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몇학년때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초등학교때 마산에서 전학생이 한명 왔다.
하지만 그 아이가 어디 학교에서 전학을 왔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왜냐하면 전학 온 첫날 체육복을
입고 왔는데 가슴팍에 양덕이라고 쓰여있는것을 보아 아마도 양덕초등학교에서 왔을것이다.
그 아이는 첫인상부터 굉장히 특별했다.
보통 전학생들이 다들 그렇겠지만 어딘가 경계하는 눈빛, 그리고 안절부절 하지못하는 표정이 유독 심했다.
같이 생활을 조금 해봄으로써 그아이에 대해 알게되었는데, 약간의 정신지체가 있었고 가정형편도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마 아이들에게 놀림을 많이 당했던것같다.
누군가는 아이들이 순수하다고 하는데 그게 꼭 좋은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이들은 순수하기때문에 누군가를 전적으로 비난하고, 또 누군가를 상처줌에 있어서 절제가 없다.
내가 아이일때는 나도 그 무리에 속해있어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이 나이에 길을 걷다가 가끔씩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를 놀리는것을 보면 철없는 짓으로 치부하기에 과한 면도 많은것같다.
마치 아이들이 아니라 마귀새끼들같다.
나도 그때는 아이여서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랬겠지?
그런데 그때 내가 바보같다고 놀리던 아이가 지금 생각해보면 선구자였던 것 같다.
그 아이를 보고 쇼크를 받았던 첫번째 사건은 '코딱지 취식 사건'이였다.
처음에 옆의 짝꿍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을때 믿지 않았지만 내 두눈으로 목격했을때 더이상 그것은
허구가 아닌 사실이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
전국에 있는 수많은 초등학교가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아마도 한가지 공통된 불문율이 있을것이다.
지금이나 고등학교때야 별 거부감 없이 마음대로 화장실가서 똥싸고 하지만, 초등학교때의 그 행위는
잠정적인 비정상적 학교생활을 뜻하며 그 사건 하나로 동창회때까지 연결되는 똥쟁이라는 칭호를 얻을수
있는 대박거리였다.
궁금했다. 저 대변기들을 사용하는 사람도 없는데 뭣하러 4~5개씩 설치해놓았는지.
학교에서 싸움구경하기만큼 보기 힘든것이 누군가 대변기를 이용하는 것이였다.
나만 하여도 초등학교 2학년때 과학경진대회날이였는데 그분이 오시는 바람에 만들던 과학상자를 다시 해체하고
담임선생님께 일방적인 조퇴 통보를 하고 집으로 복귀한적이 있다.
집에 갔을때 부모님께서 평소처럼 우유투입구에 열쇠를 두고가시는걸 깜빡하신덕분에 결과는 매우 좋지못했다.
하지만 그랬을망정, 어머니께 정신나간놈이라고 맞았을지언정 학교에서 해결하지 않은것을 한번도, 단 한번도
후회한적은 없다.
그만큼 학교에서 똥을 싼다는것은 위험한 일이였다.
어느날 학교에 한차례 폭풍이 몰아쳤다.
누군가 학교에서 겁대가리도 없이 똥을 쌌을뿐만 아니라 화장실 벽에 아주 똥칠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마치 옛날 의적 일지매가 범행을 한뒤, 붉은 매화를 두고감으로써 자신의 소행임을 알리는 그런 행위같았다.
당시 화장실 청소 당번이였던 나는 온통 금빛으로 물든 화장실을 보고 패닉상태에 빠졌다.
나를 포함한 3명의 화장실 청소당번 연합은 범인을 찾겠다고 결심하였다.
범인을 찾기는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그 폭풍의 전학생이 범행을 저지르고 손도 씻지 않았기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 다음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 나질 않는다.
해피엔딩이였을까? 아니면 배드엔딩이였을까.
그러나 상관없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뒤의 결과가 중요한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똥에 대해 십중팔구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것이다. 얼마전의 나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똥이 무엇인가?
우리 창자의 노력의 결실이다. 인간이 먹은 음식물에서 영양분을 모조리 뽑아내고 남은 순수한 결정체이다.
그 한덩이의 똥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의 창자는 쉴새없이 자신을 하얗게 불태운다.
마치 똥을 보고있으면 42.195km를 쉴새없이 달리고 골인 한 뒤 행복한 표정으로 탈진한 구릿빛 마라토너같다.
이러한 똥의 가치를 그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몰라주의 그것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손을 붓 삼아, 벽을 화선지 삼아
한 폭의 금빛 수묵화를 완성한 것이 아닐까?
그 때로부터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 난 그때의 무지함을 반성하고 그 아이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