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 & 이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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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0 21:07 공개 설정
조회수 2424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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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격에서 정말 보고싶은 얼굴을 봤다.
이태윤! 살롱드 골스에서 수년전에 섰던 록 스토리에서 이태윤의 이야길 기록해 놓은게있다.
80년초 언더그룹에서도 베이스주자로는 폴매카트니, 아니 씬리지의 필리노트와 같은 존재였다.
초창기[부활] 을 떠나 바로 주류 밴드계로 진출한다.<.송골매>에 잠시거쳐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위대한 탄생>의 멤버로 북녁땅에도 그의 연주솜씨를 뽐냈다.
티비에서그가 말한대로 <검은진주>의보컬 종서를 영입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부활]의 베이스주자겸 리드보컬로 활동했을것이고(게리무어의 보컬이 일품임)아마도 그랬더라면 승철이도 [부활]과의 인연은 없었을것이다.
둘다 인연이 안되려고 했는지 종서가 들어오자 태윤이는 독립했고(살롱 드 골스에 기록)종서마저 석연치 않게 부활팀에서 보이질 않게됐다.
(데뷰가 코앞이였는데, 인연은 따로 있나봅니다 .후에 이승철이라는 미성의보컬을 만날줄이야..)
김태원의 이야기로는 종서가 군대 간다고했다.
나중에 이야기는 메니져인 내가 너무 화를 낼까봐(실제 종서를 손 댄적이 있음 나의 젊은날의 혈기라지만 잘못된 행동임!) 종서를 카바하기 위해 태원이가 종서를 옹호해주려고 변명해 주었다고 했다 .그땐 여의도가 곧 내 손안에 들어올것 같은 착각속에 있었다.
다 옛일이다.
^&^
종서는 이미 <시나위>로 이적했다.하지만 김종서는 더 늦게 데뷔한다.임재범이라는 걸출한 보컬이 <시나위>에서 한국형 록보컬의 진수를 보여준 것이다.
어제 한글날,불꽃축제도 보고 싶었지만 내가 꿈꾸며,내 삶의 터전이였던 도시의섬!여의도 를 밟아보고 싶었다.저기가 kbs... mbc, 저기가 63빌딩...
아 ! 63 빌딩....내가 최초로 록그룹 컨서트를 컨벤션 쎈타에서 연 장소다.
시나위와 백두산이 이미 데뷰앨범을 내놓고 선두경쟁을 벌렸지만,당시 이태원의4인방 전인권이 이끄는 <들국화>의 행진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였다.
그 해가 거의 끝나가는 , 그래서 서둘를 수 밖에 없었던 1986/10/3 개천절에 발매한 데뷰앨범에서의 '희야'가 폭발적이였다.가히 [부활]의 하늘이 열린것이다.
팬레터의 80% 는 전국의 희야 소녀팬들이였다.내 적중이 맞았다.6분짜리 '비당(비와당신의이야기)'으로 타이틀 곡을 정하지 않은것이 정말 다행이였다.
이미 무명 그룹으로 5회째 정기 공연을 파고다극장과 한국일보사 강당에서 정기공연을 가졌던 우리는 해를 넘겨 대규모 물량공세를 퍼붓는다.정공법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제 6회 [부활]정기공연및 데뷰앨범 기념공연이 그것이다.
신예 록 그룹으로는 파격적인 호텔급 초대형 버라이어티 컨서트였다.
쇼2000 이덕화의 부탁해요가 2원화로 생중계되었다.
상업적 밴드로 록 매니아들에게는 현실과 타협하는 배신 행위로 비추ㅕ졌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매니저다 내임무에 최선을 다했을뿐이였다.
나는 영국 미국으로 가고싶었다.
상업적이라면 본조비 밴드처럼 만들고 싶었다.
파격 대 파격이였다.
티켓팅도 완전 솔드 아웃!
3000여석이 전국 부산에서까지 매진 되였다.
일시:1987년1월25일
장소 63빌딩 컨벤션쎈타
포스터에는 이런 카피를 썼다.
'이것이 Rock 이다'
(공격적인 내 성격이 나타나는 공연포스터이다.)-그때는 디자인이며 사진촬영, 인쇄 피알 다 내몫이였다.달리 누가 할 사람도 없었고....-
그리고 운도 따랐다.MBC의 연** 피디인가?신**피디인가? 쇼2000 당대 최고의mc 이덕화가 '부탁해요 부활'하며 전국 생방송 전파를 타게 해주었다.
이 한방(마치 첫홀에서 이글샷 출발) 으로 후발 주자였던 내 그룹 [부활]이 최선봉,즉 리더 보드 최 상단에 첫번째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 공중파 방송을 탄 것이 국내 록매니아들에겐 상업적 밴드로 낙인찍히면서 극 소수 팬들에겐 외면 받게되지만 25년이상 근 30여년 한국 록의 전설이 될 토대를 이 때 구축 했다고 자부 한다면 좀 과한 내 표현일까?
내가 키타리스트에 워낙 뻑이 가서 그렇치...
만약 베이시스트 이태윤과 처음부터 같이 했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태윤아?건강해 보여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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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글을 나중에 정리하게 쉽게하려고 분류한것이 오히려 뒤죽박죽이다.
그래도 아무곳에서나 앍어도 연결되는게 내 글의 장점이다.
나는 내 글을 정리차원에서 흥미롭게 쓰고있지만,다른이들은 어찌생각하는지 그게 쪼금 긍금타.
ㅋㅋ
내가 록 그룹 매니져라는 다소 생소한?쉽게 접근 할 수없었던 시기에 [부활]과의인연을 우연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와 똑같은 생각이 내 아들의 골프입문기다.
너는 골프를 할 운명이다.
매일 최면을 걸었다.
김태원에게 너는 국내 최고의 키타리스트이다.
일본 밴드 "라우드니스보다 낫다."라고...
너는 백 범이다.
"백호다"라고...
내 할 일은 그거 뿐이였다.
지금 부터의 골프는 아들 녀석이 스스로 할 일이다.
[부활]도 4집이후 김태원 스스로 이끌어갔듯이...
나는 기록에만 충실할거다...
(골프스카이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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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5
골프스카이가 폐쇄되어 내글을 내가 퍼오는것도 힘들게 됐다.
[부활]의 초대 싱어는 이태윤이다.
그리고 김종서
이승철은 데뷰음반의 싱어일뿐 3대다.
고 김재기가 f대 동생 재희가 이른바4.5대 싱어라 할수있다.
박완규는 5대싱어지만 완규이후의 보컬들과 나하고의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그나저나 2011년 이승철 콘서트나 가서 꽃한송이 전해주고 와야겠다.
재기 동생 김재희도 새출발하는데 거기도 축하 해 주러가야겠다.
객관적으로 임재범보다 이승철이 한수 위라는것이 바로 콘서트 관중동원능력이다.
대중에게 그토록 오래 사랑받는가수는 조용필 가욍 이외에는 아직 없다.
그가 황제인 이유다.
다음편에 써보자
정말로 즐거운 행복한 ...오래 기억될 2011년의 성탄절이다.
남은生 최선을향해 달려보자!
모두 사랑한다.
태원이 녀석이 나보고 추하지 않게 늙었다는 그 말 한마디에 내가 너희들 무대로 꽃한송이 전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
왜 인지는 잘 모르겠다마는...
해피 크리스마스.
인생이란 길게보면 공평한거다.
골프의 세계에서 배웠다.
인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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