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도발로 점철된 ‘기본합의서 20년’
20일 오전 서해도서 해역에서 한국 해병대의 해상사격훈련이 실시됐다. 같은 날 한미합동 잠수함훈련도 시작됐고, 27일부터는 연례 한미군사연습인 ‘키리졸브’도 실시된다. 북한 군 당국은 19일 국군의 서해도서 해상사격훈련에 대한 대응공격을 위협했고, 국군도 북한군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응징 의지를 분명히했다.
북한은 이번 해상사격훈련에 대해 아직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키리졸브’군사연습 기간 중에, 또는 예상치 않은 다른 시기와 다른 장소에서 어떤 형태로든 군사도발을 시도할 것이다. 남북한 사이의 군사긴장과 군사대비태세는 북한의 체제적 속성이 변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20년 전인 1992년 2월19일 남북한이 채택, 발효시킨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이처럼 상호 불신과 군사 대결에 깊이 뿌리를 내린 남북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보려는 첫걸음이었다.
그간 사문화되다시피 했고 현재 그 실현 가능성을 단기간 내에는 기대할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안정과 평화를 위해 남북기본합의서의 복원과 이행을 북한의 새로 등장한 김정은 정권에 강력히 촉구해야 할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전쟁억제 보장, 신뢰관계 구축, 공존공영 기반구축 장치 등은 궁극적으로는 통일 촉진을 위한 선결 요건들이다. 이 세 가지 장치가 제대로 작동된다면, 남북기본합의서는 한반도에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을 이루는 것이나 다름없다. ‘남북연합’이니, ‘낮은 단계의 연방’이니 하는 다른 개념의 도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남북한은 ‘기본합의서’ 합의와 함께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 등 부문별로 기본합의서의 이행 및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와 이의 실천을 위한 ‘남북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도 채택했다.
한편, 남북기본합의가 실제로 이행됐다면, 북한의 개혁·개방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당시 북한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어쩌면 합의할 당시부터 북한은 아예 실천으로 옮길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그때도 한국보다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정부는 미·북 간의 대화는 반드시 서울을 경유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발전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북한의 이런 입장은 1994년 북핵 문제에 관한 미·북 양자 협상이 이뤄지면서 분명해졌다. 미국과의 양자대화 채널을 가지게 되자, 북한은 한반도 평화 문제는 미·북 양자 간의 문제임을 주장하면서, 한국과의 군사·안보대화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이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본합의서 체결 이후 지난 20년 동안 북한의 대남도발 행위는 계속됐다. 심지어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의 대북 햇볕·포용정책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해상도발, 잠수함 침투,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의 군사도발은 멈출 줄 몰랐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그 도발 행태가 전쟁행위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격화됐다. 이것이 북한의 체제적 속성이다.
북한은 물론 한국도 남북기본합의서의 전면적인 이행·준수 없이 남북관계의 개선이나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일 뿐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김정일 6·15 공동선언이나 노무현·김정일 10·4 공동선언도 남북기본합의서의 성실한 이행·준수를 선행조건으로 할 때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박용옥/평안남도 지사, 前 남북고위급회담 군사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