)이라는 두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소빈출거는 칼을 뽑아들었다. 한쪽 날이 날카롭게 벼려진 보도(寶刀)는 불빛을 받아 서늘한 광채를 뿜어냈다.
해가 중천에 오를 무렵 거란족의 칸[汗]인 소빈술거(昭斌術渠)가 머물고 있는 송막의 왕궁 막사에는 중신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첩보에 따르면 고구려 군사들이 이미 대흥(大興)에 육박했는데도 좌현왕은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옵니다. 그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음이 분명하옵니다. 앞으로 닥쳐올 재앙을 막기 위해서 당장 그의 직위를 빼앗고 소환하셔야 합니다.”
대하부의 부족장인 대하목차(大賀目車)는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대하목차는 소빈술거의 외숙부로서 조카를 칸으로 옹립한 이후 혹시 소빈출거가 반란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다행히 좌현왕 소빈출거는 동생인 소빈술거를 칸으로 인정함은 물론 충성을 맹세하고 변방인 파림좌기(巴林左期)로 나갔다. 그렇지만 대하목차는 소빈출거가 마음을 바꿀지 모른다는 걱정에 하루도 잠을 편히 자지 못했다.
대하목차가 이처럼 소빈출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소빈출거가 거란 제일의 용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선대 칸 때부터 싸움의 선봉을 맡아 수많은 전장을 오가며 부족에게 승리를 안겼고, 거란의 흩어진 부족을 통합하여 강성한 세력을 만든 주인공이었다.
소빈출거는 그 누구보다 높은 전공을 세웠지만 칸의 자리를 계승할 수 없었다. 이유는 칸의 양자로 거란족의 혈통이 아닌 고구려인이었기 때문이다.
서기 345년 겨울에 전연(前燕)의 장수 모용각(慕容恪)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남소성(南蘇城)을 침공하였다. 남소성주 연곡(淵曲)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지만 연나라의 대군을 막아낼 수 없었다. 결국 남소성은 전연군에게 함락되었고, 성주 연곡은 참혹하게 전사하였다.
남소성을 점령한 모용각은 휘하 군사를 성 곳곳에 배치하여 경계를 강화했다. 그리고 남소성의 백성 1천여명을 포로로 잡아 용성(龍城)으로 압송했다. 이때 연나라 군사들에게 끌려간 백성들 중에는 성주의 아들 연승모(淵承牟) 내외와 그들의 갓난아기도 끼여 있었다.
남소성을 출발한 연군인 고구려 백성들을 호송하여 의무려산을 지나다가 거란족의 기습을 받았다. 연승모 내와는 혼전 중에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의 갓난아기는 살아남아 거란의 칸인 소빈막루(昭斌幕樓)에게 거두어졌다. 소빈막루는 아기에게 소빈출거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양자로 삼았다. 그리고 연씨 집안의 하녀를 아기의 유모로 삼아 키우게 했다.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소빈출거가 주워온 아이라는 사실을 입 밖에 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유모는 소빈출거가 철이 들기 전부터 그의 뿌리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가 늠름한 청년으로 자라나자 전란 통에 주인에게 받아 은밀히 보관하고 있던 연씨 집안의 가보인 오자도(烏字刀)를 주었다. 나중에 이 일이 발각되어 유모는 먼 곳으로 팔려갔지만 이미 소빈출거의 머릿속에는 자신은 고구려인이라는 의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소빈막루는 총명하고 용맹한 점을 높이 사서 소빈출거에게 칸의 지위를 물려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극력 반대했기 때문에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소빈출거를 추종하는 많은 부족장과 군사들은 칸의 지위를 소빈술거에게 빼앗겨서는 안된다고 충동질했지만, 그는 끝까지 양아버지의 유명(遺命)을 지키겠다고 고집했다. 그럼에도 워낙 민심이 소빈출거에게 기울어져 있었기에 언제라도 칸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때문에 대하목차의 걱정은 단순히 기우만은 아니었다.
대하목차의 말을 듣고 나니 소빈술거 역시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소빈출거의 충성심과 형제애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조금이라도 위협이 된다면 함께 자란 형제라도 과감히 제거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었다. 더군다나 소빈술거는 생모(生母)를 통해 소빈출거가 자신과 같은 핏줄이 아니라 고구려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경계심을 가졌다. 소빈술거는 지금이야말로 소빈출거를 제거할 때라고 생각했다.
