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결혼 엎으면서 제일 마음에 걸렸던 게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거였고, 점심시간에 그 꼴을 본 후엔 그 남자에 대해선 아무 마음이 안 남았으면서도 끝까지 그게 걸리긴 하더라고요. 구정 때 뵐 테니 그때 얼굴 보고 말씀드릴지 어쩔지 고민하면서 마음 무거워 했는데 어쩌다보니 상황이 말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가족들 반응이 또 의외라서 정말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그런 생각이 드네요. 4년 인연이 풀리려니 또 이렇게 빨리 정리되기도 하는군요. 될 일은 되고 안될 일은 안된다 류의 말 별로 안 믿었었는데 그게 있기는 있나 봅니다.
점심 굶고 후기 쓰고 나서 일하고 있는데, 과장님이 제 자리로 오시더니 오늘 휴가 내고 싶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힘들지 않냐고. 사실 전 업무엔 아무 지장 없었지만(그놈 덕분에-_-) 휴가 마다하는 직장인이 어디 있겠습니까.ㅎㅎ 또 너무 아무렇지도 않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나오는 길에 룸메에게 메시지도 남기고, 모처럼 햇빛 있을 때 집에 와서 주말에 못했던 밀린 빨래와 청소도 하고, 먹고 싶었던 스파게티도 해 먹으면서.... 하여간 연애 쫑난 여자 치고는 지나치게 태평하게 빈둥거렸습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신혼집은 어쩌고 저쩌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괴상하네요. 그러던 중에 룸메가 전화 와서 둘이 짧은 포풍 수다를 떨며 그 남자 뒷담을 까고ㅋㅋ 룸메는 메시지 듣고 엄청 놀랐는데 목소리는 너무 멀쩡해서 그래도 안심이라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밤 야근이 잡혀있다고ㅠㅠ 영화는 좌절됐지만 대신 밤에 치맥 먹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전화를 하셨어요. 구정 때 예비시댁-_-;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 일정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 순간 정말 난감했습니다. 얼굴 보고 말씀드리겠다고 막연히 맘먹고 있었는데 타이밍도 참..... 거짓말 하기도 그렇고요. 제가 우물쭈물하니까 눈치를 채시고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말해버렸습니다. 헤어졌다고요. 하지만 난 괜찮다고 계속 강조하면서요.
어머니 반응이 정말 의외였어요. 상견례는 안 했지만 저희 둘은 서로 양가 부모님께 인사 다 드렸고, 명절 때는 양가 서로 선물도 교환하시고, 하여튼 거의 가족 된 분위기였어서 또 제 나이 많다고 늘 걱정하시던 분이어서 제 결혼 엎어진 거 굉장히 속상해하실 줄 알았거든요. 나중에 통화 된 아버지는 그래도 좀 안타까워하는 어조셨는데, 어머니는 그냥 쿨하게 '너가 괜찮으면 됐다'고 하시고 말더라고요. 이유 같은 것도 안 물어보시고.... 조금 있다 소식을 들었는지 동생한테도 전화가 왔습니다. 괜찮냐고 물어보면서 하는 말이, 사실 자기랑 엄마는 그 남자가 별로 탐탁치 않았답니다. 동생이 저보다 먼저 상당히 일찍 결혼해서 조카가 이제 세 살인데, 그런 자기가 보기에는 그 남자 인상이 좋은 신랑이 될 거 같은 느낌은 아니었답니다. 그래도 제 얘기로는 잘해준다 하고 또 자기가 받은 인상과는 많이 다른 거 같아서 굳이 반대하진 않았다고요. 외려 잘됐다는 식으로 얘길 해서 놀랐어요. 새삼 제가 그 남자에게서 뭘 본 건지, 그리고 뭘 보지 못한 건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가족과 대화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했고요.
마지막 후기를 쓰려고 판에 들어와서 댓글 꼼꼼하게 다 읽고, 댓댓글들도 다 읽어보았습니다. 나름 세상 사는 데 멍청하지는 않다고 자부했는데, 댓글들 보니 그것도 아닌 거 같아요. 전 아직도 그 남자가 저를 간보려고 한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그런 얘기를 한 건지 긴가민가 합니다. 그런데 그게 명백하게 보이나요?ㅠ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와선 상관없는 일이긴 하지만요.
그리고 대부분 제 편을 들어 주셨지만 둘이 서로 양보할 줄 모른다고 말씀해주신 분도 계셨는데..... 글쎄요, 그런 건지도 몰라요. 다른 어떤 분은 제가 지나치게 무난한 스타일이라 남자 본성을 볼 기회가 없던 것 아니냐고 하시던데, 맞습니다. 저는 언성 높이는 것도 싸우는 것도 싫어해서 왠만하면 상대방한테 맞춰 주는 편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저희 가족 성향이 다 그렇습니다. 상대방이 고집 부리면 맞서기보다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물러나버리는 일이 많아요. 그런 식으로 그 남자한테도 많이 맞춰줬던 것 같습니다. 그 남자가 원해서 연애 초반에 어려운 그집 어른들한테 인사가기도 했고(저희 부모님께는 작년 초에야 인사드렸습니다), 이벤트니 그런 거 좋아해서 귀찮더라도 해준 적도 많고요. 저는 그렇게 떠들썩한 건 별로 안좋아했거든요. 그런데 부모님에 관련된 일은.....제가 정말 양보 못하는 몇 안 되는 것 중에 하나였어요. 솔직히 서운하고 괘씸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양보했는데 자기는 그거 하나 못 들어주나 싶었어요. 저 저희 부모님 챙기는 만큼이나 나름 그 남자 부모님도 챙겼습니다. 그 남자가 자기 가족 챙긴 것보다 제가 챙긴 게 더 많았을 걸요? 신혼집 아파트 자기 집에 가까운 데로 구한다 했을 때도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습니다. 무엇보다, 그 댁 형편이 저희 집보다야 낫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이상하리만큼 자기 가족을 안 챙기더군요. 부모님이 별로 여유도 없이 사실 때도 그 남자는 자기 입고 먹고 치장하는 데 돈 펑펑 쓰고 다녔어요. 그 남자가 사는 아파트에서 그넘이 모는 차 가진 사람 없어요. 그렇게 사치를 부렸으면서도 집에 돈 보탠 적도 별로 없었던 주제에, 제가 제 부모님께 드리는 돈 가지고 왈가왈부 했다는 게 너무 괘씸합니다. 제가 어디까지 양보를 해줘야 하나요?
그리고 헤어지자고 서로 말한 주제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껄이고 다닌 것도 용서가 안 돼요. 의견충돌 있을 때마다 자기 분 못 이기고 해도 될 말 안해도 될 말 사방에다 하고 다닐 거 아닙니까. 그런 남자를 믿고 어떻게 사나요. 자기가 그런 것까지 제 탓인양 몰아가는 그놈을 보고 든 생각이 그거였어요.
어쨌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니 후련하긴 합니다. 이제 홀가분한 솔로로 지내겠네요. 새로 생긴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이나 찾아보렵니다. 댓글 달아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