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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8일자 일본의 니카타 지방신문에 ‘형무소 행정에 불만을 품은 한국인 재소자가 목을 매 자살했다“는 기사가 났다. 제주의 30대 청년이 일본의 니카타 교도소에서 차별과 형벌에 고통을 받다가 결국 ’꼭 복수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한 것.
2009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1만엔짜리 위조지폐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구속돼 4년이라는 중형을 받았다. 당시 일본의 변호사 사무소라는 곳에서 전화를 받고 소식을 접한 가족들은 일본 총영사관과 토쿄, 오사카 영사관 3곳에 전화로 확인을 했으나 그런 일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자국의 국민이 교도소에 수감이 될 정도의 사안이라면 당연히 영사관에서 파악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영사관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한국인이 일본에 와서 범죄행위를 저질러서 구속이 되면 일본측에서는 당연히 한국영사관측에 신원파악을 의뢰 했을 텐데 한국영사관에서는 그 일을 몰랐다고 한다면 말이 되는 소리인지? 더구나 몇개월에 걸쳐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는데도 영사관측에서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도대체 대한민국영사관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설사 미리 파악이 되지 않았다고 해도 가족이 문의를 했을때 경시청이나 법무성 등에 전화 한통이면 간단히 확인이 될텐데, 영사관 측의 무성의와 어처구니 없는 행정이 이 가족으로부터 모든 기회를 빼앗아 가 버린 것이다.
결국 가족이 그의 소식을 접한건 고국의 형에게 보내온 편지 한통. 그땐 이미 수감생활 중이었고, 가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었다. 가족들이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미 재일본 대한민국 영사관 측의 어처구니 없는 행정이 빼앗아 가 버린 후였다.
2년이 넘도록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여러 분야의 공부를 열심히 하던 그를 일본인 교도관들은 이유없이 일본인 수형자를 괴롭혔다는 누명을 씌워 조사를 하면서 그의 힘든 수감생활이 시작됐다. 일명 ‘오오다케사건’으로 일컬어 지는 이 사건은 일본인 수형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오해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교도소 측에선 이런 진실을 덮어버리고, 진실을 왜곡하여 다른 수형자들로 부터 집단 따돌림을 받도록 방치한다. 교도관들 역시 모자를 놓고 시비를 걸고 수형자들 앞에서 모욕을 주며 괴롭히고 25일간, 10일간 독방에 감금을 하는 등 가혹한 형벌로 그를 못살게 굴었다. 그런 징벌을 내리려면 명확한 경위가 있어야 하는데 유족들에게 그런 경위조차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독방에 가두는 징벌이 내려지고 그는 5일간 독방생활 끝에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된다. 유족들이 교도소측에 물었더니 복장위반으로 독방에 가두었다고 한다. 세상에!! 전세계 교도소 중에 모자를 똑바로 쓰지 않았다고, 복장이 조금 불량 했다고 독방에 가두는 교도소가 있던가? 유족의 이런 항의에 교도소측의 답변은 복장불량을 선도하는 과정에서 반항을 했다는 식으로 말을 바꾸기 까지 한다.
독방에 수감된 그가 내린 결정은 바로 죽음으로써 결백을 밝히는 것.
그가 남긴 유품중 일기처럼 써놓은 노트엔 ‘죽음으로써 결백을 밝히고 너의 두 놈은 영혼이 되어서라도 복수하고 말겠다, 개자식들!“ ”자기 지위를 이용해 수형자들을 개, 돼지 취급하는 인간들은 수형자들 보다도 더 악질인 놈이다“ 등 원한에 사무치는 글들을 적어놓고 독방에서 목을 메달았다. 또한 교도소 벽에도 여러 글들을 남겨 놓았으나 왠일인지 교도소 측에서는 일부분만 공개를 하는 등 은폐시키려 애쓰는 모습이다.
교도소 측에서는 단순한 자살로 처리하고 관계자들을 문책하거나 유족에게 진심어린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가족들을 더 화나게 하는 것은 한국영사관의 태도이다.
