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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정신상태 분석 좀..

정신상태... |2012.01.18 23:52
조회 396 |추천 2

외국 생활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집안 내력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제 어렸을 때, 시골에서, 할머니, 아빠, 엄마, 큰언니, 오빠, 작은언니, 저, 여동생. 이렇게 살았어요.

할머니 큰언니 오빠는, 아빠의 자녀교육의지에 따라, 좀 더 큰 도시에 나가서 살게 되었고,

작은언니, 저, 여동생은, 방목된 소, 말... 처럼 부모의 관심없이 자유롭게 자랐지요.

 

저는, 세상에 대한 눈을 초등 5학년 때 뜬 것 같아요.

아빠가, 제일 친한 친구, 그 촌 동네에서 맨날 일등, 이등하던 친구 (희경, 미영, 가명)를

도저히 못이기겠느냐는 말 한마디에,

악착같이 공부해서, (이 때부터인 것 같은데, 나에겐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해졌음.)

중학교 내내 1등하고, 공부 이외의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그러다, 아빠는, 엄마를 학대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아빠가 바람을 피워 간통죄를 묻겠다며

별거에 들어갔고,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엄마없이, 할머니 손에 키워져서 자랐습니다.

아빠는 엄마를 폭행할 때, 우리 세 자매가 보는 앞에서, 큰언니 오빠가 보는 앞에서 그랬고,

엄마는 서울에서 파출부인생을 사시며 근근히 사시던중, 지병이 악화되어 돌연사.

그런 엄마를 두고, 고모들은, ㅡ 니네 엄마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줄 아느냐,ㅡ 면서

험한 말들을 했고,

엄마 장례날, 외갓쪽 식구들은 우리 아빠가 무서워서(?) 못오고, 외삼촌만 오셔서 펑펑 우시고..

아빠는 외갓집과는 연을 강제로 끊게 하였고, 지금까지 연락없습니다.

 

저희 집안, 증조할아버지 시절에는 지역 유지였을 정도로 잘 살았고,

그 할아버지에게는 16명의 부인이 있었을 정도였는데, 일제 시대가 끝나고 전쟁나고,

유산의 반은 16명의 부인이 가져가고, 그래도 많은 재산이 할아버지에게 떨어졌지만,

전쟁시에 사망하신 할아버지, 그 덕에 나이 세 살에 집안 가장이 된 울 아빠.

할머니, 엄마, 누나들 치맛폭에 쌓여 버릇없이 자라왔고, 잘 지켜온 재산 탕진하고...

1990년대 후반까지, 100년된 허물어진 집, 아궁이에 불 때고, 연탄보일러를 쓰던 집을

고칠 돈이 없어 빗물 새는 안 방에서 매년 조상 제사 지내고... 참...

 

우리 아버지란 인간, 허풍, 2등이라면 서러울 사람입니다.

제가 10살 때, 내년에 우리 집 새로 짓는다.. 이게 제 나이 22살 때 이루어지고, 

조만간에 이 똥차 버리고 벤츠 살거다. 이 말만 20년 넘었지만 아직도 못사고 있고,

일하기 싫어하고 게을러서 자식들 모두 학자금 대출로 학교보내놓구선,

이제와서, 자식들 다 자기가 키웠으니, 용돈 내놓으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최근에는, 돈 생기면 개성공단에 다녀오시겠답니다.

ㅡ 농사꾼인 아버지가 거기 가서 뭘 보고 오실라구요?

ㅡ 야 임마 내가 뭘 보러 거기 가는줄 아냐? 우리 동네에 개성공단 다녀온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까

   내가 1번으로 다녀왔다는 자랑을 하려고 가는 거지!!

어렸을 때, 왜 우리 집에만 테레비가 있었는지, 왜 우리집에만 전화기가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전부 우리집에 모여서 테레비를 보고, 왜 우리집에 와서 전화기를 썼는지

이제는 이해가 갑니다. 허풍떨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였겠지요..

 

지금도 그 허풍은 여전합니다.

딸이 외국나가서 살고 있으니까 무슨 대단한 재벌집에 시집간 줄 아시나봅니다.

ㅡ 나 그 나라 가면, 니가 나 관광가이드 시켜줄래? 동네 사람들 다 데리고 갈란다.

저도 일하느라 시간없고, 휴가 기간에는 내 식구들과 시간보내고 싶은데,

제 휴가 기간은 관광가이드에 쏟으랍니다. 자식 키워놨으니 자식이 그정도는 해야한다고 합니다.

 

울 아빠는 제 인생 진로도 바꾸어놓은 사람입니다.

제 위로 줄줄이 있는 오빠 언니들이, 아빠가 원하던 법조계, 의료계, 행정계 쪽으로 가질 않으니,

저보고 그럽디다.

ㅡ여자에게 제일 좋은 직업은 교사, 의사 다. 넌 교사는 싫다하고, 의사가 될 실력은 없으니

  간호사나 되어라.

이렇게 전, 제가 원하던 공대를 가지 못하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간호대를 가게 되었어요.    

 

간호사가 되서 월급을 좀 벌게되니,

ㅡ 니 월급 내가 관리하마. 설마 내가 니 월급 아무데나 쓰겠냐?

ㅡ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슈, 내 월급을 내가 관리하지 왜 아빠가 관리하겠다는 건데?

ㅡ 요 년 싸가지 없는 소리하는 것좀 봐라. 누구네 딸은 월급 150 중에 100만원을 부모한테 준다더라.

근데 넌 뭐냐!

ㅡ 그 년이 미친 것이지. 그리고 자식 월급을 가로채가는 그 부모도 정상이야?

ㅡ 그 부모가 그 돈을 함부로 쓸려고 가져가겠냐? 모아놨다가 시집갈 때 주려는 거지?

ㅡ 물론 그 년 부모는 함부로 안쓰겠지. 아빠는 내 돈으로 아빠 빚 갚으려고 하는 거잖아. 됐어.

 

그 이후에도 용돈 안준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사람 신경질 나게 만들고,

은행 대출 받을 때 보증서줄 사람 없으니까 나보고 보증서라 하고,

제가 외국 나가버려서 더이상 보증서줄 사람이 없을 것 같으니까 나보고 한다는 말이

ㅡ 그래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 이거냐? 부모란 사람은 눈에도 안들어오냐?

 

지금도 64세 밖에 안되신 우리 아빠.. 남들 다 풍년일 때, 혼자 흉년이라면서

당신의 게으름을 탓하지 않고, 항상 운이 안좋았다면서, 남 탓만 해대는 사람입니다.

일 안하고 항상 바둑 등급 올릴 생각만 하고 계신, 우리 아빠...

보고 배울 것이 없는 우리아빠..

 

우리 신랑네 부모님을 보면, 세상에 이런 부모도 다 계셨구나~ 할 정도로

우리 아빠가 정말 정말 못난 사람임이 다 드러나요. 비교를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어요.

 

다음 편에, 외국 생활과 함께, 제 이야기도 좀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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