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적어준 세가지 장소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인데, 니가 좋아할지 모르겠네 (웃음). 먼저 노트르담으로 가, 그리고 노트르담 성당의 꼭대기로 올라가면 파란 잔디로 된 언덕이 보이고, 그 언덕 위에 교회가 하나 있을거야. 그게 몽마르트고, 내가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야. 많은 거리의 예술가들이 있는, 좁은 골목이 너무 매력적인 곳이지. 거기에 가면 물랑루즈도 볼 수있고, 사크레 사원도 볼 수 있어. 아! 그리고 노트르담을 떠날 때, 시떼 섬 옆에 있는 생 루이라는 작은 섬으로 가봐. 그리고 Berthilon 이라는 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어야해, 꼭! 거기 있는 아이스크림이 파리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이야!
살짝 미화된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파란 두 눈을 반짝거리면서 그녀는 정말로 저렇게 말 했습니다. 파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순간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느낄만큼,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로. 기억 속 파리를 떠올리는 그녀는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저는 그녀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순간을 감사하게 생각했고, 파리에서 돌아오면 그녀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리라,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그녀와 공유하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또한 노트르담, 몽마르트, 생 루이만큼은 최고의 사진을 선물해주리라, 생각했습니다. 저로서는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사진 뿐이었으니까요. 제 첫 일정은 이미 몽마르트로 결정입니다 (웃음).

내가 지금 프랑스에 와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완벽한 이방인입니다. 영어를 잘 하는, 심지어 수퍼마켓에서 만난 60먹은 할아버지도 생활에 필요한 왠만한 영어는 구사하는 네덜란드를 떠나, 불어로 물어보지 않으면 제대로 대답해주지도 않는다는 그 프랑스에 와있습니다. 심지어 할 줄 아는 불어라곤, 빠동(미안합니다)와 예쁜 빠리지엔느를 만나면 자기 소개하고 꼬셔보라고 (웃음), 그녀가 알려준 몇몇 도움 안되는 문장들 뿐입니다. 이방인이라는 느낌은 설렘과 불안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동시에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전의 앞, 뒷면과 같아서 불안이 없이는 설렘도 없고, 설렘이 없이는 불안도 없습니다. 어떤 동전의 면을 보느냐는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사실 유럽여행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습니다. 위험이 아예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김어준 총수의 말을 빌리자면, 쫄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거에요. 외국인들은 북핵문제를 엄청나게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한국에 살지 않으니까 모를 수 밖에 없습니다. 위험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북핵문제 때문에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배낭여행객들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가본 적이 없으니까, 모르니까, 더 불안하고 무서워하고 조심하게 되는 겁니다. 조금은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그 설렘과 불안을, 물론 그대가 보는 동전의 앞면엔 설렘이 적혀있길 바라요.
몽마르트로 향하는 지하철은 모든 것이 신기합니다. 손잡이를 힘껏 돌려야 열리는 지하철 문도,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발음을 자랑하는 불어를 노래하듯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독일과 네덜란드에선 쉽게 볼 수 없던 흑인들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도, 지하철 환승을 하기위해 걷는 지하철역 복도에서 느껴지는 암모니아 냄새까지도요. 여름에 파리를 방문했던 어떤 친구는 파리를 오줌 지린내로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거의 모든 화장실이 유료이기 때문에 새벽같은 때는 지하철역 복도에 실례를 하기도 하나봐요. 아니면 애완동물들의 쉬야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됐던 이 냄새는 포유류의 소변 이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어쩌면 제가 여름에 오지 않은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엔 오줌 지린내로 남아있는 파리가,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니까요. 하지만 지하철 역 복도에서 나는 냄새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웃음), 한국의 지하철이 최고라는 생각을 갖게 해줬습니다.

