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틈타서 판 들어와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그냥 넋두리였는데 톡이 되다니..... 뭔가 신기하기도 하네요ㅋㅋ 자기 일처럼 화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어젠 글 올리고 댓글 몇 개 읽어보다가 신기하게도 맘이 좀 풀려서, 그리고 늦은 시간이고 해서 그냥 뻗어버렸어요. 여기서 댓글 써주신 분들께 감사하단 인사 드립니다.
방금 전남친 만나고 왔습니다. '전'이 붙긴 해도 그 남자를 남친이라고 부를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랍니다.이런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대체 4년 동안 저는 뭘 본 걸까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추한 꼴을 봤는데도, 스스로도 참 사람 보는 눈도 없었구나 생각하는데도 기분은 이상하게 유쾌합니다. 무슨 꽁트 한 편 본 거 같은 기분이에요. 어쩌면 전남친 주장대로 제가 쌀쌀맞고 사랑 따위 모르는 정없는 여자인지도 모르지요.
아침에 출근할 때만 해도 좀 울적하긴 했습니다. 씁쓸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말해봤자 제 얼굴에 침뱉는 것만 같아서, 내색 않고 일만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전남친이 메일로 점심시간에 좀 보자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만나기 싫었지만 꼭 해야 할 말이 있다고 하기에, 4년 만난 마지막 예의로 무슨 지랄을 하건 들어보기나 하자 싶어서 만났습니다. 전남친이 무슨 말을 하건 상관 없었어요. 예의라고 생각했지만, 전남친에 대한 예의라기보다는 그를 사귀었던 저 자신에 대한 종결의 의미였죠. 제가 좀 그런 게 있어요. 남이야 어떻게 하든 간에, 나는 내 나름 할 바를 다 하자..... 뭐 이런. 이런 저를 만만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좋아해 주더라고요. 그렇다고 바보처럼 휘둘려 다니는 성격은 아닙니다. 참다가 아니다 싶으면 딱 잘라 말하는 스타일이에요. 어쨌든 그래서, 전남친이 뭔 말을 하건 마음 다치지 않겠다는 자신도 있어서 만났습니다.
커피 시키고 둘 다 한참 말없이 뻘쭘하게 있다가 갑자기 그러더라고요. 너 정말 끝낼 생각이냐고.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싶어서 황당하게 쳐다보니 화가 난 거 같더라고요. 아니, 솔직히 파혼했다는 소리 지 입으로 온 회사에 다 퍼뜨리고 거기다 저를 고양이 때문에 결혼 엎는 황당한 여자로 만들어 놓았는데, 그건 볼장 다 봤다는 의미 아닌가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그럼 너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다니면서 나랑 다시 잘해볼 생각 하고 있었냐고. 니가 무슨 좋아하는 여자애 고무줄 끊어먹고 도망가는 초딩이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말을 다다다 쏟아붓기 시작하는데....... 별 소리가 다 나옵니다. 매정하다, 그게 그렇게 단박에 정리되냐, 한번쯤은 잡아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그리고 너네 부모님 챙기는 것만큼이나 우리 부모님도 좀 챙겨줬으면 싶은 마음에 한 말이다(이 대목에선 정말 욱했습니다. 설마 그럴 거라고는 생각 안했는데 몇몇 댓글들 말씀대로 절 떠본 건가 싶기도 합니다), 내가 사람들한테 말한 건 화나고 서운해서 그냥 해본 말이다, 그것도 몰라주느냐(왜 알아야 하는데?), 하도 속사포처럼 이소리 저소리 횡설수설 해서 다는 기억 안나는데 대충 저런 말들이었습니다. 듣는 저는 화가 나는 게 아니라 황당해서 넋이 나가더라고요. 몇 번 끼여들어 말해보려고 했는데 듣지도 않고 자기 말만 해서 그냥 포기하고 듣기만 했습니다. 나중엔 제풀에 억울한지 막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울더군요.
옛날부터 잘 우는 남자이긴 했어요. 옛날엔 그런 모습이 감성 풍부하다고 느껴지고, 우는 거 보면 가슴도 아프고 그랬는데....... 오늘은 뭐 이런 게 다 있냐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서 빙빙 돌더라고요. 화도 안 나고...... 그냥 어이가 없었습니다. 대체 내가 4년 동안 본 남자랑 지금 내 앞에서 추하게 울고 있는 놈이랑 동일인물인가 싶고. 나도 어지간히 사람 보는 눈 없었구나 싶더라고요. 말 다다다 하다가 우느라고 훌쩍이느라 말이 막히길래(가지가지 합니다, 진짜로) 그냥 딱 한 마디 하고는 일어나 버렸습니다.
"하다하다 이런 미친놈인 줄 몰랐다. 앞으로 아는 척하지 마라."
카페 안 사람들이 전부 쳐다보고 있던데..... 창피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진짜 무슨 희극의 한 장면 같았어요. 지루한 회사 생활에서 이런 드라마틱한 장면 생길 줄은 꿈에도 상상 못해봤는데 말입니다. 전남친놈은 그냥 입 벌리고 쳐다보더라고요. 썩소 한 번 지어주고, 그래도 마지막까지 깔끔하자는 의미로 커피 값 제가 계산하고 나왔습니다.
배는 고픈데 입맛은 없고 해서 그냥 회사 근처 공원이나 한 바퀴 돌고는 들어왔더니 그새 부서 내에 소문이 쫙 퍼져 있더라고요. 회사 바로 아래층에 있는 커피숖에서 그 지랄을 해놨으니ㅎㅎ 대체 무슨 일이냐고 동기들이며 아는 언니들이 묻길래 전부 얘기해 줬습니다. 그놈 앞으로 회사생활 어떻게 할지 궁금해지더군요. 결혼 깨진 게 제가 꿇고 안 잡아서 그런다고 생각하는 놈이니 누가 뭐라건 철판 깔려나요?
그냥 한톨 남은 미련까지 다 깨끗하게 털어내도록 해줬으니 고맙다 여기렵니다. 그냥 퇴근해서 맛있는 거나 먹고 룸메 친구 불러서 영화나 보려고요. 저런 놈하고 결혼까지 할 뻔했던 거 면한 기념으로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