소빈술거의 흉중을 모르는 질랄부의 부족장 질랄맹극(迭剌盟克)이 대하목차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무모하게 나아가 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옵니다. 소신이 듣건대 고구려왕이 거느린 군사들은 당적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용맹스럽다고 하옵니다. 특히 개마기사단(鎧馬騎士團)의 위용은 천하를 뒤집어엎을 만하다고 하옵니다. 좌현왕이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은 정면으로 부딪쳐 봤자 승산이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옵니다. 그는 거란에서 가장 용맹스러운 장수이옵니다. 분명 고구려군을 무너뜨릴 나름의 계책을 세우고 있을 것이옵니다. 좌현왕이 아니면 과연 누가 막강한 고구려의 군사들을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질랄맹극의 마지막 한마디가 소빈술거를 자극했다. 칸이 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신보다 소빈술거를 더욱 믿고 있었다. 소빈술거의 마음속에 있던 형에 대한 질투심이 스스로도 놀랄만큼 맹렬하게 불타올랐다.
“적군이 우리의 영토를 유린하고 백성들을 도륙하는 것을 보면서도 군사를 움직이지 않았으니, 변방을 맡은 장수로서 책임을 다 하지 못한 것이오. 그가 딴 뜻을 품었는지에 상관없이 그것만으로도 처별을 면키 어렵소. 허나 지금 당장 소빈출거를 소환해봤지 그가 호락호락 말을 들을 리 없소. 만약 소빈출거가 고구려군에 투항한다면 큰 낭패가 아니겠소?”
소빈술거는 자신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는 소빈출거를 숙청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하지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기에 감쪽같이 속여 넘길 계교가 필요했다.
소빈술거는 중신들을 돌아보며 좋은 계책을 내어놓으라 독려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소빈출거를 두려워하거나 존경하고 있었으므로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대하목차의 뒤에 서 있던 청년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소신이 소빈출거를 잡아다 대령하겠사옵니다.”
거란족에서 가장 용모(容貌)가 반반하기로 소문난 미남 갈무영(褐無榮)이었다.
“저는 지난날 좌현왕의 심복이었는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내침을 당했사옵니다. 지금은 다행히 대하부족장께서 거두어 주셔서 막하에서 모시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좌현왕의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저에게 이번 일을 맡겨 주시옵소서. 이 목숨 바쳐 가한(可汗)과 부족장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겠사옵니다.”
갈무영의 말은 거칠 것이 없었다.
갈무영은 소빈출거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다. 소빈출거는 아란사(娥爛辭)라는 해족(奚族)의 미녀를 첩으로 맞아들인 적이 있었다. 소빈출거는 아란사를 끔찍이 사랑했다. 그런데 갈무영이 아란사를 보고 한눈에 바란 것이었다. 여색 밝히기를 누구보다 마다하지 않는 갈무영은 그녀가 주군(主君)의 여인이라고 해서 가만히 놔 두지 않았다. 그녀를 유혹하여 은밀히 애정행각을 벌였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었다. 어느새 이들의 불륜은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났고, 급기야 소빈출거의 귀에 들어갔다. 분노한 소빈출거는 군사들을 보내 두 사람을 붙잡아 처형하게 했다.
좌현왕의 군사들에게 체포된 갈무영은 처형 직전에 군사들에게 뇌물을 주고 구사일생으로 도망칠 수 있었지만, 아란사는 미처 달아나지 못하고 참살되었다. 이때부터 갈무영은 대하목차의 집에 숨어 지내면서 소빈출거를 없앨 날만 기다렸다.
소빈술거는 원한에 가득차 번들거리는 갈무영의 눈을 보고 그가 결코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소빈술거는 선뜻 갈무영에게 소빈출거를 사지(死地)로 유인하는 일을 맡겼다. 그리고 중신들 중에서 배신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 주변 경계를 강화하고 누구도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송막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집으로 돌아와 떠날 준비를 마친 갈무영은 성채를 빠져나가 고구려군이 주둔하고 있는 대흥을 향해 말을 달렸다.
고구려군 진영에 다다른 갈무영은 앞으로 나선 고타하(高他荷)에게 태왕을 알현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나는 거란 가한의 신하인 갈무영입니다. 귀군을 영접하기 위해 얼마간의 식량과 식수를 싣고 왔습니다. 저희 가한의 말씀을 전달하고자 하오니 고구려 국왕을 뵙게 해주십시오.”
고타하는 갈무영을 데리고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 앞으로 갔다.
광개토호태왕은 아무 말 없이 위엄있는 눈으로 갈무영을 바라보았다. 갈무영은 한없이 깊은 눈길과 침묵을 견딜 수 없어 성급하게 말을 꺼냈다.
“저희 가한께서는 동방의 강국인 고구려와 싸우길 원하지 않으시옵니다.”
“그럼, 왜 우리의 땅을 침범하고 백성들을 도륙했는가?”
광개토호태왕은 비수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 일은 저희 가한의 뜻이 아니오라 좌현왕의 간악한 생각이옵니다. 그는 초원의 후계자임을 내세우며 주변의 부족들을 무력으로 통합하고 천하를 손에 넣겠다는 야심에 차 있사옵니다. 그는 고구려의 변경을 약탈하여 분란을 일으키고 있사옵니다. 그럼으로 해서 먼저 군권을 장악한 후 저희 가한을 내치려고 하나이다. 이제는 저희 가한과도 반목하고 있는 상황이옵니다.”
