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가 지금 부터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픽션일 수도 있고, 논 픽션 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십대 후반입니다.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습니다.
제 이야기에 어떤 한계점을 두지 마시고 그냥 읽어주세요.
제목만 보고 뭐지? 라고 호기심에 들어오신 분도 있을 수 있겠고, 잘못지은 제목탓에 그저 흘러가듯 묻히는 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이 글이 굳이 실화라고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아주 오래 혼자 지니고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합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아주 오래전, 제가 초등학생 시절에서 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습니다.
12살.
저는 또래 중에서도 제법 큰 편에 속했고, 그렇다보니 체구도 또래중에서는 가장 큰 편이었습니다.
그나이에 하는 싸움박질이라고 해봐야, 어설프게 머리채를 쥐어잡고, 어쩌다가 헛손질한 주먹에 코라도 스쳐, 코피라도 터트리는 날에는 개선장군이라도 된 모양으로 날뛰던..
그저 그런 평범한 어린아이 였습니다.
여름.
제가 살던 곳은 굉장히 덥기로 유명한 곳으로, 그날도 찌는듯한 폭염에 체육수업은 꿈도 못꾸고 그늘에 앉아 친구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원래 수업 내용이었던 철봉.
하지만 철봉은 달아오를대로 달아올라 있었고, 선생님 조차도 철봉을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날 수업은 그저 자유 종목인지 뭔지.. 여튼 그냥 놀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운동장에서 교실로 이동하는 10분 가량.. 순간적인 현기증에 머리가 핑 돌더군요.
격렬한 구토가 느껴졌고 그자리에서 점심때 먹었던 급식을 모두 게워냈습니다.
그 짧은 순간, 죽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움, 수치심.. 만감이 교차하며 정신을 잃었습니다.
운동장 구토어린이가 되어 남은 학교생활을 보내야 할테니까요.
눈을 뜨니 병원이었습니다.
일하다 말고 달려온 어머니의 얼굴에, 눈물이 핑돌며 아무생각없이 그저 펑펑 울기만 했습니다.
가벼운 일사병이라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제 마음은 결코 가볍지가 않았습니다.
이제 학교에서 겪어야할 놀림들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었지요.
그나이때는 화장실에서 똥만 싸도 똥쟁이가 되던 시절 아닙니까.-_-
병원에서 나와 집에서 하루를 쉬고, 다음날 어머니께 울며불며 도저히 학교를 못가겠다 말하고, 그렇게 하루를 땡땡이 치며 이부자리에 가만히 누워있었습니다.
......
그래요.
그때 학교를 갔었어야 했습니다.
운동장 테러어린이가 아니라, 구토왕이라고 놀리더라도 갔었어야... 했었습니다...
어머니는 일을 하러 나가시고, 아버지도 이른 새벽 일하러 나가신 조용한 집.
그곳은 제가 처음 느끼는 생소한 세계였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어머니께서 늘 제가 학교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들어오면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고,
아버지는 조금 더 늦게 '어험'하면서 철문을 끼익하고 열고 들어오셨기에, 조용한 집은 저에게 너무나도 낯선 공간이었습니다.
늘 따뜻하고 달달한 냄새가 감돌던 곳.
그런데 그곳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마치 내가 있어야할 곳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조용한 불전에 하이힐을 신고 또각거리며 돌아다니는 여자처럼 말입니다.
뭐, 그런 여자는 없겠지만요.
그정도로, 아주아주 조용하고 낯선 세계이자 공간이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윙윙 돌면서 틀어두었던 선풍기가 무슨 만화책에선가 읽었던 것 같은 괴물 처럼 보였고, 저는 여름용 이불의 얇음을 탓하며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쓸 수 밖에 없었지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저도 모르게 잠시 잠이 들었나 봅니다. 머리 끝까지 올렸던 이불은 잠버릇 덕분에 다리와 다리사이에 끼어저 있더군요.
그리고 저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 합니다.
가위에 눌린다고.
그런데 이것이 가위에 눌린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움직일 수도 있었고, 앉을 수도,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숨도 가뿐하게 잘 쉬어졌고, 몸 어디하나 구속되었다는 느낌이 없었으니까요.
단, 한가지.
가위눌림과 같은 현상이라면 귀신이라는 무언가를 보게 된다는 점.
그것이 단 하나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었겠네요.
눈을 떴을때 내 머리맡에서 내려다보는 남자아이의 얼굴에, 의외로 소리를 지를 기분도 들지 않더군요.
낯선 사람이 자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면, 귀신이 아니더라도 소리정도는 지를법도 한데..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약속된 친구를 만난 모양으로 저 역시 말끄러미 그 남자아이를 바라보았으니까요.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눈은 광대까지 내려와 있었고, 코는 납작해서 구멍만 두개가 있었습니다.
입술은 굉장히 얇고 푸르스름한건지, 흰건지, 심지어 검은색인건지 조차도 구분이 되지 않는 미묘한 색깔이더군요.
어린저라도 인간은 아니겠구나, 싶은 얼굴이었습니다.
남자 아이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눈을 두어번 깜빡이더니 고개를 들어 제 머리 맡에 무릎을 꿇고 앉더군요.
저는 조용히 이불을 걷고 남자아이와 마주보고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뭔가 말을 할듯, 상대방 남자애가 입술을 움찔 거렸지만 결국 끝까지 말을 꺼내지는 못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음.
지금도 간혹, 니가 무슨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그때의 저는 정말이지 간이 큰건지, 작은건지, 겁이 많은건지, 적은건지.. 무슨생각으로 귀신에게 안녕하냐는 말을 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죽은사람이 안녕하겠습니까?
남자애도 기가 막혔는지 입꼬리를 부들부들 떨더니 이내 크게 웃기 시작하는데, 얇고 작았던 입술이 점점 벌어져서 귀끝까지 찢어지더군요. 그때는 지금 생각해도 조금 섬짓 합니다.
저는 웃지도 않고 조용하게 무릎위에 손을 올리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남자아이는 한참을 신나게 웃더니, 언제 그랬냐는듯 웃음을 뚝 그치고 저와 같은 자세로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있더군요.
그렇게 얼마나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을 까요.
눈을 한 백번쯤 깜빡인 시간이 흘러간 것 같았습니다.
그제야 남자아이는 그 큰 눈을 두어번 깜빡이더니
- 오늘은 이제 갈게.
그리고는 사라져 버리더군요.
그것이, 제가 이 친구를 알게된 첫 만남의 이야기 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간직한 이야기..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기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익명의 힘을 빌어 털어내 보려고 합니다.
길게 끌 생각은 아니었는데, 첫 만남이 저에게는 너무나 중요했던 순간이라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 길어져 버렸네요.
약속이 있어서 돌아와서 마저 털어내 볼까 합니다.
그럼, 오늘도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