파리에서 저를 먹여주고 재워줬으며, 저와 함께 파리를 둘러봤던 유림이는 겁이 많았습니다. 몽마르트 언덕을 정면으로 올라가면 친절한 흑인 아저씨들이 반강제로 팔에 실팔찌를 만들어주고 그걸로 돈을 갈취해간다는 걸 어디서 듣고왔는지, 돌아서 가자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푸른 잔디 위에 있는 사크레 사원을 꼭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저는 레이디의 말을 존중하는 젠틀한 남자니까 돌아서 가기로 합니다. 특히 미인의 부탁에는 약한 젠틀맨인데, 유림이는 무척이나 미인입니다 (헤벌쭉). 그 덕분에 물랑루즈를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입장해서 쇼를 본 건 아니고 바깥에서만 봤습니다. 영화를 매우 감명깊게 봤는데, 영화의 명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밤에 왔으면 더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시 예술의 거리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추천해줬던 프랑스 영화 La Vie En Rose를 보면서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라고 상상했던 좁은 골목길, 그림 그리는 사람들, 마리오네트를 공연하는 예술가 여인, 그 주위를 둘러싼 구경꾼들, 마리오네트를 보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꼬마숙녀들, 회전목마, 주전부리를 파는 장사꾼들, 조금은 멈춰서서 거리의 예술가들에게 시선을 빼앗겨 줄 여유를 가진 사람들, 달착지근한 츄러스 냄새, 사탕 냄새, 젤리 냄새, 엄마에게 주전부리를 사달라고 떼 쓰는 아이, 와인을 시음하고 구입할 수 있는 노점에서 자신의 와인을 시음하다 취해버린 아주머니, 어찌나 냄새가 달콤한지 먹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 꿀로 만든 비누를 파는 노점, 어쩌면 우리네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타이니 스몰 에이시안 가이가 바라보는 그 모습은 흥미롭기 그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나는 이방인이니까요.
그녀는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많은 파리의 명소들 중에 몽마르트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고 했으니까요. 그녀는 부끄럼을 많이 타고,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낯을 가리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입니다. 항상 고민해요, 그리고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어려운 사람이야? 나는 대답합니다. 아니, 전혀.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지만 참습니다. 더 말 했다간 내 마음을 다 털어놔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자전거를 고치고 있는 내게 다가와, 궁금증이 가득한 눈동자로, 한국남자들은 그 정도는 다 고치는거야? 라고 묻던 그 순간, 오늘 밤에 케익 만들어서 친구들이랑 같이 먹을건데 너도 오지 않을래? 라고 어려운 듯 말을 꺼내던 붉은 입술을 본 그 순간, 파리까지 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 기차타고 갈거면 내가 역까지 차로 태워다줄까? 라고 내게 물었던 너를 좋아하고 있다고요. 지금 그녀는 내 옆에 없지만, 지금 그녀는 나와 함께 몽마르트를 여행하는 중입니다. 내 눈이, 내 카메라가 그녀의 눈이 되어줄거에요. 그녀가 좋아하는 몽마르트를 그녀 책상 앞으로 가져다줄겁니다. 찰칵, 하는 셔터소리가 오늘따라 더 경쾌하게 느껴집니다.





낮부터 해가 져서 깜깜해 질 때까지, 몽마르트를 바라봤습니다. 몽마르트를 바라보며 바게트 샌드위치 하나를 우걱우걱 뱃속에 밀어넣었습니다. 유림이가 추천해 준, 파리에서 가장 맛있는 빵집에서 산 샌드위치였는데, 맛을 음미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샌드위치의 맛을 음미하느라 몽마르트를 놓쳐버릴까봐, 저기서 노래하고있는 저 청년의 목소리를 한 음절이라도 놓칠까봐, 아슬아슬한 난간에서 공으로 쇼를 하는 저 청년의 몸동작을 놓칠까봐, 해가 저물어가는 몽마르트의 아름다움을 놓쳐버릴까봐요. 여기서 맥주를 파는 저 청년들은 어떻게 저렇게 태연하게 장사를 할 수 있을까요? 만약에 나라면 장사따위 다 내던져버리고, 매일 앉아서 시간을 보낼겁니다.
몽마르트에서의 일몰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어디에 홀렸다가 돌아왔나봅니다. 일몰을 카메라에 담는걸 깜빡했어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제 눈에 담아뒀으니까요. 가끔은 생각합니다. 나는 여행을 추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가, 사진을 찍기위해 여행을 하는가? 당연히 전자입니다만, 어떨 땐 뷰파인더로만 여행지를 감상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사진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내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는 것이 몇 배의 감동을 선사해줍니다. 사진은 추억하기위한 매개의 수단이지, 추억과 기억 그 자체는 아니니까요. 뷰파인더와 컴퓨터 스크린으로 바라본 세상, 그리고 내 눈으로 바라본 세상,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요? 내 마음에 담긴 몽마르트의 일몰을 추억합니다. 그리고 파리에서 돌아왔을 땐 그녀와 밤새도록 몽마르트 이야기를 나눴어요. 같은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 했던 몽마르트는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렸겠지만, 그녀의 기억 속 일몰과 내 기억 속 일몰은 어떻게 달랐을까요?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 속 몽마르트의 일몰은 어떻게 남아있나요?

출처: 영삼성
[원문] [사진찍는 이은상의 감성 유럽] Paris (2), 예술과 낭만의 언덕, 몽마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