갈무영의 답변은 물 흐르듯 했다.
“하면 너희 가한의 뜻은 무엇이냐?”
태왕은 마치 갈무영의 말에 속아 넘어간 듯했다. 갈무영은 태왕이 자신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여 신이 났지만 겉으로는 담담한 척 대답했다.
“저희 가한께서는 고구려와 화평을 맺길 원하시옵니다. 그러나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소빈출거가 이를 반대하는지라 어쩌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만일 태왕께서 소빈출거를 제거해 주신다면 저희는 기꺼이 고구려에 복속할 것이옵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천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를 응징하는 일은 바로 하늘이 짐에게 내린 천명이다. 허나 죄가 없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하늘의 법을 따르고 짐의 질서에 순응하는 자들은 결코 평안을 방해받지 않으리라.”
태왕은 흔쾌히 거란족의 청을 받아들였다.
갈무영은 일이 제대로 되어 간다 싶었다. 가만히 앉아서 두 마리의 호랑이가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광경을 지켜보다가 둘 다 지치면 그물을 쳐서 잡아들이면 될 일이었다.
소기의 성과를 거둔 갈무영은 흡족한 마음으로 태왕의 막사를 빠져나왔다. 갈무영은 사막의 지리에 밝은 부하들을 남겨서 고구려군의 길잡이로 삼게 한 후 말을 재촉하여 송막으로 향했다.
고타하가 걱정스러운 듯이 태왕에게 간했다.
“이는 거란 놈들의 간계일 수도 있사옵니다. 저 자의 말을 쉽게 믿어선 아니 될 것이옵니다.”
그러나 태왕은 고타하의 말을 무시한 채 옆에 앉아 있던 막리지(莫離支) 하무지(河茂祉)에게 물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하무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폐하께서 생각하신 그대로입니다. 분명 거란족의 지도층 내부에 분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잘 이용하면 우리는 많은 피를 흘리지 않고도 거란족을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고타하는 태왕과 하무지의 대화를 듣고서 자신이 괜히 쓸 데 없는 걱정을 했음을 깨달았다.
하무지는 고개를 돌려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던 모두루(牟頭婁)에게 말했다.
“저들이 사막을 빠져나가는 길과 소빈출거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위치를 알려 줄 것이오. 장군은 군사를 거느리고 선봉에 서서 저들의 뒤를 따르도록 하시오.”
모두루는 정중히 군례를 취하고 물러갔다.
하무지는 이번에는 고타하에게 말했다.
“닷새 후에 거란족의 기습이 있을 것이오. 기습에 대비를 하되 절대로 적을 이기려 해서는 아니 될 것이오. 우리 군사들이 피로에 지쳐 심신이 어지러운 것처럼 위장해서 적이 우리를 얕잡아보게 만들어야 할 것이오. 여기 대흥은 갈대숲이 우거져 있어 군사를 매복시키기에 딱 좋은 곳이니 발빠른 도부수(刀斧手)들을 매복시켜 두었다가 적이 우리 군사를 추격하면 뒤에서 포위망을 쳐서 퇴로를 차단하시오. 더 자세한 군략은 이 죽간(竹簡)을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오.”
고타하는 하무지에게서 죽간을 받아들고 말했다.
“제가 듣기에 소빈출거는 신중하고 지략이 좋은 장수라던데 우리를 가볍게 보고 함부로 염수를 넘어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번에는 태왕이 하무지의 말을 받았다.
“오늘 짐을 찾아왔던 그 갈무영이라는 거란인이 소빈출거의 군대를 움직이게 해 줄 것이다. 그러니 너는 다른 염려는 말고 막리지의 계책에 따르거라!”
고타하가 물러가자 하무지는 태왕에게 아뢰었다.
“거란의 가한이 감히 우리 군사들을 이용할 마음을 먹고 있지만 이것이 큰 오산이라는 점을 곧 깨닫게 될 것이옵니다. 소빈술거가 스스로 거란의 영웅을 숙청하려다가 오히려 자신에게 화(禍)가 미칠 테니까요.”
“소빈출거가 가엾군요. 거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용사이지만 자신의 동생이자 주군에게 버림받은 몸이니… 참으로 인간이 만들어가는 세상사는 잔혹하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왕은 친히 하무지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며 그의 말을 받았다.
고구려군 진영을 떠난 갈무영은 염수를 건너 파림좌기에 도착했다. 심복을 전령으로 꾸며 소빈출거의 군영에 보냈다. 소빈출거에게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으므로 굳이 나타나서 혼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