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히 바람을 피운 건 아닙니다.
서른셋, 친구들이나 친한 형님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합니다.
담배를 좀 많이 피우지만 내 앞에서는 피우지 않고
술도 잘 마시지 못합니다.
알뜰하고 성실하고 일머리가 있어 무슨 일이든 배우면 곧잘 하는,
자기만의 사업장을 꾸려나가는 멋있는 남자입니다.
1년 정도를 연애했고 남편의 사랑에 하루하루 행복에 겨워
1년 중 웃지 않은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연애하면서 예뻐졌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되었고,
이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크게 싸우는 일은 없었지만 한 번 싸울 때마다 마음이 지쳐갑니다.
부부간의 싸움이라는 것이 칼로 물베기라지만,
일방적인 그의 분노를 받아내는 것이 이제는 조금 힘에 겨워옵니다.
한 번은 밥을 하려고 쌀을 씻던 중, 자연스레 친정 집에서 하던 방식으로 쌀을 씻는데
남편이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알고 있는..시댁에서 하는 방법을 일러주는데
조곤조곤 설명해주기 보다는 이게 옳으니까 무조건 이걸로 해! 네 방법은 틀렸어, 비효율적이야!
라고 말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사소한 일 때문에 가끔...싸우곤 했습니다.
사실 싸웠다기보다는 그가 일방적으로 혼을 냈다고 봐야겠지요.
마치 어른이 아이를 혼내듯 그렇게 나는 아내라기보다는 마치 자식처럼 그에게 혼이 나곤 했습니다.
저는 요리도 잘 하지 못하고, 살림도 잘 하지 못합니다.
자취를 오래 해서 귓동냥으로 이것저것 배우긴 했지만,
귀찮아서 굶고 다닌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야근이 많은 직업이라 꾸준히 집안 살림을 신경쓰기보다는 일주일에 몰아서 청소를 하는..
그런 스타일입니다.
결혼 후 못한다고 미뤄두기보다는 자꾸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요.
서툴긴 해도 열심히 하려고 하면 남편도 자꾸 도와주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도와주면서 종종 본인의 의견(?)과 다를 경우 불같이 화를 내는 건 여전했습니다.
그에게 난......결혼 후 내내 살림 못하는 무능한 아내였습니다.
남편이 집안일을 솔선해서 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남편은 기본적으로 여자 일, 남자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래도 저녁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도와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청소를 할 때 밀수건로 거실 바닥을 닦는 일도 남편의 몫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바빠지면서는 그것마저도 힘들어졌지요.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새벽 3시 반 정도가 일상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내가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결혼한지 몇 달 되지도 않은 남편이 새벽 3시, 4시가 되도록 퇴근을 못한다는는 이야기를
들은 다른 사람들은 저를 불쌍하게 쳐다봤지만 크게 신경쓰진 않았습니다.
정말로....괜찮았으니까요.
일전에 남편이 이벤트에 당첨되어 대형 마트 5만원권 상품권이 당첨되었습니다.
남편은 상품권을 수령할 수 있는 일련번호를 제게 보내주었고,
수령 기한이 정해져 있는 거라 기한 내에 찾아와야 했었죠.
하지만 기한이 여유있다는 핑계로, 그리고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제가 그 기한을 넘겨버렸고
결국 상품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전화로 엄청나게 화를 내더군요.
그 날 마침 치료의 목적으로 체형교정관리를 받으러 가던 중이었는데(운전 중)
전화기 건너편으로 쏟아지는 남편의 분노 어린 목소리는...참 무서웠습니다.
이러다 퇴근하면 남편에게 맞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남편은 내가 살림을 못하는 무능한 여자로 생각하였겠지요.
내게 살림을 때려치라 했습니다. 그 외에도 욕이 섞이진 않았지만 잔뜩 화난 말투로
내게 거침없이 분노를 쏟아내었고 전 그냥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남편은 거실에서 잠을 잡니다. 제가 있는 쪽으로는 오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 저는 안방에 갇힌 것마냥 생활했습니다.
눈물이 나더군요. 아무리 노력해도 난 남편에게 있어 그저 살림 못하는 무능한 아내인 것만 같아
속상하고 서러웠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결혼 후 남편 사업 자금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려고 매달 월급의 반을 적금으로 부었습니다.
두서너달에 한 번씩 주는 생활비(백만원)로 두 사람의 생활비로는 충분했기에
고마운 마음을 담아 한달에 100만원씩 불입하는 1년짜리 적금을 매달 넣고 있습니다.
만기될 때쯤 남편이 현금이 많이 필요할 때인지라....조금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적금 넣는 것만 알지 그 이유는 모릅니다. 나중에 놀래켜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남편에게는 매달 적금을 붓는 것보다 5만원권 상품권을 받아오는 게 더 살림에
보탬이 되는 것처럼 보였던 걸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제 잘못도 제 잘못은 있으니까요..
상품권 일의 경중을 떠나,
남편과 나 사이의 일방적인 상하관계, 그리고 집안일이나 요리 등 살림에 있어
남편의 뜻과 어긋날 경우 일방적으로 내가 잘못한 것이 되버리는 그런 상황들...
그런 것들이 나를 지치게 만듭니다.
내가 잘못한 것은 당연히 인정하지만,
그냥 우리 둘이 서로 살아온 방식이 "다르고", 다른 생각, 다른 습관들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마치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전부 그릇되고 "잘못된" 것인마냥 말하는
남편의 말에 너무 많이 상처를 입게 됩니다.
어느새부터인가.....
남편에게 나는 한없이 부족한 아내구나...라는 생각에 자존감은 바닥을 칩니다.
남편이 원하는 아내는 내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한없이 슬퍼집니다.
...남편이 왜 나와 결혼했는지....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남편에게 사랑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봅니다.
남편에게 있어 나의 가치는 그의 말에 순종할 때만 있었던 걸까요?
어제는 먹지도 못하는 술을 무리해서 세 캔이나 마셨습니다.
스스로가 너무 못나보여 칼로 손목을 몇 번이나 그었는데..
칼이 날카롭지 않은 탓에 크게 다치진 않았습니다.
어제 이후....마음을 조금씩 닫으려고 노력중입니다.
노력한다고 쉽사리 되는 건 아니지만..혼자서라도 이혼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사실 이혼이라는 말도 너무 우스운 것이
혼인신고도 아직 못한지라 이혼이라는 말도 성립하지 못합니다.
그냥 사실혼 관계가 사라질 뿐이겠지요.
그동안 부은 적금에 남편 사업자금에 보탰던(빌려줬던) 5백만원을 받아
조그마한 월세방을 얻으려고 합니다.
시어머니께 받은 예물, 한복도 돌려드리고 그냥 제 짐만 싸서 나오려고 합니다.
집이야 남편 것이니 애초부터 나의 것이라 생각한 적이 없고,
제가 마련한 혼수도 그냥 두고 나올까 생각 중입니다. 작은 월세집에 두기엔 너무 큰 물건들이니까요.
그렇게 저는...나홀로 이혼, 아니 나홀로 이별을 준비중입니다.
남편은 더 좋은 여자, 더 능력있고 살림 잘하는..그런 여자 만날 수 있을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