유족이 현지에 도착해서부터 줄곧 영사관 측에서는 다른 한국인 제소자들의 처우를 핑계로 무조건 조용히 무마시키려고만 했다. 죽음으로써 억울함을 호소하려 했던 그가 수감 생활동안 남긴 노트에 그동안의 모든 일을 꼼꼼하게 기록 해 놓았는데도 진실을 규명하려 하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오히려 교도소측의 대변인 인양 교도소측의 입장을 이해 시키려 들고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말라는 투다. 화장터엔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교도소에 수감될 때부터 이 가족에게서 모든 기회를 뺏어갔던 대한민국영사관이 그의 싸늘한 주검 앞에서도 아무 문제 일으키지 말고 유골함만 가지고 돌아가라니...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그가 그렇게 원한에 사무치며 자살을 하게 만든 교도관과 교도소측의 진심어린 사과이다. 그가 남긴 노트에, 감금된 독방의 벽에 남긴 글에서 그가 얼마나 억울해 하고 원한에 사무쳐 힘들어 하다 결국 자살을 하게 됐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그의 원한을 달래주고 저 세상으로 보내주기 위해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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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http://www.issuejeju.com/news/article.html?no=117128
빨간볼펜으로 '복수, 죽어서라도 결백을 밝히겠다'는 적은 일기장이 그의 심정을 말해주는 듯 하다
일본에서 수형생활을 하던 한 제주 젊은이의 억울한 ‘죽음’이 충격을 던지고 있다.
일본 교도소내에서 차별을 견디지 못하던 30대 제주 청년은 결국 ‘꼭 복수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다.
도내에 있는 유족들은 울며 ‘억울한 막내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지만’ 별 다른 방법을 강구하지 못해 땅만 치고 있다.
형인 C씨(48. 제주시 거주)는 동생의 죽음을 통보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시신을 수습한 이후 고향인 제주에 동생을 묻었다.
가슴에도 묻었다.
그러나 ‘동생의 한(恨)’을 풀어줄 방법이 없어 눈시울만 붉히는 실정이다.
일본 니카타(新潟) 형무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30대 후반인 만석(가명. 39)씨가 일본에 건너간 것은 3년 전인 2009년.
일본에서 범죄자로 구속돼(이 부분에 대해서도 유족들은 믿을 수 없다는 입장) 무려 4년 6개월 이라는 중형을 받았다.
그의 죄목은 1만엔짜리 위조지폐를 사용했다는 혐의.
만석씨는 니카타 형무소에 수감됐고 그의 시련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일본 니카타 수형 생활을 기록한 그의 일기장, 처음에는 공부를 하던 노트가 언제부턴가 자신의 처지를 알리는 일기장으로 변했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2년 5개월을 형무소에서 보내는 동안 만석씨는 대학노트에 언어 공부를 하는 등 내일을 꿈꾸며 지냈으나 어느 순간부터 그의 대학노트에는 저주 섞인 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수형생활 동안 일본인 교도관들은 그를 이유 없이 독방에 가두는 등 일본의 이지메(イジメ )를 가했고 그의 유서 등을 보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원인으로 나타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대학노트에 남긴 내용을 보면 ‘복수(復讐)’라는 한자어를 빨간색 볼펜으로 기록했다.
얼마나 뼈에 사무쳤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어 그는 ‘죽음으로서 결백을 밝히고 너의 두 놈(일본인 교도관 2명을 지칭)은 영혼이 되어서라도 복수하고 말겠다 개자식들!’ ‘자기 지위를 이용해 수형자들을 개. 돼지 취급하는 인간들은 수형자들보다도 더 악질인 놈 들이다’고 적었다.
그의 죽음을 보도한 3월 18일자 니카타 지방신문, '형무소 행정에 불만을 품은 한국인 재소자가 목을 매 자살했다'고 간단하게 다뤘다
죽어서도 복수를 하겠다던 그는 낯설고 물 설은 니카타 형무소에서 목을 맸고 그의 죽음은 니카타 지방신문에 보도됐다.
이달 18일자 니카타 지방신문은 니카타 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한국인 재소자가 ‘교도행정에 불만을 품고’ 목을 매 자살했다는 내용으로 단신 처리했다.
그의 일기장에 적힌, 일명 오오다케 사건이란
오오다케는 같이 복역 중인 일본인 죄수의 이름으로 만석씨는 오오다케의 일로 형무소 당국에 조사를 받았다.
한국인인 그가 일본 현지인 죄수를 괴롭혔다는 이유.
니카타 형무소 당국은 증인으로 같은 죄수인 스즈끼와 스가와라 2명을 불러 사실을 캐물었으나 이들 일본인 죄수들은 한결같이 “만석씨가 오오다케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 서로 장난치며 놀았다”고 증언했다.
이후 형무소 당국은 만석씨를 못 살게 굴었다.
3월 13일 ‘모자를 쓰지 않아 복장 불량’이라고 지적했는데 니카타 형무소에서 모자를 놓고 시비를 거는 모습을 처음 접했다고 일기장에 적고 있다.
만석씨는 자주 독방에 갇혔다.
징벌형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혼자 남겨진다는 것’.
