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자동차 내수시장 침체가 올해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달 국산 완성차 5개사의 내수 판매는 9만6448대로 전달(12만9497대)에 비해 25.5% 감소했고, 지난해 같은 달(12만577대)에 비해서는 20.0% 줄어들었다. 반면 수입차 판매는 전달에 비해 19.8%,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9.0% 늘어났다.
국산차 업체들로서는 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와중에 판매 돌풍을 일으키며 국산차의 체면을 세워준 차가 있다. 바로 기아차가 지난해 12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경형 박스카 ‘레이’다. 레이는 지난달 4496대가 팔려 전달(4107대)에 비해 판매량이 9.5% 늘어났다.
지난달 국내 자동차 시장의 판매 1위인 현대자동차의 쏘나타(9160→7619대)를 비롯해 아반떼(1만500→7255대), 그랜저(7817→6984대), 포터(8371→5933대), K5(7725→5605대), 모닝(8142→5815대) 등이 모두 전달에 비해 판매량이 크게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단연 돋보인다.
레이는 지난해 11월 말 신차가 발표될 때부터 어느 정도 인기가 예감됐다. 국산차로는 보기 드문 박스형의 독특한 디자인에 경차이면서도 넓은 실내공간, 다른 차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실용적 기능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차는 주부 등 여성 운전자나 어린 자녀가 있는 젊은 가장들을 주고객층으로 특화해 만들어졌다.
이 차는 앞문과 뒷문 사이의 기둥인 B필러가 없다. 조수석 쪽의 앞문은 90도까지 열리고, 뒷문은 슬라이딩식으로 뒤로 밀어 열게 돼 있다. 박스카여서 차체도 높다. 앞·뒷문을 모두 열면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들은 선 채로 걸어서 차에 탈 수 있고, 어린이용 자전거도 그냥 들어간다. 주부들이 자녀들을 등하교시킨 뒤 출근하거나 마트 등에 다녀오는데 적격이다. 노약자들이 타고 내리기에도 편리하고, 자영업자가 짐을 싣기도 좋다.
운전석과 조수석의 천장에서부터 좌석 밑, 차문, 시트 밑까지 곳곳에 아기자기한 수납공간을 많이 만들어 실용성을 높인 것도 여성 운전자들을 끌어들일 만하다. 뒷좌석 바닥에 숨겨진 수납공간은 하이힐로는 운전하기 불편한 여성들이 운전용 신발을 보관하는데 유용하다. 밀키베이지, 아쿠아민트, 셀레스티얼 블루, 카페민트 등 파스텔톤의 독특한 10가지 외장 컬러도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할 만하다. 차가 높고 앞유리창이 직각에 가깝다 보니 운전시 시야가 크게 확보되는 점도 운전에 서툰 여성들이 좋아할 만하다. 기아차는 이 같은 레이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동화같은 TV광고를 집중적으로 내보내며 여성들과 젊은층의 구매욕구를 자극했다.
기아차의 전략은 맞아떨어지고 있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기아차 마케팅본부의 레이 구매고객 분석 자료를 보면 20대가 25%, 30대가 41%로 20~30대가 전체의 66%를 차지하고 있다. 30대 고객의 경우 어린 자녀가 있는 가장이 많이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여성이 36%, 남성이 64%로 고객 10명 중 4명 정도가 여성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주부들은 남편 등 남성 명의로 차를 사는 경우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여성 고객 비중은 50% 이상”이라고 말했다.

레이는 경차로서는 높은 가격대(1240만~1625만원)가 부담이다. 기아차는 레이가 자사의 베스트셀링 경차인 모닝의 판매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스마트키, 전좌석 열선시트, LED 포지션 램프, 열선 스티어링 휠 등 편의사양을 대거 높여 가격을 올렸다. 모닝과 같은 엔진을 쓰면서도 덩치가 커지다 보니 가속력이 떨어지는 등 미흡한 주행성능도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단점들이 오히려 여성고객들에겐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성 고객 대부분은 경차라 해도 화려한 편의사양을 원하고, 운전을 조심스럽게 하기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는 얘기다.
기아차 관계자는 “레이의 누적 계약대수가 지난달 말 기준 1만5000대에 달한다”며 “지금 차량 구입 계약을 하더라도 2개월 정도는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레이의 판매는 당분간 고공행진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