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자주 들러서 글보고 하는데 이렇게 글쓰기는 처음이네요
뭘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하고 글재주도 없어서 쓰다보면 엄청 길어질지도 모르겠어요
딱히 어디 하소연할데도 없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됐습니다.
20살 올해 넘어가면 21살 되는 학생이예요.
부끄럽지만 저는 가정폭력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된 아빠의 폭력을 보면서 자랐는데, 각인기억이라고 하나요?
유년시절의 가정폭력 장면이 몇개 생생히 남아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서 종종 절 괴롭힙니다.
교 땐 신경성 위염에도 걸렸습니다. 제게 아빠는 공포였고 특히 술마신 아빠가 부린 주사, 그리고
폭력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크고작은 사건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쓰기에도 벅찹니다.
비단 폭력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일도 하지 않았고 모텔을 들락거리며 다른 여자랑 자는게 다반사였으며
심심찮게 도박을 일삼았습니다. 어린 제가 보기에도 한심해 보일정도로요.
그렇게 어린시절을 공포속에서 연년생인 동생과 떨며 살았습니다.
견디다 못한 엄마는 제가 중3을 앞두고 있던 겨울 집을 나가셨고
매일매일 연락은 계속하며 지냈습니다. 그나마 살 수 있었던 큰 이유였어요 엄마가 연락도 닿지 않았다면
그냥 일찌감치 다 포기했을 것 같았으니까요.
그리고 중3, 아빠는 새여자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그 여자가 아빠와 바람을 폈던 다방여자였고, 그 이전에 엄마가 나가기전
그 여자 문제로 싸우다가 엄마가 아빠한테 벽돌로 머리를 맞아 병원에 입원했던 적도 있던
저희가 보기에 못마땅 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였습니다.
당시 저희집은 산골짜기에 살았는데 (걸어서 30분정도 올라가야 저희 집이었으니까요) 그때 아빠가
그여자를 만나고 그여자 집에서 살다시피하면서 저희를 완전히 방치했습니다.
21세기에 먹을게 없어서 배고픔에 떨어봤단 얘기 들어보셨나요?
저랑 제동생 저금통 십원짜리 모아서 30분 걸리는 슈퍼에 내려가 컵라면 사먹고 그랬습니다.
오죽했으면 바로 옆에 세를 주던 주인 아주머니가 밥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해가 빨리지던 겨울밤에 올라가던 산길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직도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그리고 어느샌가 그 여자가 우리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평범한 가정을 흉내내고 싶었던 걸까요 우리 아빠는.
엄마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며 저희 눈치를 슬쩍보며 그렇게 어정쩡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그 여자는 저희에게 잘해줬습니다.
낯선사람이라 마음을 열지않던 저희도 차차 마음이 열렸으니까요.
오랜만에 받는 따듯한 밥상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소극적이고 살갑지 못한 성격이 문제였을까요? 그여자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설거지를 안하면 눈치를 주고 돈을 달라면 짜증을 내고 사소하게 시작된 히스테리가
고등학교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계모처럼 변해서 집에서 눈치를 봐야하는 웃긴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고3때 수능 원서비를 달라는 쪽지를 써놓고 잤는데, 들어와서 자기가 그걸 왜주냐며 소리를 지르며
종이를 찢어버리는 걸 듣고는 완전히 아니다 싶더군요 이 아줌마 얘기도 하면 끝이 없으니까 줄일게요.
아빠는 이 여자도 때렸습니다. 그 미안함에 저희에게 아줌마에게 잘하라며 저희의 제대로 된 방패막이가 되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서러움 속에서 동생과 살았습니다. 아빠는 저희에게도 폭력을 일삼았는데
크게 기억나는건 엄마가 연락용으로 사준 휴대폰을 들켜서 미친듯이 맞았던 기억 (자다가 발길질에 깨서 얼굴과 머리를 맞았습니다. 동생은 쌍코피도 났구요.), 술마시고 들어와서는 공부하는 걸로 잘난척한다고 안경이 날아갈정도로 머리를 맞았던 기억이 있네요.
수험생 대우? 이런거 받지도 못했습니다. 안맞는게 다행이었지..
애들 유료인강이다 과외다 학원이다 부러웠지만 꾹참고 이악물고 공부했습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매일 11시까지 꼬박 야자를 했고 주말에도 학교에 나갔습니다. 9월달쯤에는 그게 너무 서러워서 친구를 붙잡고 매일 야자끝나고 돌아가던길에 울고 그랬는데..
쨌든 그렇게 공부한 덕분인지 어디가서 학벌로 밀리진 않겠다 싶은 곳에 합격했습니다. 졸업할땐 전교2등으로 장학금도 받았어요. 기뻤습니다. 드디어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다 싶어서.
