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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초등학교가 제일 싫어, 난 당신들을 잊을 수가 없어.

초등학교 2학년 때, 스티커 받겠다고 7시 40분에 와서 고사리손으로 계단을 다 쓸었었어

그런데도 스티커 개수는 특정 애들보다 적었지

왜냐면 우리 엄마는 학교에 오지 않았고, 그 애들의 엄마는 학교에 줄기차게 드나들었으니까.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들이야.

 

그렇지만 그 때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나봐. 공책에 학습목표를 쓰라길래 문득 반항심이 들어서

'~~~을 알아봅시다' 이런 문장을 '~~을 알아보자' 이렇게 반말로 썼어

지금 생각하면 정말 소심하지만, 당신은 늘 들고다니던 흰색 가는 쇠파이프로 내 등을 쳤어.

그렇게 세게 치지는 않았지. 단지 그게 허릴 구부리고 있어서 드러났던 등뼈에 맞았을 뿐이야.

소리가 달랐던지 당신은 멈칫하다가 그냥 슥 지나갔지.

그렇지만 그 다음날에도, 다음날에도 난 계속 일찍 등교했어.

청소말고도, 발표도 하려고 손을 수시로 들었지만.

내가 먼저 들었잖아. 근데 왜 쟤를 시키는거야.

 

난 당신때문에 학교에서 설문조사같은걸 할 때도 손을 번쩍 들지 않아.

든지 안든지도 모르는 것처럼 살짝 팔을 들고만 있을 뿐이야.

내가 손을 번쩍 들었는데도 당신은 보지 않았어. 결국 그게 알게 모르게 나한테 영향을 끼쳐버렸네.

 

 

 

 

초등학교 3학년 때, 난 2학기 반장이었어.

딱 선출이 되었을 때, 뭔가 마뜩찮은 표정이었던 당신을 기억해.

기억력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그 순간이 너무 이상해서였어.

난 너무 기쁜데, 당신은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난 운동회 때 반장과 뛰는 달리기를 할 때 당신이 내 손을 잡아줄 때 기뻤어.

선출 당시의 당신의 표정을 잊어버릴 정도로.

그런데 당신은 4학년 때 복도에서 마주친 내가 인사를 했을 때 받아주지 않았어.

바로 그 전 학년 반장이었잖아. 그런데 왜 내가 가던 길을 멈추고 꾸벅 인사를 했을 때,

못 본 척 그렇게 지나가버리는거야. 한산한 복도였는데.

그 후로 난 선생님께 인사할 때 한참 눈치를 살펴. 타이밍을 계산하고, 무시당하지 않을까 마음을 졸여.

언제 인사를 해야 날 보실까. 지금 인사하면 못보시지 않을까.

 

 

 

초등학교 5학년 때, 임신한 담임선생님을 대신해 1학기 초부터 왔던 당신.

가정환경조사서 제출하고, 당신이 그걸 수업시간에 우리들에게 자습을 주고 컴퓨터에 입력할 때,

나와 성이 다르지만 이름은 같은 친구를 불렀지. 난 앞자리여서 다 들렸어.

나와 이름이 같은 그 친구에게 "너희 엄마 학습지 선생님하시니? 너희 아빠가 자영업하시니?"

이렇게 물었고, 그 친구는 이게 뭐지, 하는 표정으로 멀뚱히 있었어. 그 친구가 반응이 없자

당신은 이름을 다시 확인했고, 그때서야 그 친구에게 '너 OOO 아니니?' 라고 물었지.

그 친구는 OOO이는 얘라면서, 날 가리켰고 그제서야 당신은 어영부영 무마하며 그 친구를 들여보내고

나를 불렀어.

 

그리곤 나에게 아빠가 무슨 일을 하시냐며 다시 물었지.

난 내가 쓴 대로 자영업하신다고 말했어. 내가 처음 아빠가 대리운전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빠가 내 눈치를 살폈던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었거든. 사업에 실패를 하고 빚을 갚으려고 아빠는 대리운전을 시작하셨고, 작은 대리운전 사무실을 갖게 되셨으니 자영업인 셈이었지.

 

난 내 눈치를 한참 살폈던 아빠를 생각해서 자영업이라고 대꾸했는데, 당신은 계속 물었어.

무슨 자영업을 하시냐면서. 그래서 난 대뜸 말했어. 대리운전하세요. 라고.

아빠를 부끄럽게 생각해본적 없었으니까. 비록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직업은 아니어도 우리 아빠니까.

그런데 당신은 대리운전이 뭐냐면서 내게 다시 물었어.

 

지금 생각하면 기가 차는 일이야. 그 나이되도록 대리운전을 한번도 이용해 본 적이 없었을까?

 

'대리운전이 뭐니? 결혼대행업체같이 대신 뭐 해주는건가?' 라고 능청스레 물은 당신.

나는 어린 마음에 그것도 모르는 건가? 하는 생각으로 '술 먹은 사람 대신 운전해주는건데요.'

라고 대답했고, 당신은 알았다며 날 들여보냈어.

 

이제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내가 그 직업에 대해 알고서나 말하는걸까, 하고 날 떠보았던거야. 그렇지만 내가 제대로 알고 있자 놀랐겠지.

 

그리고 그 뒤로, 당신이 기간이 다되어서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는 그 날까지.

당신은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내 가정환경이 뭐가 어때서? 우리아빠가 대리운전을 하셔서? 가방끈이 짧은 분도 아니었어.

당신만큼 고등교육을 받았는데, 단지 직업때문에 무시한다는 건, 선생님이 할 짓이 아니잖아.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를 동생이 졸업하는 오늘, 강당에 들어서던 나는 당신들을 떠올렸다.

구둣발에 채여본 적도, 멍이 들게 맞아본 적도 없었지만.

당신들은 초등학생에 불과했던 나를, 무형의 구둣발로 짓밟았어.

잘 살고 있겠지, 당신들은.

 

나는 문득 떠올린 이 기억들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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