시간을 보내기 힘들 뿐 아니라 ‘고독감과 무력함’에 심리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1년만 있으며 가석방도 가능한 그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일기장에 적었듯 그는 일본 교도관의 ‘독방 수감 등 과도한 형벌’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죽어서라도 복수를 하겠다는 그의 일기장 외에도 만석씨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는 다른 일본인도 공감을 표시했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만석씨의 형인 C씨는 “일본에서 동생의 시신을 수습할 당시 형무소에서 그 일을 하는 일본인 직원이 ‘많은 시신을 다뤄봤지만 이번처럼 억울해 보이는 시신은 처음’이라고 말하면서 상당히 신경을 써줬다”며 “너무 고마워서 제주도 연락처를 주며 제주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까지 했다”고 밝혔다.
C씨는 한국영사관의 처사에 대해서는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일본에 도착, 영사관을 찾았더니 직원이 일본과의 관계도 있고 소란을 피우지 말고 좀 조용하게 지나자고 당부했다”고 강조한 C씨에 따르면 한국 영사가 가족들이 일본에 오기 전 형무소를 방문한 방시에는 ‘교도행정을 원망하면서 만석씨가 자살했다’고 밝힌 반면 ‘영사와 가족이 같이 한 자리에서 형무소 당국은 자기들은 원칙대로 했다’고 시치미를 뗐다.
이 대목에서 한국영사가 항의하거나 뭔가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그저 조용하게만 수습됐으면’하는 눈치를 보인 탓에 C씨도 대놓고 대들기가 곤란했다는 것이다.
C씨는 “아무리 범죄를 저질러 일본 형무소에 수감된 처지라 해도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에 나와 있는 것이 영사 아니냐”며 “정말 억울하고도 분통이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형무소 벽에 기록한 만석씨의 유서마저 조작한 의혹
만석씨는 목을 매기 직전 형무소 벽에 자신의 심경을 글로 남겼다.
그 사실을 안 유족들은 ‘정확한 내용을 알기 위해 사진으로 찍어 보내줄 것’을 형무소 측에 요구했고 처음에 그러마하던 형무소는 돌연 태도를 바꿨다.
자살한 방 벽에 적힌 유서를 사진을 찍어 보내 달라는 유족들의 호소를 외면하고 일본 니카타 형무소가 프린트물로 보낸 유서. 이를 해석하던 일본어 번역가는 '문장 전체가 이어지지 않는 등' 엉터리 문장이라고 지적해, 형무소 측의 조작 가능성을 높였다
자신들이 프린트한 것을 지난 19일 유족들에게 보내면서 ‘유서 내용’이라고 말막음을 했다.
일본 니카타 형무소에 조작했을 가능성은 일본어 번역가의 손을 거치며 더욱 높아졌다.
이 유서를 번역한 K씨(42)는 “도대체 문장 전체를 해석할 수가 없다”며 “중간, 중간 알아 볼 수는 있는데 문장이 이어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번역 가능한 부분을 살펴보면 "(중략) 인사만 했을 뿐인데, 사람들 앞에서 10분 욕 먹고, 조사를 받고 5분 더 욕먹고, 일년동안 암기사항을 100회 큰 소리로 읽고, 또 더 큰소리로 열번 읽고 (중략) 안에 있는 시설 청소담당을 하고 (중략) 작년 10월 조사관과 만나서 다른 수형자에게(오오다케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 '강아지'라고 했다고 거짓말하라고 시키는 등 다른 수형자와 문제를 일으켜 수형생활을 어렵게 하는 것이 너희 들의 짓거리 (중략)작년 10월 조사 서류를 보면 모두 알 것인데, 조사관은 사실을 숨기려는데 급급하고 있다. 너희 둘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나는"으로 돼 있다.
유족들은 많은 것을 원하지 않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만 해달라'
모든 사연을 뒤로 하고 C씨는 "동생을 죽음으로 내 몬 사연과 정황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유족으로써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며 "가슴에 묻은 동생에게 니카타 형무소 측이 정중하게 사과를 한다면 잊을 수 있다"고 밝혔다.
C씨는 "무슨 보상을 받고 하자는 것이 아니"라면서 "형무소가 잘못을 인정하고 무릅을 끓고 고인에게 잘못을 빌어야 한다는 마음 뿐"이라고 털어 놨다.
동생의 유품으로 남은 것은 4만 몇 천엔.
우리 돈으로 쳐도 50만원이 안 되는 금액이다.
C씨는 "이 돈을 교도소에 있는 가장 어려운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며 "아마 동생도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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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제발 올려주세요....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