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고깃집에서 옷차림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푸대접을 받았다는 사연의 기사를 접하고 지난 주말 일이 생각났다. 그 '사건'이 있던 그날 오후에 나도 신사동에 있었다.
나는 지방에서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다니러 간 참이었고, 그래서 옷차림도 좋게 말해서 아주 편안했다.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그런데 그 기사를 보고 나서 까페 레스토랑에서 느꼈던 종업원들의 묘한 눈빛과 태도가 번뜩 생각났다. 처음에는 좀 친절하지 못하다라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워낙 매스컴에 자주 나오고, 사람들도 많아서 그렇게 싸늘한 동네일 거라는 생각은 못했었다. 간간히 외제차가 보이기는 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유별나다는 생각도 별로 못했었다. 나는 그저 지방에서 올라온 관광객의 입장에서 단순히 '구경'하려는 생각이었는데 이제와서 바보같이 내 옷차림이 어땠나, 머리 스타일이 많이 이상했나, 사투리가 사람들 귀에 거슬렸을까,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아무튼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다보니까 슬슬 좀 화가 난다.
대한민국은 어떤 식으로도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다. 돈 좀 있네, 하는 부류들의 특권의식이 우스꽝스럽다 생각했는데 그렇게 따라하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은 뭐라 설명해야 할까. 불쌍하다, 도 아니고 왠지 좀 슬퍼진다. 나까지 포함해서. 그런 분위기에 살짝 주눅들어서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게 참 슬프다.
북유럽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들 많이 얘기 하는데, 그 지역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은 왕실이 있는 나라다. 그런 나라는 오히려 신분적 계급의식이 철저해서 상류층이든 그에 속하지 못하든 자신의 신분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데올로기처럼 신봉될 게 뻔한 그런 견고한 신분질서가 사회를 안정적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유럽의 외양은 그럴싸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라 교육받은 나같은 사람에게 북유럽 사람들의 내면은 이해불가일지도 모르겠다.
TV에서는 우리나라로 치면 틀림없이 중산층 이상 될법한 경제력을 가진 수도 배관공도 나왔고, 고상하게 차려입은 의사 부부도 나왔다. 경제적으로는 양쪽이 모두 부족한 게 없었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그들이 절대 함께 어울릴 수 없는 부류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유럽은 풍요롭지만 결코 평등한 나라는 아닐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그 나라 상류층들의 신분적인 우월감에서 나오는 편집증적인 배려가 참으로 싫을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과 비교하기 좋아하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하는 족속으로 종종 비춰지지만,
나는 그 점이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의 아주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를 조금 비틀어서 표현한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누구도 우리에 대해 절대 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헌법에서조차 우리나라의 정체를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절대적으로 특권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이 어디 그런가. 협동도 하지만 경쟁도 하고, 나란히 가기도 하지만 줄이 세워지기도 하지 않나. 그 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줄에서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네가 될 수도 있지만,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우리나라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자리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바뀌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뒤처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논리가 아니라, 앞서가는 사람들이 뒷사람들을 배려하는 논리로 작동할 때 더 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때야말로 대한민국이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 나라로 거듭나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몰상식한 행동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인 계급의식도 조금 사라지지 않을까.
그냥 부자 동네에서 느낀 모욕감에 대해 생각하다가, 우리나라의 모순적인 국민의식에까지 생각이 미쳐서 주절이 주절이 말이 길어졌다.
...그래서 결론은, 우리나라가 말도 안되는 우월의식과 계급의식을 가지고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그래서 그런 것 때문에 주눅들지 않는 그런 너그러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