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내용은 새누리당의 의견과 전혀 상관이 없으나 민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있을 대선에 앞서 진실을 있는 사실을 그대로 모아서 여러분께 요약하여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새누리당 힘내세용!
안녕하십니까?^^* 저희 새누리당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50년간 국민과 함께 해왔습니다.현명하신 우리 국민들께서는 이번 19대 총선에서도, 특히 영남, 강원, 충청에서 저희 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셨습니다. 그 결과로 제 18, 19대 국회에서 다수여당을 넘어 과반수 이상 차지에 성공했습니다.그래서 저는 불과 6개월밖에 남지 않은 대선을 맞아 그간 새누리당이 국민들을 위해 걸어온 길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그저 참고 자료로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아래는 새누리당이 50년간 달고 있던 이름들입니다.자유당▶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
【1】 자유당[이승만] - 1951~1960저희 새누리당의 최초의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승만 대통령께서 창당한 자유당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겠습니다. 자유당은 대한민국 건국 초기 친일청산을 막았던 이승만 대통령을 기반으로 탄생했으며 1954년 5·20총선에서 99석을 확보하여 제1당이 된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의 종신집권을 위하여 '대통령 3선제한 철폐'를 위한 개헌을 노리고 개헌정족수인 의원 정수(議員定數)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하기 위해 무소속의원의 포섭에 나서 결국 의석 총수 137석을 확보에 성공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때부터 자유당의 전횡은 더욱 심해져 사사오입(四捨五入)개헌과 같은 정치적 비리를 저지르며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연장을 꾀하다가 마침내 1960년 3·15부정선거로 인해 분노하신 시민들에 의해 4·19혁명이 일어나면서 자유당은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자유당은 과거를 반성하고 우리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새 전력을 가다듬었습니다.
【2】 민주공화당[박정희] - 1963~1980 엄연히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라지만 이 시절 우리 가난한 국민들을 딱하게 여기신 저희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군사력(무력)을 앞세워 혁신적인 정부를 세우는 것에 성공합니다. 민주공화당은 쿠데타 세력 박정희 대통령께서 과거 저희 자유당(親이승만) 세력의 일부를 흡수하여 창당한 정당입니다. 이후 국가의 시스템을 오로지 국민을 위해 노력하는 자신의 안정적인 집권화를 위해 10월 유신으로 입법부를 장악하시고 겨우 17년간 군사독재를 하시며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끌어가셨습니다. 아무리 과거 민주공화당이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경제를 일으켰다고는 하지만 그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에 깊이 반성하고 우리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새로운 인사를 통해 당명을 바꾸고 전력을 가다듬었습니다.
【3】 민주정의당[전두환, 노태우] - 1981~1989선군정치를 해오시던 저희 박정희 대통령께서 부정한 세력으로부터 갑작스런 피살을 당하심을 계기로 정승화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에 취임하면서 수도권 지역의 주요 군 지휘관을 교체하는 등 내부개혁이 진행됩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군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군 내부에서 부각되자 저희 전두환 대통령께서는 합동수사본부장을 중심으로 군사 쿠데타를 감행하여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위해 군권을 장악합니다.
이 사건을 교과서에서는 '12.12 사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민주정의당은 바로 전두환 정권이 세운 정당으로서 박정희 군사정권의 몰락 후 대한민국에 잠시나마 민주화 바람이 불던 1979년 이들 신군부 세력은 12.12사태를 통해 또 다시 군사정권을 세우려하자 전두환 대통령의 깊은 뜻을 모르는 국민들께선 이를 막기위해 전국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 서울에서는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투쟁 이른 바 '서울의 봄'을 외쳤고, 광주에서는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납니다. 전두환 대통령께서는 자신의 뜻을 몰라주는 국민들에게 분노하여 군사력을 동원해 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향해 약간의 물리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항쟁에 얼른 사태를 마무리 짓고 민생에 매진하기 위하여 그 반란자들을 총살하고 그에 동조하는 민간인이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도 결국 살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신군부)께서는 앞서 전국적으로 퍼지는 민주화항쟁을 계기로 이를 정부에 대한 반란으로 정의짓고 일부 불란세력들을 탄압하기 위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시작합니다. 집권 초기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그들을 잠재우고 대한민국은 다시 전두환 대통령이 이끄시는 군사정권의 아래로 들어가게 됩니다.
1987년, 전두환 정권은 4·13호헌조치를 발표하고, 불란한 세력인 통일민주당(지금의 민통당)의 창당을 방해하시는 등 일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억압하긴 했지만 그 또한 국민들을 위한 일이기에 전두환 대통령께선 자신의 안정적인 장기집권을 획책하였습니다. 참을성 없는 국민들은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범국민대회’를 계기로 또 한번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를 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20여 일간 전국적으로 500여 만 명이 참가하여 4·13호헌조치 철폐, 직선제개헌 쟁취, 독재정권 타도 등 반독재민주화를 요구하는데 이것이 바로 '6월 민주항쟁'입니다.