문제는 등록금이었습니다. 아빠는 대출을 받자고 하더군요, 자기는 신용이 없으니 니 이름으로 하라며
뭐 그것까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모아놓은 돈은 없고 대학을 가고싶었으니까요.
하지만 자기가 필요한 돈까지 저에게 대출을 시키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천만원의 금액을
빚지고 시작하려니 무섭고 겁이났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만 20세가 되지 않아서 대부업체 대출이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등록금은 엄마가 집을 나가서 모아둔돈 그리고 장학금으로 어떻게 해결했습니다.
대학생활은 기숙사에서 했습니다. 저는 난생처음으로 공포스럽지 않은 저녁들을 보내고 넓은 세상에서 지내며 제 삶이 나아진 데에 대해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쓸 용돈을 벌기위해 평일 내내 열두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행복했습니다. 그곳에 남아있는 동생 걱정만 빼면요.
무엇보다 예전보다 엄마를 더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도 만나는 아저씨가 있었어요.
저와 제동생은 그 아저씨가 좋게 보일리 없었습니다. 이미 아빠의 아줌마한테 데인 상처도 컸고
무엇보다 그 아저씨 성격이 정말 이상했습니다.
적어도 저희는 저희앞에서 엄마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최소한의 예의를 바랬지만 이건 완전히
엄마가 말만하면 무시 일색에 습관처럼 툭하면 언성을 높였고 엄마가 저희에게 쏟는 관심에 대해 질투하는 행동을 하는 등 정말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밥먹는 와중에 트름을 꺽걱하거나하는 최소한의 예의가 없는 사람이이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자신이 집을 나오고 의지할 수 있엇던 사람이라고해서 저희는 그 아저씨가 맘에 들지 않아도 티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워낙 살갑지 못하고 소극적인 저희 성격에 그 아저씨와 친해지기는 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아저씨가 조금 큰집으로 이사하게 되어 겨울방학을 맞은 저는 이 집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남들에게 '집'이라고 불릴만한 곳이 생겨 굉장히 좋았습니다. 오늘까지는요.
위에서 썼듯 툭하면 엄마를 무시하고, 툭툭거리고 맛있는 반찬을 하면 제가 와서 그렇다는 둥 비아냥 거리고. 위에서 쓴 유년시절을 거친 제가 살갑게 대할 수가 없었던게 사실입니다. 자기 합리화로 비춰질 수 있지만 가뜩이나 모난 성격에 도저히 저아저씨가 맘에 들지 않았거든요. 스무살씩이나 먹었으면 감정조절도 능숙해져야한는데 그게 안됐습니다. 아저씨와는 어색한채로 생활을 했습니다.
문제는 어제 저녁 엄마가 퇴근을 하고 어쩌다가 아저씨와 엄마의 말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저씨는 그냥 노동자입니다. 나가는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어요)
화난 엄마는 아저씨에게 저녁을 알아서 차려먹으라했고
아저씨는 갑자기 눈이 뒤집히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싸가지 없는 X, X 같은 X, 입에도 담기 힘든 욕을 해서 거기서 튀어나가 아저씨한테 욕을 한바가지 해주고 싶었는데 참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정말 입에 담아선 안될 협박을 하기 시작하더 라구요. ‘애 앞에서 목에 칼을 대야 니가 쪽팔리지, 앞으로 부엌에서 음식하면 손목을 잘라버리겠다’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적어도
아빠처럼 엄마를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제 착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냉랭한 밤이 지나가고 아까 여섯시쯤 싸우는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습니다.
역시나 아저씨는 욕을 퍼붓고 있었습니다. 싸가지 없는 것들 하면서 은연중에 저까지 싸잡아서 욕을 하고 있는데 할 말이 없었습니다. 뚱하고 모난 제 성격이 싸가지 없는 모습으로 비춰졌다면 잘못이니까요. 그리고 곧이어 때리는 소리가 들려서 달려갔습니다.
엄마는 저한테 가있으라고 했지만 저는 멍한 채로 움직이지도 못했습니다. 엄마도 지지 않고 아저씨를 때렸지만 아저씨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폭력을 쓰더군요.
무엇보다 아무것도 못하는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이렇게 되풀이 되는 상황에서 저는 말리는 것밖에 달리 할 게 없었어요.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왜 우리 엄마, 저, 제 동생 맘 편하게 발붙일 곳은 없을까요.
엄마는 출근했습니다. 아저씨 지금 거실에서 코골면서 잘 퍼자네요.
옛날에는 아무리 상황이 힘들어도 죽는다는 건 꿈도 못꿨는데 요즘은 자꾸만 나쁜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정신 차려야 겠죠..
버티기 힘들어서 그냥 하소연 삼아 글 남겼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저에겐 최악의 크리스마스 아침이지만 여러분에게는 부디 좋은 하루 되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