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신분이셨습니다.
저를 낳으실때 초산에 난산으로 힘을 너무 주셔서 치질이 생기셨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하셔서 돌아가실때까지 평생 지병으로 고생하셨습니다.
어렸을적 엄마에게 왜 하필 치질이냐며 생각없이 물었던 기억이 나서 가슴이 미어집니다.
자궁에 혹이 생겨 수술했다가 잘못되어 40대 초반에 자궁 적출 수술까지 하셨습니다.
평생 몸이 편찮으셨던 엄마가 한달전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임신 7개월이었습니다.
20살부터 29살까지 외국생활을 하느라 엄마와 20대를 함께 보내지 못한 것이 참 마음에 걸립니다.
32살이 되어서야 임신하여 엄마가 참 기뻐하고 좋아하셨습니다.
먹는것 입는것 쓰는것 다 도와주셨습니다.
입덧이 너무 심하여서 엄마가 당신께서도 그러하셨다며
나 닮아 너도 난산이면 어떡하나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잘못된 산후조리가 평생 지병을 낳을수 있다는걸 강조하시며 산후조리원을 부득부득 직접 예약하셨습니다.
이제 엄마는 그렇게 안아보고 싶어하셨던 첫외손자를 보지 못하십니다.
엄마가 돌아가신뒤 아기를 위해 잘 먹고 태교도 하고 손바느질도 해왔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제게 제 엄마의 빈자리가 너무도 큽니다.
밥먹다가도 울고 자다가도 깨 울곤하는 저를
남편은 아이도 걱정이지만 니가 걱정돼서 못보겠다며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해결책이 딱히 있는것도 아니니 남편도 점점 지쳐가는게 보입니다.
시어머니는 친정엄마도 뱃속아기가 잘못되는건 원하지 않으실거라며 그만 좀 울라고 하십니다.
맞는 말인데 참 야속합니다.
남편이 말을 했는지 시누가 예전보다 자주 찾아와서 신경써주곤 합니다.
참 고마운데 시누는 아이 낳을때 옆에 엄마가 있었는데 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친정아버지를 모시자는 말은 남편이 먼저 꺼냈습니다.
아버지는 한사코 거절하시고 남동생이 아버지는 걱정말라고 합니다.
제가 아버지를 만날때마다 우니 아버지도 잘 만나려 하시지 않습니다.
엄격하신 아버지는 너 나 보면 더 힘들테니 보지말고 태교에 힘써라 하십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잠깐 눈물 비춘것 외에
평생 제앞에서 소리내어 울지 않던 아버지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엄마 장례식장에서 오열하시는걸 봤습니다.
지금도 아버지는 혼자 울고계실것 같습니다.
우는 것이 아기에게 좋지 않다는 건 잘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딱히 엄마 생각을 하지 않아도 계속 눈물이 납니다.
좋은 생각만 하고 싶은데 좋은 생각을 해도 눈물이 납니다.
엄마가 아구찜 먹고 싶다고 했는데 미루다가 먹으러 가지 못했던게 생각납니다.
엄마와 하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납니다.
엄마에게 툭툭 던지듯이 했던 상처가 되었을 말들이 생각납니다.
엄마가 없다는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엄마가 참 보고싶습니다.