6월 항쟁 이후로 민심이 안좋아져 갈 수록 심각해지는 분위기를 감지하고 그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민주정의당의 차기 대선 후보인 노태우 후보를 앞세워 국민앞에 6.29선언을 하였습니다. 그에 마음이 풀리신 마음이 넓은 저희 국민들께서는 다시 한 번 저희 당의 대선 후보인 노태우 후보를 뽑아주셨습니다. 저희 새누리당은 국민들에게 큰 심려를 끼쳐드림에 대해 그들을 대신해 대단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국민들을 위한 일이였으며 민주화는 경제가 발전하면 언젠가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저희는 그것을 감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제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고, 반성하고 새로운 당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4】민주자유당[김영삼, 김종필] - 1990~1995 전두환 대통령으로 인해 더러워진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하여 노태우의 민주정의당(민정계), 김영삼의 통일민주당(민주계),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공화계) 이 3당이 합쳐져 새롭게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다시 김영삼 대통령을 집권 성공시키며 또 한번 여당으로서 탈바꿈을 하게 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군사독재정권을 평화적으로 종식시키고 자신의 정권을 문민정부라 칭하며 전 정권과 차별화를 꾀하셨습니다. 김영삼 대통령께서는 말로만 개혁이 아니라 30여 년간 지속된 군부 독재정부 시절의 여러 가지 잔재와 불합리하고 비민주적인 제도를 개혁하셨습니다.
김영삼 대통령께서 행하셨던 여러 가지 큰 개혁은 본받을 만 하나, 지나친 산업 확대와 수출산업 강화, 임금인상, 물가상승, 외화낭비 등 경제적 팽창과 더불어 부실이 커져 탄탄대로를 달리던 대한민국의 국가경제를 파탄나게 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1992년 대선후보였던 김영삼 대통령께서 김종필[※박정희]의 지지를 등에 업으며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전두환]와 충돌했고, 급기야 노태우 대통령은 민자당을 탈당하게 됩니다. 그 후 김영삼 대통령께서는 1995년 지방선거 참패로 당 쇄신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국민들에게 큰 심려와 고통을 끼친 죄를 뉘우치고 새롭게, 더 새롭게 탈바꿈 하기 위하여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꾸셨습니다.
【5】 신한국당[김영삼, 이회창] - 1996~1997김영삼 대통령께서는 노태우[※신군부]의 군사독재 이미지와 더욱 거리를 두기 위해 새로운 인물들(이회창,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맹형규, 박찬종 등등)을 당으로 끌어들이며 당내 물갈이를 함으로써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 다시 한 번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1996년 4월에 치러진 제15대 총선에서 제1당(139석)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자민련과 민주당 의원을 포섭하면서 드디어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신한국당도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각종 부정부패와 친인척 비리 그리고 IMF 위기를 터트리며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큰 실수를 범하게 됨으로써 위기를 맞게 됩니다.
김영삼 대통령께서는 억울하지만 신한국당의 이미지가 자신 때문에 더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셨기 때문에 탈당을 결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총재가 된 이회창 총재께서는 민주당과 통합하며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당명을 '한나라당'으로 바꿨으나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국민들께서 새로운 이미지의 대선후보였던 이회창 후보를 찍지 않으셔서 대통령 선거에서 실패했고 분하게도 새누리당 정당 역사 처음으로 야당 신세가 되고 맙니다.
【6】 한나라당 [이회창, 이명박] - 1998~2011 1997년과 200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께서 야권의 후보인 고(故) 김대중, 고(故)노무현에게 패배한 한나라당은 2006년에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신민주공화당]을 흡수 통합하고, 2007년 12월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며 또 다시 집권여당이 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과 민주주의 후퇴, 수많은 부정부패와 친인척 비리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국민들의 지지도는 날로 떨어지고,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패배와 투표 당시의 부정 선거 의혹, 돈 봉투 파문 등이 이어지며 또 다시 큰 위기를 맞게됩니다. 마침내 2011년 12월에 한나라당의 새로운 이미지, 쇄신을 위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출범하고, 2012년 4월의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변경을 추진하게 됩니다.
【7】 새누리당[박근혜] - 2012~이렇게 저희 새누리당의 역사를 설명하다 보니 처음의 출발점에 계시는 민주공화당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당이고, 마지막에 있는 새누리당은 따님이신 박근혜 의원의 당이네요. 1963년 2월에 창당된 민주공화당(박정희) 그리고 2012년 2월에 새롭게 새롭게 등장한 새누리당(박근혜), 아버지의 쿠데타를 통해 시작된 당으로부터 무려 50여 년이 지난 후에 또 다시 그 따님께서 만든 정당이 바로 새누리당인 것입니다.
돌아보니 대한민국 역사 반 백년, 대한민국 국민들은 국가의 이념이 국민을 위한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임에도 끊임없이 군사정권 독재정권과 맞서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고통받고 싸워 왔습니다. 하지만 국민 국민 여러분들의 입장에서는 근현대사 교과서에 한 페이지로 남아있는 3.15부정선거, 4.11혁명,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그 타도의 주체가 지금도 우리 옆에 버젓이 살아 숨쉬고 있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집권여당으로서 말이죠. 하지만 그런 암흑의 과거속에서도 저희 새누리당은 과거 50년과는 다릅니다, 반성하였습니다, 반성하고 또 반성했습니다. 이번 19대 총선을 통해 강원, 충청, 영남권(특히 야당의 어떠한 모함에도 변함없는 무한지지 감사드립니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것으로서 저희 새누리당을 다시 한 번 믿어주신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희 새누리당과 저희 박근혜 의원은 절대 다를 것입니다.
여러분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과연 어떠셨습니까?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는 50년간 끊임없이 되풀이 되었으나 이번에는 절대로 다를 것입니다.지난 5년 이명박 정권의 무례함은 잊으시고 이번에도 꼭 한 번만 더 저희 새롭게 탈바꿈한 새누리당을 믿어주십시오. 이번에도 그 믿음을 다시는 배신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답드리겠습니다. 또 찍어주실꺼죠?♡믿고 믿고 믿어주십시오.^^ 저희 또한 현명한 국민들의 선택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